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돕는 도시 프셰미실
오늘자 뉴욕 타임즈 (New York Times)에 실린 "A Town on Ukraine’s Edge, Determined to Escape Its Past (과거를 벗어나기로 결심한 우크라이나 접경의 한 마을)"라는 제목의 기사 내용을 중심으로 짧게 소개합니다.
"I’m not going to explain history to a three-year old who just crossed the border." (난 지금 막 국경을 넘어온 3살배기에게 역사를 설명하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러시아 침공 전에는 반 우크라이나적 견해를 주장해온 국수주의적 정당 창립자 미스터 바쿤 (Mr. Bakun)이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하면서 한 말.
폴란드의 프셰미실 (Przemyśl, 프셰미슐)은 도시 중심에서 우크라이나 국경까지의 거리가 고속도로로 불과 12Km, 도시 끝에서 직선 거리로는 겨우 4Km 떨어진 도시입니다. 인구 6만의 작은 도시이지만, 산과 평야가 만나는 곳에 강을 끼고 형성된 오랜 무역의 통로이자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전략적 요충지'란 늘 강대국들 사이에 끼어 걸핏하면 전쟁터가 되는 곳들이고, 프셰미실 또한 그런 아픔을 가진 도시입니다. 이 도시 전체가 현재 거대한 구호 기구가 되어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돕고 있다고 합니다.
이 도시는 우크라이나와 서유럽을 잇는 주요 철도와 도로가 통과하는 곳이라 러시아의 침공 후 한 달간 무려 50만명의 우크라이나 난민들이 이곳을 거쳐갔습니다. 지금 이 도시의 식당은 단골 손님들 대신 난민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학교 체육관은 축구 경기 대신 우크라이나인을 유치합니다. 지역 신문은 전쟁으로 트라우마를 겪는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어린이들을 위한 심리적 지원을 위한 기금을 모금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폭탄을 피해 온 난민들의 모든 필요를 면밀히 고려해 돕고 있고, 심지어 수의사들은 난민들의 애완동물들까지도 밤낮으로 돌봐주고 있습니다. 시 웹페이지에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위한 24시간 콜센터, 난민 숙소, 음식, 식수, 통역, 의료, 운동가, 창고등 모든 방면의 도움을 홍보하며 나서고 있습니다. 프셰미실 외에도 폴란드 전역에서 무척 활발하게 난민들을 돕는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 폴란드 작가들의 도움과 난민을 돕는 페이스북)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당장 침략자 러시아의 위협을 직면해야 하는 상황이 될테니 다른 나라들보다도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돕는 것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따뜻한 보살핌은 20세기 내내 끔찍한 유혈 사태를 겪었던 프셰미실의 역사를 볼 때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벌어진 6개월간의 프셰미실 공성전 (Siege of Przemyśl)은 제 1차 세계대전 중 일어난 가장 긴 공성전이었습니다. 제 1차 세계대전 후에 프셰미실은 다시 폴란드와 서 우크라이나 인민공화국 (West Ukrainian People's Republic) 사이의 분쟁 지역이 되어 주고 받는 학살과 복수 속에 많은 주민들을 잃어야 했습니다.
러시아 침공 이전 이미 100여 만명의 우크라이나 근로자들이 폴란드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과거의 앙금은 많이 가라앉기는 했다고 하나, 이런 아픔을 겪어온 마을이 한 때 원수처럼 여겼던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돌보기로 마을 전체가 발 벗고 나섰다는 사실이 많은 생각을 던져 줍니다.
한국도 최근 큰 화두 중 하나가 "과거 청산"이었지요. 일제 강점기 가해자의 책임 규명과 피해자의 보상및 명예 회복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80여년 전 일이다보니 가해자도 피해자도 당사자들은 거의 세상을 떠서, 친일파 '후손 색출' 과 반일 운동으로 번졌습니다. 과거 청산의 가장 큰 목적이 다시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당사자들간에 화해와 화합이 일어나도록 하는 것임을 생각할 때 아직도 청산의 길은 요원해 보입니다. 그래서 과거 청산이라는 의도와는 무관하게 시작된 프셰미실과 폴란드의 손길은 과연 두 나라간의 과거 청산에 어떻게 기여를 할지 무척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만약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면,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들에게는 과연 그들을 돌봐줄 마음의 여유가 있을지도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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