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의 멸망" 이재형

로마 제국은 군대와 노예제라는 양축에 의해 지탱되던 국가였다. 이 두 시스템은 로마가 초거대 제국으로 팽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 두 시스템은 본질적으로 지속 불가능성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두 시스템이 자기모순으로 스스로 붕괴하자 로마 제국은 저절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로마는 제정 초기 30만 명, 이후 많을 때는 40만 명이 넘는 전업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러한 병력 규모는 고대 사회에서는 도저히 한 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그로부터 천 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중세 시대, 유럽의 강대국이라는 스페인, 프랑스, 잉글랜드 등이 보유한 전업 군인이라 해봐야 아무리 많아도 2만 명을 넘지 못했다. 그만큼 군대는 돈을 많이 먹는다. 유럽에서 로마 이후 최초로 전업 상비군 30만 명에 도달한 국가는 17세기 후반의 프랑스였다. 그만큼 군대 유지에는 국가적 부담이 크다.
로마가 30만 명의 전업 군인을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돈을 벌어다 주었기 때문이었다. 로마군은 각지에서 정복 전쟁을 벌여, 정복한 땅에서 수많은 전리품과 포로, 노예를 끌고 왔다. 이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은 군대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훨씬 능가했다. 군대가 더 많은 돈을 벌어왔기 때문에 군대 유지 비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2세기 초반에 이르자 로마는 팽창을 멈췄다. 이제 군대가 벌어오는 돈은 없어졌다. 그래도 군인의 월급은 물론 보너스와 퇴직금까지 꼬박꼬박 챙겨줘야 한다. 더욱이 이미 지나치게 비대해진 군은 정치적 영향력까지 갖게 되었다. 황제조차 그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로마 재정의 70~80%가 군대 예산으로 들어간다. 그래도 군인들은 불평이다.
결국 군인들의 실질 소득은 크게 낮아졌고, 이에 따라 정예병들은 이탈하고 빈자리를 어중이떠중이들로 채웠다. 이렇게 그 강력했던 로마군은 스스로 무너져 내렸고, 바바리안들은 무능하고 무기력해진 로마군을 헤집고 다녔다.
로마는 유럽에서 그리스를 제외한다면 문화나 기술적으로 가장 앞선 국가였다. 이탈리아의 풍요롭고 비옥한 땅에서 생산되는 식량 작물은 로마인들을 먹여 살리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제조업을 비롯한 여타 산업에서도 로마는 첨단을 달렸다. 로마인들은 주위 어느 나라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로마가 정복 전쟁으로 스스로 팽창하면서 이러한 상황에 서서히 변화가 왔다.
팽창 초기에는 로마가 자신들의 우수한 제품을 새로이 정복된 속주로 수출하여 많은 부를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로마의 첨단 산업들이 생산비가 싼 에스파냐, 갈리아, 게르마니아 등의 속주로 이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로마의 산업 공동화가 시작된 것이다. 로마에서 산업이 사라지면서 일자리가 없어져 갔다.
더 큰 문제가 나타났다. 정복 전쟁에서 잡아온 노예들이 로마에 대량으로 풀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농촌과 광산에서는 노예들을 이용하였다. 광산에서 일하던 자유민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귀족들인 대농장주는 노예들을 이용하여 생산량을 확대했다. 소규모 자작농들은 경쟁에서 도태되어 땅을 귀족들에게 팔아넘기고 농토를 떠났다. 귀족들은 더 높은 수익을 위해 식량 작물 재배를 그만두고 농장을 과수원으로 바꾸었다. 이탈리아의 식량 생산이 바닥으로 내려갔다.
일자리를 잃은 자유민들은 로마로 가 도시 빈민, 즉 프롤레타리아가 되었다. 그러나 로마라고 해서 그들의 사정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로마는 이미 산업 공동화가 일어나 일자리가 크게 줄었으며, 그나마 남아있는 소수의 일자리도 모두 노예로 대체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고급 일자리는 남아 있을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게 아니다. 고급 일자리일수록 노예들이 그 자리를 모두 꿰차고 있었다.
사람들은 로마의 노예들이라면 귀족 집안에서 채찍을 맞아가며 힘든 노동 일을 하는 광경이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대량의 고급 노예들이 로마로 들여졌다. 예술가, 의사, 교수, 기술자 등 로마의 여러 속주에서 노예로 잡혀 온 사람들이 고급 일자리를 차지하였다. 거대 상인이라면 CEO 자리를 비롯한 주요 간부들을 모두 노예로 채운 것이었다. 로마 시민들은 자영업이 아닌 한 취업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영화 「벤허」를 보신 분들은 벤허의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후, 벤허의 저택을 지키고 벤허 집안의 재산을 잘 숨겨 보존한 집사 시모니데스를 기억할 것이다. 그 시모니데스의 신분도 노예이다. 이렇듯 많은 중요 포스트에 노예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유민들은 소득도 없고 직업도 없다. 이렇게 된다면 빈민들의 폭동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그래서 로마 정부는 빈민에게 무상으로 빵을 나누어주는 정책을 도입하게 된다. 로마 인구 100만 명 중에 20만 명 정도가 이 무상 배급을 받았다고 하는데, 이를 개인이 아니라 가구 단위로 보면 일부 귀족과 대상인을 제외한 로마의 자유인 거의 전부가 그 대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사람이 밥만 먹고는 살 수 없다. 뭔가 다른 일을 하지 않으면 불만이 싹튼다. 그래서 로마 정부는 검투 시합이나 전차 경주 같은 이벤트를 자주 만들어 시민들에게 무료로 관전하도록 하였다. 어느 유명한 로마 시인은 이를 "빵과 서커스"라 표현하며 한탄하였다.
시민들이 직업을 가지고 있지 못하니까 로마 정부가 시민들에게 돈을 나누어주려고 해도 그 체계적인 전달 방법이 없었다. 가끔 이벤트성으로 돈을 뿌리듯 배급하는 경우가 간혹 있을 뿐이었다. 로마 시민의 경제적 기반은 이렇게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노예제도가 가져온 처참한 결과였다.
이상과 같이 로마를 양쪽에서 떠받치던 군대와 노예제는 스스로의 모순으로 저절로 무너져 버렸고, 그 강대했던 로마는 마지막 비명조차 없이 그냥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로마 제국의 멸망을 보면 현대의 어떤 나라가 겹쳐 보인다.
이재형: 고려대 경제학 박사. 전 통계청 통계개발원장
[원문 출처]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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