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1): 병어조림
아래 글은 올해 4~6월에 참가했던 YWAM의 BEDTS (Business Eagle Discipleship Training School)를 주최하신 여자 선교사님의 글입니다. 이 글에 나오는 청년은 BEDTS의 진행을 도와준 사람 중 한명이었고요.
오늘은 뭐 먹지? 늘 하는 고민이다. 시장에서 음식 재료를 사다가 왠지 그날은 생선조림을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 병어를 샀다. 맛있게 조려진 병어조림은 냄비째 냉장고로 들어갔고 이틀 동안 숙성의 과정을 겪었다. 말이 숙성이지 사실 생선비린내를 싫어하는 우리 가족은 아무도 생선조림을 먹지 않았다. 병어조림의 숙성 과정이 끝날 무렵 우리와 가까운 한 청년이 점심때 우리 집에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 갑자기 오는 거라 따로 음식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우리가 이틀 동안 외면했던 병어조림. 외면당해 왠지 서럽게 쭈그려 앉아 있을 것 같았던 병어조림이 나름대로 꿋꿋이 숙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이제 먹을 시간이 되었다며 당당하게 준비의 자세를 하고 있었다. 생선 냄새 때문에 집 밖에서 병어조림을 데우는 동안 청년이 찾아왔고 나는 그 청년에게 밖에서 끓고 있는 냄비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때 그 청년은 약간 놀라는 표정으로 “혹시 생선조림이에요?”라고, 물었다. 그리고 바로 다시 물었다. 조금 전과 다른 떨림과 긴장의 목소리였다. “혹시... , 혹시… 오늘 메뉴가 병어조림이에요?” 질문 후 내가 어떤 대답을 할지 궁금함을 넘어 꼭 병어조림 이어야만 한다는 간절함의 질문이었다. 병어조림이라는 나의 말에 이 청년은 갑자기 손뼉을 치고, 울먹이기까지 하며, 심지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며 흥분했다. 며칠 전부터 내가 예전에 해준 병어조림이 너무 먹고 싶었고 매일 밤 병어조림이 먹고 싶다고 기도까지 했다고 한다. 요즘 물가가 너무 많이 올라 매끼 햄버거와 냉동 음식만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유학생이기에 집밥 생각이 사무치게 간절했고 그중 병어조림이 매일 그 청년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그 청년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두 마리 병어조림을 혼자 다 먹었다. 그리고 차분하며 조용한 목소리로 진심을 담아 말을 꺼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병어조림은 제가 평생 잊지 못할 맛입니다. 그리고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 것 같습니다. 그의 눈빛은 예전과는 사뭇 다른 진실함이었고 삶의 방향을 제대로 깨달은 구체적이고 정확해진 모습이었다. 매일 나에게 주어진 같은 하루, 반복되는 일들이지만, 누군가의 삶에 소중한 무언가를 건네준 오늘은 어제와 다른 맛있는 하루였다.
그저 우연이었을까요? 적어도 이 청년에게는 필연이었던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 병어조림 두마리이겠지만, 이 청년은 이 병어조림 두마리를 통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신의 일상까지도 섬세하게 살피시고 들으시고 채워주시는 분이신 것을 체험한 사건이었습니다. Local Community College를 다니며 삶의 비전과는 별로 상관 없이 별로 의욕 없는 삶을 살던 청년인데, 이 날 이후로 이 청년의 하루 시작은 새벽 4시로 당겨졌고, 자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진지한 기도와 생각이 시작되었다는 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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