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 제도: 1일차 Trælanípan & Trøllkonufingur
이번 여행을 가면서 사실 조금 걱정이 있었습니다. 함께 가는 동행이 고등학교 동창이라고는 하나, 나이 들어 다시 만나게 된 사이에 미국 동부/서부 끝으로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에 몇번 만난 적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희 둘이 가는 여행에 동창 딸이 원해서 함께 가게 되었는데, 이 두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은 6년 전 이 친구 가족들이 저희 지역을 방문했을 때 이틀간 데리고 다니며 안내해준 것이 전부였거든요. 사람들마다 생활 패턴/습관이 있어 가족들끼리도 잘 조율을 하지 않으면 여행 중에 서로 기분을 상하게 될 수도 있고, 20년 넘게 이웃으로 지내던 분들이 10일간 자동차 여행 함께 다녀온 후로 다시 서로 보고 싶어하지 않는 경우도 본 적이 있다보니 10일간 함께 생활하는 것에 조바심이 났습니다.
여행 중 동행 간에 일치되지 않으면 참 어려운 것이 숙소와 식사 문제라서, 일단 제가 대충의 일정을 잡은 후 함께 가는 친구 딸에게 숙소와 식당 결정을 일임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친구 딸이 신세대답게 폭풍 검색으로 저렴하고 좋은 숙소들을 잡아 주었고, 여행 내내 중년 남자 둘만 갔으면 절대 먹지 않았을 젊은 입맛(?)의 달달구리를 포함해서 좋은 맛집들을 골라주었습니다. 무엇보다 친구와 친구 딸이 배려와 이해심이 많아 순조롭게 9박 10일에 걸친 긴 여행을 잘 마무리한 것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도착한 첫째 날은 비가 내리지 않아 날씨가 참 좋았는데, 해질 때까지 시간이 6시간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숙소에서 반경 20분 거리 내의 장소들만 갔습니다. 이날 간 곳과 시간들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 2:15pm 바가르 페로 국제 공항(Vágar Faroe International Airport) 도착
- 3:25pm 렌탈카(rental car, rent-a-car) 수속한 후 서쪽 5분 거리의 숙소에 도착
- 4:00pm~7:25pm 트랠라뉘판(Trælanípan) 구경
- 7:40pm~8:20pm 트럴코누핑구어르(Trøllkonufingur, witch's finger) 구경
- 8:40pm~9:20pm 숙소 부근의 Café Zorva에서 저녁식사
첫날의 하이라이트는 트랠라뉘판(Trælanípan) 이란 곳입니다. 제가 페로 제도를 이번 여행에 추가한 것은 아래 사진을 본 것이 계기였습니다. 바다에 연결된 깎아지른듯한 절벽 위에 있는 커다란 호수. 이 세상에 이런 풍경이 존재할 수 있는건가 갸우뚱하게 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surreal) 풍경이지요. 아마도 헬리콥터에서 찍은 사진이었겠으나 실제로 이런 자연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사진의 길다란 호수는 설버그스바튼(Sørvágsvatn) 이라고 페로 제도에서 가장 큰 호수입니다. 마을 끝자락 (A 지점) 에서 절벽 꼭대기 트랠라뉘판(Trælanípan, E 지점) 아래의 D 지점까지는 거의 평지에 가까운 길로 왕복 1시간 반이면 다녀올 수 있는 곳입니다. [왕복 5.4Km+𝛼 = 1.5시간, 오르막 고도 110m = 아파트 44층. 난이도 4/10] 저희는 풍경이 너무 멋져서 열심히 사진 찍다보니 거의 3시간 반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드론을 사서 가져간 것도 이곳을 담아보고 싶은 욕심이 크게 작용했는데, 문제는 유일한 공항이 지척에 있고 공항 끝에서 5Km 반경 (핑크색 파선) 의 드론 금지 구역안에 이 곳 포함된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래처럼 좀 떨어진 곳에서 우회를 해 찍어볼 계획을 세워 갔는데요.
3일차 새벽에 생각해 둔 위치로 가서 실제로 날려보니 제가 구상했던 경로에 문제가 있는지, 반 정도 간 후로 더 이상 드론이 전진하지를 않았습니다. (요즘 드론은 GPS로 위치를 확인해서 비행금지 구역에서는 이륙도 되지 않고 그 구역 안으로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저 끝 모퉁이만 돌면 원하는 구도가 나올텐데... 결국은 실패하고 포기해야 했습니다 😭
1일차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구글 맵에서 "Slave Cliff"라고 검색해서 가면 주차장이 나옵니다.
이 곳은 사유지인데, 명소로 소문이 나고 관광객들이 늘어나자 토지 소유주가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헬리콥터에서 찍은 멋진 대형 사진들이 걸려있습니다. 입장료가 15세 이상 200DKK ($30), 7~14세 50DKK ($7.50) 으로 싸지는 않습니다만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카드 결제 가능)
입장료를 받은 후 주인 (? 관리인?) 이 나와서 산책로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해줍니다.
영상 3도 정도에 구름이 조금 낀 날씨입니다. 풍속 40Km/h 정도의 바람이 불어 쌀쌀한 것 외에는 아주 좋은 날씨입니다.
이번 여행에 함께 동행한 동창입니다.
영화 <메리 포핀스 (Mary Poppins)>의 남자 주인공이었던 딕 반 다이크 (Dick Van Dyke)와 외모가 닮았고, 노래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합니다.
1/3쯤 왔습니다. 멀리 보이는 절벽 꼭대기가 최종 목적지인 트랠라뉘판(Trælanípan)입니다. 친구 딸이 아빠를 위해 대포급 망원렌즈 (Sigma 150-600mm) 를 대신 짊어지고 갑니다
1년 중 300일간 비가 내리는 곳이라, 곳곳에 개울물이 흘러내립니다.
호수변 곳곳에 오두막집들이 있는데 사람이 살기 위한 것인지 창고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몇 개 있는 돌탑(cairn, 페로어로는 패르디 varði) 중 하나입니다. 높지는 않아도 걸핏하면 부는 강풍에도 무너지지 않고 있는 것이 신기합니다. 페로 제도는 제대로 된 길 없이 자연 그대로인 곳이 많은데요, 사람이 다녀도 될 안전한 길들을 표시하는 이정표로 저렇게 돌탑들을 쌓아놓는다고 합니다. 자주 끼는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확인하는 좋은 방법이지요. 초기 북극 탐험대들은 죽음에 직면한 상황이 되면, 후발대들을 위해 이런 돌탑을 쌓고 그 안에 탐험 기록을 남기곤 했습니다. 한참 갔는데도 보이는 돌탑이 하나도 없다면, 위험할 수 있는 길로 가고 있다는 방증이니 되돌아 가시는 것이 안전하겠습니다.
2/3쯤 왔을 때 (B 지점) 몇장 찍고 이어 붙여 파노라마 사진으로 만들어 봤습니다. [원본 다운로드: 44.9 Mpixel, 12.7MB]
트랠라뉘판(Trælanípan) 부근의 계곡에 도착해서 언덕 위로 조금 올라갔습니다 (C 지점). 건너편 트랠라뉘판(Trælanípan)에 먼저 올라간 사람들이 보이네요. (이렇게 감사할 데가 😆 ) 해발 148m니까 엄청난 높이는 아니지만 바다 수면까지 깎아내린 수직 절벽은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합니다. 트랠라뉘판(Trælanípan)이라는 이름은 'slave cliff'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합니다. 옛날 바이킹 시절, 죽을 죄를 지은 노예가 있으면 이 절벽 꼭대기에서 밀어 떨어뜨렸다고 하는군요 😱
계곡 사이로 멀리 산도이(Sandoy) 섬이 보입니다.
계곡 중간은 (D 지점) 계곡 사이로 불어오는 강풍이 엄청 납니다. 풍속이 100Km/h는 족히 되는듯 45°로 몸을 기울여 서 있어도 될 정도입니다. 다행히 바람의 방향은 내륙 쪽으로 불고 있어 위험하지는 않지만, 두 중년 남성들은 쫄보라서 감히 계곡 앞까지 다가서지도 못하고 낮은 포복 자세로 납작 업드려 있었지요 😅 자세가 마치 저격수 같군요.
D 지점 주변을 다시 여러장 찍고 이어 붙여 파노라마 사진 한장 더. [원본 다운로드: 106.6 Mpixel, 21MB]
왼 쪽 섬은 콜투르(Koltur). 오른쪽 헤스투르(Hestur).
D 지점에서 트랠라뉘판(Trælanípan, E 지점) 꼭대기를 향해 올라갑니다.
트랠라뉘판(Trælanípan, E 지점) 꼭대기에서 본 풍경.
버스달라포수르 (Bøsdalafossur) 폭포 쪽으로 내려가 봅니다.
꼭대기에서 반쯤 내려온 위치에서 다시 여러장 찍고 이어 붙여 파노라마 사진 한장 더. [원본 다운로드: 74.1Mpixel, 21.1MB]
폭포를 바로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 (F 지점) 까지 가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폭포와 해안 절벽이 멋집니다. 낙차가 30m니 엄청 큰 폭포는 아니지만 계속 비가 내린 덕에 폭포 수량이 예상보다 많았습니다.
3초간의 장노출로 찍은 사진 4장을 합성한 파노라마 사진입니다. [원본 다운로드: 66 Mpixel, 14.8MB]
같은 장소에서 장노출로 몇장을 더 담아봅니다.
폭포에 물이 많지 않을 때는 물을 건너 반대편으로 갈 수 있는 것 같으나, 장화도 없었고 비가 계속 온 후라 물살도 세서 가지는 않았습니다.
버스달라포수르 (Bøsdalafossur) 폭포에서의 촬영을 마무리하고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까지 돌아와, 다음 행선지인 트럴코누핑구어르(Trøllkonufingur, witch's finger)로 이동했습니다. 15분 거리에 약간의 비포장 도로가 있으나 작은 자갈로 깔아 놓아서 승용차로 가도 문제는 없습니다. 정식 주차장이 있는 것은 아니고, 몇 대의 차를 세울 공간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마녀의 손가락' 처럼 뾰죽하게 하늘을 향해 313m 높이로 솟아 오른 돌입니다. 산책로가 있는데, 불과 200m 정도 후에 사유지가 시작되어서 더 이상 갈 수 없고 먼 발치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어차피 절벽 낭떠러지라서 사유지 안으로 더 들어간다해도 더 보기 좋은 각도가 나올 수는 없어 보였습니다. [왕복 400m = 3분, 거의 평지. 난이도 0/10]
대신 드론이 허용되는 장소라서 바다쪽으로 드론을 날려 몇장을 담아 보았습니다.
이곳을 보고나니 8:20pm이 되어 식당이 닫기 전에 일단 숙소 부근에서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Café Zorva는 저녁 5~10시만 여는 작은 카페입니다. 케밥(kebab)이나 랩(wrap) 종류는 $12정도면 먹을 수 있고 버거류는 $17이내, 피자는 $12~$15, 생선이나 스테이크가 $23~$33 정도로 페로 제도 물가치고는 저렴합니다. 피자 2개와 피타 케밥(pita kebab)을 주문했습니다. 피자 가격이 낮아서 개인용 피자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두사람이 먹어도 넉넉할 정도로 큰게 나와서 놀랐고 결국 반은 남겨서 싸왔습니다. 엄청난 맛집은 아니어도 맛 준수하고 가성비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구글평점 4.7/5.0. 제 평가로는 맛 8/10점, 가성비 9/10점. 페로 제도와 아이슬란드는 토마토 케첩을 달라고 해야 주더군요. 미국 케첩보다 염도가 낮아 맛이 산뜻합니다. 이곳은 $0.75를 추가로 지불해야 했습니다.
추가로 주문한 감자 튀김 (french fries). 감자 맛이 너무 괜찮아서 놀랐습니다. 페로 제도와 아이슬란드 여행 내내 거의 매일 감자를 한번은 먹었는데 다 맛있더군요. 주로 크기 작은 점질(waxy)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
식사 마치고 나니 9:20pm. 일몰 시간이 이미 거의 되었으나, 구름이 너무 멋져 뮐라퍼수르(Múlafossur) 폭포 를 향해 차를 달렸습니다. 하지만 결국 가던 도중 해가 수평선에 닿는 것을 보고 일단 숙소로 돌아와 페로 제도에서의 첫날을 마무리 했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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