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불꽃
1월 1일 새해 첫날 성경공부를 함께 하는 지체들과 성령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현대 교회에서는 많은 경우 "내가 과연 성령을 받았은가" (다른 표현으로 하면 "내 안에 성령께서 들어오셨는가") 에 촛점이 맞추어집니다. 그리고 통상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누구나 성령께서 임재하시며 우리를 인도하신다" 로 결론 지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리고 성경이 우리 믿는자들에게 말씀하신 바는 단순히 성령을 받았는가의 on/off 여부가 아닌 얼마나 성령으로 충만한가의 intensity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믿음의 고백을 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 분은 우리에게 강권적으로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천지의 창조주이시며 그 분의 아들 예수께서 우리를 속죄하신 구세주이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이 우리를 죄로부터 자연스레 멀어지게 하거나 그 분의 군사로 살게하는 것은 아닙니다.
로마서 7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바램과는 반대로 행하는 자신의 죄성으로 인해 좌절합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I find then the principle that evil is present in me, the one who wants to do good. For I joyfully concur with the law of God in the inner man, but I see a different law in the members of my body, waging war against the law of my mind and making me a prisoner of the law of sin which is in my members. Wretched man that I am! Who will set me free from the body of this death?" (로마서 7장 21~24절)
그런 그가 8장에서는 돌연 자유함과 승리를 선포합니다.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육신에 속한 생각은 하나님께 품는 적대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으며, 또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육신에 매인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은 육신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For what the Law could not do, weak as it was through the flesh, God did: sending His own Son in the likeness of sinful flesh and as an offering for sin, He condemned sin in the flesh, so that the requirement of the Law might be fulfilled in us, who do not walk according to the flesh but according to the Spirit. For those who are according to the flesh set their minds on the things of the flesh, but those who are according to the Spirit, the things of the Spirit. For the mind set on the flesh is death, but the mind set on the Spirit is life and peace, because the mind set on the flesh is hostile toward God; for it does not subject itself to the law of God, for it is not even able to do so, and those who are in the flesh cannot please God. However, you are not in the flesh but in the Spirit, if indeed the Spirit of God dwells in you But if anyone does not have the Spirit of Christ, he does not belong to Him." (로마서 8장 3~9절)
7장과 8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차이는 누가 주체인가 하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을 전도할 때 많이 쓰이는 다음 성경말씀은 불신자들을 향한 말씀이 아니라, 이미 믿음을 가진 교회를 향한 말씀이었습니다.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Behold, I stand at the door and knock; if anyone hears My voice and opens the door, I will come in to him and will dine with him, and he with Me." (계시록 3장 20절)
7장의 주체는 "나 (I)"인 반면, 8장의 주체는 "성령 (the Spirit)"입니다. 그리스도를 주 (Lord)로 모시고 사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영을 따르는 (according to the Spirit of Christ) 것이며, 그런 삶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유지함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성경의 많은 곳에서 성령 하나님의 임재는 불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성령 충만함을 유지하는 것은 불을 관리하는 것과 많은 유사성을 보입니다.
성냥이 발명되기 전까지 불씨를 관리하는 것은 인간의 삶 속에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한번 꺼진 불씨를 자력으로 되살려 불을 피운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현대 크리스찬들의 문제는 기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이 피워질 때까지 열심히 그리고 충분히 기도하지 않음을 그저 반복하면서, 바뀌지 않는 나의 삶과 아무런 일도 보이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실망하고 좌절한다는 것입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복음은 누군가의 전도를 통해 이루어지며, 성령의 불길은 이미 성령의 불씨를 가진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졌음을 우리는 성경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가장 쉬운 첫 걸음은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는 것 혹은 가 있어야 할 곳에 가 있는 것을 통해 이루어 집니다.
반면 이미 받은 불씨는 각자의 기도 속에서 자신의 자아를 매일 매일 쉬지 않고 태움으로만 유지되어 집니다. 작은 성냥불은 금방 꺼지기 쉽습니다. Charcoal fluid가 속까지 배어들기 전에 붙인 불도 처음에는 fluid덕에 맹렬히 타오르지만 얼마 가지 않아 연기만 날리며 꺼지고 맙니다. 지속적이지 못한 불 역시 땔감부족으로 불이 사그러지게 되며 궁극적으로 꺼질 수 밖에 없고, 그 불씨를 다시 되살리는 것은 웬만큼의 시간과 열정으로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죄는 마치 물과도 같아 우리의 불을 급격히 위협해 옵니다. 탐욕과 더러움과 음행과 분냄은 개인의 불을, 그리고 분쟁과 분열과 파당은 공동체의 불을 꺼버립니다. 이런 죄들이 우리의 불을 끄려고 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체함 없이 그 죄의 물기를 증발시킬 성령의 기름을 부어주시기를 기다리며 즉시로 눈물의 회개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 급박한 시기를 놓치면 우리는 축축히 젖어버린 땔감으로부터 다시 불을 일으켜야만 하는 고통과 수고의 긴 시간을 겪어야만 합니다. 때로 이 죄가 너무나 중대하여,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시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현대 교회에서 늘 강조하는 무한하신 사랑과 인내의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결코 죄를 간과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땔감을 준비하는 것이라면, 기도를 드리는 것은 땔감을 불 위에 올려 놓는 것과 같습니다. 땔감만 잔뜩 준비한다고 해서 불이 유지되지 않으며, 불 위에 아무것이나 마구 올려놓는다고 해서 불이 유지되지도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말씀과 기도중 어느 한가지라도 소홀히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불을 꺼지게 합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불을 피운 벽난로에는 타고 남은 재가 불씨를 늘 가지고 있어서 땔감만 올려 놓으면 자동적으로 불길이 타오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안에 성령의 불씨를 유지 하는 것은 나의 자아가 타고 남은 재입니다. 선하게 살고자 하는 나,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나, 그런 나 조차도 역시 타서 없어져야할 나 (I)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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