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cession: God's Network
'응???....... 그.... 분?'
5년 전 가을 어느날 그 분은 그렇게 저를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그 때 저는 허공에 외치는 공허함과도 같은 기도에 지쳐 기도하기를 아예 포기한지 이미 몇년이 지난 상태였습니다. 찬송을 불러도, 설교를 들어도, 아침마다 무릎 꿇고 엎드려도 제게는 그 분의 현존하심(presence)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기도는 포기했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을 부인할 수는 없어 매주 교회는 계속 갔습니다. 그러나 제 삶 속에 그 분과의 관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물이 없어 갈라진 논바닥 같이, 먼지만 날리는 황야와 같이 제 영혼은 이미 말라 죽어 있었습니다.
그 분께서 저를 다시 찾아오신 그 날은 아무런 특별함이 없었습니다. 은혜로운 찬송도, 마음을 후비는 설교도, 성령의 폭발적인 권능도, 나의 열정적인 기도도... 그저 교회 초등부의 학부모들이 모여 저녁을 함께 먹고 초등부에 대한 생각들을 짧게 나눈 후 마무리 기도를 하던 지극히 평범한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그 때 저는 마치 오랜 가뭄에 지쳐 쓰러진 얼굴 위에 떨어진 한줄기 빗방울과 같은 그 분의 임재를 감지하였습니다. 즉시 소파에서 내려와 바닥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고 그 날 이후에야 비로소 저는 다시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Layoff를 당하면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 위해 resume도 뿌리고, 사람들에게 도움도 청해보고, 인터뷰도 하고, 심지어는 새로운 분야로 이직하기 위한 공부까지도 해봅니다. 그래서 몇 개월 내에 직장을 얻으면 내 노력과 내 실력 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년이 넘어가고 2~3년이 지나도록 직장을 얻지 못하면 자포자기하게 됩니다. 마치 완전히 체념한 중에 있는 실직자에게 뜬금 없이 날아들은 job offer letter처럼 그 분은 제게 기도의 문을 다시 열어주셨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희망은 끊어져버린지 너무도 오랜 후였습니다. 그래서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그 분의 주권에 따른 은혜였다고...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에베소서 2:8)
왜 하필이면 제게 다시 찾아오셨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분의 마음이 혹 조금이라도 사람의 노력에 의해 움직였던 것이었다면 제가 아닌 다른 사람 덕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철저히 중보기도 (intercession ) 라는 소개 (referral) 시스템을 통해 확장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오늘 내게 주어진 믿음은 내게서 난 것이 아니라 나를 하나님께 소개한 어느 누구 (조상, 부모, 형제, 혹은 친구) 에게서 난 것이고, 그 사람의 믿음 역시 그 사람에게서가 아닌 다른 누구에게서 난 것이며, 그 믿음의 가계도(family tree)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까지 올라가서, 최종적으로 아브라함을 그의 본토, 아비, 친척집을 떠나라고 불러내신 여호와 하나님께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스스로에게서 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로마서 4:16)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요한1서 4:10)
복음을 전하는 사람 역시 자신이 할 수 있는 단 한가지는 그 사람을 하나님께 그리고 하나님께 그 사람을 소개하는 일 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지 않으면, 성령께서 그 눈과 귀와 마음을 열어주시지 않으면, 어떤 공교한 말로도 어떤 노력으로도 그 사람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특정한 장소에 특정한 인물을 통해 특별히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비성경적이라고 말합니다. 나에게 응답하시고 은사를 주시는 하나님은 내가 골방에서 혼자 기도할 때에도 똑같이 역사하신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럼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를 드려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직접 응답을 받은 고넬료는 왜 굳이 베드로를 집으로 청해야 했고, 왜 하나님께서는 그 베드로를 통해서 고넬료의 집에 성령의 은사를 주셔야만 했을까요? (사도행전 10장)
하나님께서는 편애 하시지 않으시는 분이시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똑 같은 시간, 똑 같은 장소에 똑 같은 방법으로 사람들을 부르시지 않으십니다. 그 detail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인데, 그 주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이미 하나님과 친밀함(intimacy)을 가진 사람들의 중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더 가까운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고 하나님도 그 사람을 더 기뻐하여 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주십니다. 이것은 마치 가문의 계보처럼, 그 분의 증인들을 통해서만 이어져 세상에서 하나뿐인 믿음의 계보를 이루게 됩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7)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찌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말라기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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