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b (욥)
Job (욥)
요즘 생명의 삶 본문이 욥기입니다. 처음 욥기를 공부하던 생각이 나네요. 성경공부반에서 "잘 읽히지 않는 구약 성경 읽기"라는 제목하에 3개월동안 출애굽기의 성막을 시작으로 레위기등등을 거쳐 마지막으로 욥기를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성경공부 인도자였지만 저도 처음 공부해 보는 내용들이라 진도만 잡아 놓고 매주 정해진 부분을 그때 그때 닥쳐서야 본문과 씨름을 하고 있었지요. 욥에게 닥친 황당한 재앙, 세 친구들의 주장, 욥의 항변과 질문, 그리고 또 다른 한 친구 엘리후의 주장, 끝으로 하나님의 말씀... 이렇게 한발자국씩 걸어 마지막 42장에 드디어 다다랐을때 저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긴 이야기 끝에 직접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38~41장에 걸쳐 욥에게 수많은 질문 공세를 던지십니다. 그전에 있던 욥의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단 한마디도 없이... 욥의 반응이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장에서 욥이 돌연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라고 종결을 짓는 부분을 접하게 되면서 저는 황당했습니다. 정상을 보려고 힘들게 4,200m 고지까지 올라와 마지막 한발을 내딛는 순간 갑자기 땅이 푹 꺼진듯한 기분이랄까요? '아니, 내가 기대한 결론은 이런게 아니었는데? 대답 한 마디 없으셨는데 그 수 많은 질문들은 다 어떻게 하고 대체 뭐가 됐다는거야?' 반복해서 되씹기를 성경공부반이 모일 주일을 코 앞에 둔 토요일 저녁까지 며칠 간 내내 했는데도 제 머리 속에서는 여전히 욥기가 전혀 소화 되고 있지 않았기에 저는 그 다음날 성경공부 인도하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아마도 그 때가 지금껏 성경공부 준비하면서 가장 큰 스트레스를 느껴본 때 같습니다.)
38~41장을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한 끝에 토요일 밤 늦게 "하나님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피조물일 뿐이다" 한 문장으로 간신히 줄여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욥에게 "미안하다. 많이 아프고 고통스러웠지?"라는 말 한마디 하시지 않으신 퉁명스러운(?) 하나님의 태도에서 저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유추해 정리해봤습니다.
- 우리가 선하던 악하던 그건 인간사이지 하나님과는 사실 큰 상관이 없다.
- 하나님은 당신께서 원하시는대로 뭐든지 하실 권리가 있으시다.
- 하나님은 그 이유들을 우리에게 일일이 설명하실 의무가 없으시다.
- 하나님은 우리의 질문에 답하실 의무도 없으시다.
- 혹 하나님께서 설명하시고 답하시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다 이해할 수 없다.
욥은 상황에 대해 납득한 것 같은데, 왜 나는 납득을 하지 못할까를 다시 생각하면서 2가지 정도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I. 우리의 기대
우리는 스스로 뭔가 착하게 살면 하나님께 복을 받는 것이 당연한 듯한 기대를 가지고 삽니다. 욥기를 보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났던 욥도 그런 생각과 기대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우리에게 마땅한 것은 "해산의 고통과 가시덤불과 엉겅퀴와 땀흘리는 수고" (창세기 3:16~19) 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그 분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그 분께 돌아오면 우리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우리 몸의 소생과 우리 가축의 새끼와 우리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고 (신명기 30:9) 또 그렇게 하시지만 그것이 결코 우리에게 당연한 권리(entitlement)가 아닌 은혜(grace)임을, 하나님은 지으신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공평하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공평하게 내리우시는 분이심을 (마태복음 5:45) 욥에게 가르치시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II. 문제의 해결
위로도 대답도 하지 않으셨지만, 해결은 되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계 속에서 터져나오는 "왜? 왜? 왜?"의 대부분은 사실 상대방에 대한 실망과 회의 (욥의 경우 "하나님 대체 어디 계신건가요?") 의 표출일뿐, 많은 경우 그 질문들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이런 측면은 남자분들보다 여자분들이 잘 이해하시더군요 ㅎㅎ)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개입을 통한 실질적인 문제의 해결이 무척이나 그 사람에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미 하나님을 알고 경험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꼭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상황을 알고 계시고 관심을 갖고 지켜보신다, 내 기도를 들으신다, 나를 사랑하신다, 나를 기뻐하신다, 나를 신뢰하신다, 내 아픔을 함께 나누고 계신다, 내 땀과 눈물을 계수하고 계신다. 그리고 무엇보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무한하신 그 분께서 지금 내 곁에 오셔서 나와 더불어 말씀하고 계신다... 이런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크신 하나님의 임재(presence)는 내게 세상의 부도, 명예도, 쾌락도, 그리고 고통도 더 이상 보이지 않게 합니다. 욥도 아마 그랬을 것 같습니다.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Best Way to Live (0) | 2014.10.10 |
---|---|
The Measure of Faith (0) | 2014.02.23 |
Enoch walked with God (0) | 2013.01.21 |
Lifetime (0) | 2013.01.21 |
거기 좀 비키세요 (0) | 2012.10.27 |
Intercession: God's Network (8) | 2012.09.12 |
Exaggeration (과장) (0) | 2012.09.04 |
장학생 선발 회의를 마치고... (2) | 2012.08.13 |
Greed (0) | 2012.05.03 |
성령의 불꽃 (0) | 2011.01.04 |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Lifetime
Lifetime
2013.01.21 -
거기 좀 비키세요
거기 좀 비키세요
2012.10.27 -
Intercession: God's Network
Intercession: God's Network
2012.09.12 -
Exaggeration (과장)
Exaggeration (과장)
2012.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