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람을 보는 눈이 없는 것이라면 좋겠다
내가 사람을 보는 눈이 없는 것이라면 좋겠다
솔직히 말해, 문재인 후보에게 크게 기대하는 바 없었고, 그래서 이번 정권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정치자금 문제로 대법원 유죄판결을 받은 한명숙 전 총리에게 끝까지 보호막 치는 것도 좀 그랬고 (정치권에서 보면 정치적 보복이라 볼 여지도 있긴 하지만), 김홍걸과 같은 금수저 평생백수를 영입하면서 '정치는 사람입니다'라고 하는데에는 할 말을 잃었고 (추락하는 호남권 지지율 올리려고 쇼한 것이라는 것은 알지만), 정계 은퇴니 대선 불출마니 뻑하면 말 바꾸기 하는 것이나 표 생길만한 거라면 말도 안되는 것 같은 공약 남발하는 것도 기성 정치인과 전혀 다를바 없어 보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친노 그룹의 수장이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그릇이 너무 다르게 느껴졌고, 그저 망자의 인기에 파도타기나 하는 정치인 정도로 봤다.
그런데 취임한지 채 10일이 안되는 동안 놓는 한수 한수를 보며 '혹시 내가 사람을 잘못 본건가?'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정치권보다는 검찰에 있다는 것이 평소 생각인지라, 최근 탄핵 사건이 법 앞에서는 권력도 겸손해야 한다는 좋은 사례로 남게 되기를 바랬다.
취임식 다음날 서울대 조국 교수를 민정수석으로 영입하는 것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다. 보통 사람들은 함께 일할 사람으로 가장 유능한 사람보다는 자기 시키는대로 해줄 사람을 선호하는 법이다. 하물며 수석 비서관이면 자신의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사람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울텐데, 잘은 모르거니와 조국 교수는 그런 류와는 거리가 멀게 보이던 사람이라 '의외로(?) 제대로 해보려는 구석이 있네' 싶었다.
그러던 중 어제는 서울지검장으로 윤석열 검사를 임명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윤석열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법과 소신으로만 똘똘 뭉쳐, 잘못한 것 보이면 주인(?)도 물을 사람이다. 김대중 정부의 실세였던 박희원 치안감, 참여 정부의 측근이었던 안희정과 후원자였던 창신섬유 강금원 회장,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 박근혜 정부의 원세훈 국정원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칼을 들이밀은 장본인이다. 그런 일들을 성사시키기 위해 때로는 사직서를 구속영장과 함께 제출하기도 했고, 결국 좌천되어 근 3년간 후배 검사 밑에서 일하는 수모도 겪었다.
대학동창 중 국내 S전자에서 오래 일하다가 대만에 직장을 잡아 이직한 Y라는 친구가 있다. 한국 정서상, 통상 그렇게 떠나면 상사들이 뒤에서 욕(?)을 하곤 하는데, 이 친구의 경우는 상사가 "도대체 착하고 성실한 Y를 꼬드겨 빼간 놈이 누구야?"라며 펄펄 뛰었다고 한다. 워낙 평소에 이타적이고 자기 이익 챙기는 것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정평이 난 친구였기 때문이다.
국정원 사건당시 조영곤 지검장을 상대로 거침없이 폭로전을 펼쳤음에도, 기수와 위계질서를 중요시하는 검찰 내부에서조차 그를 아는 사람들은 "만약 윤석열이 윗선에 항명했다면, 그건 윗선이 잘못하고 있다는 뜻이다"라는게 중론이었다고 한다. 사법 연수원 동기였던 박범계 판사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을때도 축하모임에 갔다가 술한잔만 마시고 10분만에 자리를 떠 박범계 의원이 페북에 "국회의원과 현직검사가 사석에서 함께 있으면 정치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에게 깨우쳐 주었다"고 쓴 일화도 있다.
임기 5년중 고작 0.5% 를 본 것이니 이전에 내가 본 문재인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제발 내가 사람보는 눈이 없는 것이었으면.... 정말 잘못본 것이었으면 진짜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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