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Old-Fashioned Church
An Old-Fashioned Church
대학시절 학교 근처에 수요예배 드리러 가던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화여대 앞 2호선 지하철 역에서 신촌 시장쪽으로 들어가 달동네와 같은 좁은 골목계단을 조금 올라가 낡고 허름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있는 50여평 남짓 옆으로 펑퍼짐한 공간이 예배당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예배당으로 들어가면 중간에는 나이드신 여자 성도분들이 한줄로 앉아, 옆으로 퍼진 예배당 양쪽 끝 문을 통해 따로 들어온 남자와 여자 성도들의 중앙분리대 역할을 하고 계셨지요.
교인들의 '뚝심'이 참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설교 중 간간히 함께 부르는 찬송가를 포함해, 설교시간이 예배 시간의 95% 정도를 차지했는데 보통 2시간 남짓, (참석한 적은 없지만) 주일 오후 예배는 3시간 이상을 드렸는데도 시종 무릎 꿇고 드리는 분들이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금요일 밤이면 연세대학 뒷산에서 교인들이 묵상기도로 철야기도를 드렸는데 산기도로 제법 내공이 쌓인 교회 선배 한분이 따라 가셨다가 손가락만한 왕지네들이 기어다니는 것을 보고 질겁해서 도망쳐 내려온 일화도 생각나네요.
일반 교회와 비교하면, 없는 것이 참으로 많은 엄청 '구닥다리' 교회였습니다. 장로회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한 후 누더기같은 옷과, 궂은 음식과, 삭발한 머리와, 흰 무명옷에 검은 두루마기와 고무신을 고집하고, 직접 농사 짓고 살며 사역했던 평양신학교 출신 초대 목회자의 영향으로 1980년대 중반에도 여전히 소속 된 교파도, 교회 간판도, 종탑도, 십자가도, 성가대도, 피아노를 비롯한 어떤 악기도 없이 시골학교 교탁같은 허름한 나무 강대상에 설교용 마이크 하나 있는 것이 전부인 그런 교회였습니다. 제가 갔던 당시의 담임 목회자께서도 삭발한 머리에 흰 두루마기를 입고 계셨으며, 예배실 여러 곳에서 비슷하게 머리와 옷을 한 남자 성도분들이 눈에 띄었고 여자분들의 대다수는 나이와 상관 없이 일제시대때에나 있었을법한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 파마 끼 없이 쪽진 머리들을 하고 계셨습니다. 얼마전 인터넷에 있는 설교 동영상을 보니, 2004년 소천하신 당시 목회자의 뒤를 이으신 분 역시 지금까지도 같은 스타일을 하고 계시는 것으로 보아 2013년 오늘까지도 교회 분위기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타일로만 보면 젊은 사람들이 전혀 끌리지 않을 곳임에도 불구하고, 장로회 신학대학에서 재학하는 신학생들도 여럿 매주 와 예배를 드렸고, 근처에 있는 이화여대 재학생들도 제법 많이 와 예배를 드렸습니다. 당시 여성 패션을 주도하던 지리적 상황때문에 몸에 달라붙은 패션 청바지, 옷깃 세운 티셔츠, 미니스커트, 심지어는 브라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겨드랑이가 깊게 파인 민소매 등의 차림은 방문객들에게서도 결코 드문 것이 아니었습니다. 워낙 그 교회의 분위기와는 이질적인 방문객들이었기 때문에, 처음 그 곳을 찾아갔을때는 극대극의 대비에 너무 놀라 뭔가 한소리 크게 듣게 되지 않을까 마음 졸이며 있었지만 그 교회 '구닥다리' 성도분들은 늘 모두 따뜻한 눈길과 인사로 '신세대' 청년들을 환영해 주셨습니다. 그곳은 50년 이상의 세월의 갭(gap)이 분명히 있었지만 그 갭을 이질감으로 만들지 않는 신기한 곳이었습니다.
그 교회 성도들도 현대인들이기에 처음부터 그런 구닥다리 차림을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저 어느날 그 교회를 저 처럼 그리고 이화여대 학생들처럼 방문하기 시작했을 것이고, 그 후 어느날 정식 교인으로 등록을 했을것이고, 좋아하고 존경하면 그 사람을 닮고 싶어하고 또 흉내내고 싶어하기 마련이라 다른 교인들과 동일한 정체성과 가치관에 자신도 몸 담고 싶어진 어느날 자신도 그런 구닥다리 차림까지 따라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검은 차도르를 칭칭감고 살아가는 중동의 muslim 여인들... 결과적으로 나타난 모습만을 본다면 제가 대학 시절 다녔던 교회의 여자 성도분들과 비슷하게 시대와 동떨어진 옷차림을 하고 있는 것이지만 왜 그렇게 하고 있는가의 이유와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그 옷 속에 있는 사람의 마음 역시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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