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의 도시 런던: Perilla (European)
세쨋날 저녁은 Perilla라는 유럽 음식 식당에 갔습니다. 한국 블로거들에게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보입니다.
식당이름 페릴라(Perilla)는 영어로 들깨라는 뜻입니다. 한국인에게는 친숙한 식재료지만 서양인들에게는 생소할 것 같은데, 그것을 식당 이름으로 지었네요. 콩글리시로 wild sesame라고도 부르지만 사실 들깨는 민트(mint), 세이지(sage)등과 함께 Lamiaceae family(科)에 속한 식물로 참깨와는 전혀 다른 종류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갔던 식당 중에 유일하게 런던에서 살짝 북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식당 주변을 보면 맛집 식당이 있을거라고 상상하기 어려운 다소 생뚱맞은 동네입니다. (메인 가격대 £17~28, 맛 9.0, 가성비 8.0, 인테리어 8.0)
식당 자체도 건물 patio에 지붕을 만들어 확장한 것 같은 어설픈 공간입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인테리어에 돈을 많이 들이지 않았을 것 같은데 무척 로맨틱하고 정이 가는 공간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명, 걸린 소품, 액자 같은 것도 다 소박하지만 치밀하게 생각해서 결정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분위기는 좋은데 엄청 어두워서 음식 사진 찍기 참 힘들었습니다.
식당의 Facebook 페이지에서 낮에 찍은 사진을 좀 퍼 왔습니다.
조그만 바(bar)도 있습니다.
화장실도 배관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 무척 오래된 공간인 것을 금새 알 수 있는데도, 신기하게 누추하거나 지저분 한 느낌은 들지 않고 정겨운 고향 시골집에 와 있는 아늑함이 느껴집니다.
식전 빵과 디저트 포함해서 메뉴가 11가지 밖에 되지 않습니다. 29세 젊은 셰프의 Instagram을 보면 새로운 메뉴를 계속 개발해서 부지런히 바꾸는 것 같아 보입니다. 오른쪽은 코스 메뉴로, 가격 면에서는 더 좋지만 한두사람만 코스를 주문하는 것이 불가능해서 단품 메뉴로 주문했습니다.
한국 식당처럼 테이블에 서랍을 만들어 그 곳에 포크, 나이프, 스푼을 세트로 넣어 놓았습니다.
새로운 음식이 나올 때마다 교체를 해줘야 하는 양식에서 이렇게 함으로써 종업원이 왔다갔다 해야 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네요.
서랍에서 식기 정리하는 틀만 빼서 미리 이렇게 준비를 다 해 놓을 수 있게 했습니다. 아이디어가 참 좋지요?
허브(herb)가 들어간 천연효모 빵 (sour dough bread)입니다. 이것도 돈을 내야 합니다. 버터 포함 £6.00 천연효모 빵 치고는 껍질이 얇고 속 식감이 상당히 가볍고 부드러워 약간 포카치아(focaccia) 빵 느낌이 살짝 느껴지는데, 와~~ 맛있네요. 돈 받을만 합니다. 빵 맛이 너무 괜찮아서 물어 보니 빵도 식당에서 직접 굽는답니다.
버터를 팬에 살짝 볶은 brown butter가 나왔습니다. 처음 먹어 보는건데 좀 더 응축되고 감칠맛이 나는군요.
자두(plum) 주스로 만든 mocktail(비 알코올 칵테일) £13.00
야채 샐러드. 기억이 가물 가물한데 아래 있는 노르스름한 것이 병아리콩(chickpea) 볶은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허브향 짙은 소스와 병아리 콩의 조화가 무척 흥미로왔습니다.
Parsley & lovage vichyssoise (파슬리와 미나리로 맛을 낸 차가운 감자 수프) £16.00
와~~ 셰프가 영화 <미나리>를 감명 깊게 봤나? 그릇은 막걸리 사발 같은 것에 나왔지만 먹어본 수프 중에 손 꼽을 정도의 맛이었어요.
Panisse (빠니스, bread라는 뜻) 개당 £6.00.
헐~~~~ 이 날 먹은 것 중 이게 제일 놀랍고 맛있었어요. Panisse는 장식으로 밑에 깔아 놓은 병아리콩(chickpea) 가루 반죽을 막대기(stick) 처럼 잘라 올리브유에 튀긴 것인데 남프랑스 외의 지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음식이라고 합니다. 저도 처음 보네요. 이 식당에서는 방금 튀겨내서 고소함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뜨끈 뜨끈한 빠니스 위에 페스토(pesto) 소스와 채소/향초 고명을 얹어 냈습니다. 디저트까지 다 먹고 식사를 마친 후에도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3개 더 추가 주문해서 먹었네요 😁
Reginette(레지네떼) with trompette mushroom ragu (트럼펫 버섯 라구 소스를 곁들인 레지네떼 파스타) £26.00
넓은 폭 면발의 가장자리에 엄청난 주름을 가진 reginette 파스타를 잘게 다진 trompette(트롬뻿) 버섯 소스에 버무려서 나왔습니다. 처음 구경하는 파스타 모양인데 이 주름이 소스를 잔뜩 가두어서 버섯의 풍미가 가득 느껴지는군요. 식당에서 직접 뽑은듯한 생면 파스타의 쫀득쫀득한 식감도 훌륭했습니다.
내 짜파구리 아임다~ ㅋㅋ
Steamed skate(홍어) £26.00
런던에서 홍어찜을 먹어보게 될 줄이야... 이 식당은 버섯을 참 잘 쓰네요. 홍어찜이긴 한데 홍어 양은 1/3 정도 밖에 되지 않고 버섯과 채소로 만든 고명이 더 양이 많은데 밸런스가 정말 훌륭했습니다. 생선 좋아하시지 않는 분들도 좋아할 것 같아요.
Grilled radicchio(적색 치커리), walnut(호두) & squash(호박) tart (타르트) £28.00
이것도 처음 먹어보는 타르트입니다. 호박 타르트에 호두를 왕창 넣어 은은한 단맛과 고소함을 주제로 잡고 독특하게 적색 치커리 이파리의 빨간 부분만 시럽에 절여서 장식을 했습니다. 과일이 아닌 쌉싸름한 맛의 채소로 저렇게 한 것은 처음 먹어 봤어요. 어떻게 저런 발상을 할 수가 있을까요?
Herb sorbet. £8.00
보통 단맛 과일로 만드는 것이 상식인 sorbet(소르베)를 솔방울 맛이 느껴지는 상쾌함으로 표현했습니다. 음식들이 무겁지 않았지만 입 안의 기름기를 완전히 잊게 해줍니다.
Mont Blanc doughnut (몽블랑 도넛). £14.00
위에 얹어진 소면 같은 것이 밤 페이스트고 얇게 저민 밤 조각을 장식으로 얹었습니다.
안에는 커스타드 크림. 이건 impact가 살짝 아쉬웠습니다.
단점은 음식들이 통상 양의 1/2 정도로 무척 작은데 가격은 제 가격을 다 받습니다. 식당 인테리어나 식기, 담음새등은 그 수준이 아닌데도 가격은 거의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 급이에요. (개업했을 때는 가격이 합리적이었던 것 같은데 7년 사이에 가격이 70%나 올랐네요)
그래서 가성비 점수를 7.0이나 7.5로 줄까 무척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정말 독창적인 음식들 하나 하나가 너무 맛있고 식재료들도 무척 좋은 것들을 쓰는 것 같아서 가성비를 결국 8.0으로 책정 했습니다. 대식가이신 분들은 예산을 좀 넉넉하게 잡으셔야 할테고, 반면 양이 적더라도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고 싶으신 분들께는 강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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