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ity vs. Influence (권세 vs. 영향력)
Authority vs. Influence
이 글은 "Domain (영역)"에 관한 강의를 들으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한 것입니다.
다섯가지 domain (영역)은 각 사람에게 주어진 일상의 삶 전체를 나타냅니다. 내게 직접적으로 주어진 domain (영역) 안에서는 authority (권세) 라는 책임이, 내게 직접적으로 주어지지 않은 domain (영역) 에는 influence (영향력) 이라는 책임이 주어집니다. 이 두가지 책임을 어떻게 감당했는가에 대해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서 말해야 할 것임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로마서 14:11-12)
하나님의 공의를 위한 체제의 변혁을 어떻게 이루어 내느냐에 대한 의견은 그리스도인들 내에서도 상당한 이견이 있습니다. 체제 변혁은 중요하지 않으며 영혼구원만이 중요하다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정반대로 적극적인 사회 참여 및 정치 참여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라고 주장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나 수 많은 예언서의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경제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당신의 justice (공의)를 원하신다는 것은 무척 자명합니다.
"불의한 법을 공포하고, 양민을 괴롭히는 법령을 제정하는 자들아, 너희에게 재앙이 닥친다! 가난한 자들의 소송을 외면하고, 불쌍한 나의 백성에게서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들을 노략하고, 고아들을 약탈하였다." (이사야 10:1~2)
한 가지 주목할 일은 인간 역사를 살펴보면 크고 중요한 변혁들이 수 많은 개미떼와 같은 민중의 힘이 아닌 어떤 한 사람의 authority (권세) 로 일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영국의 노예제 폐지는 William Wilberforce라는 정치가에 의해, 미국의 노예제 폐지는 Abraham Lincoln이라는 대통령에 의해, 소련의 붕괴는 Mikhail Gorbachev라는 대통령에 의해, 이스라엘의 포로귀환은 바사왕 고레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객관적으로 그다지 의롭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들이라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나, 로마의 기독교의 공인도, 대한민국의 대통령 직선제나 단임제도 궁극적으로는 authority (권세) 를 가진 한 사람의 결정으로 이루어졌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한 사람의 결정을 이끌어 낸 것은 민중의 목소리가 아니냐?"고 반론을 제기할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동의 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 민중의 목소리를 듣고 결정한 한 사람의 authority (권세) 가 없었다면 그 변혁은 결실을 맺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 authority (권세) 를 향한 influence (영향력) 가 분명 필요하지만, authority (권세) 를 거스려 대적하는 것과는 구별되어야 할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정치 개입등은 주어진 domain (영역)을 위반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큰 influence (영향력) 를 가지신 교계의 분께서 정치계를 향해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것도 무척 조심해야 할 일 일 수 있으며, 요즘 한국사회에 팽만한 -- "나꼼수"로 대표되는 -- 건설적 비판을 넘어선 authority (권세) 에 대한 조롱과 비아냥이 과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influence (영향력) 일지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일이라고 생각 합니다.
우리는 나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쉬운 잣대를, 나의 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엄격한 잣대를 대곤 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다고 해서 그들을 악으로 생각하거나 그들의 생각에는 가치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김상근 연세대 신학과 교수는 “나는 자본가를 타도하자는 운동권 출신인데, CEO들을 만나며 학자들은 상상 못할 정도의 책임감과 고뇌를 안고 사는 경영의 세계를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모든 사람은 사단의 지배를 받고 사는 악인이라고 보는 생각도 성경 전체의 관점에서 볼때 무척 편협한 생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하중 전 주중대사는 "사람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성경에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서 난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내가 기도를 통해 경험한 바에 의하면 노 대통령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였다. 비록 그의 죽음은 비극적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는 나에게 시키신 엄청난 기도를 통해 알 수 있었다"고 [하나님의 대사 3] 서문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선한 결정이라고 볼 수 없는 수 많은 일들은 피의 역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궁극적으로 불의를 징계하십니다. 그러나 그 징계의 수단으로 의인을 쓰시지 않고 또 다른 불의한 자를 사용 하십니다. 그런 면에서 현실의 불의와 악함이 아무리 심하여도 내게 주어진 domain (영역)과 authority (권세)를 넘어 그들을 징계하는 것은 나의 몫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앗시리아에게 재앙이 닥쳐라! "그는 나의 진노의 몽둥이요, 그의 손에 있는 몽둥이는 바로 나의 분노다. 내가 그를 경건하지 않은 민족에게 보내며, 그에게 명하여 나를 분노하게 한 백성을 치게 하며 그들을 닥치는 대로 노략하고 약탈하게 하며, 거리의 진흙같이 짓밟도록 하였다." 앗시리아 왕은 그렇게 할 뜻이 없었고, 마음에 그럴 생각도 품지 않았다. 오직 그의 마음 속에는, '어떻게 하면 많은 민족들을 파괴하고, 어떻게 하면 그들을 멸망하게 할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는 이런 말도 하였다. "나의 지휘관들은 어디다 내놓아도 다 왕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냐? 갈로는 갈그미스처럼 망하지 않았느냐? 하맛도 아르밧처럼 망하지 않았느냐? 사마리아도 다마스쿠스처럼 망하지 않았느냐? 내가 이미 우상을 섬기는 나라들을 장악하였다. 예루살렘과 사마리아가 가진 우상보다 더 많은 우상을 섬기는 왕국들을 장악하였다. 내가 사마리아와 그 조각한 우상들을 손에 넣었거늘, 예루살렘과 그 우상들을 그렇게 하지 못하겠느냐?" 그러므로 주께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하실 일을 다 이루시고 말씀하실 것이다. "내가 앗시리아 왕을 벌하겠다. 멋대로 거드름을 피우며, 모든 사람을 업신여기는 그 교만을 벌하겠다." (이사야 10:5~12)
한국 교계에서는 소위 "고지론"과 "미답지론"을 두고 꽤 오래 전부터 토론을 벌여 왔습니다. "고지론"은 authority (권세) 에 "미답지론"은 influence (영향력) 에 각각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신약의 메시지들이 influence (영향력) 에 좀 더 치중하고 있으며 교계의 많은 지도자 분들, 특히 목회자들의 많은 수가 자신의 것을 내려놓고 낮은 자리로 내려가는 과정을 거치신 분들이기에 대세는 "미답지론"이지만 그것이 성경의 전부가 결코 아니며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 분의 공의를 실현하기 위한 의로운 종을 찾아 그 에게 authority (권세)를 부여하시기 원하신 것도 인정되어야 할 것이고,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고지론"을 포기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고지론"을 우려 혹은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에 따른 위험성을 지적합니다. 자신의 야망을 하나님의 비전으로 교묘히 감추고 포장하려는 죄성을 지적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죄성 때문에 성경에 나온 지도자들은 예외 없이 시련과 역경을 통한 연단과 낮추심의 과정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기 전에 노예로 팔려가고 옥살이를 한 것,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출애굽을 하기 전에 40년간 이방땅에서 나그네로 지낸 것, 다윗이 사울의 시기를 피해 도망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의로운 authority (권세) 로 쓰이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노예생활 400년과 광야에서 방랑생활 40년을 거쳐야 했던 것 역시 가나안 일곱 족속의 진멸의 도구로 예외적인 쓰임을 받기 위한 정결과 순종의 과정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심지어는 예수께서도 40일간의 금식과, 그에 따른 사단의 세가지 시험을 거치셔야만 했습니다.
“시험을 참는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 (approved)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 1:12)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 (proven character)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롬 5:4)
하나님께서 세우신 authority (권세) 는 경쟁이나 자기 높임을 통해서 세워지지 않고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자에게 주어집니다 (ordained).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쳐 주어진 authority (권세) 가 내게 있다면 그 자리를 죄악시 하거나 거부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 (call) 임을 알고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justice (공의)를 실천해야 합니다. 나무그릇이나 질그릇도 더러울 수 있으며, 금그릇도 깨끗할 수 있습니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여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디모데 후서 2:20-21)
한국 교계는 치리에 무척 약합니다. 최근에 다시 불거진 J목사님의 일도 사실 당회와 노회가 주어진 authority (권세) 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influence (영향력) 차원으로 어설프게 덮으려다가 커진 일이 아닐까 생각을 해봅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교회의 동성애 대처문제를 보게 됩니다. 동성애 결혼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과 동성애 목회자 안수를 허용하는 것은 authority (권세) 의 책임을 다하지 않는 안일한 대처라고 보여집니다. 반면 교인들 각자가 동성애자를 대할 때는 어떻게 선한 influence (영향력)을 끼쳐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수 있게 할까에 대한 고민도 법안 반대에 비례하여 늘어나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authority (권세) 는 나의 유익을 위해 주신 것이 아닌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주신 authority (권세) 를 올바르게 행사하는 것이 항상 happy ending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그로 인해 미움을 받아 불이익을 당할 수도, 좌천이 될 수도, 직위가 해제되거나 직장을 잃을 수도, 심지어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로 나에게 주어진 소명 (call) 이라면 그것을 외면하지 말아야 겠습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은 넘어진 자를 다시 세우는데 있습니다. 죄에 빠진 자들도, 악에 물든 자들도 돌이키시기를 원하십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꿈을 하나님을 통해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꿈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겠습니다. 당신에게 주신 하나님 소명 (call) 과 그 소명 안의 꿈은 무엇입니까?
I say to you today, my friends, so even though we face the difficulties of today and tomorrow, I still have a dream. It is a dream deeply rooted in the American dream.
I have a dream that one day this nation will rise up and live out the true meaning of its creed: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I have a dream that one day on the red hills of Georgia the sons of former slaves and the sons of former slave owners will be able to sit down together at the table of brotherhood.
I have a dream that one day even the state of Mississippi, a state sweltering with the heat of injustice, sweltering with the heat of oppression, will be transformed into an oasis of freedom and justice.
I have a dream that my four little children will one day live in a nation where they will not be judged by the color of their skin but by the content of their character.
I have a dream today.
I have a dream that one day, down in Alabama, with its vicious racists, with its governor having his lips dripping with the words of interposition and nullification; one day right there in Alabama, little black boys and black girls will be able to join hands with little white boys and white girls as sisters and brothers.
I have a dream today.
I have a dream that one day every valley shall be exalted, every hill and mountain shall be made low, the rough places will be made plain, and the crooked places will be made straight, and the glory of the Lord shall be revealed, and all flesh shall see it together.
This is our hope. This is the faith that I go back to the South with. With this faith we will be able to hew out of the mountain of despair a stone of hope. With this faith we will be able to transform the jangling discords of our nation into a beautiful symphony of brotherhood. With this faith we will be able to work together, to pray together, to struggle together, to go to jail together, to stand up for freedom together, knowing that we will be free one day.
This will be the day when all of God's children will be able to sing with a new meaning, "My country, 'tis of thee, sweet land of liberty, of thee I sing. Land where my fathers died, land of the pilgrim's pride, from every mountainside, let freedom ring."
And if America is to be a great nation this must become true. So let freedom ring from the prodigious hilltops of New Hampshire. Let freedom ring from the mighty mountains of New York. Let freedom ring from the heightening Alleghenies of Pennsylvania!
Let freedom ring from the snowcapped Rockies of Colorado!
Let freedom ring from the curvaceous slopes of California!
But not only that; let freedom ring from Stone Mountain of Georgia!
Let freedom ring from Lookout Mountain of Tennessee!
Let freedom ring from every hill and molehill of Mississippi. From every mountainside, let freedom ring.
And when this happens, when we allow freedom to ring, when we let it ring from every village and every hamlet, from every state and every city, we will be able to speed up that day when all of God's children, black men and white men, Jews and Gentiles, Protestants and Catholics, will be able to join hands and sing in the words of the old Negro spiritual, "Free at last! free at last! thank God Almighty, we are free at last!"
'선교 & 선교단체' 카테고리의 다른 글
IHOP Prayer Room (0) | 2019.09.22 |
---|---|
IHOP 비판에 대한 소견 (0) | 2019.09.20 |
60년, 400개국, 600만 마일 (0) | 2016.06.05 |
So God Created Missionary (2) | 2013.09.18 |
Perspectives (1) | 2013.02.06 |
Domain (영역) (0) | 2012.08.18 |
Take My Healing to the Nations (0) | 2012.08.06 |
Humility (겸손) (0) | 2012.08.03 |
Passion (열정) (0) | 2012.08.01 |
Enjoy! Enjoy! (1) | 2012.07.31 |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So God Created Missionary
So God Created Missionary
2013.09.18 -
Perspectives
Perspectives
2013.02.06 -
Domain (영역)
Domain (영역)
2012.08.18 -
Take My Healing to the Nations
Take My Healing to the Nations
2012.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