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슈퍼밴드 2: 드러난 한계점들
한 주 결방한 후의 본선 3라운드 A조 순위 쟁탈전은 전체적으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보통 음악 프로그램 관련 글들은 좋았던 노래 중심으로 써왔는데, 이번에는 아쉬웠던 점과 한계점이라고 느꼈던 부분을 써보려고 합니다.
점수와 순위가 아래와 같고 제 생각과 크게 벗어나지는 않습니다.
최저 점수 받은 황현조 팀부터 보겠습니다. 2라운드 라이벌 지목전에서는 그간 황현조의 프로듀싱 능력이 아주 높게 평가를 받았는데 이번 라운드는 부진을 면치 못했습니다. 황현조의 프로듀싱 스타일이 제 취향이 아는 것도 있습니다만, 저는 엄청난 재능은 이전에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다양한 악기를 다룰줄 알고 뚜렷한 무대 편집의 방향을 세우는 것은 잘 하는 것 같은데 충격적이거나 감동적인 레벨까지는 끌고 가지 못하고 적당한 매시업 (mashup) 같은 잔재주에만 치중하는 느낌이었거든요. 이번에 팀으로 영입한 또 다른 프로듀서 발로 역시 비슷한 스타일이라 비슷한 방향성으로 간데다, 매시업 한 것도 이전에 비해 공감대를 쉽게 형성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었다고 봅니다. 파워풀한 드러머 은아경을 영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활용을 하지 못한 느낌에다, 악기를 여러번 바꿔가며 이것 저것 시도했지만 저음부가 텅빈 공허함이 시종일관 지속되었습니다. 밴드의 다이나믹 (dynamic)이 대부분 저음부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을 생각한다면 왜 이렇게 프로듀싱을 했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끝으로 황현조는 보컬 양서진과 원래 함께 활동하는지라 매 라운드를 함께 하고 있는데 미안한 이야기지만 보컬로서의 양서진의 가창력 한계가 황현조의 상투적인(?) 프로듀싱 스타일을 초래하고 있는것은 아닌가 생각도 듭니다. 닭과 달걀의 관계일 수도 있겠고요. 지난 라운드에서의 극찬을 이끌어 낸 핵심은 황현조의 프로듀싱 능력의 결과였다기 보다는 새로운 프론트맨으로 빠져나간 기타리스트 정석훈의 연주력의 결과였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다음으로는 보컬 린지가 이끄는 팀입니다. 지난 라운드에 여자 3명이 결성한 걸밴드로 극찬을 받으면서 베이시스트만 한명 추가 했으면 좋겠다는 심사위원들의 추천이 있었습니다. 보컬 린지를 비롯해 팀원들 한명 한명을 보면 괜찮은 뮤지션들인데, 지난 라운드 준비할 때부터 눈에 띈 것이,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고 편곡을 하고 밴드를 이끌어나갈 리더의 부재입니다. 지난 라운드 멤버중 다른 팀과 하고 싶다고 드러머 은아경이 빠져 나간것도 이 이유때문일거라고 추측해봅니다. 오케스트라로 치자면 지휘자가 없는 상태입니다. 프론트맨인 린지가 좋은 보컬이고 대략적인 아이디어는 내고 있는듯 한데, 밴드 경험도 없고 악기도 다룰줄 몰라 어떻게 연주를 다듬고 완성시켜 나가야 할지는 전혀 모르는 듯 합니다. 다른 멤버들도 자신의 악기는 자신있게 연주하지만 전체의 그림을 그릴 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제가 이번 시즌 참가 뮤지션 중 최우선으로 꼽은 박다울팀도 조금 고전했습니다. 프론트맨 박다울의 샘솟는 아이디어는 이번에도 탁월했고, 일찌감치 눈도장을 찍고 두수 전에 이미 포석을 하여 어렵게 데리고 온 10대 젊은 보컬 김한겸을 위한 자작곡을 준비했고, 이 노림수는 아주 잘 적중했다고 봅니다. 김한겸은 이전 어떤 라운드때보다 마음껏 포효하듯 노래했고 베이시스트 양장세민과 드러머 유빈의 실력도 100% 끌어 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팀중 공동 4위를 한 것은 박다울의 천재성에는 포함되지 않는 화성과 선율(melody)의 감수성 부분인 듯 합니다. 무대 연출과 핵심 아이디어 그리고 그에 따른 리듬의 창출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독보적이고 독창적이며 무한해 보입니다. 그러나 리듬 만으로는 탄성은 자아낼 수 있어도 감동을 주기는 힘듭니다. 지난 라운드에는 첼리스트 김솔다니엘과 클래식 기타리스트 장하은이 있어 그 부분을 아주 잘 메워주었는데, 이번 라운드에 그 역할을 해준 양장세민과 유빈은 박다울의 리듬을 더 밴드 답게 만들어주는데는 기여했지만 화성과 선율을 완성하는데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번 라운드에서 황린팀은 상당히 안타까운 경우입니다. 지난 라운드 멤버들이 '마지막 퍼즐'로 생각한 메인보컬+건반을 다 해줄 수 있는 멤버로 영입한 것이 다비 (DAVII, 본명 최규완)였는데요, 다비는 Jazz R&B 싱어송라이터로 맹활약을 하고 있는 현시대의 가장 인정 받는 뮤지션중 한명입니다. 작사, 작곡, 편곡, 보컬, 탁월한 건반 연주 능력을 갖춘 자타가 공인하는 프로페셔널 프로듀서라서, 매 라운드마다 세련된 실력으로 멤버들의 지지를 받아 주춧돌 역할을 해왔습니다. 문제(?)는 곡 자체와 그가 부르는 보컬에 다비의 R&B 색채가 너무 강하다 보니 다른 멤버들이 그의 스타일에 가려질 수도 있다는 건데, 이번 라운드가 딱 그랬습니다. 다비 본인도 자신의 강한 색채를 잘 아는지라 쿨하게 "제가 기존에 하던 방식으로 하면 똑같아지니까 (기존 멤버) 셋이서 트랙을 만들고 내가 그 위에다가 라인을 짜보는걸로"하자고 제안을 했던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세명의 멤버들이 다비에게 통째로 먹혀 버렸고 그 결과는 1+1+1+1 < 4 였습니다. 매 라운드마다 새로운 프로듀싱을 훌륭하게 보여주었던 황린의 존재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다비는 아주 넓은 음역과 특출한 감수성을 갖춘 '나름 괜찮은' 보컬임에도 불구하고 메인 보컬 자리를 내려놓지 않는 한 그 밴드의 한계점이 될 것 같습니다. 황린팀은 좋은 보컬만 찾는다면 충분히 상위 3팀까지 노려볼만 하다고 봅니다.
쓰고 보니 마치 다비가 별로라는 뉘앙스가 되어버려서 조금 덧 붙이자면, 음반으로 들었을때 훨씬 좋은 가수가 있고 라이브로 들었을때 훨씬 좋은 가수가 있습니다. 전자는 보통 깔끔한 음색, 후자는 보통 다이나믹 레인지 (dynamic range)가 큰 음색이 그런데 다비는 아마도 전자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핸드폰/이어폰으로 듣는 음악에는 다비가 무척 좋은 보컬이겠지만, 라이브가 생명인 밴드 음악용 보컬로는 한계가 있을테고 슈퍼밴드 경연장도 일종의 라이브 무대이니 큰 감흥을 내기가 버겁다고 보는 것이지요. 같은 R&B 계열이라도 문명진이나 박정현 같은 타입의 보컬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봅니다.
아이유의 기타리스트로 알려진 정석훈이 처음으로 프론트맨을 맡아 결성된 팀입니다. 팀원 뽑는 순서가 제일 뒤로 밀려서 아무도 데려가지 않고 남은 세명 (보컬 문수진, 보컬 이동헌, 타악기 유병욱)을 선택의 여지 없이 받았기 때문에 아무도 기대하지 않고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지켜 봤는데 결과는 "무명씨들의 반란"이었습니다. 튀는 실력은 대체로 좀 부족하지만 다들 무난하고 좋은 성격을 가진것 같아 보이는 멤버들이 잘 협력해서 만들어낸 완성도 높은 무대였다고 할까요. 선곡과 해석, 연주 다 좋았는데 정말 놀라운 것은 리더인 정석훈의 기타 실력이었습니다. 문수진이 콘트라베이스를 이동헌이 통기타를 가지고 나오긴 했으나 시각적 효과는 있었을지 몰라도 사운드에 기여한 바는 거의 미미했기에, 실질적으로 기타 하나가 곡 전체를 이끌고 간건데 거의 6분에 가까운 긴 연주 동안 전혀 지루함을 느낄수 없을 정도로 다채로운 기타 연주를 해주었습니다. 지난 라운드에서 황현조팀의 사운드가 황현조의 프로듀싱이 아닌 정석훈의 기타가 아니었을까 했던 의구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다만 다른 팀원들을 보면 끝까지 꼭 남겨 두었으면 하는 정도의 인물은 없어 보입니다.
결성한지 8년 된 록그룹 크랙샷이 이례적으로 원래 멤버 그대로 계속 하다가 베이시스트 사이언을 다른 팀에 빼앗기는 바람에 영입한 멤버가 팬텀싱어 초대 우승팀인 포르테 디 콰트로의 음악 감독 피아니스트 오은철입니다. 전혀 다른 음악 세계를 가지고 있지만 크랙샷의 리더인 윌리K는 오은철의 음악 실력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는 듯 합니다. 오은철도 자신이 영입된 것을 무척이나 기뻐하며 그 팀 분위기에 완전 녹아들어간 모습을 보여주었고 결과적으로 A조 전체에서 우승팀이 되었습니다. 보컬 빈센트는 기존 개념의 가창력으로 보면 최고의 록보컬이라 볼 수 없지만, 뮤지컬스러운 독특한 스타일로 새로운 개념의 가창력을 보여주고 있고, 그래서 유튜브에서도 연일 엄청난 인기를 쌓아가고 있네요. 시즌 1과 마찬가지로 총 5명의 구성이 허락된다면 "원래 크랙샷 4인+오은철"로 파이널에 가는 것을 기대해볼만 합니다. 크랙샷이 8년간 다져진 팀웍으로 훌륭한 연주를 계속 선사함에도 불구하고 글램록 (Glam rock) 일변도라는 것이 한계로 느껴졌는데, 오은철이 여기에 더해진다면 훨씬 넓은 스텍트럼의 연주를 하는 것이 가능할 듯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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