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형이 비록 깡패는 아닐지라도...
판형이 비록 깡패는 아닐지라도...
2년 전에 "판형이 깡패라고? 정말일까?"라는 제목으로 소위 "판형(format)"이라 불리는 카메라 image sensor 크기에 관한 글을 길게 쓴 적이 있습니다. 결론은 흔히 말하는 큰 판형의 원근감이니 공간감이니하는 것은 환상일 뿐 판형이 커진다고 달라지는 것은 전혀 없다 였습니다. 1.5배 크롭 바디 (crop body) 대비 풀 프레임 (full frame)이 가지는 장점은 사실 판형 크기와는 별로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오늘은 그런 기계적이고 기술적인 측면이 아닌 실제 촬영적인 측면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판형은 역시 좋은것이다"는 논지의 글을 쓰려고 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2009년까지 필카를 썼습니다. 디카 시대에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린 콘탁스 (Contax) 필카가 배터리 누액으로 고장이 한번 나더니 수리한 후에도 오동작을 하게 되면서 눈물을 머금고 디카로 넘어 왔지요. 그 때만 하더라도 풀 프레임 (full frame)는 너무 비쌌기에 저도 1.5배 크롭 바디 (crop body)를 샀지요.
처음 손에 들어본 크롭 바디 DSLR의 뷰 파인더를 들여다 본 첫 인상은 10년이 넘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헉~~~~~~ 답답해....." 였습니다. 필카 SLR보다 1.5배 작은 뷰 파인더로 들여다 보는 세상은 그 이전에 제가 20년 넘게 들여다 보던 세상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전에는 뷰 파인더로 들여다 보는 세상이 참 아름다와서, 굳이 셔터를 누르지 않아도 시간 날 때마다 들여다 보곤 했는데, 크롭 바디 DSLR은 전혀 그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3년 뒤 풀 프레임 (full frame) DSLR을 들이고 나서 뷰 파인더로 들여다 보는 세상을 되찾은 기쁨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합니다. 카메라가 바뀌어도, 판형이 바뀌어도 사진은 바뀌지 달라지지 않는다고요... 장비나 기술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찍는 사람의 시각과 감각이란 측면은 적극 동감합니다. 하지만, 저는 카메라나 판형이 바뀌면 사진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냐고요? 사진을 찍는 순간 볼 수 있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래 사진은 2년 전 글에 크롭 바디와 풀 프레임의 결과에 차이가 없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사용한 것입니다. 왼쪽 사진은 D810 camera에 85mm lens를 물려 찍은 그대로이고, 오른쪽 사진은 58mm lens로 찍은 후 1.5배 crop factor에 맞게 trimming해 APS-C camera를 흉내낸 것입니다. 미세한 촛점심도의 차이가 있을 뿐 원근감의 차이는 전혀 없습니다.
[출처: Neilvn.com]
그런데 이 경우는 의도적으로 모든 것을 동일하게 셋팅한 경우이고, 실전 촬영을 하는 동안이라면 이야기는 좀 달라집니다. 촬영하는 순간 찍는 사람의 눈이 보는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1.5배 줄어든 크기... 어떤 사람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보면 전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비유를 한다면 21인치 모니터와 14인치 모니터의 차이라고 할까요? 화면 해상도가 같다고 하더라도 화면 크기의 차이는 작업의 속도와 질에 분명히 영향을 미칩니다. 좁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 조차도 무조건 큰 TV를 사려고 하는 것도 같은 이유지요.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 볼 때의 느낌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정량화 할 수는 없지만 풍경을 찍는다면 찍는 내용과 구도가 달라질 수 있고, 인물을 찍어도 미세한 표정을 읽을 수 있다면 담아내는 순간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중형 카메라의 대명사인 핫셀블라드 (Hasselblad)를 사용하는 한 웨딩 사진작가의 말을 인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핫셀블라드를 처음 만져봤을 때의 느낌은... 아~ 해방이다. 바로 이거야
이거 살거야. 왜? 내 삶을 쉽게 만들거니까.
뷰파인더를 통해 모든 것을 볼 수 있거든. 맞자, 바로 이거야!"
"핫셀블라드를 들고 있으면 DSLR과는 아무 많이 달라요.
핫셀블라드는 달라요. 커요.
뷰파인더를 들여다 볼 때, 그 안의 모든 것이 엄청 커요.
내게 아주 상세함을 제공해서, 모든 세세함을 보게 해주지요"
"When I first touched a Hasselblad, I was feeling just like , Ahh, release! This is the right one.
I’m gonna get this. Why? It makes my life easier.
Because I can see everything just through the viewfinder. Yes, that’s the one!"
"When you are using a Hasselblad in hand, it’s actually very different from DSLR.
Hasselblad is different - it’s big.
When you look in the viewfinder, everything is huge inside.
It can provide me very good detail, so we can see through all the details, everything."
중형 핫셀블라드 최신 기종 H6는 $40,000을 훌쩍 넘어 고급 승용차 한대 값이니 정용진이나 배용준이나 연정훈 정도 아니면 아마추어가 꿈 꿀만한 카메라는 아닙니다만, 출시된지 10년된 40~60Mpixel 급의 H4 중고 정도면 $3,000~4,000 정도로 신품 풀프레임 가격에 비슷하니 넘사벽은 아닙니다. 중형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Canon 5D Mark III 같은 것은 $1,000 이하로도 구할 수 있습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신다면, 큰 판형의 세계에 한 번 발을 들여보시지 않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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