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렙: 헤브론 산성을 바라보며
갈렙: 헤브론 산성을 바라보며
멀리 헤브론(Hebron) 산성이 보인다. 45년 만에 와보는 이 산성은 여전히 견고하고 풍요로와 보이며 그 산성을 드나드는 거주민들의 체구는 어마어마하다. 내일부터는 저 난공불락처럼 보이는 산성과 그 안에 사는 거인들을 상대로 전투를 시작해야만 한다.
[사진 출처 : Bethlehem and Hebron, 19th Century Holy Land Pilgrimage]
맨정신이라면 누가 봐도 자살 행위라고 봐야 할 정도로 무모한 짓이다. 설령 주민들이 모여 사는 저 성읍을 함락시킨다고 해도, 저들에게는 부근의 산 봉우리마다 구축한 여러개의 요새들이 있다. 그 요새를 모두 공략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불가능하다고 봐야 옳다. 나의 이성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돌아서라고 내게 종용한다.
[사진 출처 : Bethlehem and Hebron, 19th Century Holy Land Pilgrimage]
5년 전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Jericho) 성을 점령한 후로 그동안 우리는 요단강 부근의 길갈(Gilgal)에 머물러 왔다. 길갈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는 크고 작은 많은 전투를 치러 모두 이겼고, 큰 성이었던 기브온(Gibeon)은 자진해서 화친을 청해왔기에 가나안(Canaan) 땅 북쪽 지역을 다 정복할 수 있었다.
며칠 전 우리의 지도자인 여호수아 (Joshua) 와 12 지파의 족장들이 모여 가나안 땅을 지파별로 어떻게 분배할 지 제비를 뽑았다. 우리 유다 지파는 남쪽 지역을 차지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고, 그 순간 나는 내게 오래 전 주셨던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질 때가 마침내 되었다는 것을 직감으로 느꼈다.
이 헤브론(Hebron)이란 산성은 우리가 머무는 길갈에서 산으로 올라가 남쪽으로 하루 거리에 위치한다. 45년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다시 스치고 지나간다. 거짓말처럼 쩍 갈라진 홍해를 통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1년 만에 약속의 땅 남쪽에 있는 바란광야의 가데스바네아(Kadeshbarnea)에 도착했다. 당시 지도자였던 모세(Moses)는 각 지파별로 한명씩 사람을 뽑아 가나안 지역의 염탐을 지시했다. 그렇게 여호수아와 나를 포함한 40대 장년 12명이 말로만 듣던 약속의 땅으로 향했다. 말로만 듣던 약속의 땅은 남쪽에 죽음의 소금호수, 북쪽의 작은 호수,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하는 강물을 경계로 그 옆에 산줄기가 있고 그 산줄기를 따라 남북으로 길쭉하게 뻗어있었다.
우리는 남쪽 신(Zin) 광야에서 출발하여 북쪽 끝에 눈 덮힌 헐몬(Hermon)산을 지나 하맛(Harmath) 부근까지 전 지역을 40일에 걸쳐 살펴보고 왔다.
[출처 : 쉽게보는 민수기]
산길을 타고 돌아오던 중 소금호수 부근에서 발견한 헤브론(Hebron) 은 12명 모두에게 충격적인 곳이었다. 마침 포도가 익을 시기라 포도나무를 찾고 있었는데, 헤브론 부근의 골짜기에서 발견한 포도원에는 일찌기 보지 못한 엄청난 크기의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한 송이달린 가지를 가져가려고 베어 냈더니 도저히 혼자 들을 수가 없어서 두명이 막대기에 꿰고 메어야만 했다. 우리는 이 곳을 에스골(Eshcol, 포도송이라는 뜻) 골짜기라고 이름 지었다.
[사진 출처 : The Anvil Newletter]
포도송이보다 우리를 더 놀라게 한 것은 헤브론 성에 사는 아낙 자손 (the sons of Anak) 들이었다. 전설로 내려오는 네피림 (Nephilim, 거인족속) 의 후손인듯 했다. 보통 사람들의 족히 2배는 되는 엄청난 키의 사람들이 견고한 산성을 쌓고 거주하고 있는 것을 본 우리 일행들은 순식간에 공포에 싸여버렸다. 그들에 비하니 왜소한 우리는 마치 메뚜기와 같게 느껴졌다. 나도 여호수아도 경악하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사진 출처 : WinChurch.org]
정탐을 마치고 복귀하는 내내 헤브론이 내 마음 속을 떠나지 않았다. 헤브론은 어른들을 통해 여러번 들은 적이 있는 곳이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Abraham)이 조카 롯에게 모든 선택권을 양보한 후에 하나님께서 동서남북에 보이는 모든 가나안 땅과, 땅의 티끌과도 같이 셀 수 없는 많은 자손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주셨는데, 그 후에 조상님께서 단을 쌓고 정착한 곳이 헤브론이라고 들었다. 조상님과 그 부인 사라(Sarah)가 헤브론 지역의 막벨라(Machpelah) 동굴에 안장되었고, 그 아들인 이삭(Isaac), 리브가(Rebekah) 부부, 그 손자인 야곱(Jacob), 레아(Leah) 부부도 같은 동굴에 안장되었다고 한다.
엄청난 포도송이는 둘째치고라도, 이 헤브론이야말로 우리 민족에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언약의 성지인것이다. 지워지지 않고 머리에 새겨진 아낙 자손들의 공포스러운 모습에도 불구하고, 홍해를 가르고 우리 민족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신 하나님께서 정말로 우리에게 이 가나안 땅을 주시려고 한다면, 아무리 거대한 아낙 자손들이 점령하고 있는 곳일지라도 헤브론을 주시지 않을리 없다는 확신이 내 마음 속에 깊이 밀려왔다.
안타깝게도 그 땅의 풍요로움의 경이나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아낙 자손을 본 후의 공포가 같이 갔던 사람들 대다수를 사로 잡았다. 그들은 입을 모아 약속의 땅을 나쁘게 말하였고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밤새도록 통곡을 하고는, 여기서 모두 죽느니 다시 이집트로 돌아가자고 했다. 여호수아와 내가 그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상기시켜 용기를 북돋으려 안간힘을 썼으나 역부족이었다.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 그 날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의 노여움으로 인해 40년간 광야를 떠돌다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는 저주를 받았다. 그러나 그 날 내 마음에 박힌 것은 "네가 갔던 땅으로 내가 너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네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갔던 땅"... 가나안 지역을 40일간 샅샅이 살펴보며 다녔지만, 내가 갔던 땅 중 내 뇌리에 박힌 곳은 단 하나였다. 헤브론... 헤브론....
우리 유다 지파가 남쪽 지역을 차지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는 순간 45년간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던 내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갔던 땅"이 정확히 헤브론이란 확신이 다시금 내 마음을 조용히 두들겼다. 다음날 아침 같은 유다 족속의 사람들과 함께 지도자인 여호수아를 만나러 가서 말했다. "지금 내 나이는 85세가 되었으나, 45년전 모세가 이 땅을 염탐하라고 보낸 그 때나 지금이나 나는 강하고 힘이 여전하여 전투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로 이 산지, 헤브론을 내게 주십시오. 당신도 45년 전 그날 함께 들었듯이, 헤브론에는 장대한 아낙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들의 산성은 크고 견고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가 그들과 싸워 반드시 이길것입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우리 민족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이시여, 45년 전 제게 주신 주의 약속을 따라 오늘 이곳에 왔사오니 이 산지를 내게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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