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형이 깡패라고? 정말일까?
판형이 깡패라고? 정말일까?
사진 동호회에 자주 올라오는 토론 주제중 하나가 소위 "판형(format)"이라 불리는 image sensor 크기이다. Digial camera 시대가 되면서 camera마다 무척이나 다양한 크기의 image sensor들이 들어가고, 그에 따라 camera가격과 화질이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판형이 클수록 원근감, 입체감, 공간감등이 현저히 좋아져서 "판형이 깡패다"라는 말까지 생겨날 정도인데,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본다.
[출처: Photography Life]
바야흐로 디카시대지만,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필카시대로 잠시 거슬러 올라가야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필카시대에 "판형이 깡패다"라는 말은 진리였기 때문이다.
지금의 full frame에 해당하는 135 format이 필카시대에는 작은 축에 속하는 판형이었다. (Wikipedia: Film Format) 주목해야 할 것은 같은 감광도 (ISO)라면 판형 크기에 상관없이 전부 동일한 sheet film을 잘라서 만든 것이라는 점이다. 같은 sheet film을 쓴 것이니, 소위 말하는 dynamic range(명암의 표현 범위)나 노이즈 같은 것은 판형과 상관이 없는 이야기였다. Digital sensor의 화소(pixel) 크기에 해당하는 감광입자 크기 (grain size)가 같으니, 커지는 판형 크기에 정비례해 유효 화소수가 증가했다. 또 같은 조리개 값이라도 판형이 커지면 조리개의 실제 구경은 비례해서 더 커지므로 회절(defraction)현상도 억제되어 화질을 더 개선한다. 그러니 대형인화를 위한 광고사진이나 풍경사진을 제대로 찍으려면 큰 판형 외에는 대안이 없었다.
디카시대 식으로 이해 한다면, 아래 사진와 같이 판형이 작다는 것은 원본을 잘라내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출처: Photography Life]
역사상 가장 큰 판형의 카메라는 무려 2.4m x 1.2m짜리 필름을 썼고 [출처: Blog Historic Cameras] 지금도 많은 풍경 사진작가들이 작게는 4in x 5in 판형, 크게는 20in x 24in 대형 필름 카메라를 짊어지고 산을 오르내리고 있는 이유는 그에 비례하는 detail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판형의 크기에 비례해 사용하는 렌즈의 촛점거리가 변하므로 잠시 샛길로 새서 렌즈의 촛점거리(focal length)에 따른 차이를 살펴보자. (웬만한 사진가들이 이미 다 잘 알듯이) 촛점거리의 변화는 3가지의 차이를 만든다. 촛점거리가 짧을수록:
화각 (AOV, Angle of View)이 넓어지고
촛점심도 (DOF, Depth of Focus)가 깊어지고
원근감 (Perspective 혹은 SOD, Sense of Distance)이 커진다.
아래 사진은 한가지 판형의 카메라에 렌즈의 촛점거리를 변화시키면서 동시에 거리를 조절해 모델의 얼굴 크기를 대략 비슷하게 찍어 비교한 것이다. 촛점거리에 따른 사진의 변화는 무척 극명하게 드러난다. 보통 공간감이 좋다는 말은 통상 촛점거리가 길어지면서 촛점심도가 얕게 찍히는 사진을 보며 하는 표현이다. 아래 사진에서 35mm 렌즈와 85mm 렌즈를 비교하면 얼추 APS-C crop 카메라와 중형카메라간의 비교가 될수도 있다. 하지만 판형 크기에 따른 공정한 비교를 하기에 아래 예제는 그리 적합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거리가 변했기 때문이다.
[출처: fotografeando.me]
다시 현대의 디카 시대로 돌아와보자. Image Sensor 크기에 따른 영향을 보려면, 먼저 "화각"을 고정시켜야만 한다. 아래 비교에서 왼쪽 사진은 D810 camera에 85mm lens를 물려 찍은 그대로이고, 오른쪽 사진은 58mm lens로 찍은 후 1.5배 crop factor에 맞게 trimming해 APS-C camera를 흉내낸 것이다.
[출처: Neilvn.com]
좀 더 쉬운 비교를 위해 같은 크기로 보면 아래와 같다. 화각은 "sensor-size/focal-length의 비율"에 비례하니 의도한대로 동일하다. 원근감의 차이가 있는가? 전혀 없다. 미세한 촛점심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차이 조차도 만약 full frame + 85mm에서 한 stop 조리개를 더 조이거나, 역으로 APS-C + 58mm에서 한 stop 조리개를 더 열어서, "조리개 구경 (= 촛점거리/조리개수치)"을 같은 값으로 맞췄다면 결과물은 완전히 동일할 것이다. [추가 설명: "DSLR: Out-Focusing" 참조]
센서 크기 차이가 고작 1.5x 라서 비슷한 거라고 혹 생각할지 모르니 좀 더 극단적인 비교를 하나 더 해 보자. 아래 두장의 사진에서 첫째 사진은 촛점거리 4.15mm 렌즈를 사용하는 iPhone으로 찍은 것이고, 둘째 사진은 그와 비슷한 화각의 28mm렌즈를 착용한 full frame camera로 찍은 것이다. 손각대로 대충 찍어 비교한것이지만 거의 7배에 가까운 판형 차이에도 불구하고 일단 최소한 원근감이니 공간감이니하는 차이가 없음은 명백하다.
좀 더 깊게 들어가서 digital camera에서 판형이 주는 차이를 살펴보자. 필름과는 달리 image sensor는 그 크기에 따라 dynamic range와 signal level이 달라진다. 단순하게만 생각하면, 화소수가 같을 경우 판형이 커질수록 화소 하나의 크기가 커지고 따라서 한 화소가 받아들이는 광자(photon)수가 정비례하므로 signal이 커진다. 이 말은 film 판형과는 달리 sensor가 커질수록 dynamic range도 좋아지고, noise에 대한 내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원론적으로는 같은 화소수라면 명암차가 큰 풍경 사진이라던가, 어두운 곳에서 찍는 사진(높은 ISO가 요구되는) 에는 큰 판형이 월등히 좋은 결과를 낼 수 있고, 역으로 같은 dynamic range와 ISO가 비슷한 정도를 유지하면 고화소수를 구현할 수 있다.
[출처: Cambridge in Colour]
그럼 여전히 무조건 크게 만들면 좋은 대대익선(大大益善)인가? 글쎄? 필카 시절에도 그에 비례해 카메라와 렌즈의 크기와 무게가 커지는 것은 있었지만, 디카 시대에 와서는 그 외에 더 심각한 문제들이 추가된다.
가장 큰 것은 image sensor의 가격이다. Film은 면적이 N배 늘어나면 가격도 대충 N배로 생각하면 되지만 image sensor는 반도체라서 크기가 커질수록 설계도 복잡해지고, 소모전력도 늘어나고, 제품 수율(yield, 불량 없는 제품의 비율)은 떨어져서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다.
[출처: Wikimedia Commons]
반도체를 만드는 여러가지 공정 중에서 가장 큰 한계는 stepper라고 불리우는 사진 인쇄(lithography) 기술이다. 이것 역시 film 판형에 해당하는 mask혹은 reticle이라는 것을 사용하게 되는데, 한번에 찍을 수 있는 최대 chip크기는 600~700mm^2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에 비해 full frame sensor의 크기는 주변 회로를 제외한 순수 sensing영역만으로도 이미 862mm^2로 그 한계를 이미 넘어섰고, 중형 sensor 크기는 무려 2178mm^2에 달한다. 그래서 한개의 chip 인쇄에 몇 개의 mask를 사용해 찍어내게 되는데 이 경우 mask와 mask사이 인접 부분의 미세한 어긋남(misalignment)을 얼마나 잘 control하는가가 성패의 관건이다.
중형 필카의 경우 필름의 유효 크기 대세가 56mm x 56mm (6in x 6in format, 최대 폭 224mm까지 있었음) 였던것에 반해, 디카로 오면서 이런 어려움 때문에 현존하는 가장 큰 상용 sensor 크기는 53.9mm x 40.4mm (Phase One, 필카의 6in x 4.5in에 해당)이며, 대세는 48 mm × 36 mm 이고 $10,000 이하의 저가 중형 (Pentax 645D, Hasselblad X1D, Fujifilm GFX 50S)은 더 작은 44mm x 33mm 를 사용한다. 이런 상황을 볼 때 상용 카메라에 쓸 대형 sensor가 나올 가능성은 아예 없어 보인다.
가격이 비싸면 수요도 줄고 그러면 센서 한개당 부과해야 하는 개발비용은 더 높아지는 악순환이 생긴다. 중형 sensor는 이미 수지타산이 그리 잘 맞지 않는 선에 가 있다. 그러다보니 소형 sensor에 비해 추가 개선을 위한 투자도 제한되고 따라서 성능개선도 느리다.
주목할 사실은, 이론적으로 중형이 소형보다 dynamic range와 high ISO에 유리한데도 소형 full frame sensor들이 1/3~1/14x의 가격으로 이미 거의 모든 면에서 비슷한 혹은 더 좋은 성능을 내고 있다는 것이다. [참조: DxO Mark Sensor Database] 이것은 제한된 market size로 인한 제한된 투자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라고 봐야겠다. 물론 앞서 언급한 회절(defraction) 현상을 포함한 여러가지 부차적인 요소로 인해 더 좋은 full frame sensor의 성능이 반드시 더 좋은 사진으로 귀결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거나 판형이 커지면서 생기는 장점이 full frame 소형에서 정점에 달하고 중형에 가면 꺾인 것이 현실이라고 보여진다.
실제로 ful frame 소형와 중형을 비교한 결과들 중에는 소형이 중형을 능가하는 화질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출처: YouTube "What's it like to shoot with a $30,000 100MP camera?"]
투자의 규모는 단순히 sensor 개발 뿐 아니라, platform 전체에 영향을 준다. 중형 디카 렌즈군은 기종별로 많아야 6개 정도이고, 밝기도 f/2.8이하를 찾아보기 어렵다. 중형 필카 시절에 있던 몇개의 예외로 Pentax 105mm f2.4, Hasselblad 110mm f2, Mamiya 80mm f1.9, Contax 80mm f2 정도가 있을 뿐이다.
소형 디카 렌즈군에 보편적인 f/1.4 렌즈들이나 캐논의 f/1.2렌즈들이 동일한 화각에서 촛점심도(=공간감?)로 뒤질 이유가 전혀 없다. 곧 시판될 니콘의 58mm f/0.95 같은 것은 어떤가? 이쯤되면 "판형이 깡패"라는 말은 중형 디카에 꼭 적용되는 말은 아닌것 같다.
정리를 해보자.
중형: 최고 깡패는 더 이상 아니고 가성비는 꽝이다. 그래도 호주머니가 한 없이 두툼하고 팔뚝이 튼튼하다면 장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특히 초고화소를 필요로 하는 상업 사진이나 풍경 사진등의 제한된 영역에서는 여전히 최선의 선택이 되겠다. 사진 결과물을 보기에 앞서 큼직한 광학 뷰파인더를 들여다 보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게 행복하지 않은가? 재력이 있다면....
Full frame 소형: 판형이 깡패라는 말이 적용되는 정점에, 그리고 가성비를 유지하는 절벽에 서 있다. 가성비도 심하게 나쁘지 않다. 최고의 기술과 최대의 투자가 낳은 최고 성능의 body 그리고 초접사, 초광각, 초망원에 걸쳐 제공되는 수백가지의 광활한 렌즈군이 사진가들에게 자신의 상상을 표현할 다채로운 길을 제공하고 카메라 회사에는 이득을 돌려주는 선순환의 이 고리는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듯하다. FF로 좋은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면 문제는 분명히 나의 실력일 뿐, 장비의 문제는 아니다.
APS-C 소형: Fujifilm을 제외한 모든 회사의 경우 저가 렌즈의 성능에 발목이 잡혀있을 뿐 판형 자체는 full frame에 거의 꿀릴 것이 없고 가성비 최고이며 full frame과의 sensor 성능 차이도 점점 좁혀질 것이다. 접사(close-up)나 야생동물(wildlife) 사진 등에는 full frame보다 오히려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
그 이하: sensor size줄어드는 것에 비례해 out-focusing으로부터 시작해, 야간 촬영을 비롯한 여러가지 촬영의 제약이 오기 시작하지만, 그에 비례해 경제적 부담은 점점 줄어든다. 체감적인 마지노선은 1inch sensor정도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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