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그마 故안수현: 나의 '본'이 된 선배와 다시 만나다
그들의 고민은 정말 삶을 건 고민들이었다. 내겐 지난주 토요일이 몹시 기다려졌다. 나의 '본'이 되었던 선배를 토요일이면, 토요일이면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선배는 95년 7월에 늦깎이 유학을 떠났었다. 자주 연락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어쩌다 받은 메일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고 그 선배에게 카드를 쓰다가 또 울었었다. 그가 내게 보여준 섬김과 사랑이 이렇게 두고두고 새겨질 줄이야.
처음 그 선배를 보았을 때, 나는 두려웠다. 크고 매서운 눈빛과 결코 부드러워 보이지 않는 어투. 참작의 여지는 별로 기대하기 힘들 것 같은 성격. 5분만 말하면 알량한 성경지식으로 위장(?)한 나의 밑천이 모두 드러나고 바닥이 훤히 드러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가까이 하기를 피했고, 내가 좋아하는 선배를 통해 그를 조금씩 보았다. 그는 주일날 예배시간이면 조금 독특한 일을 했다. 예배 전에는 예배 실 가운데에서 사람들 자리안내를 하면서 그 무서운(!) 인상으로 사람들이 여기저기 퍼져 앉지 않게 조정했고, 예배가 시작되고 나면 쪽문 밖에 서서 주보를 나누어주며 기도시간에는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도록 제어하는 일을 했었다. 선배가 되어가면서 나도 그 일이 점점 해보고 싶어지기 시작했다.
그 선배가 인도하는 성경공부에 참석하게 되었다. 숙제준비를 잘해가지 못해서 항상 민망했지만 염치없이 출석했다. 기억나는 것은, 그 선배는 모일 때 약속보다 늦게 사람들이 오면 늦은 시간을 적었다. 적힘을 당하는 후배들의 마음이 어땠을 지는 생각해볼 일이다. 한번은 공부시간보다 조금 늦게 왔더니 야속하게도 선배는 sharing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 날은 마침 넋두리하고 싶은 일들이 많았는데 . . . 집에 돌아오면서 왜 그 시간에 그토록 이야기가 하고 싶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 . . . 그것은 리더인 그 선배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말로 경청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말을 깊은 관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선배를 만났다고 느꼈을 때, 나는 더 이상 교회에서 혼자가 아니었다. '진짜 형'이 생긴 것이다.
그 이후에도 그 선배가 아주 편해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옆에서 그의 모습을 보며 배우는 것들이 많았다. 그것은 그가 가르쳐주려고 해서가 아니었고, 그의 모습 자체였다. 나는 사랑의 표현에 서툴러 선배의 일을 서투르게나마 따라하며 틈틈이 묻고 장난치는 것으로 약간씩 내가 그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표시했지만, 내가 생각해보아도 쓴웃음이 나올 정도로 미숙한 짓이었다.
선배는 나를 한 인격체로 대해 주었다. 내가 본 1때 별 리더훈련도 받지 않고 성경공부팀의 리더겸 팀장으로 섰지만, 나를 신뢰하고 별로 터치를 하지 않았다. 한번은 집으로 불러 거하게 밥을 사주면서 근황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도중에 교제하던 자매와의 관계가 위태로웠던 날, 직접 우리 집으로 뛰어와 내 방에 마주앉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 선배가 시작한, 그 선배를 만난 그 성경공부 팀, 그 곳이 내가 모태신앙의 때 껍질을 벗고 하나님을 알게 된 나의 고향이다. 그 곳의 이름은 [스티그마].
그 선배는 나의 간절한 요청에도 이 못난 후배를 남겨놓고 팀을 떠났다. 그리고 일부러 아주 가끔 찾아왔다. 마음 한구석에 찾아가고픈 충동을 억누르며. . . 1년쯤 지나 선배가 진지하게 "이제 곧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하는데, 곧 결혼을 할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그 선배의 결혼식 날, 본3 기말고사 기간중의 토요일, 선배가 항상 후배들을 사진 찍어주었듯이, 이번에는 내가 그 선배의 결혼식 사진을 찍었다. 한 장 한 장이 그렇게 조심스러울 수가 없었다. 내가 조금만 사진을 잘 찍을 수만 있다면. 선배에게 줄 수 있는 나의 최고의 선물은 이것 뿐 이었다. 예상대로 선배는 신혼여행을 가서도 사진사를 쓰지 않아서 여행사진이나 결혼식사진이 별로 없었다. 그에게 진 그 많은 빚을 조금이나 갚았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기뻤다.
토요일 저녁, 만사 제쳐놓고 공항에 나가 2년 동안 보지 못했던 그를 만났다. 주 안 에서가 아니었다면 결코 없었을 만남. . . 예전의 그 시간이 다시 오지는 않을 것이다. 선배 또한 1주일밖에 머무르지 않는다. 나도 이제는 성도의 교제와 만남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겠다. 이 땅에 있으면서, 항상 함께 있을 수는 없다. 하나님은 각자를 대사(ambassador)로 부르셨다. 따라서 혼자 서야 한다. 그러니 함께 모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인가. 하나님께서 이런 시간을 허락하셨음을 다시 감사드린다.
1997/03/24
예수 믿는 高大 의학 91
스티그마 안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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