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그마 故안수현: 나의 사랑 예과 1학년
91년 초여름, 예과 1학년 시절의 기억
91년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 예 1 한 형제가 저녁 일곱시에 본 3 선배를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당시 예 1후배에겐 한가지 고민이 있었고, 그 이야기를 들은 한 본 3 선배가 만나자고 약속을 한 것이다. 그 선배는 어찌보면 당연히 한번씩은 겪을 고민을 잘 들어주고 조언을 해주었다.
지금 본 3이 된 그 후배에게는 그 때의 조언이 뚜렷이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머리에 강하게 기억되는 것은 바쁘다고 알고있는 본 3 선배가 예과 1학년의 작은 고민들을 위해 시간을 내주었다는 것.
... 학년이 올라갔지만 다른 선배들에게서 그런 모습들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항상 방학계획을 다 세워놓고 나면 그때쯤 연락이 오는 선배들. “00야, 시간 없니? 여름 진료가 언제 있는데... 섭외는 어떻게 해야 하고 ....”
내가 본과 선배를 이해해야 하는 걸까. 본과선배가 나의 열심없는 듯한 모습을 나의 모습 전부로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갔다.
그가 본과가 되었을때, 그는 본과생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선배들의 헌신을 기다리는 예과, 간호학과 후배가 계속 들어오고 있었고 다른 많은 써클의 집요한 유혹에 후배들의 발길이 향해지는 것이 그에겐 안타까울 뿐이었다.
결국 그 십자가를 져야 할 사람이 상황을 뼈저리게 느낀 ‘나’임을 직시하게 된 그는 예과 1학년을 섬길 소망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내가 교회에서 배우고 행한 대로, 또 그때 본 3 선배가 해주었던 것처럼 예과 1학년을 섬겨보리라.’
어느덧 그의 본과 생활은 2년을 넘기고 있었다.
GBS 리더로 섬기려면
여러분은 CMF GBS에서 어떤 문제점을 느끼는가? 그 문제를 위해 기도와 행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갔던가? 아니면 바라보며 뒷짐만 지고 있었던가? 리더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 또 조원들이 바로 서게 되는 가장 큰 원동력은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려고 노력하며 때로는 좌절하는 리더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인 것이다.
필자에게 있어 예과 1학년을 맡아 섬기겠다는 생각은 내가 느꼈던 아쉬움을 후배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강한 도전이었다. 필자의 예 1때의 GBS는 전체모임 후 간단히 하는 정도여서, 다른 신앙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이 자신을 솔직히 내놓고 교제하기가 더욱 어려웠다. 후배들 각각이 아무리 각자의 교회나 소속된 곳에서 큰 사람으로 인정받고 일하고 있다 할지라도 이 곳에서 함께 모이고 나누는 연습을 해야 한다. 각 학교에서는 작은 cell 단위로, 또는 학년 단위로 성경공부를 가진다.
전자는 조원을 보다 잘 섬기고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 있으나 많은 리더가 필요함으로 인해 리더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또 학년 단위 정도의 큰 그룹은 리더 수가 많지 않아도 되지만 리더들이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드려야 한다.
신입생을 열심으로 섬기는 것이 이 공동체를 세우는 첩경이라고 생각한 필자는 새학기가 되면서 큰 원칙들을 세웠다.
- 첫째, 매일 아침마다 예 1 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다.
- 둘째, 예과 리더라는 자리에 나의 우선순위를 둔다.
- 세째, 교제하는 자매와 상의하여 이해를 구하고 만남을 줄인다.
학교 앞에는 작은 교회가 하나 있는데, 한 학기동안 나는 등교하는 매일 아침마다 예배실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첫번째는 예과 1학년 하나하나를 놓고 구체적으로, 그 다음은 교회 대학부를 위해, 그리고 나의 개인적인 기도제목 등이었다. 그것은 한 학기를 지탱하는 지주(支柱)가 되었다.
1학년과 한 학기동안 같이 나눌 말씀의 방향을 위해 기도하면서 가지게 된 주제가「하나님을 아는 것(Knowing God)」이었다. 왜곡되게 전달된 복음으로 인해 단순히 ‘좋으신 하나님’으로 전락(?)한 하나님의 형상, 그 하나님의 거룩함과 크고 두려우심을 알게 함으로서 복음의 참 기쁨과 의미를 알게 된다면!
GBS 교재는 필자가 직접 만들었다. 물론 부족함을 면할 수 없겠지만 시중에 나온 교재들의 한 주 분량이 적어 조원들이 성경공부 직전에 대충 준비하는 폐단을 막고, 나 또한 각 과를 보다 완전히 소화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이 작업에는 1년 반동안 계속했던 교회 리더의 경험이 큰 바탕이 되었다. (예과생들은 예과 1,2학년 때가 훈련의 가장 좋은 시기임을 깨닫고 준비하기를 바란다. )
매주 주중에 문제를 만들고 편집해서 금~토요일 쯤에 예 1 학보통에 꽂아놓는다. 그래서 그 다음주 화요일에 성경공부를 가지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사람들은 따로 시간약속을 내어 보강을 가졌다. 그 대가로 한학기동안 주중 데이트는 희생되어야 했다.
한번은 그들에게 그들을 향한 나의 간절함을 전달해보고자 편지를 쓰기도 했다.
.... 또 제가 이렇게 강압적(?)으로 여러분에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저가 여러분을 책임지겠다고 하나님과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작년부터 하나님께 간호학과, 의예과 지체들을 섬기기를 기도하였고, 지금도 매일 아침 6시 반에 학교 앞의 교회에서 여러분 하나하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제게 여러분은 더할 수 없이 소중합니다.
.... 학업뿐만 아니라 성경공부를 직접 만들기 위해서도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절대 여러분 앞에서 잘난체 하거나 저를 잘 보아주기를 바래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심을 조금이나마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저의 자랑할 것입니다....
기필코 사수해야 할 GBS의 연속성
예 1 리더를 맡으며 간절히 소망했던 것은 ‘연속성’ 이었다. 항상 GBS는 시험때면 흐지부지 되었다. 예과 때 나는 시간이 있었지만 리더인 선배들이 시험이나 다른 학사일정으로 인해 5번 정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끝나는 경우를 보았다. 이런 허술함은 예과 때 필자가 교회보다 CMF에 우선순위를 두지 못하게 한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했기에, 기필코 두 주 이상을 거르는 일 없이 GBS의 연속성을 지키겠다는 각오로 임했다. 여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단 한사람이라도 빠지면 꼭 따로 보강을 가지는 교회 선배 리더였다. 나는 그것을 보고 리더로서의 헌신된 모습이란 저런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4월에 문제가 발생했다. 둘째주는 예과 시험으로, 그 다음주는 학교행사로 예과 지체들이 큰모임에 나오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필자도 중간고사 준비로 각자의 다른 일정에 일일이 보강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그 다음주의 본3 중간고사까지 합하면 자그마치 3주...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필자가 예과 2년 때와 본과 2년때,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의 한달 쯤의 기간동안 관심이 멀어졌을 때 잃어버린 두 명의 ‘양’의 기억이 나를 괴롭혔다.
결심을 굳히고 시험을 3일 앞둔 목요일 만났다. 아직까지 서로를 나누는 데 익숙지 못한 우리들의 모습을 깨고자
찬양과 sharing을 가졌다. 조금씩 서로의 마음이 열려짐을 느낄 수 있었다. 고민하는 한 지체에게 적절한 시기에 조언을 할 수 있었고, 진지하게 필자와 예 1들이 선후배의 수직적 관계를 벗어나 지체로서의 수평적 관계로서 대화할 수 있었다. 적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내게는 참 귀한 시간이었다.
함께 하는 다양한 경험이 중요하다
지난 2월 말, 교회에서 친밀한 한 형제와 대화를 나누던 필자는 깜짝 놀랐다. 리더로 섬기고 있던 그 형제는 sharing 때 속 깊은 이야기들을 일부러 꺼내지 않고 진행을 했는데, 그것은 과거 어떤 공동체에서 받았던 상처 때문이었다는 것이었다. 필자도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을 반추해보면서 그것들이 내가 경험했던 여러 상황으로 인한 것 때문이었음을 알고, 그런 갖가지 상황을 겪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릴 수 밖에 없었다.
필자의 경험 또한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그 가운데 가졌던 생각들을 하나하나 실천해보고자 했다. 우선, 교회에서의 섬김으로 CMF 일정에 불참하게 되는 형제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곳에서의 경험과 훈련들이 이 공동체에서 꼭 필요하게 쓰여짐을 필자는 보았다. 둘째로, 선배들은 자신들이 하는 여러 일에 예과 후배들을 함께 동행하는 수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그 일을 가르치지 않아도 여러분이 임하는 모습에서 후배들이 많은 것을 깨닫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필자가 예과 1학년을 섬기며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은 ‘어떻게 CMF 공동체를「나의 공동체」로 느끼도록 할 것인가 ?’ 였다. 그 중 하나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리더로서 최선을 다해 섬기고 친밀한 선배로서 시간을 함께 보냄으로서 나중에 이들이 리더로 설 때 그만큼의 섬김과 교제를 가지도록 하자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CMF 수련회에 이들을 참여케 해서 필자와 우리학교 CMF가 줄 수 없는 그 무엇을 알게 하고 이곳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3월부터 틈틈히 1학년들에게 수련회 기간에 일정을 비우고 꼭 참여하도록 필요성을 자주 언급했다. 한번은 기도의 방에 예 1 한명과 함께 간 적이 있다. 내심 걱정하며 갔었는데 오히려 기도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뻤다. 후배들을 너무 후배 취급하지 말고 동등하게 대하며 이끄는 모습들도 필요하다.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CMF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들은 기껏해야 6년 쯤이다. 계속 사람이 바뀌는 가운데서도 이 공동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선배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바라는 소망이 계속 전수되어야 하는 것이다.
구름과 같이 허다한 증인들
예과와 본과 학사일정이 틀리고 서로 모일 시간을 맞추기는 어려운 일이었으나, 결국 8번의 GBS와 수차레의 교제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그 중 두 권의 책을 발제하고 토의할 수 있었다. 방학 중에는 함께 MT를 가지기도 했다.
마지막 GBS 시간, 필자는 지난 겨울 사랑하는 한 친구로부터 들은 GBS 마무리의 감동을 잊지 않고 있었다. 함께 모인 우리들은 히브리서 11장을 읽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바탕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
믿음으로 에녹은 ???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
이들은 모두 믿음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들은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멀리 바라보고 즐거워하였으며,
땅위에서는 손과 나그네로 있다는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네가 본향을 찾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좋은 것을 갈망하고 있었읍니다.
그것은 곧 하늘나라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위해 한 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구름 떼와 같이 수많은 증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갖가지 짐과 얽매는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 앞에 놓인 달음질을 참으면서 달려갑시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봅시다...
(히 11:1~12:2 발췌)
모든 것을 주관하신 하나님의 이름만이 높임을 받으셔야 한다. 또 시간을 내준 예 1 들, 나의 뜻을 이해해 준 자매에게 감사하다. 진한 아쉬움으로 남는 것이 있다면 같은 학년 지체들과의 교제를 거의 갖지 못한 것과 여러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간호학과 자매들이 함께 모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 동기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다음 리더때에는 간호학과 지체와의 하나됨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필자의 작은 섬김으로 이들이 본과 2~3학년이 될때쯤엔 이 공동체가 더욱 양육으로 다져지기를 소망한다.
<95년 "작은 누가들의 세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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