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합의 일기 (2) - 신이란?
라합의 일기 (2) - 신이란?
내가 운영하는 여인숙에 들어오는 나그네들마다 히브리인들 이야기에 한층 더 열을 올린다. 헤스본과 바산에 있던 히브리인들이 모압 평원으로 이동했고 그곳에 살고 있던 미디안 족속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전멸시켰다는 것이다. 그 전쟁에 동원된 히브리인들은 전체의 1/50 에 불과한 일부였다고 하니 더욱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가나안 다른 지역들도 불안해하기는 마찬가지겠으나, 특히 이곳 여리고성은 히브리인들이 진을 친 모압 평원에서 요단강 건너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공포심은 더욱 역력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도 히브리인의 신에 맞설 신에게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13살때 처음 참여한 제사의 경험은 지금도 머리에 생생하다. 사제들이 성중에서 골라 뽑은 아리따운 소녀들과 잘 생긴 소년들 중 한명으로 나는 사제들의 손에 이끌려 다른 아이들과 함께 성 중앙에 있는 신전으로 올라갔다. 성안의 어른들 대부분이 이미 모여 신상 앞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신께 드리는 제사에 참여한다는 들뜬 마음을 성의 왕과 제사장, 귀족들과 남녀 사제들이 아세라 신에게 드리는 번제의 숙연함 속에 조심스레 누르면서 우리는 과정 하나 하나를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번제가 마치자 왕과 제사장과 귀족들과 사제들은 음흉한 눈초리로 우리를 쳐다보더니 강제로 우리 아이들의 옷을 찢고 겁탈하기 시작했다. 왕과 남자 사제들은 소녀들을, 여자 사제들은 소년들을... 그 뒤를 이어 제사에 참여한 성의 모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혹은 아이들을 혹은 사제들을 택해 난교를 벌였다. 사랑과 다산의 신인 아세라를 경배하는 중요 제사예식 중 하나로 아세라 신와 그 남편 풍요의 신 바알의 관계를 흉내내는 성행위를 통해 그해의 풍년을 기원한다는 것이었다. 그 날 나를 포함한 아이들의 처녀성은 수십명의 어른들에 의해 그렇게 유린되어졌다.
그후로도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 신전에 끌려들어가는데서 벗어나기까지 우리는 여러차례 같은 일을 치루어야만 했다. 같은 일을 겪은 또래 중 그 의식을 좋아하게 된 아이들도 있었지만 내게는 지금도 그 생각만하면 자다가도 잠이 깰정도로 끔찍한 일이었다. 어릴때부터 그렇게 살아온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별로 없어, 더이상 제사에 강제로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도 나는 여인숙을 하면서 나그네들에게 몸을 파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지금도 성행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너무 너무 싫다. 사랑의 신이라고? 사랑이란게 그런것일까? 그런 폭력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짓밟는 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사랑이란 것을 증오한다. 지금껏 수 많은 남자들과 잠자리를 해왔지만 돈 때문에 그 짓을 했을뿐 단 한번도 그들에게서 따뜻함이나 포근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신전에서 처음 경험한 남자들이나 지금 내게 돈을 내고 잠자리를 요구하는 남자들이나, 내가 마치 변소나 되는것처럼 자신의 욕망을 내 가랑이 사이에 배설하고 갈 뿐이다.
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도 싸우고, 질투하고, 성관계를 맺고, 죽기도 한다는데 그럼 인간들과 다른게 뭘까? 그저 보통 인간보다 조금 더 힘센 그런 존재들을 신이라고 부르는 건가? 신을 실제로 직접 만났다는 사람은 내 주위에 아무도 없다. 신 만이 할 수 있을 그런 기적을 경험한 사람도 없다. 사람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을 나무와 돌 덩어리에 새긴, 말도 할 줄 모르고, 움직이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우리를 쳐다보기만 하는 그들이 정말 신일까? 성 내에서 증폭되고 있는 공포심에 비례해서 어릴 때부터 들어오고 성의 모든 사람들이 숭배해 왔던 신들에 대한 나의 회의감은 커져만 간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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