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What did Jesus mean when He said,
“Take up your cross and follow Me”?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먼저 예수께서 의도하신 바가 아닌 것부터 시작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그들의 삶속에서 그들이 지고 가지고 가야 하는 어떤 부담 (긴장된 관계, 보람없는 일, 육신의 병 등) 으로 해석합니다. 그들은 자기연민적인 자랑으로 “그것이 내가 져야할 나의 십자가”라고 말합니다. 그런 해석은 예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분께서 의도하셨던 바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려고 골고다로 그 분의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셨을 그 당시에는, 아무도 십자가를 지고 가야할 부담의 상징으로 생각지 않았습니다. 1세기의 사람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한가지 -- 오직 한가지 -- 를 의미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고안해낼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럽고 치욕적인 방법에 의한 죽음이었습니다.
2000년 후,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를 속죄, 용서, 은혜, 그리고 사랑의 소중한 상징으로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날에 십자가는 극한고통의 죽음외에 어떤 것도 아니었습니다. 로마인들이 기결 범죄자들을 각자의 십자가를 형장까지 지고 가게 했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는 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에 조롱을 받으며 자기 자신의 처형도구를 운반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므로“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는 말씀은 예수를 따르기위해 기꺼이 죽으려고 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자신을 향하여 죽음”이라고 부릅니다. 이것은 절대적 순종을 향한 부르심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질 것을 명령하실때마다 매번 그 후에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누가복음 9:24~25)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르심이 엄중한 반면, 그 상급은 비길바 없습니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마다 많은 군중들이 그분을 따랐습니다. 이 많은 인파들이 그 분을 메시야로 알고 따르기는 했지만, 누가 진정한 메시야이며 그 분이 무엇을 하실 것인가에 대한 그들의 시각은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회복된 왕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그 분께서 정복자 로마사람들의 압제로부터 그들을 자유케 하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의 가장 가까운 제자들조차도 왕국이 곧 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누가복음 19:11). 예수께서 유대교 지도자들과 그들의 이방인 군주들의 손에 의해 죽으시려고 하심 (누가복음 19:22) 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을때, 그분의 대중성은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충격받은 추종자들의 상당수는 그 분을 배척했습니다. 진실로, 그들은 그들 자신의 생각과 계획과 바램을 죽이고 그 분의 것으로 바꿀 수 없었습니다.
삶이 순탄할 때는 예수를 따르는 것이 쉽습니다. 그분을 향한 우리의 진정한 헌신은 시련중에 드러납니다. 예수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시련이 있을것이라고 단언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33). 제자도는 희생을 요구하며 예수께서는 그 댓가를 절대 감추시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9:57-62에서, 세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기 원합니다. 예수께서 재차 그들에게 물으셨을때 그들의 헌신의 마음은 기껏해야 반정도로 줄었습니다. 그들은 그분을 따르는 것에 대한 댓가를 헤아림에 실패하였습니다. 아무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자신의 유익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을 만류하신 것으로 보인 것입니다. 전형적인 복음의 설명과는 얼마나 다른지요. “예수께 오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친구와, 가족과, 명예와, 직업과 심지어는 당신의 목숨까지도 잃음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라는 부르심에 응답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거짓된 회심자의 수는 아마도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한 부르심이 바로 예수께서“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하실때 그 분께서 의미하셨던 바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십자가를 질 준비가 되었는지 궁금하다면 다음의 질문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 몇명을 잃는다고 해도 당신은 예수를 따를 마음이 있습니까?
- 당신의 가족으로부터 소외된다 해도 당신은 예수를 따를 마음이 있습니까?
- 당신의 명예를 잃는다고 해도 당신은 예수를 따를 마음이 있습니까?
- 당신의 일자리를 잃는다고 해도 당신은 예수를 따를 마음이 있습니까?
- 당신의 목숨을잃는다고 해도 당신은 예수를 따를 마음이 있습니까?
세계의 어떤 지역에서는 이러한 결과가 실제입니다. 그러나, 질문들이 “당신은 그럴 마음이 있습니까?”라고 쓰여진 것에 주목하십시오. 예수를 따르는 것이 필연적으로 이 모든 일들이 당신에게 일어남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의 십자가를 질 마음이 있습니까? 당신의 인생에서 당신이 “예수인가 아니면 이생의 안락함인가”의 선택을 직면했을때, 당신은 어느 쪽을 선택하겠습니까?
그리스도께의 헌신은 그리스도로 인해 필요하다면 당신의 희망과 꿈과 소유와 심지어 당신의 목숨까지도 포기하며 당신의 십자가를 매일 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당신의 당신의 십자가를 질 마음이 있을때만 당신은 그 분의 제자로 불리울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4:27). 그 상급은 댓가만큼의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스스로 죽으심의 부름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선물로 따르셨습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원문 출처] http://www.gotquestions.org/take-up-your-cros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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