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의 겨울 (2) 아사히다케
홋카이도의 겨울 (2) 아사히다케
시차 덕에 새벽 4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이 없을 시간이니 카메라들고 온천장으로... 호텔 규모에 비해 생각보다 욕탕이 그리 크지는 않다.
옥외탕의 모습. 건물 밖은 엄청난 눈더미에 가려서 주위 풍경 같은 것은 없다. 욕탕 위에 cover를 씌워 놔서 새벽 온천욕은 그냥 실내에서 하기로... 물이 나트륨계열의 알카리성이라 냄새도 나지 않고 장시간 해도 부담이 없다.
온천욕 마치고 회사일 급한 것들 좀 처리하다보니 밖에 여명이 보이기 시작한다. 식사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호텔 밖으로 나왔다.
숙박한 Bear Monte Hotel 간판. 아사히다케 반세이가쿠 호텔 베어 몬테 (旭岳 万世閣 ホテルベアモンテ)
날씨가 쾌청하면 이 각도에서 아사히다케 정상이 보이는데 지금은 구름때문에 전혀 보이지가 않는다.
Rope way 쪽으로 걸어가 본다. 호텔 맞은편에 자리한 Visitor Center. 건물의 오른쪽은 무료 휴게소인데 눈에 파묻혀 있다.
Visitor Center 건너편의 주차장. 키 높이 까지 쌓인 눈에 역시 파묻혀 간판만 달랑 보인다.
주차장에 붙어 있는 화장실도 마찬가지라서 사용 불가.
아사히다케 등산로 입구라는 푯말이 있다. 날씨가 따뜻할때는 rope way 대신 이 등산로를 따라 올라갈 수 있을테고, 겨울인 지금은 rope way를 타고 올라가 내려오는 skier들의 귀환 경로다.
이 건물이 아사히다케 rope way의 base station이다. 1층에는 기념품등을 함께 파는 편의점과 휴식공간이 하나 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매표소와 탑승구와 식당이 있다. 날씨에 따라 운행이 중지될 수도 있으므로 홈페이지에서 운행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홈페이지는 여기) 2월 중에는 9am-4pm 사이에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왕복 요금은 ¥1,800. 카드를 받지 않으니 현금을 준비해야 한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연기가 피어오르는 큰 건물이 호텔이다. 오른편 구석에 어렴풋이 동이 터오고 있다.
아침식사 시간은 7~9시. 시간배정 없이 가서 먹으면 된다. 메뉴는 저녁부페와 비슷하다. 어제 늦게 먹은 음식은 만든지 시간이 좀 된 것 같은 음식들이 있었는데 7시 문 열때 가서 먹으니 훨씬 낫다. 어제 저녁은 일식 위주로, 오늘 아침은 양식 위주로.
식당 앞 조그만 휴게실 창 밖으로 분수가 있다. 겨울에도 잠그지 않아 물이 계속 나오는데 영하 10도 이하의 날씨에 물이 그대로 얼어서 ice tube가 생겼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늘은 아침 내내 흐리다가 오후부터 큰 눈이 내린다고 한다. 산 위에 올라가서 눈을 만나면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 8:30am에 일찍 호텔을 나서 표를 구입하고 기다리다가 9시 첫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한번에 약 100명 가량 탈 수 있는 큰 케이블카라서 그리 붐비지 않는다.
10분 가량 걸려 summit station인 스가타미역(姿見駅)에 도착했다. 음료수 자판기가 있는 따뜻한 휴게실과 화장실이 있다. 6~10월에는 고로케와 커피를 판매한다고 한다.
한여름이면 잔설(殘雪) 속에 야생화가 만발하고, 짐승들도 돌아 다니고, 눈이 녹아내려 에메랄드빛 연못도 생기는데 한겨울에는 국립공원 이름 그대로 대설산(大雪山)이 되어 버린다. 여전히 구름이 많아 산 아래는 거의 보이지가 않는다.
오늘의 목적지는 언덕 너머로 수증기가 솟아 오르는 오하치다이라(御鉢平) 분기공(噴氣孔, fumarole)이다. 겨울에 날씨가 좋지 않을 경우 길을 잃을 수 있어서 다녀온 몇 안되는 사람들 글을 보면 다들 현지 가이드와 동행했다고 하는데, 가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호텔을 포함해 수소문을 해도 가이드를 구할 수가 없었다. 포기할까 하다가 열심히 사진과 방문기를 뒤져보고는 혼자 가도 별 문제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모든 것이 눈에 덮인 한겨울에는 지형 완전 무시하고 일직선으로 가면 되고 거리도 1.2Km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단, 짙은 안개로 충분한 가시 거리가 확보되지 않을때는 반드시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려야 한다. 연못도 있어 섣불리 움직이다 엉뚱한 방향으로 가서 실족이라도 하면 그 길로 세상을 하직하게 될 수 있다)
만약을 위해 iPhone을 꺼내 확인해 보니 cellular signal도 양호하게 수신되고 map app에서도 위치를 제대로 표시해주고 있다. 작년 Sapporo 시내에서 기온이 내려간 상태에서 battery 문제로 전화기가 꺼지는 것을 경험했기에, 보온을 위해 안에 입은 옷 주머니 깊숙히 넣어둔다.
날씨가 좋을때 찍힌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았다. 분기공에서 맹렬한 소리와 함께 연기를 내뿜는 활화산이지만, 마지막으로 분화한 것이 600년 전이라고 하니 위험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될듯하다. 마지막으로 분화시 위가 아니라 옆으로 폭발하면서 산의 꼭대기가 완전히 날아가고 사진처럼 한가운데 깊은 골짜기가 생겼는데, 이를 두고 "지옥곡"(지고쿠타니, 地獄谷)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목적지인 오하치다이라(御鉢平) 분기공은 지옥곡의 왼쪽 능선이 시작되는 곳의 수증기를 뿜고 있는 지점이다.
[사진 출처: skygate-global.com]
스가타미역(姿見駅)에서 내려 대략 12:00~12:30 방향으로 가게 된다. 내가 다녀온 곳은 제일 가까운 분기공 ①.
아침 기온 영하 18°C에 흐림. 방한화부터 시작해서 오리털 패딩 파카에 스키용 장갑, 귀마개, 스키 고글, 그리고 얼굴 마스크까지 해서 노출부위 없이 전신을 다 가렸다. 다행히 바람은 그리 세지 않다.
끝으로 총 적설량 3m인 산행에서 필수품인 snow shoes. Bear Monte Hotel 1층에 있는 cross country rental shop에서 구할 수 있다. 분기공에 간다고 하니 뒷축을 올릴수 있는 것으로 추천해서 돈을 조금 더 주고 ¥2,300에 빌렸는데 써보니 뒷축 올리는 것은 별로 필요 없는 option이었다.
[2024년 2월 3일 update] Bear Mount Hotel에서는 더이상 snow shoes 대여를 하지 않고 그 옆의 visitor center에서는 아직 대여를 해준다고 함.
준비를 마치고 분기공을 향해 출발한다. 시작 부분에 있는 언덕에 올라 내려다 보는 summit station 스가타미역의 모습.
8월의 스가타미역은 대략 이런 풍경....
[사진출처: 엄냥이의 Let's get lost]
스가타미역에서는 가려 보이지 않던 분기공이 언덕에 오르자 뚜렷이 보인다. 여름이면 분기공이 더 여러개 생기고 겨울이 되면 수가 줄어드는 듯 하다.
평소 산책 속도로 내리 걸으면 15분, 사진 찍으면서 가더라도 20~25분이면 갈 거리인데... 처음 신어보는 snow shoes가 익숙하지도 않고 왕창 껴입은 옷도 있고 해서 뒤뚱거리면서 걷다보니, 자주 중심을 잃었고 몇번 넘어지기도 했다. 카메라를 양손으로 들고 걸어야 해서 trekking pole을 빌리지 않았는데 맨몸이면 pole도 빌릴 것을 추천한다.
출발시 망원 zoom lens를 꼈다가 분기공이 가까와지면서 표준 zoom으로 바꿔 끼려고 하는데 약간이지만 바람에 눈발이 계속 날려 고생을 좀 했다.
Skier들이 다니는 지역을 넘어 비탈길에 들어서니 발자국이 거의 없는 깨끗한 눈밭으로 바뀐다. 마침 잠깐 구름사이로 얼굴을 내민 햇살이 분기공 부분에 빛을 뿌려준다.
계속 뒤뚱거리며 눈길을 걸어 드디어 분기공에서 지척 거리에 도착했다. Snow shoes를 신었음에도 불구하고 20cm 씩 푹푹 빠지기 시작해서 가급적이면 발자국이 이미 생긴 곳만을 따라 걸어간다. 가까이 갈수록 분기공 주위의 설경이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진다. 왼쪽 능선을 따라 쌓인 눈이 마치 해변의 파도와도 같다. 100명씩 싣고 다니는 케이블카 타고 편하게 온 내가 이렇게 느꼈을 정도니, 옛날에 한걸음씩 눈을 헤치고 500m를 걸어 올라왔을 몇 안되는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보았을때는 그야말로 경외감을 갖지 않았을까.
윗쪽의 분기공 앞으로 먼저 가본다. 시각적으로는 온통 누런것이 엄청난 양의 유황성분이 분출되는 것을 보여주는데 냄새는 거의 없어서, 연기라기 보다는 수증기라고 말하는 편이 맞을 듯하다. 지역 소개 기사에 의하면 정상쪽으로 여러개 더 있는 분기공은 유독성 유황가스가 심해서 가끔 불곰등의 짐승들이 부근에서 죽은채로 발견되기도 한다고 한다.
윗쪽 분기공에서 아래쪽 분기공을 향해 내려다 본 광경.
눈이 덮힌 밝은 고산지대라 가까이 가도 수증기로 가득한 어두운 분기공 안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종이장 말린듯 능선에 layer를 형성하며 쌓인 눈이 신기하기만 하다.
아래쪽의 두번째 분기공 앞으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겨 다가간다. 수증기 올라오는 소리의 엄청난 음량이 첫반째 분기공과는 현격히 다르다. 유황성분 섞인 눈이 고드름을 형성한게 마치 괴물의 입 안을 들여다보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구름안개가 짙어지면서 가시 거리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한다. 더 올라가보고 싶은 욕심을 접고 스가타미역을 향해 발걸음을 돌린다. 왔던 발자국을 따라가면 될거라고 쉽게 생각했는데 1시간이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동안 분 바람과 조금 내린 눈 때문에 발자국이 벌써 희미해졌다.
올라올 때는 바람을 등지고 와 춥게 느끼지 않았는데, 내려갈때는 맞바람이라서 세지 않은 바람인데도 체감 추위가 더 낮아졌다. 설상가상으로 스키 고글이 뿌옇게 되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김이 서려 그러려니하고 닦으려고 했더니, 싸구려 고글이라서 안쪽이 아예 꽁꽁 얼어붙어 있다. 망설이다가 안개가 심하니 설마 설맹 (snow blindness)이 되지는 않겠지 하는 생각으로 고글을 벗어 버렸다.
새파란 바다나 하늘을 묘사할때 '눈이 시리게'라는 표현을 관용적으로 쓰곤 하는데, 눈이 얼기 시작해 느낌이 아닌 감각으로 시린 것을 난생 처음으로 체험해 본다. 실눈을 가늘게 뜨고 한걸음씩 내려오는데 안개가 점점 짙어진다.
옆길로 나있는 전망대쪽에서 한사람이 걸어오더니 길을 묻는다. 일본인 관광객인데 내가 걸어 내려온 분기공 쪽으로 가리키면서 스가타미역 가려면 저리로 가냐고 묻는다. 아마도 지금 막 내가 스가타미역에서 올라온 사람이라고 생각한듯 하다. 내가 반대 방향을 가리키니까 한참을 갸우뚱 하더니, 내가 걸어 올라온 발자국 남은 것을 가리키며 설명해주니 알겠다고 먼저 성큼 성큼 걸어 내려간다.
근데 조금 걸어가더니 내 발자국을 벗어나서 다소 빗나간 방향으로 내려간다. 그래도 아래쪽으로 가는거니 괜찮겠지... 안개가 더 짙어지더니 소위 말하는 white-out 상태가 되어버렸다. 가시 거리가 3m쯤 되려나? 이럴땐 이동하지 않고 멈춰서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는 거라고 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것 같아 멈춰섰다. 혹시나 몰라 품 안에 깊이 넣어두었던 iPhone을 꺼내 map app으로 위치와 방향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대략 2/3 정도 내려온 것 같다.
10여분 지나니 조금 옅어지기 시작하는 안개 속에서 snow boarder 두명이 나타났다. 더 위로 가 활강을 시작 하려는듯 안개를 헤치며 더 걸어 올라간다.
드디어 안개가 많이 걷히고, 멀리 지평선에 사람 모습 둘과 전파 송신 안테나와 스가타미역 지붕이 보이기 시작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에베레스트 등반 영화에서 보곤 하던 고산지대의 변화무쌍한 날씨의 위험을 가상 경험해 봤다.
EBS 에서 방영한 "다이세쓰, 대설산에 오르다" 촬영팀이 겪었던 상황이 나와 비슷한 듯 한데, 내가 갔을 때는 바람은 거의 없었던 반면 안개가 짙게 껴서 가시 거리 면에서는 훨씬 열악한 상황이었던것 같다.
따뜻한 스가티미역 휴게실에 들어서 시원한 냉커피 캔 하나 뽑아 마시고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base station에 돌아와, 2층 식당에서 따뜻한 라멘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보니 Visitor Center 직원들이 지붕에 올라가서 눈을 치우고 있다. 오후에 내릴 눈을 대비하는 듯하다. 매년 길 가다가 지붕에 쌓였던 눈이 떨어지는 것에 깔려 죽는 사람이 나오곤 하는 홋카이도의 겨울 일상.
다시 온천탕에 가서 얼은 몸을 녹이고 나오니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오전에 올라갔다 오길 잘했지. 오후 시간은 내내 호텔에서 내리는 창문 밖에 내리는 눈구경하면서 이메일 확인하고 빈둥 빈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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