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색조 연기파 배우들
팔색조 연기파 배우들
"유리가면"이라는 연극을 주제로 한 일본 만화가 있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지만, 마치 가면을 쓴 듯, 정말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연기자들이 있지요.
- 이병헌 : 멜로, 범죄, 사극, 추리, 액션 등을 넘나들며 양아치/암살자부터 개그까지 무리 없이 자연스럽게 소화해 내는 배우는 참 보기 드물지요. 제가 보기에 잘 생긴것도 아닌데 (이크~~ 돌 날아온다 😜) 나름의 매력이 있습니다. 이정재와 더불어 조각과 같은 몸매를 유지하고 모든 작품마다 자신의 최고를 쏟아붓는 그의 노력은 영화계에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특별히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왕과 건달의 1인 2역을 한 것이나 얼마전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에서 사랑과 분노와 용서의 복잡한 감정 표현을 한 것등은 참 인상 깊습니다. 괜찮은 목소리에 한국어와 영어 모두 정확한 발음, 그리고 거기에 나직하게 절제된 톤으로 대사를 전달하면서 과장되지 않은 표정으로 미묘한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이 정말 탁월하다고 하다고 봅니다. 이미 Hollywood에도 진출한지 꽤 되는데, 바라기는 액션물을 넘어 자신의 다양한 모습을 외국 영화에서도 보여줄 기회가 생겼으면 합니다.
- 박근형 : 연기 경력 57년의 베테랑이지요. 젊은 시절 장동건 급의 미남이었습니다. 강렬한 카리스마가 풍기는 외모 덕에 연기자 생활 후반부에는 주로 거물 정치인, 기업 총수, 고위 법관 등의 역할을 맡아온 것으로 알려집니다만 실제로는 부패한 기업총수나 정치인부터 돈 없고 힘 없고 늘 주눅들어 있는 서민의 모습, 심지어는 찌질한 역할까지 안해 본 것이 없이 모든 역할을 자신의 색체로 훌륭히 그려내는 탁월한 연기자입니다. 완벽주의는 아닌것 같고 스스로나 같이 하는 연기자에게나 최선의 노력을 늘 기대한다고 하는데 연기를 볼때마다 정말 감탄하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2012년 드라마 "추적자 더 체이서"에서 한오그룹 서동환 회장역의 연기는 정말로 탁월했습니다. 드라마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그 대사 하나 하나에 빠져들게 하더군요. 예상치 못했던 심경의 전환이 너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것을 보면서 전율했습니다.
- 한지민 : 외모도 그렇고 실제 생활도 그렇고 곱게 자란 청순 모범생 캐릭터가 주 였지요. 30대 후반이 된 지금도 기본 이미지는 여전합니다. 예쁘장하고 무난할 뿐 강렬한 인상을 주지 않기 때문인지 그리 눈에 띄지 않았는데 2018년 "미쓰백"을 보고 이 배우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지키려다 어린 나이에 전과자가 되된 채 마음을 닫아버린 상처 많고 거친 주인공 그리고 그 주인공의 마음에 감추어져 있던 연민의 정이 조금씩 표출되는 과정등... 영화 자체는 걸작이 아니었지만 한지민이란 연기자는 자신의 본래 모습과는 180도 다른 연기를 유감 없이 보여주더군요. 2011년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에서 요염한 객주과 정숙한 판서 며느리의 상반된 두 모습을 연기한 것도 훌륭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한지민이 할머니 모시고 이 영화 보러 갔는데 할머니께서 손녀인지 못알아보셨다고 😨
- 한석규 : 이 배우의 강점은 성우 출신에 걸맞는 좋은 목소리/발성/발음으로 느릿느릿하게 끌고나가는 자연스러움이라고 봅니다. 연기라고 생각이 잘 들지 않는거지요. 내용은 진부했지만 1998년 "8월의 크리스마스"로 보여준 잔잔한 로맨스, 1999년 "쉬리"와 2013년 "베를린"으로 보여준 스릴러를 포함해서 다채로운 연기가 돋보입니다. 1990년대의 원탑으로 석권하다시피 하다가 매니저였던 친형 한선규가 엉망으로 관리를 해서 2000년대 초에는 활동이 뜸했는데 2011년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2017/2020년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1&2 로 다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진지함과 장난기, 기쁨과 슬픔, 애수와 분노가 짧은 시간에 교차되는 상황에서 그 전환이 너무나도 자연스럽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활짝 웃을때는 참 착하게, 빈정거리고 욕할때는 진짜 못되게 보이는 것을 큰 무기로 자신만의 독특한 캐랙터를 탄생시키는 대단한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 자세히 쓰지는 않겠지만 향후 연기가 기대되는 배우들을 언급하자면, 이번에 "기생충"에 출연했던 박소담. 한국적인 정서에서는 외모 때문에 제한이 많겠지만 연기력으로 보자면 팔색조의 자질이 농후해 보입니다. 단역으로 나와도 나올때마다 전혀 다른 모습 그러면서도 인상에 남는 연기를 보여주네요. 영어가 되면 Hollywood에서 쓰고 싶어할 것 같아요. 다른 한명은 송윤아. 엄청나게 히트친 작품은 없어도 2016년 드라마 "The K2"를 보면서 대사 없이 미묘한 표정만으로 복잡한 심경의 변화를 연기하는 것이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 짐 캐리 : 제 좁은 소견에 전세계 현존 배우 중 가장 넓은 연기의 spectrum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1994년 영화 "에이스 벤추라"와 "마스크"로 각인된 그의 코믹 연기는 자기 자신의 본래 모습을 가장 잘 살리는 부분인것이 확실합니다만, comedy물 이외의 작품을 봐도 놀랄 만큼의 완성도가 높은 연기를 보여줍니다. 오히려 저는 그의 코믹 연기가 항상 과장이 심해서 덜 좋아할 정도라는... 1998년 사회철학적인 영화 "트루먼 쇼", 2001년 잔잔한 심리 드라마 "마제스틱", 2004년 로맨스 영화 "이터널 선샤인" 등 전혀 다른 색채의 인물을 섬세하고 차별화된 연기로 그려 냅니다. 흥행은 망했지만 1999년 작 "맨 온 더 문"에서 그가 그려낸 괴짜 천재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만의 일생은 정말 주목할만 했습니다. 코미디언이라는 통념과는 달리 다소 자폐적이고 유별난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의 인물을 연기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 어려운 일일텐데 짐 캐리는 실제 인물의 '마스크'를 쓴 듯 평소와는 전혀 다른 연기를 보여줍니다. 잔혹한 악인의 역으로 나온 작품은 아직 보지 못한 것이 유일한 아쉬움입니다.
- 샤를리즈 테론 : 16세에 이탈리아에서 모델 일을 시작했고, 19살에 큰 무릎 부상을 입을 때까지는 발레리나였습니다. 뛰어난 외모 덕인지 헐리웃의 한 은행에서 우연히 눈에 띄어 스카웃되어 배우 생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2004년부터 지금까지 15년 이상 계속 Dior J'adore의 모델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 체형/얼굴/분위기의 삼박자를 완벽하게 갖춘 진정한 "여신"급 신체적 조건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초기 출연작은 예쁘고 천진난만한 (때론 철딱서니 없는) 캐랙터로 가끔씩 벗어 멋진 몸매 한번씩 보여주는 정도였는데 2003년 작 "몬스터"에서 동일 인물이라고는 상상을 못할 정도로 망가진 외모로 퇴물 매춘부역을 연기해내면서 골든 글로브와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본격적인 배우로서의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로맨스, 코미디, 액션, 드라마를 넘나들며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데 나이가 들면서는 섬찟한 악역에서 더 존재감을 보이는 듯 하네요. 무술을 하지는 않았지만 발레로 다져진 몸의 유연성 덕에 액션도 상당히 실감나게 하더군요. 개인적으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와 "아토믹 블론드"를 좋아합니다.
- 에드 해리스 : 짐 캐리가 넓이라면 에드 해리스는 깊이라고 할까요? 박근형처럼 주연보다는 조연이 많습니다만 이 배우가 나오면 영화의 질이 달라집니다. 운동으로 다져진 근육질이 느껴지는 강하고 고집스러운 얼굴선이 남성스러움을 물씬 풍기지요. 그래서 1989년 작 "어비스"에서 주연 버질 브리그먼, 1996년 작 "더 록"에서 험멜 준장, 2001년 작 "에너미 엣 더 게이트"에서 독일군 저격수 쾨니히 소령 등 단골 배역은 군인입니다. 악역을 참 연기하는데 제게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1995년 작 "숀 코네리의 함정(Just Cause)"에서 수감된 살인마 블레어 설리번의 역을 맡았을 때였습니다. 과장된 것과 강렬한 것은 많이 다르지요. 소름이 오싹 끼치더군요. 또 다른 한 편으로 2006년 작 "카핑 베토벤"에서는 청력을 잃고 좌절한 괴팍하고 오만 고집불통의 악성(樂聖)의 복잡한 심리를 완벽에 가깝게 그려냈지요. 1994년 작 "불멸의 연인"에서 게리 올드만이 광기 섞인 모습으로 담아낸 것과는 완전히 다른데 둘 다 훌륭한 연기였다고 봅니다. 에드 해리스가 연기력의 진수를 보인 것은 아마도 1998년 작 "트루먼 쇼"에서 PD 크리스토프로 나왔을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이 가공으로 만들어 놓은 가짜 세계에 대한 광적인 집착과 자긍심, 트루먼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냉혹함등의 다양한 면모를 훌륭히 그려냈다고 봅니다.
- 로빈 윌리엄스 : 짐 캐리처럼 주 종목은 코미디인데 짐 캐리가 못 말리는 개구장이같은 인상이라면 푸근한 인상에 엄청 웃기는 아저씨같은 인상이지요. 짐 캐리에 비해 상당히 절제된 연기를 보여주는 편인데 천의 얼굴을 가졌다고 할까요? 1989년 작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는 십대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아주는 존 키팅 선생님, 1991년 작 "후크"에서는 어른이 되어버린 피터 팬, 1993년 작 "미세스 다웃파이어"에서는 아이들이 너무 보고 싶어 여장남자가 된 이혼남, 1997년 작 "굿 윌 헌팅"에서는 심리학 교수 숀 맥과이어, 2010년 작 "불면증 (Insomnia)"에서는 냉혹한 살인범. 정말 좋아하는 배우였는데 파킨슨 치매로 고통을 겪던 중 2014년 안타깝게도 스스로 삶을 접었지요....
- 그 외에도 맷 데이먼, 브래드 피트, 톰 행크스, 멜 깁슨, 더스틴 호프만, 니콜 키드만 같은 배우들도 상당히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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