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 이른 봄 (2) 오타루 둘째 날
홋카이도 이른 봄 (2) 오타루 둘째 날
시차 덕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눈을 뜨니 새벽 4시 조금 넘었습니다. 한적함을 넘어선 적막함을 즐겨보려고 새벽 산책을 나가봅니다.
아직 여명기도 되지 않아 어둑어둑합니다만, 일본과 한국이 같은 시간대를 쓰면서 오타루는 위도상으로 서울보다 약 14도 더 동쪽이라 한시간 가량 해가 더 일찍 뜨기 때문에 아침이 그리 멀지는 않은 것이 하늘빛에서 읽혀 집니다.
전날 왔던 운하에 다시 왔습니다. 걸어오는 동안 저희 부부를 제외한 행인을 한명도 보지 못했는데 여기도 역시 아무도 없군요 ㅎㅎ 가스등이 켜진 새벽녘 운하는 하루 전 낮에 본 운하보다는 한결 운치가 있었습니다.
전날 갔던 길과 반대방향인 북쪽으로 운하 산책로를 따라 북쪽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화물 선적이 주업인 곳인 항구이고 날씨가 차가울 때이긴 합니다만, 통상 항구에서 풍기는 생선 비린내 같은 것은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호텔에 돌아오니 아이들도 깨어 있어 아침식사를 다시 호텔에서 합니다. 아침은 일식(和食, 와쇼쿠)으로... 구운 연어 한토막에, 수란(水卵), 고등어찜에 채소절임(漬物, 츠케모노) 몇가지가 나왔습니다.
홋카이도 특산물중 하나인 오징어 회 (イカ刺身, 이카 사시미)
일본산 다시마 중 가장 좋은 질로 꼽히는 홋카이도 다시마(昆布, 곤부)를 넣은 된장국(味噌汁, 미소시루)
아침 식사후 사카이마치 도오리(堺町通り) 거리로 다시 갑니다.
100여년은 족히 되었을 오래된 건물들과
지은지 얼마되지 않았을법한 건물들이 여러 세월의 흔적을 함께 보여주며 나름 좋은 조화를 이룹니다.
이날 사카이마치 도오리(堺町通り)에 온 주 목적은 둘째 아이의 유리공예 체험입니다. 오타루의 유리 공예품은 석유램프와 어업용 램프 등 생활 필수품으로 시작됐다가 선물용으로 인기를 모으면서 지역 특산품이 되었다고 합니다. 영화 Love Letter에서 여주인공을 짝사랑하는 아키바 시게루도 유리 공방에서 일하는걸로 나오지요. 사카이마치에 여러군데의 공예점이 있습니다.
전날 예약한 곳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유리공예품에 작은 전구를 붙여 만든 예쁜 램프 하나가 저희 일행을 맞아 줍니다.
첫번째로 한 것은 유리를 녹여 팔찌에 쓸 색깔 넣은 구슬을 만들기. 시퍼런 불 색깔이 엄청난 불 온도를 알려줍니다. 안전을 위해서 공예가 한분이 계속 옆에서 도와주지요.
두번째는 자기만의 오르골만들기. 먼저 원하는 melody의 오르골 박스를 고르고 그 위에 플라스틱와 유리구슬등을 접착제로 붙여서 완성합니다. 제 아이가 선택한 곡은 Pachelbel의 Canon.
오타루 시내에 워낙 먹을 것들이 많아, 대부분 관광을 오면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이왕 온김에 조금 더 시간을 들여 버스를 타고 6Km 가량 북쪽에 위치한 오타루 기힌칸(小樽 貴賓館)이란 식당으로 갔습니다. 오타루역 앞 버스터미널에서 홋카이도 주오버스(中央バス) "오타루 수족관행"을 타고 25분 정도 가서 슈쿠츠 3초메 (祝津 3丁目)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됩니다.
한자 그대로 "귀빈"(貴賓)을 위한 곳입니다. 청어잡이로 거부가 된 아오야마 가문의 3대째 딸인 마사에씨가 1923년에 별장으로 완공한 곳인데 건축하는데 무려 6년 반이나 걸렸고, 백화점 하나 짓는 비용이 50만엔 정도일 시절에 31만엔이라는 거금을 들였다고 하는군요. 여름에는 꽃이 만발한 정원이 꽤 볼만하다고 합니다.
기힌칸(小樽 貴賓館). 〒047-0047 北海道小樽市祝津3丁目63
여행에서 돌아와 홋카이도 관련 드라마 검색하다보니 2008년 방영된 "달콤한 인생" 1화가 여기서 촬영되었었네요. 드라마에서는 료칸(旅館) 숙소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식당입니다.
100여년 전에 지은 원래 건물은 관광 목적으로만 개방하고 식당은 새로 지은 건물에 있습니다.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쪽으로는 각종 기념품과 특산물을 파는 곳이 있고 정면 복도는 천장과 벽에 여러가지 미술품들과 악기 그리고 소품 같은 것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식사하는 곳입니다. 예약을 받은 듯이 식사할 준비가 된 테이블들이 몇개 있긴 하지만 이곳도 무척이나 한산합니다. 정원을 향한 큰 창가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정원을 덮은 눈이 4월의 잔설(殘雪)이라고 보기엔 꽤나 많습니다.
둘째 아이가 주문한 단팥죽(ぜんざい, 젠자이) ¥650... 3살때인 2008년에 간 첫 일본 여행 중 쿠사츠 온천(草津温泉)에서 처음 먹어보고 반해, 그 후로도 일본에 가면 한번씩은 꼭 시켜먹습니다. 기힌칸은 단팥죽도 훌륭했습니다.
청어잡이 집안에서 만든 식당이라 가장 인기있는 메뉴는 청어(ニシン, 니신) 도시락입니다만, 저희는 그냥 새우덮밥(エビ丼, 에비돈) ¥1,500, 튀김메밀국수(天ぷらそば, 덴푸라소바) ¥1,188 등 이것 저것 시키고, 제일 푸짐해 보이는 유도후고젠(湯豆腐御膳, 두부탕 밥상이란 뜻)도 한번 주문해봤습니다. ¥3,240. 오른쪽 위에 큰 두부탕이 주된 요리이고 거기에 이런 저런 반찬들이 함께 나왔습니다. 접시 하나마다 느껴지는 신선도와 정성에 돈이 안 아깝네요.
청어 한토막에 불과한데 4일동안 걸려 요리해 낸다고 하는군요.
새우 한마리에 참치와 가리비 회(刺身, 사시미) 몇조각 그리고 진짜 고추냉이(わさび, 와사비) 갈은 것. 신선한 어류 구하기 어려운 미국서부에서는 절대 볼수 없는 맛입니다.
식사 마치고 다시 오타루 시내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합니다. 기힌칸에 구경할 것이 나름 꽤 있어 보였는데 버스 시간때문에 다 보지 못하고 나와야 했던 것이 조금 아쉬웠습니다.
점심 식사 후 기차를 타고 삿포로(札幌)로 넘어왔습니다.
숙소는 삿포로 Clubby 호텔. 지하도를 통해 맞은편 삿포로 맥주 팩토리 쇼핑몰로 직접 연결되어 있습니다. 가구와 스타일이 무척 오래되었지만 아주 깨끗하고 친절하며, 무엇보다 보통 일본 호텔에 비해 방 크기가 두배는 족히 되어 아주 쾌적합니다. 저희 가족이 삿포로에서 가장 애용하는 곳이지요. 이곳도 비수기라 아침 식사 포함, 반 이하의 가격으로 숙박했습니다.
이날 저녁은 편의점에서 산 빵으로 조촐하고 간단하게.
다음날 아침식사는 호텔 조식부페에서 먹었습니다. 홋카이도산 농축산물 위주로 준비된 음식들이 하나 하나 매우 좋습니다. 저희 막내가 특히 이곳 음식을 많이 좋아합니다.
삿포로 Clubby 호텔. 〒060-0032 北海道札幌市中央区北2条東3丁目 サッポロファクトリー西館
호텔 식사에 나오는 빵을 Boulangerie Coron이라는 베이커리에서 가져오는데 삿포로에서 가장 맛있는 빵집입니다. 100% 홋카이도산 밀가루, 우유, 버터, 치즈를 사용하고 저온으로 장시간 숙성을 해 빵을 만든다는데 맛과 텍스쳐가 예술입니다.
삿포로에 있던 날은 일요일이라 교회에 다녀오느라 관광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방문한 교회는 일본인, 한국인, 중국인들이 모여 함께 예배드리는 삿포로 크리스찬 처치. 거리상 그리 멀지는 않은데 버스 타고 가 종이 지도보고 찾아 다녀 오느라 좀 애를 먹었네요 ^_^
교회 다녀오면서 찬바람 맞고 떨면서 많이 걸었더니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어서, 점심은 삿포로 명물 된장라면(味噌ラーメン, 미소라멘)을 먹으러 갔습니다. 관광오는 사람들에게 가장 유명한 곳은 라면골목(ラーメン横丁, 라멘 요코초)인데, 이번 여행의 모토가 한적함이었던지라, 일본인 친구에게 물어 수미레 삿포로 스스키노점 (すみれ 札幌すすきの店)이란 곳으로 갔는데 붐비지도 한산하지도 않아 좋았습니다. 미소라멘 ¥900, 김치 ¥320. 일본 기무치 맛이 아닌 제대로 된 한국 김치 맛이었고, 비주얼은 평범하지만 라멘 맛도 아주 훌륭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은 저희 가족뿐이고 현지인들 같아 보였습니다. 점심도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ㅎㅎ
수미레 삿포로 스스키노점. 〒060-0063 北海道 札幌市 南九州市 3城西3丁目9-2ピクシビル2F
저녁 식사는 삿포로역 PASEO 쇼핑몰에 있는 하나마루 회전초밥(花まる 回転すし)에서 먹었습니다. 번화한 역에 위치한데다 가성비가 좋은 곳이라 줄을 꽤 오래 서야 했습니다. 접시당 ¥230~320.
하나마루 회전초밥(花まる 回転すし). 〒060-0806 北海道 札幌市 北6条西2丁目1番地7 PASEO ウエスト B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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