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an Blind from Birth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
A Man Blind from Birth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
김미도
미주 KOSTA 끝나고 follow-up 성경공부를 맡아서 3개월간 요한복음을 공부했습니다. 9장에서 눈을 뜨게 된 소경 이야기를 1일칭 관점에서 상상력을 보태어 적어보라고 과제를 내주었는데 참여자 한 분께서 제출해주신 글이 너무 좋아서 올려봅니다.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요한복음 9:1)
나는 태어날 때부터 볼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말은 들을 수 있으되 그들의 얼굴을 알 수 없었고,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수없이 들었지만 실제로 그 아름다움을 알 수 없었습니다. 왜 나를 이와 같이 태어나게 하셨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가운데서 사람들은 나를 죄인이라고 했고 나는 그 말을 의심없이 받아들였습니다. 이와 같은 죄를 일생동안 지고 갈 것이 너무 어두워서 저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도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믿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저를 버리지않으신 것을, 언젠가 제가 이 고단한 삶을 마치게 되면 그 분은 이제 너의 죄는 탕감을 받았다라고 말씀하시며 저를 맞아주실 것을 믿으면서 하루하루를, 그렇게 감내했습니다.
어느날 여느때와 같이 길거리에 인도되어나와 앉아 있는 데 문득 사람들의 이야깃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의 대화의 주제가 저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저와 저의 부모님들중의 누가 제 앞 못보는 것에 책임이 있는지 물어보는 기색이었습니다. 너무나 많이 들었던 이야기라 저는 전혀 낯선 목소리의 그 사람들의 이야기에 무어라 대꾸를 할 수도 없이, 그렇게 앉아서 듣기만 했습니다. 그때까지 익힌,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대한 무감각은 저의 마음을 너무 아프지는 않게 지켜주는 하나의 방패였으니까요. 그런데 그들의 선생님으로 들리는 그 분이 그러시더군요. 죄 때문이 아니라고,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 위해서라고요. 무슨 말이지? 저는 의아했습니다. 제가 무슨 중요한 사람도 아니고, 제가 소경이 되었다고 해서 제 부모님이외의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않은 미미한 제가 앞을 못 보는 것이 어떻게 그 높으신 분의 뜻을 드러내는 것인지, 저는 좀 얼떨떨했습니다. 그 말씀을 하신 그 분은 다시 낮동안에 그 분을 보낸 어떤 다른 분의 일을 해야하고 밤에는 아무도 일을 못하신다는 것, 그리고 그 분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그 분의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빛이라고 – 저는 되뇌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한 번도 허락한 적이 없는, 저에게는 언제나 닿을 수 없고 알 수 없었던 것. 그렇다면, 그 분은 저와 관계가 없는 분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어둠속에 이렇듯 앉아 있는 제가 이 세상의 빛이라고 스스로를 가리켜 말씀하시는 분과 어떤 상관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갑자기 저는 제 눈에 무엇인가가 닿는 것을 느꼈습니다. 끈끈한 진흙같았지요. 그리고 그 분은 실로암의 샘에서 눈을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조금 주저하긴 했지만, 이미 볼 수 없는 채로 이렇듯 살아왔으니, 그 분의 말을 듣고 그대로 한다고 해서 제가 무엇을 잃게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이미, 제가 가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이렇게나마 저에게 관심을 보여주는 분이 어찌되었던 고마왔습니다. 적어도 이 분은, 지금까지 이 앞을 지나간 수많은 바리새인들이나 교사들처럼 저를 가리켜 죄인이라고 부르면서 인간다운 감정이나 느낌을 가질 권리조차 없는 비인간취급을 하지는 않으셨으니까요. 그래서 실로암에 갔을 때, 저는 – 참으로 놀랐습니다. 한 것은 그 분의 말씀대로 분명 제 눈에 붙어있던 찰흙을 씻어낸 것 밖에 없는데 – 제 눈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눈이 아닌 겁니다. 제 앞에 있는 신선한 물, 사람들의 경악한 표정 – 저는 그들을 몰랐지만 그들은 저를 알아보았을 겁니다 – 을 제가 본다는 의식도 하지 못하고 보고 있을 때 그 사람들이 저를 가리키면서 그 구걸하던 소경이 아니냐는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저와 닮았다고 하길래 그렇다고 저는 대꾸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제게 다가와 묻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보게 되었느냐고, 그래서 사실대로 말해주었지요. 하지만 그 분의 종적은 이미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게, 이와 같은 일을 해주신 그 분께 변변하게 감사의 말씀도 드리지 못하고 이렇게 되다니 – 아. 저는 그 때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간구를 들어주셨다고. 이 육신의 삶을 마치고나서는 죄가 씻기었으니 보게 되리라 믿었던 저에게 이처럼 이생에서 빛을 주신 그 분이 자신이 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던 의미. 저는 그 때, 그 분이 제게 해 주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저의 죄를 사하셨다는 것을. 그래서 저에게 그로 말이암아 지금까지 힘겹게 져 온 이 멍에를 벗을 수 있도록 해 주셨다는 것을. 그리고, 그래서 그 분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았습니다. 구원자이시며 Redeemer이신 메시야 그 분이시라는 것을. 그 분을 이제는 볼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분이 가셨다고 하는 곳으로 어떻게든 뛰어가 그 분의 얼굴을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나았노라고, 당신때문에 제가 이렇게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무엇이든 그 분이 하라시는 대로 하겠다고 말씀드리려고 저는 걸음을 떼어놓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주위를, 제가 이제는 볼 수 있는, 차고 무서운 얼굴을 한 사람들이 둘러싸는 겁니다. 그들의 표정에는 저도 느낄 수 있는 놀람과, 공포, 두려움과 미움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얼굴이 그렇게 일그러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도록 눈을 뜰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던 기도를 드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제 주위에 있는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보다는 저와 같은 초라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밝은 얼굴을 한 사람들보다는 고단하고 지치고 주름진 얼굴들이, 웃는 얼굴보다 두려움과 고달픔으로 굳어지고 딱딱한 얼굴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그렇게 느끼면서 저는 그들앞에 그렇게 무력하게 서 있었습니다.
그들중 하나가 저에게 어떻게 나았느냐고 하길래 말해 주었지요. 그러자 난데없이 그들 중 몇몇이 그 분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는 둥, 죄가 있는 평범한 인간이 그런 기적을 어떻게 행하냐는 둥하면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는 제게 그 분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길래, 저는 모세의 기적을 떠올리면서 그 분을 예언자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제 말을 믿지 않더니 급기야는 제 부모님을 – 지금까지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하여 알아볼 수 없었지만 항상 제 곁에 계셔주신 부모님을 그 자리에 데려와서 제가 그 분들의 아들인지를 묻더군요. 부모님은 아마 그들의 기세에 놀라고 눌리셔서 그랬는지 제가 아들인 것을 인정하시면서도 분명히 이제는 누군가에게 들으셨던지 제가 어떻게 눈을 뜰 수 있게 되었는지를 아셨을텐데 그 대답만은 못하시고 제게 미루시더군요. 그 때는 몰랐지만 – 그리고 결국 그렇게 되었지만 – 부모님들은 제가 출교될 것을 염려하여 어떻게든 그 일만은 막으시고 싶었던 마음에서 그렇게 하신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국 저를 다시 부르더니 저를 고쳐주신 – 이미 제 마음속에서 메시야라고 알게 된 – 그 분을 죄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반박했습니다. 저는 그 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른다고. 제가 아는 것은 한 가지, 그 전에는 못 보았지만 이제는 보게 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명백한 사실에 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사실 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무엇을 하셨는지 제게 다시 묻는 겁니다. 의아해서 저는 말했습니다. 이미 다 말씀드렸는데 못 들으셨군요. 왜 다시 듣고 싶으신 겁니까? 혹시 여러분들도 그 분의 제자가 되고 싶은 것인가요? 그 말에 그들은 무엇인가에 데인 것처럼 펄쩍 뛰면서 말하더군요. 제가 그 분의 제자라고. 그리고 자신들은 모세의 제자라고. 하나님은 분명히 모세에게 말씀하셨지만 그 분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른다고. 그래서 저는 사실 당혹해서 말했습니다. 입고 있는 옷이나 그들이 쓰는 언어로 보아서도 그들은 분명 율법을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인정을 받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분명했으니까요. 놀라운 일이라고, 당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고 한 그 분이 제 눈을 고쳐주셨다고 말입니다.
그 때 그 사람들의 마음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 분이 누구신지 어쩌면 알고 느끼고 있으면서도 알지 않기로, 인정하지 않기로 작정한 그 마음들이. 그것은 이제 눈을 마악 떴을 뿐인 제게도 너무 추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였던 것 같습니다. 이 눈 못보던 저, 일생을 죄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제가, 이처럼 지금까지 까마득하게 높고 어려웠던 사람들에게, 부모님도 어려워하시며 그들의 말에 무조건 따르시던 그 사람들에게, 그리고 지금 이렇게 저를 둘러싸고서 그 분의 백성중의 하나를 돌아보시고 그 고통을 알아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 한마디없이, 저를 고쳐주시고 떠나가신 저의 메시야이신 그 분을 비난하는 그 사람들에게 제가 생각하는 그 분이 어떤 분인지 말하게 된 것은. 그래서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의 말을 듣지 않으시는 것은 알지만 그 분을 마음으로 경배하고 그 분의 뜻대로 행하려고 하면 들으신다고, 세상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태어날 때 이미 볼 수 없었던 사람이 보게 된 일은 들은 적이 없다고, 그리고 그 분이 하나님에게서 오신 분이 아니면 그 분은 제 눈을 뜨게 하실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저는 그 분이 저를 부르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보게 되었으니 그 분을 따라 오라고, 그래서 다시는 사람들이 쳐놓은 장벽과 어둠에 걸리지 말고 그 분과 같이 있으라고 하신다는 생각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 예상했던 일이었습니다만 – 저를 끝까지 죄인으로만 부르며 자신들을 가르칠 셈이냐고 하고선, 저를 파문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서 그들이 저를 사실상 자유롭게 해 준다는 것을 알았을까요. 제가 그들의 말을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 저를 낫게 해 주신 그 분을 아무런 구애없이 따라갈 수 있게 해 주는 일을 그들 스스로 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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