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창이 공항: 설계한 사람이 궁금해짐
한국에서 출장으로 싱가포르로 갔습니다. 물 흐르듯 진행되는 창이(樟宜) 공항의 입출국 절차를 보면서 "대체 이 공항 설계를 누가 한걸까? 정말 운영 시스템이 경이로울 정도네!" 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습니다. 적어도 제가 다녀 본 공항 중에 이렇게 편리한 곳은 일찌기 본 적이 없습니다. Skytrax 에서 상위권 경쟁 상대 중에 제가 이용해 본 인천, 하네다, 나리타, 파리 공항들과 비교하면 그 체감차는 현격할 정도였습니다.
10년 넘게 전에 한번 가 본 어렴풋한 기억에 (아마도 터미널 1) 무척 큰 공항이라 꽤 많이 걸어야 했던 것 같습니다. 반면 이번 방문때는 입국시 터미널 2, 출국시 터미널 3를 이용하면서 "어? 이렇게 공항이 작았나?" 싶었습니다. 공항 이용객 수로 비교할 때 창이 공항은 인천 공항보다 조금 더 많은데도 체감적으로는 훨씬 작게 느껴졌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텐데, 일차적으로는 비슷한 규모라고 하더라도 터미널 수가 더 많네요. 이에 비례해 덜 걸어도 되겠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터미널 끝에서 끝까지 걸어야 하는 총 거리는 여전히 30분 이상이 걸릴 정도로 크고, 엄청난 이용객수를 생각하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터미널 3의 탑승동입니다. 게이트 수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습니다.
출국 수속대 입구입니다. 오전 6시라 좀 이른 시간이긴 하지만 이렇게 텅텅 비다시피 한 국제 공항을 보신 적 있으신지요? 입국 때는 사전에 SG Arrival Card를 온라인으로 접수만 하면 여권 스캔후 자동으로 얼굴/지문 인식을 등록만 하고 통과가 되며, 출국 때는 거의 그냥 걸어 통화하는 수준이라 한명 통과하는 시간이 10초가 채 되지 않습니다. 인천 공항을 비롯한 자동 출국 심사 방식의 공항들은 비슷한데도 왜 그곳은 늘 길게 줄이 서 있고, 창이 공항은 줄이 전혀 없는지 이해가 되시나요?
출국 심사대 들어가기 전에 공항을 살짝 둘러 보았습니다. 인천 공항처럼 위층에 식당가가 있습니다.
식당가를 올라가니 사소한 것일 수도 있는데 제게는 감동적인 공항 설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식당가 한쪽 벽면 전체에 걸친 통유리창으로 만들어서 입국 심사를 마친 사람들이 있는 곳을 내려다 볼 수 있고,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운 배웅객들과 마지막 눈 인사라도 한번 더 할 수 있도록 했더군요.
다시 한층 내려가 로비층에서는 한층 아래의 수하물 수취대 (baggage claim) 에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 볼 수 있게 해서 마중 나온 사람들이 현재의 상황을 직접 볼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출국 심사를 마치고 들어가면 그 바로 앞에 소형 카트 (cart) 들을 잔뜩 비치해 두어서 누구나 휴대 수하물을 싣고 다닐 수 있게 배려 했습니다.
터미널 복도 입니다. 사진에서 가장 눈에 확 들어오는게 어떤 표지판인가요? 제게는 화장실 표지판이었습니다. 색깔로 다른 표지판의 보색(補色)에 가까운 파란색에 활자도 살짝 더 큽니다. 이것도 사소한 것 같지만 꼼꼼한 배려라고 느꼈습니다.
앞 부분에 이 공항 끝에서 끝까지 걸어서 30분이라고 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많이 걸을 필요가 없도록 하는 것이 게이트(gates) 바로 앞에 촘촘하게 배치된 공항내 모노레일 Skytrain입니다.
다른 초대형 공항들도 다 있는 것이지만 이렇게 게이트 바로 앞에 있는 곳은 일찌기 보지 못했습니다.
화장실도 세심한 배려들이 곳곳에 보입니다. 벽에 있는 옷걸이들.
남성용 소변기마다 45도 각도로 쳐 둔 유리 칸막이.
앉을 수도 있고 등짐을 내려놓을 수도 있는 넉넉한 크기의 돌 벤치.
제가 탑승할 게이트에 도착했습니다. 다른 공항과의 차이가 뭘까요? 탑승 시간 1시간 20분전까지 게이트 앞의 대합실이 닫혀 있습니다.
이유는 아직 휴대 수하물의 검색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창이 공항의 가장 큰 비법(?)이 여기에 있었구나!"라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대부분의 공항은 휴대 수하물을 출국 심사 전에 하며 그것이 만성적인 정체의 이유입니다. 창이 공항은 (T1~T3만, T4는 예외) x-ray 검사 시설을 각 게이트마다 설치함으로써 이 정체 요인을 제거해 버렸습니다. (역시 사소한 것이기는 하지만) 음료수도 미리 다 버리고 들어갈 필요 없이 최종 탑승을 위해 이 검색대를 통과하기 전까지는 자유롭게 마실 수 있습니다.
검색대에서는 통과하는 짐마다 번호표를 꽂아줘서 가방이 섞일 가능성을 최소화 하는 것 역시 세심한 배려의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행선지 국가의 입국 서류도 보통은 아예 안내가 없거나 도착 직전 승무원들이 나눠주는데, 창이 공항에서는 수하물 검색을 하자마자 나눠주어 더 편리했습니다.
피곤해서 눕고 싶은 사람들은 누우라고 비치해 놓은 길다란 소파.
영국식의 독특한 파워 플러그를 사용하는 싱가포르의 공항에서 별도의 어댑터(adapter)가 필요 없도록 배려한 전원. 싱가포르 방문객들은 어댑터를 대부분 구매해서 가져오겠지만 환승객들에게는 너무도 고맙겠지요.
[여담] 싱가포르의 한 화장실에서 본 재래식 변기.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건물인데도 화장실 한 칸이 이 방식이네요.
'여행스케치 > 아시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 벵갈루루 공항: 삼엄한 경계 분위기 (0) | 2024.12.17 |
---|---|
인도 벵갈루루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0) | 2024.12.16 |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인도 벵갈루루 공항: 삼엄한 경계 분위기
인도 벵갈루루 공항: 삼엄한 경계 분위기
2024.12.17 -
인도 벵갈루루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인도 벵갈루루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4.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