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속한 사람 - 발췌
하늘에 속한 사람
본명 리우전잉(劉振營). '하늘의 사람' (Heavenly Man)은 그가 중국 정부의 극심한 박해 속에서 30회 이상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는 과정에서 얻은 이름이다. 감옥 안에서 그는 말씀에 의지하여 금식하기를 결심하고 74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기도한다.
1994년이 시작되면서, 하나님은 당신의 권능을 중국 땅에 본격적으로 펼치시기 전에 여러 가정교회 분파들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1970년대 중국에는 오직 하나의 가정교회 운동만이 존재 했었다. 어떤 분파도 기구도 없었으며, 단지 하나님께 예배하고 그분의 말씀을 공부하기 위해 모여든 열정적인 성도의 무리들만 있었다. 고난이 중국 교회의 모든 분파적인 장벽을 헐어 버렸던 것이다.
1980년대 초에 중국이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하자 많은 외국 그리스도인들이 중국의 교회를 도울 방법을 모색했다. 그들이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일은 홍콩을 통해 몰래 성경을 전해 준 것이었다. 이는 고맙기 그지없는 선물이었고 우리가 애타게 바라던 선물이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자, 전에 우리에게 도움을 준 바로 그 선교단체들이 성경 보따리 위에 다른 책들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그 책들은 하나님의 말씀 중에서 특정 분야에 초점을 맞춘 어느 교회의 신학이나 주장을 담고 있었다. 나는 이것이 중국의 많은 가정교회들이 분열하게 된 시초라고 믿고 있다. 이 책자들을 읽은 후 모두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각 교회들은 서로 다른 교리를 따르는 무리로 나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수님에 관해 주로 이야기하기보다는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다른 신자들을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얼마 후, 우리의 외국 친구들은 훨씬 더 많은 물자를 들여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가 주님을 더욱 효과적으로 섬기는 데 돈, 사진기, 그외 여러 물건들이 요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어떻게 지도자들의 균열을 초래했는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중국 가정교회는 불과 1,2년 사이에 10개에서 12개로 조각나 버렸다. 우리를 도우려는 외국인 형제들의 열성은 결과적으로 가정교회를 분열시키고 허약하게 만들었다. 물론 나는 여러 분파가 생기게 된 원인을 순전히 외국인 형제들의 허물로 돌리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 자신들의 마음이 잘못되어 있었고 너무 쉽게 유혹에 넘어갔다.
서양에서 강연을 하는데 어느 그리스도인이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중국의 공산 정권이 무너져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오랫동안 기도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이 아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정부를 적대시하거나 위정자들을 저주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 뿐만 아니라 우리를 다스리는 정부까지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위해, 당신의 자녀들을 필요한 대로 빚고 다듬으시기 위해 중국 정부를 사용하셨다. 우리는 정치체제에 대항하는 기도를 하지 않으며 무슨 일이 닥치든 개의치 않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박해가 멈추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기 바란다! 우리는 날라야 할 짐이 가벼워지도록 기도하기보다는 더욱 튼튼하게 견뎌 낼 수 있는 등허리를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세상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가 당신의 사랑과 권능을 드러내며 살 수 있도록 능력을 부어 주심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다!
주님이 주시는 모든 순수한 부흥은 신도들이 행동으로 반응하고 영혼을 구하는 일에 나서게 한다. 가슴 속에서 하나님이 정말로 역사하신다면 침묵할 수 없다. 예레미야가 말한 것처럼 뼛속에서 불이 타오르게 된다. 우리가 순종하고 밖으로 나가 복음을 전할 때만이 삶의 곳곳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깨달을 수 있다.
서양의 허다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최대가 아닌 최소의 것만 드리며 만족해하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의 전부를 주셨는데, 우리는 하나님께 어떻게든 우리의 삶과 시간과 돈을 적게 돌려드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크게 회개할 일이다!
물론 서양의 교회들이 다 잠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동안 방문해 본 서양의 모든 건강한 교회들의 공통점 한 가지를 발견했다. 그들에게는 미전도 종족 선교를 향한 강하고도 희생적인 헌신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복음의 기근이 심하고 영적으로 어두운 지역들, 즉 아무도 예수님의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를 심으려는 마음이다.
서양사람들은 가진 것이 너무 많다. 각종 보험이 그들의 삶을 보장해 준다. 그들은 어찌 보면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듯하다. 우리는 표적과 기사를 따라다니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는다. 복음이 전파될 때 오히려 표적과 기사가 우리를 따라다닌다.
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르든 늦든 고난을 겪게 되어 있다고 확신한다. 주님이 이러한 시련을 주시는 까닭은 보다 겸손해지고 삶의 문제를 당신께 의탁하도록 하시기 위함이다. 나는 고난과 고통이 늘어나면 죄를 덜 짓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아직 '죄를 초월한' 지점까지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고난을 겪을 때마다 아직도 주님께 불평을 한다. 주님은 우리가 고난을 친구처럼 맞아들이기를 바라신다. 우리는 예수님을 위해 박해를 당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움직임이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내가 그 많은 고문과 구타를 당하면서도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한번도 미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증명하신다. 정말이다. 그들은 하나님이 나를 정결하게 만드시고 더 많이 예수님을 닮도록 하기 위해 사용하신 은혜의 도구이며 택한 그릇이기 때문이다.
"그 학교의 유일한 교재는 우리를 결박하는 족쇄와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는 가죽 채찍입니다." 우리는 감옥 신학교에서 주님에 관한 많은 귀중한 교훈을 배웠다. 그것은 결코 책을 통해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깊게 깨달았고, 우리를 향한 그분의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체험했다.
하나님의 자녀가 고난을 당할 때, 주님이 그 고난을 허용하셨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잊지 않으신다! 감옥에 처음 갇혔을 때, 나는 왜 하나님이 그것을 허용하셨는지 의아해하며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분이 나에 대해 보다 심오한 계획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중국에서 가정교회의 신도가 그리스도를 위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우리가 그의 석방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주님이 명확히 알려주시지 않는 한, 그런 기도를 하라고 사람들에게 권고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이 투옥되는 것을 허용하시는 데에는 항상 목적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도보다 일찍 그들을 감옥에서 테려오기 위해 인간적인 노력을 기울인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할 수도 있고, 수감된 신도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만큼 충분히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나올 수도 있다.
대중을 상대로 사역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곤경에 빠져 들 위험성이 매우 많다. 사람들의 갈채와 칭찬을 듣고픈 유혹에 쉽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목회자들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등을 두들겨 주며 떠받들어 주는 군중의 소리가 아닌, 하나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일 수 있도록 그분께 도와 달라고 부르짖으며 간구해야 한다. 하나님의 원칙은 종종 우리 자신의 원칙과 상반된다. 우리는 사람들이 좋아해 주고 인정해 주기를 바라지만, 예수님은 다르게 말씀하신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할 때에, 너희는 화가 있다" (눅 6:26)
진실로 예수님을 따르겠노라고 결단한 사람이라면 조건이나 자신의 계획을 내세우지 말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 우리는 인간의 이성에 따라 살도록 부르심 받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것 외에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날 나는 복음을 위해 이슬람이나 불교 국가에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 만약 여러분이 이러한 소식을 듣는다면,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말고 복음을 증언하는 사람이 없어 사탄의 노예가 되어 버린 수백만의 소중한 영혼들을 위해 슬퍼하기를 부탁한다.
많은 이들이 내게 이렇게 말한다. "윈 형제님은 정말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있군요." 그런데 내 마음 속에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있는 것은 오직 그분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일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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