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 Voice (그의 음성)
His Voice (그의 음성)
"목자는 곧바로 문으로 간다. 문지기는 목자에게 문을 열어 주고, 양들은 그의 음성을 알아 듣는다. 목자는 자기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양들을 모두 데리고 나가면, 목자는 앞장서 가고 양들은 그를 따라간다. 양들이 목자의 음성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양들은 낯선 사람의 음성은 따르지 않고, 오히려 뿔뿔이 흩어진다. 낯선 자의 목소리에는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0:2~5)
"The shepherd walks right up to the gate. The gatekeeper opens the gate to him and the sheep recognize his voice. He calls his own sheep by name and leads them out. When he gets them all out, he leads them and they follow because they are familiar with his voice. They won't follow a stranger's voice but will scatter because they aren't used to the sound of it."
예수께서는 당신의 양들이 당신의 음성을 알아 듣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감식법이나 선별법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냥" 알아 듣는 것이지요. 이 분별은 마치 주인이 집에 가까이 오면 그 소리를 들은 개가 먼저 달려나가 주인을 반기는 것과도 같고, 내가 흰색 분말을 먹어봄으로써 설탕인지, 소금인지 구별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런 분별은 경험을 통한 학습 과정의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는 아기가 뱃속에서부터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듣고, 엄마의 젖을 빨고, 엄마의 자장가를 듣고 자라면서 그 음성에 점점 친숙하게 되듯이, 어린 양들도 자신들을 돌보고 인도하고 지켜주는 목자의 음성을 어미 양들과 함께 지내면서 점차 익혀 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의 제자들은 그분의 음성을 쉽게 알아봤습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서니, 예수께서 거기에 서계셨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가 예수께 돌아보며 히브리 말로 '랍오니!'하고 불렀다. 이는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요한복음 20:14, 16)
"해가 뜰 무렵,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 계셨으나 그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물을 배 오른 쪽에 던지고 어떻게 되는지 보아라.' 그때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에게 말했다. '주님이시다!'" (요한복음 21:4, 6, 7)
"그들이 한참 묻고 말하는 중에, 예수께서 다가오셔서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셔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떼어서 그들에게 주셨다. 그 순간, 그들의 눈이 열렸다.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진 그들이 예수를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 순간, 예수께서 사라지셨다. 그들이 서로 말을 주고 받았다. '그분이 길에서 우리와 대화하며 성경을 풀어 주실 때,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지 않았습니까?' (누가복음 24:15, 16, 30~32)
현대 기독교의 위기는 대다수의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줄도, 따라서 당연히 분별할 줄도 모르게 되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속한 공동체 속에서 그 분의 음성을 함께 들으면서 익숙해지는 과정을 우리는 언젠가부터 점차 상실해왔습니다.
현대 교회의 설교자들과 리더들은 copy & paste에 점점 익숙해져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라는 것을 체험적인 확신을 통해 전하는 사람보다, 감명 깊게 읽은 책에 그리 적혀 있었기 전달하는 사람들이 대다수가 되어 버렸습니다. 아예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말씀하실 뿐 직접적인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는 교회들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부흥회조차도 기도의 중요성과 방법에 대해 2~3시간 열변을 토하더라도, 그 후에는 몇분간 함께 기도하는게 고작일 뿐, 그 후에는 각자 알아서 기도하라고 하는 것도 거의 일반화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 = 성경을 읽는 것 or 설교를 듣는 것"이 되어 버린지도 이미 오래입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사실 기독교의 리더인 목회자들을 양성해내는 신학교들에 있습니다.
많은 교수들이 신학생들에게 훈련시키고 전달해주는 것은 결국 신학서적 많이 읽고, 주석서 찾아 보고, 원어성경 뒤적이면서 설교준비 하는 "열공 자율학습" 방법들 입니다. 교수들 본인들이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지요. 전부 너무 중요하고 꼭 배워야 할 것들이지만 그게 전부인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로고스가 레마를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가 "학문"화 될수록 걸출한 신학자는 간혹 나올지 몰라도 이 세상을 변혁시켜 나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 수는 점점 줄어 들을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초대교회의 생명력은 성도들의 "열공"이 아닌,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해 넘쳐 흘렀습니다. 우리도 그런 직접적이고 인격적인 관계를 다시 찾아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사무엘, 엘리야, 엘리사는 공동체로 함께 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대언하는 훈련을 쌓도록 하곤 했습니다. 신약 교회사에서도 폭발적이고 viral한 하나님의 역사는 이러한 공동체에서 시작되곤 했습니다.
우리가 계속 하나님께 우리의 생각 속에 말씀해 주시도록 기도했을 때 차가운 바람은 만으로부터 불어 들어오고 게코 도마뱀들이 벽에서 찍찍 울어댔다.
우리는 배 사역에 대해 혼신을 다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 후 다시 기다렸다. 큰 벽시계의 뾰족한 검은 바늘이 밤 11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레오나가 성경 귀절이 마음속에 떠올랐다고 했다. 누가복음 4장 4절. 내가 뉴질랜드를 방문했을 때 처음으로 이런 방법으로 인도하심을 받으려고 했던 시간을 기억했다. 사람들은 그 말씀의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는채로 그들 마음속으로 특정한 성경 귀절을 말하는 것을 '듣곤'했다. 우리가 그곳에서 배웠던 중요한 열쇠는 하나님께 순복하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떤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공중에서 어떤 성경 귀절을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각을 예수님 한 분에게만 맞추고 주님의 말씀을 기다리며 듣는 것이다. 그 때 만일 예수님께서 어떤 특별한 성경 귀절을 보라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인도하시기 위해 어떠한 방법이라도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렇게 했다. 그 철야 기도 시간에 레오나가 들은 성경 귀절을 찾아 읽었을 때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우리를 격려하는 성경 귀절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누가복음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사람은 하나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고 하신 구절이었다.
다시한번 우리는 조용히 기다렸다. 시계 바늘은 새벽 1시 30분을 가리켰다. 그런데 기대감 같은 것이 나를 사로잡아 깨어있게 했다. 하나님께서 곧 말씀하시리라는 것을 알았다. 조용히 구하는 시간이 또 한번 오래 계속되었다. 놀랍게도 시계가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나의 누이가 가엾게도 의자에 기대 무릎을 꿇은채로 잠이 든 것을 보았다.
그때 갑자기 우리 셋이 동시에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기 시작했다. 2가지가 내 속에 확실하게 떠올랐다. 하나는 "코나"라는 단어였다. 내가 한번도 그곳에 가본 적은 없었지만 나는 그곳이 빅 아일랜드에 있는 장소라는 것을 알았다. 두번째는 빅 아일랜드에 있는 등대의 그림 같은 것이 마음속에 보였는데 그 등대는 태평양을 건너 아시아까지 그 빛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마음 속에 있는 관심사는 배에 대한 꿈이 부활되는 것에 대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코나와 등대에 관해 말씀하시고 계셨다. 나는 침묵을 깨고 레오나와 지미에게 나의 의견을 얘기했다. (제니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그 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하나님을 기다리자고 제안했다. "주님, 당신이 말씀하시는 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내가 기도했다.
더 많은 생각들이 우리 마음에 떠올랐다.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정규적인 전도 학교 같은 것이 아닌 다른 종류의 학교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것은 훨씬 광범위하게 훈련시키는 학교였다. 레오나는 하나님께서 농장에 관해 말씀하신 것을 들었다. 이 모든 생각 중에 가장 큰 수수께끼는 만(灣)에 정박해 있는 크고 하얀 배에 대한 그림이 마음속에 떠올랐다는 것이다.
이제 시계는 아침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 생각은 이 모든 새로운 정보로 빙빙 돌아가고 있었다. 등대, 큰 학교, 빅 아일랜드-코나, 농장, 만에 떠 있는 하얀 배.
지미는 제니를 깨웠다. 몸을 일으키자 온 몸이 아주 뻣뻣함을 느꼈다. 나와 함께 기도해준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우리집으로 가는 컴컴한 진흙길을 내려왔다. 나는 침대로 올라가 눕자 잠에 빠져들었다. 몸에는 기운이 다 빠졌지만 나의 내부에서는 기운이 넘쳐났다.
겨우 몇분밖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달린이 내 어깨를 가볍게 흔들면서 일어날 시간이라고 나를 깨웠다. 나는 밤에 얼마나 놀라운 시간을 보냈는지 단숨에 그녀에게 말해주고는 서둘러 아침 공부 시간을 위해 식당으로 달려갔다. 학생들은 아침 식사 후에 깨끗하게 치워진 긴 식탁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90개의 얼굴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대부분 젊은이들이었다. 가운데로 가르마를 탄 긴 머리 소녀들은 청바지나 유행이 지난 치마들을 입고 있었다. 형제들은 한결같이 청바지를 입고, 어떤 이들은 턱수염에 긴머리를 하고 어떤 이들은 깨끗이 수염을 깎고 있었다.
"우리 몇 사람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느라고 아주 진지한 밤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를 원하시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을 여러분에게도 말씀하시는지 보고 싶어요." 나는 우리가 기도하기 전에 밟았던 순서를 다시 사용하여 주님의 음성을 듣도록 기도했다. 사탄을 향해 그리스도의 권세를 선포하고, 우리가 갖고있는 선입관을 모두 버릴 것을 고백하고,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기다렸다. 어린 아이들의 외치는 소리가 옆집 마당에서부터 들려왔다.
"누가 첫번째로 나누겠어요?"
둥글고 테가 없는 안경을 쓴 둥근 얼굴의 소녀가 부끄러워 하며 얘기했다. "약간 우스운 소리 같지만 대문자로 'K'라는 인상이 자꾸 내 마음에 들어왔어요."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없어요?"
금발색의 턱수염을 한 청년이 재빨리 얘기했다. "나는 '코나'라는 단어를 받았어요." 나는 점점 흥분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화산"이라는 단어를 받았다. 하와이의 유일한 활화산은 빅 아일랜드에 있었다.
그 놀라운 아침이 이렇게 하여 진행되어 갔다. 젊은이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단어들을 얘기했다. "나는 큰 장소에 대한 그림을 보았어요. 어떤 종류의 학교 같은 생각이 들어요" 어느 청년이 얘기했다. 어떤 다른 사람은 농장에 대해 언급하고 어떤 사람은 언덕 위에 있는 하얀집을 보았다고 했다.
나는 흥분으로 가슴이 뛰었다. 많은 것들이 어제밤에 우리가 받았던 인상들과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저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귀로 듣고 있는 그것을 믿기가 어려웠다. 나는 그곳에 90여명의 증인들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나를 정말로 감동시키는 부분은 하나님을 구하는 그 시간의 바로 마지막 부분이었다. 한 소녀가 배를 보았다. 그녀는 말하기를 그것이 하얀 배이고 섬의 항구에 닻을 내리고 있다고 하였다.
"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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