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Nomadland": 낯선 미국의 모습 (2)
제시카 브루더 (Jessica Bruder)의 2017년 논픽션 "Nomadland: Surviving America in the Twenty-First Century" (노매드랜드: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가 영화로 제작된 것으로 2020년 영화계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작품중 하나입니다.
노매드 (nomad, 유목)는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단어인데, 가축 키우는 것이 주업인데 척박한 토지와 기후로 인해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가축의 먹이를 찾아 계속 이동하는 것을 말하지요. 구걸에 의존하고 생산활동을 하지 않는 홈리스 (homeless, 노숙자) 들과는 달리 고정적이지는 않았지만 일을 하고 싶어하고 실제로 합니다.
이 단어는 소위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 (American Dream)과 상반되는 개념으로 그동안 우리 머리 속에 상상해오던 미국의 모습이 21세기에 들어 얼마나 위협받고 있는지를 상징합니다. 아메리칸헤리티지 사전은 아메리칸 드림을 “모든 사람이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추구할 수 있다는 미국의 이상”이라고 정의합니다. 조금 더 풀어쓰자면, 완전 흙수저이건 무일푼으로 온 이민자이건, 신분/위치/운에 상관 없이 누구든 열심히 성실하게 일하면 충분히 풍요롭고 행복한 "중산충"의 삶을 일구어낼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작년 아카데미상 수상및 후보로 떠 올랐던 영화 "미나리"의 배경이기도 하지요.
미국의 "중산층"의 전형적인 이미지는 대략 "하얀 울타리로 두른 앞뜰과 뒤뜰이 있고, 자가용과 차고가 딸린, 교외의 어느 2층짜리 주택을 할부로 사서, 한 손에는 햄버거와 한 손에는 맥주를 들고, 자녀와 함께 흑백 TV 앞 소파에 앉아서 야구 경기를 응원하는 사람들"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중산층의 꿈을 이루어주는 주춧돌은 활발한 생산직 안정된 직장, 주택을 융자로 구입하여 쌓는 어느 정도의 재산 축적, 그리고 은퇴후에 받는 연금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 펀 (Fern, Frances McDormand)의 말년 모습을 통해 그 주춧돌들이 단계적으로 부서진 삶을 조명합니다.
영화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자막으로 시작됩니다. "On January 31, 2011, the American plaster company closed its 88-year-old plant in Empire, Nevada, due to reduced demand for plaster plywood. In July of the same year, Zip Code 89405 was discontinued for Empire." (2011년 1월 31일, 석고보드 수요의 감소로 인해 아메리칸 석고 회사는 88년 된 네바다주 엠파이어시 소재 공장을 폐쇄했다. 같은 해 7월 우편번호 89405는 엠파이어시를 삭제했다)
주인공 펀이 살던 엠파이어시는 작은 라스베가스격인 도박의 도시 리노 (Reno)에서 북쪽으로 145 Km 거리에 있는 실제 도시이며 2008년 금융위기로 시작된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유일했던 공장 US Gypsum mining operations이 2011년 폐업했습니다. 큰 돈은 아니지만 부부가 근면성실하게 일하고 그 돈으로 주택융자를 갚아가면서 수십년을 살아왔던 모든 주민들에게는 날벼락과도 같은 일이지요. 인구밀도가 높은 한국은 아직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지만 엄청난 융자를 부담하면서 집을 사는 것은 장기투자시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때문입니다. 공장 외에 볼거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사막 한복판에서 유일한 먹거리였던 공장이 폐업되었으니 대다수의 주민들은 살길을 찾아 떠났고, 새로 유입되는 인구는 당연히 없으니 평생 돈을 부어왔던 집의 가치는 거의 없게 된 것입니다. 모아놓은 다른 재산이라고는 없는 펀과 남편은 그 후에도 엠파이어시에 잔류하였지만 남편이 암으로 타계하자, 펀은 밴 (van)하나에 살림도구를 싣고 떠도는 노매드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61세인 펀은 사회보장 연금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수령가능액수는 월 $1,000 (115만원) 남짓해서 기초 생활을 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일하고 싶은 의욕과 경력은 있지만 정규직 자리는 생기지 않다보니 아마존 물류센터, 캠핑장 관리직원, 농장등의 계약직을 전전하며 밤새 밴을 주차하는 곳을 찾아 전전합니다.
영화 속에서 펀이 만나는 사람들 상당수는 배우들이 아닌 실제 노매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라서 영화지만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이 문득 문득 듭니다. 이들은 다들 가슴 시린 사연들을 안고 노매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들이 자살을 한 것에 충격을 받아 일상을 떠난 사람, 말기 암으로 시한부 통보를 받았는데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아 집을 떠난 사람.... 황량한 광야 속 주차장에 앉아 나누는 이들의 삶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보는 것, 그것이 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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