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요일의 병 (La enfermedad del domingo)"
스페인 영화입니다. DAUM 영화에서의 평은 8.0/10 으로 상당히 높고 RottenTomatoes에서는 평론가 89%, 시청차 69%로 조금 엇갈리네요. 지금껏 본 영화중 가장 대사를 최소화하고 미장센 (Mise-en-scène)에 크게 의지해서 찍은 영화인 듯 합니다. 미장센은 본래 연극에서 쓰이는 프랑스어로서 (영어로 직역하면 setting-in-scene, 의역하면 putting on stage) 연극 및 영화에서, 작품의 줄거리, 설정, 감독의 의도 등에 대하여 관객들에게 넌지시 전달할 목적으로 무대 위 등장인물의 역할이나 동작, 소품, 무대 장치, 조명, 카메라 위치, 촬영 각도 등을 계획하고 구성하는 행위, 또는 그러한 시각적 연출을 말합니다. 필름 카메라로 제작한듯한 아날로그 느낌의 화질이 영화의 분위기에 아주 잘 어울립니다.
대사로 해주는 상황 설명이 너무 적어서, 내가 영화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확인하려고 2번을 연거푸 봤고, 앞으로 2~3번 더 봐야 좀 이해가 될 듯한 작품입니다. 난해한 내용은 아니고 슬픔, 분노, 애증, 연민, 동정심이 뒤얽힌 복잡한 심리를 상당히 정적인 전개로 풀어가는데, 내 지인에게 벌어지는 일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궁금증에 상상을 더해가듯 보게 되는듯한 묘한 심리를 자아내네요. 슬픈 영화이고 마지막 장면이 사회적인 큰 논란거리가 될 주제라는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줄거리 스포(spoiler)가 차라리 있는 편이 영화 보기에 편할 것 같아 조금 풀어 써봅니다. 영화는 을씨년스러운 겨울 숲 속에 있는 커다란 두 나무를 정지화면처럼 한동안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아마도 이 두 나무가 모녀간인 두 여자 주인공들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상상해 봅니다.
그 숲속을 한 여자가 홀로 걸어 갑니다. (주인공 모녀중 딸인 키아라입니다)
이윽고 숲 깊은 곳에 위치한 큰 바위의 동굴 앞에 도착하자, 그 안을 들여다 봅니다.
갑자기 장면이 바뀌어 스페인의 대표적 관광도시인 바르셀로나의 한 화려한 대 저택에 화려한 차림의 한 노년 여성이 나옵니다. (주인공 모녀중 엄마인 애너벨입니다) 스페인의 상류층 사교계 파티를 준비하는 중입니다. (복도를 우아하게 걸어오다가 한번 발이 삐끗하는데, 이 장면은 무슨 의미를 전달하고 싶은것인지 지금도 이해가 잘 되지 않네요.)
파티를 위해 스태프 수십명을 고용해 사전 교육을 시켰는데 그 중 한명이 액세서리 착용하지 말라는 지시도 어기고, 화이트 와인 달라는데 레드 와인 주고 하면서 애너벨의 신경을 자극 합니다. 파티가 끝나고 뒷정리를 하던 중 계속 거슬리는 행동을 하던 스태프가 호주머니에서 구겨진 종이메모 하나를 꺼내 조용히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고 그것을 본 애너벨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이 구겨진 종이 하나로 애너벨은 그 스태프가 약 35년 전 버리고 떠나온 뒤로 한번도 다시 만나지 않았던 당시 8살이던 자신의 딸 키아라인 것을 알아 봅니다. 35년전 떠날 때 자신이 남겼던 메모일까요?
애너벨이 키아라를 따로 만나 왜 갑자기 찾아온 것인지, 원하는 것이 뭔지를 묻습니다. 키아라는 바라는 것이 없다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말 들어주고 싶다면 딱 10일간 만 자신과 단둘이 함께 있어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애너벨의 현 남편은 키아라가 분명 돈이 필요해서 찾아왔거나 복수를 위해 온 것이라고 믿고, 자신의 법률 자문단을 동원해서, 10일간의 시간에 대한 조건으로 키아라의 친권을 포함한 일체의 권리를 포기한다는 각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키아라는 전혀 망설임 없이 서류에 서명을 합니다.
둘은 차를 차고 한 깊은 산골 마을로 갑니다. 딸 키아라가 어릴적부터 계속 살아왔던 곳이자, 엄마 애너벨이 결혼 후 딸과 남편을 떠나오기 전까지 살았던 곳입니다. 가는 길에, 애너벨이 키아라의 아버지는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지나친 흡연으로 타계했다고 키아라는 말합니다. 영화에서는 장소도 말해주지 않는데, 그 지방 사람들이 프랑스어를 쓰는 것으로 보아 스페인이 아닌 프랑스인 것 같습니다. 촬영지로 사용된 곳을 검색해 보니 바르셀로나에서 북쪽으로 160Km 떨어진 프라 드 몰로 라 프레스트 (Prats-de-Mollo-la-Preste) 라는 프랑스 남쪽 국경의 마을이군요. 숲과 호수는 그 중간 지점인 카탈루냐 지방 바르셀로나 주 몬세니 (Cataluña, Barcelona, Montseny) 에서 많이 촬영했다고 합니다.
두 모녀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을 이 마을에서 보내기 시작합니다. 거의 35년 만에 만난 애증의 모녀인데도, 엄마인 애너벨은 그다지 후회스러워 하거나 죄책감을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떠나야만 했는지 뚜렷한 설명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딸인 키아라도 그리 원망스러워 하지도 증오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모녀가 둘 다 감정이 메말라 버린 사람들 같습니다.
딸 키아라는 엄마가 와 있지만 평소와 같이 숲과 호수를 혼자 산책하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호숫가에서 죽어가는 갈매기를 발견한 키아라는 측은한 눈길로 쓰다듬어 주다가, 돌맹이로 갈매기를 내리쳐 죽여 버립니다.
딸 키아라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이 계속 됩니다. 잠시 맡겨 두었던 자신의 개와 진흙탕에 함께 뒹굴어 진흙 투성이가 된 상태로 돌아와서는 엄마에게 씻기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하더니, 일부러 엄마에게 물을 뿌려 추운 날씨에 좋은 옷을 젖게 만듭니다. 엄마가 불쾌해하자, 그냥 장난친건데 왜 그러냐는 식으로 대꾸합니다.
저녁 시간에 혼자 외출하겠다고 나가던 키아라가 맘을 바꿔 엄마와 함께 나갑니다. 그리고 겨울이라 텅빈 유원지에 가서 혼자 회전목마를 타고 돌기도 합니다. 애너벨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딸을 쳐다 보다가 딸이 갑자기 보이지 않자 당황해서 딸을 찾습니다. 딸이 움직이는 회전목마에서 뛰어내리자 위험하다고 "잔소리"를 합니다.
키아라가 시내 댄스 파티에 끼어들더니 처음 만난 남자와 육체적 관계를 가지려는 것을 보자 엄마 애너벨은 남자를 밀쳐내고 키아라를 데리고 옵니다. 물장난도 회전목마도 남자 문제로 말썽을 일으키는 것도 8세에 엄마를 잃으면서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어린시절의 추억을 10일간의 짧은 시간동안 만들어보고 싶은 욕구의 충족이 아니었을까 상상해 봅니다.
술에 만취가 된 키아라는 이틀씩이나 자다가 일요일이 되어서야 깨어납니다. 제목이 "일요일"의 병인데, 영화 대사 중 "일요일"이라는 단어는 여기 한번만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날 밤 둘은 키아라가 모아 둔 옛날 사진 슬라이드를 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두 사람 간의 속 이야기를 나누는 첫 시간입니다. 엄마 애너벨이 처음으로 사과하고 싶다는 말을 꺼내지만 키아라는 그럴 필요 없다고 합니다. 왜 떠나야 했는지 궁금하지 않냐고 물으면서도 정작 그 이유는 말해주지 못합니다. 엄마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일이 뭐였는지 기억하냐고 키아라가 묻는데 애너벨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화장을 하더니 화장품은 그대로 두고 급하게 떠났다고 키아라가 상기시켜 줍니다. 히피족 같아 보이는 사진들이 나오자 애너벨은 자기와 키아라의 아빠도 그 중에 있었고, 자신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거짓을 말했다고 회한에 찬 표정으로 말합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후회의 순간이었던듯...
엄마 애너벨도 키아라가 들여다 보던 숲의 바위동굴을 밤에 가서 들여다 보며 키아라를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만, 의자에 앉아 졸다 꾼 꿈이었습니다.
둘 사이가 한결 부드러워 지면서 엄마 애너벨이 키아라에게 더 있어주기를 원하느냐, 돌봐주기를 원하느냐, 키아라가 화난 마음인 것을 이해한다 말합니다. 그러자, 한번도 화를 내지 않았던 키아라가 "당신은 아무것도 몰라. 8살짜리 딸을 버린 여자는 아무것도 몰라. 알리가 없지. 평생 이 창가에서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이를... 버리고 떠난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난 가끔 술에 취해 몇 시간이고 여기 앉아 있어. 몇 시간씩 말이야! 지금도 그렇고. 8살 때부터 늘 여기 있었다고!" 소리지르며 컵을 엄마에게 던집니다. 애너벨의 이마에 맞아 피가 나자 키아라는 당황해하며 화를 가라 앉히고 사과를 합니다. 애너벨은 침착하게 딸을 진정시키며 내일 뭘 하고 싶은지 묻습니다.
다음 날 둘은 눈 쌓인 숲속의 롤러 코스터 (roller coaster) 를 함께 탑니다.
엄마 애너벨의 얼굴은 많이 풀려 좋아하는데 앞에 앉은 딸 키아라의 표정은 영 좋지 않습니다. 롤러 코스터를 타던 중 급기야 키아라는 기절을 했고, 병원에 실려 갑니다. 병원에서 의사가 애너벨에게 뭔가를 이야기 해주는 장면이 잠시 나옵니다.
집에서 깨어난 키아라는 창 밖 마당에서 꽃을 심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발견하고 사진기에 담습니다. (스페인에서 만든 Werlisa Color라는 카메라인데요, 셔터가 독특하게 렌즈 옆에 붙어 있네요.) 밖으로 나간 키아라는 그간 잘해줘서 너무 고맙다며 이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시라고 엄마 애너벨에게 말합니다. 애너벨은 아직도 자기를 이곳에 부른 이유를 모른다며 캐묻습니다.
애너벨은 병원에서 키아라가 시한부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하며, 무엇을 해주기 원하느냐고 묻습니다. 키아라를 35년만에 다시 재회한 자리에서도 애너벨은 같은 질문을 했지만 그 때의 질문과 이 때의 질문은 전혀 다른 질문입니다. 그 때는 엄마로서 던진 질문이 아니었지만 이 때는 엄마로서 던지는 질문입니다.
(주인공이 갑자가 시한부 인생이 되어 오랫동안 헤어져서 따로 살던 가족들을 다시 찾아가는 스토리는 흔한 주제입니다만, 통상 그 시한부 인생의 주인공은 가족을 버린 가해자이지, 피해자로 나오는 경우는 없는데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무척 다르네요)
망설이던 키아라는 정말 원하는 것을 알려줄테니 들어보고 싫다면 그냥 떠나달라고 합니다. 바람이 차갑게 부는 정원에서 키아라는 엄마 귀에 뭔가를 속삭입니다.
이야기를 들은 엄마 애너벨은 곧바로 옛집을 떠나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갑니다. 키아라의 아버지는 죽지 않고 파리에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키아라의 병을 알고 있었고, 자신이 키아라의 바램을 들어주려고도 했지만 키아라가 원치 않았다고 합니다.
옛집에 다시 돌아온 애너벨은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딸 키아라를 수레에 싣고 숲 속으로 갑니다.
그리고 호숫가에 도착하자 옷을 벗고 함께 물 안에 들어 갑니다.
그리고는... 딸 키아라를 호수에 익사시킵니다. 한번도 딸에게 모성애를 드러내보이지 않았던 애너벨의 눈에 한줄기의 눈물이 흐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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