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멸치의 편지
마른 멸치의 편지
2011년 7월 아내가 12일간 페루로 단기선교를 떠나던 아침에 보낸 기도편지
안녕하세요. 저는 마른 멸치입니다.
제 별명은 “칼슘 짱”이지요. 한국인의 기본 밑반찬으로 위치를 오랫동한 지켜왔고 특별히 나이 드신 분들의 각별히 저를 아껴주시곤 합니다. 해외에 사는 교포님들이 한국에서 반드시 공수받는 아이템중의 하나가 저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너무 아이러닉한 사실은 이렇게 중요한 저희 마른 멸치들이 삶의 대부분을 냉장고의 한 구석에서 하염없는 기다림으로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따금 한번씩 행해지는 살벌한 냉장고 대정리때마다 쓰레기통이 아닌 냉장고로 복귀할 때면 한편으로 저는 제 존재가치를 재확인하고 자존감을 회복하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시 깜깜하고 차가운 냉장고 속 가장 보이지 않는 곳 깊은 곳에서 몇달 혹은 몇년간을 지내야하는 저의 숙명에 대한 아픔이 냉장고의 한기보다 더 저를 더욱 차갑게 그리고 외롭게 하곤 합니다. 그렇게 저는 인내라는 단어와함께 오늘도 묵묵히 냉장고의 한 구석을 지키고 있습니다.
저도 이따금은 이사를 다닙니다. 원래 주인께서 멀리 다른 지역으로 간다던가 아니면 한국으로 귀국한다던가 하여 저를 더이상 보관할 수 없게될 때에도 저는 너무 귀중한 존재이기에 쓰레기 통으로 가지도 다른 사람에게 팔려가지도 않고 대신 아주 가까운 친구의 집으로 입양되어 가게 되지요. 그렇다고 제 숙명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입양되어 간 집에서도 저는 영락없이 그집 냉장고 한 구석에 다시 저의 자리를 잡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있었던 입양으로 인해 제 인생은 더 열악해졌습니다. 전 주인 댁에서는 거실에 있는 primary 냉장고 속이 제 자리였는데, 이번 주인 댁은 가라지에 있는 secondary 냉장고 였습니다. 대폭 하락한 제 위상으로 인해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내리막길이요 암흑기의 연속일까 생각하며 많이 낙심하고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깜깜한 곳에 갇혀 있어 잘은 모르지만 이 집에 입양되어 온지 아마 한 두여달이 지난것 같습니다. 새 주인께서 아침에 저를 몽땅 꺼내어 부엌으로 가져가시더니, 커다란 후라이팬에 저를 둘로 나누어 넣고 반은 갈색 옷을, 반은 빨간 옷을 입히셨습니다. 저의 일부분만 쓰고 다시 냉장고에 집어 넣지 않고, 제 전부를!!
아~~ 이 큰 감격을 마른 멸치가 아닌 다른 이들은 아마 모르실겁니다. 저는 오늘에서야 마침내 제 삶의 전부를 다 쓰임받게 된 것입니다. 이 감격으로 인해 오늘 저는 갑자기 너무 행복해졌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게 생겼습니다. 갑자기 이 많은 양을 어디에 쓰려고 이렇게 나를 한꺼번에 요리했냐 하는것이지요. 주위를 둘러 보니 부엌 한 구석에 여행가방이 놓여져 있었고, 자세히 귀 기울여 보니, 오늘 페루로 선교 여행을 떠난다고 합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다른 마른 멸치들과는 달리 저는 단지 한 가정의 칼슘공급원이 아닌, 페루미션팀 전체의 밑반찬으로써 그들의 건강을 12일간 책임지는데 제 인생이 쓰여진다는 것이지요.
저는 페루에서도 어느 근사한 요리가 아닌 여전히 그냥 마른 기본 반찬에 불과할것입니다. 요리들이 듣는 너무 맛있다는 말을 듣지는 못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일간의 미션여행중 모든 미션팀원들의 젓가락이 저를 매일매일 어김없이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존재하는한...
참, 제 친구 코코아군을 소개할께요. 코코아군은 귀국하신 목자님댁에서 저와 함께 이 댁으로 오게 된 친구인데요. 이 친구는 GODIVA라는 세계적인 명문 가문의 출신으로 어렸을때부터 편하고 화려한 곳으로만 돌면서, 평생을 화려한 조명 속에서 상류 사회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살아왔지요. 이 집에서도 저와는 달리 밝고 잘 보이는 좋은 장소에 내내 있었지만그리 기분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에 함께 페루에 가게 된다는 것 역시 썩 달가와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자기는 더 근사하고 격조 높은 한 호텔의 커피샾이나, 미슐렝 가이드에 등재된 유명 레스토랑의 최고급 디저트에 자신이 삶이 쓰여질 꿈을 꾸며 살다가 갑자기 평범한 가정집으로 왔다가 얼마 안되어 제3국으로 가게 되었으니 어쩌면 달갑지 않은 것이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함께 여행가는 친구로서 코코아군이 한가지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것이 있습니다. 미각을 자극하는 산해진미의 끝 마무리 속에 들러리로 등장하는 삶과 추위 속에서 건축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선교팀원의 추운 몸을 녹일 따뜻한 찻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삶... 어느 편이 먹는 사람으로 더 행복하게 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의 가치를 더 크게 나타낼 수 있을지...
여기 제 사진과 코코아군과 같이 찍은 사진을 한장 올립니다. 코코아군이 지금은 좀 표정이 어둡지만, 아마도 페루에서 본인의 참 존재의 의미를 팀원들과 마음속 깊이 같이 느낄때 지금까지의 가식으로 포장된 삶이 아닌 자신의 존재의 참 의미를 느끼고 그로 인해 가장 행복해할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 페루팀의 7/11-7/22까지의 선교사역에 대해서 기도해주세요.
제가 오늘 갑자기 이렇게 제 이야기를 쓴 것은 아마도 여러분중에 저와같이 몇달간 아니 몇년간 자신의 존재의 무가치에 대해서 외롭게 투쟁하다 이제는 아예 희망이라는 단어 조차 거부하면서 그냥 세상 흘러가는대로 오늘도 하루를 보내시는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제가 감히 그분들에게 어떤 조언을 드릴 수도 그럴 위치도 안되지만, 오늘 저에게 이러난 일들이 저에게만 해당되는 삶이 아니라는것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마른 멸치인 저도 이렇게 제 삶의 목적이 있는데, 하물며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아래 지음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삶이 그렇게 아무 목적없이 무의미하게 없어지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비록 어두운 차가운 곳에 그냥 하염없이 버려진 것 처럼 잊혀진 것 처럼 느껴질지라도, 바깥의 쓰레기통에 버려진 삶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기회, 아니 나의 쓰임의 때가 오지않을까요. 언제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때가 있다는것은 분명하게 말씀드릴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럼, 잘 다녀오겠습니다. 아니 잘 떠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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