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청년 바보 의사 - 퍼 온 서평
[서평] 그 청년 바보 의사
“그 시절, 정말 아깝다.”
하지만 앞서 이끄는 누군가가 있지 않고 어떻게 믿음을 쌓아갈 수 있는가. 아예 삶 자체가 태어날 때부터 얽히고설킨 촘촘한 인드라마인 것을. <그 청년 바보의사> 故 안수현이 아직 세상에서 열심히 살고 있었을 때 만약 만났다면 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안암병원에 입원이라도 했다면 한밤중에 찾아와 병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그를 볼 수 있었을까.
아무려나, 모르겠다. 내내 신앙인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일기 형식으로 남긴 책에서도 그를 만났다고 다 신앙인 되는 건 아니었듯 하니 그가 진짜 예수님이 아닌 이상 그의 진득한 노력이 다 결실을 맺지는 못했으니. 하지만 그를 만났다면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싶어 내 살아온 삶이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겠다.
의대를 다니는 내내, 인턴으로 정신없이 바쁘게 공부하고 환자를 돌보는 내내, 집에 숨길 정도로 신앙생활에 충실했던 기록을 읽으면서 내 얼굴이 벌게지는 이유는 그가 의사여서도 기독교인이어서도 아니었다.
목사들의 간증을 보면 누구나 어려운 시절을 겪고, 열심히 살았다는 얘기쯤은 나온다. 하지만 곰곰이 들어보면 그런 기록은 결국 자신을 향한 기록인 게 얼마나 많은가. 자신이 성공하는 게 마치 하나님의 성공인양 자만에 빠진 그들의 설교는 정말이지 신물이 난다. 전도사도 아닌 안수현의 남긴 일지가 굳을 만치 굳은 내 맘을 녹인다면, 그 이유는 자신이 아니라 오로지 남을 향한 기록이기 때문이고, 그만큼 그가 세상 가장 낮은 자로 세상에 오신 그분의 삶을 따르려는 노력 때문이다.
적어도 <그 청년 바보의사>는 그의 내면의 신앙 기록이라기보다는 의사로, 친구로, 선배로, 후배로, 때론 길에서 처음 만나는 낯선 이로 남을 위해 기도하고, 선물을 하고, 위로를 하고, 보듬고, 안아주고, 도와준 기록이다. 연애를 줄이면 줄였던 그는 ‘독신의 은사’를 받은 게 아닐까 싶었다고 한다. 그의 기록은 아주 세세하다. 신앙 모임에 늦게까지 같이 한 후배들을 태우고 다니느라 ‘차를 구입한 지 39주 만에 25,000km를 돌파’했다는 식이다. 글 곳곳에서 재미가 톡톡하게 묻어난다. 사무적이지도 않고 자랑하려고 늘어놓은 치장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의 행적은 이스라엘을 내내 걷고 또 걸으며 사람들을 만났던 예수님의 궤적을 많이 닮았다. 의사로 환자를 돌보는 모습이 그러하거니와 예배당 안에서 두 손을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늘 두 발로 부지런히 다니는 행적이 그러하다.
동료 의사들이 기억하길, 그는 의대 과정에서 낙제를 한 적도 있고, 성적도 뛰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2000년, 의약분업으로 대부분의 의사들이 파업에 나섰을 때, 햇병아리 의사인 그는 병상을 지켰다. 엄격한 수직 사회인 의료계에서 별 신통치도 않는 인턴이 개인적인 신앙심을 내세워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다니, 용납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 안수현 혼자 많은 병동을 책임지는 상황을 쌤통이라고 여겼을 테고, 다른 한편으로 그래도 그가 있어 다행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동료 중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지고의 가치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환자 곁에 함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료들이 그의 파업 불참을 당연하게 여겼으리라는 점, 한 가지는 확실한 듯하다. 종교를 달리할지언정 그의 손길이, 그의 기도가 환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위안과 힘이 되었을지 머릿속에서 떠올려보면 내 가슴마저 뜨거워진다.
그 젊은 시절, 아깝다, 라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이제 그보다 더 많은 삶을 살았고, 앞으로 더 살아갈 나는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가. 안수현이 보여준 행적이 근저에는 신앙에 있을 것이나 신념을 향한 그의 자세는 지금 게으른 나를 두들겨 깨운다.
누구보다 이 책을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권위로 여기고 교회 안에서 틀어쥐고만 있는 목사를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이 읽어야 한다. 그리고 “의사는 병원의 제사장”이라는 전언이 하는 말의 참뜻을 알아듣는 의사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변에서 보면 예수님은 고사하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정말 했는지 의심스러운 의사들이 꽤 많다.
“(유다는) 요셉을 애굽에 팔아버렸던 형이지. 그는 며느리 다말에게서 아이까지 낳는 패륜을 저지르는 사람이야. 그의 인간성은 죄악덩어리지만 단지 예수님의 계보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점점 더 주님을 닮아가거든. 나도 그렇게 되길 바라.”
그의 미니홈피에는 그가 ‘부재의 사역’을 하고 있다는 글이 올라온다. 그는 죽었으나 여전히 살아 있다. 살았으나 죽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이제 그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삼는다.
[출처] http://cafe.naver.com/bookishman/20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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