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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Worship...


"피아노를 너무 사랑하고, 하나님을 너무 사랑하고, 또 가르치는 아이들을 사랑하는데 이런 것들이 어떻게 하나로 연결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하며 숙제로 가지고 살아오다가 어느날 예배시간 찬양 중에 HOPE (Harmony Of Piano Evangelists) 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올라 급히 노트에 적었어요.  그리고서... 일이 급격하게 진행이 되었어요."


이 지역의 탁월한 피아니스트 중 한 분이 Africa의 Niger 선교 기금을 모으는 목적으로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피아노 연주회를 합니다.  초등학교 아이들부터 대학원 진학을 앞둔 사람까지 넓은 연령층의 피아니스트들인데, 전에 들어본 연주 수준으로 볼 때 주말이 많이 기다려집니다.


세속적인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지만, 이들을 보면서 제 머리 속에 떠오른 문구는 "in worship"이었습니다.  In worship... 

  • 시간: 4월 26일 주일 오후 3시
  • 장소: Tateuchi Hall at Community School of Music and Arts, 230 San Antonio Circle, Mountain View, CA 94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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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ㄱㄷ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04.27 17:36 신고

    세속적이라니요~~~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들을 때 하나님을 경험하기도 하지않나요? ^^
    그나저나 프로필 사진 중에 작품이 보이네요 ^^

So God Created Missionary


[출처] Fire and Fragrance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man in His own image.

He walked with man in the court of Eden.

But satan interrupted that union.

So God created the missionary.


태초에 하나님께서 그 분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 분은 에덴의 정원에서 사람과 동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그 연합을 훼방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를 창조하셨습니다.


God said, "I need 

someone willing to say 'no' to the status quo, 'no' to the dream of wealth,

    leave their families to fly to a distant land,

    and learn the language they have never heard,

    ride in cramped buses, on backs of camels;

someone who would sleep anywhere

    eat anything

    bear the heat

    and fight the freeze

    with a smile on their face

    just to take the gospel to a people not their own."

So God created the missionary.


하나님께서는,

"나는 현재의 구태에 대해 기꺼이 '아니야'라고, 부귀의 꿈에 대해 '아니야'라고 말할

    먼 땅을 향해 날아가기 위해 자신의 가족을 기꺼이 떠날

    그리고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언어를 기꺼이 배울

    비좁은 버스와 낙타의 등에 기꺼이 올라탈 그 누군가를,

아무데서나 잠 잘 

    아무것이나 먹을

    더위를 참아낼

    혹한과 싸워낼

    그러면서도 얼굴의 미소를 잃지 않을

    그저 자신의 동족이 아닌 민족에 복음을 들고 갈 그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를 창조하셨습니다.


God said, "Because the harvest is plentiful

I need 

someone ready to sow the seed

    to plow the ground

    water the seed

    and reap the harvest which is right.

someone to go and train

    to multiply the crops

    and to answer the call

    and pay the price."

So God created the missionary.


하나님께서는, "추수할 것이 많으므로, 

나는 씨를 뿌리고

    땅을 갈고

    씨에 물을 주고

    좋은 수확을 거두어들일 준비가 된 그 누군가를,

가서 훈련시키고

    알곡을 번성케하고

    그리고 부르심에 응답하고

    그리고 댓가를 지불할 그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를 창조하셨습니다.


God said, "I need 

someone who is a radical servant of all

    taking the loneliest job

    washing the feet of the poor

    caring for the sick

    and cleaning their wounds.

I need

someone to visit the prisoner

    care for the widow and the orphan

    to sit in the dust with a child

    and tell them that they are loved."

So God made the missionary.


하나님께서는,

"나는 범사에 철저히 종 된

    가장 외로운 일을 떠맡으며

    가난한 자의 발을 씻기며

    병든 자를 보살피

    그들의 상처를 씻어주는 그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나는 갇힌 자를 방문하며

    과부와 고아를 돌보며

    한 아이와 함께 먼지 속에 앉아

    그들이 사랑받고 있다고 말해줄 그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를 만드셨습니다.


God said he needed

someone who would believe that blind eyes could see

    and lame feet could walk

    and that the dead could live again

someone who would pray long hours

    and intercede through the night with wordless groans of petitions

    so that one soul might be saved.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눈 먼 자가 볼 수 있을 것과

    저는 자가 걸을 수 있을 것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을 믿는 그 누군가를

오랜 시간동안 기도할

    그리고 말할 수 없는 탄식의 탄원으로 밤 새워 중보할

    그래서 한 영혼이 구원받게 할 그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고하셨습니다.

  

God said, "I need 

someone honest and brave

    full of grace, mercy, and compassion

    free from fear and passivity

    walking in true identity

someone burning with love

    and girded with truths

someone who radiantly reflect God's glory."

So God made the missionary.


하나님께서는,

"나는 정직하고 용감한,

    은혜와 자비와 연민으로 가득한,

    두려움과 소극성으로부터 자유한,

    참된 자아 속에서 걸어가는 그 누군가를,

사랑으로 타오르고

    진리로 허리띠를 맨 그 누군가를,

하나님의 영광을 환하게 비출 그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를 만드셨습니다.


God said, "I need 

someone who would say 'yes' before they were asked

someone who would go to distant islands,

    barren deserts,

    inner-cities,

    close nations,

    next-door neighbors,

    and prestigious universities,

    to reach the unreached."


하나님께서는,

"나는 질문받기 전에 '예'라고 대답할 그 누군가를

외딴 섬으로

    불모의 사막으로

    도심으로

    인접 국가로

    옆집의 이웃에게로

    그리고 명문 대학으로

    미전도 지역에 다가서기 위해 나아갈 그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고 하셨습니다.


"Who would hike any mountain

    and endure any obstacle?

Because how will they believe in Him of whom they have never heard?

    How will they hear unless someone reaches?

    And how will they preach unless they are sent?"

So God made the missionary.


어떤 산도 넘을, 어떤 장애물로 견디어 낼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왜냐하면, 듣지도 못한 이를 그들이 어떻게 믿겠습니까?

    누군가 다가가지 않으면 어떻게 그들이 듣겠습니까?

    그리고 파송되지 않으면 어떻게 그들이 전파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교사를 만드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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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xtualized (Appropriate) Christianity

상황화된 (적절한) 기독교


by Charles H. Kraft (Fuller 신학교 세계선교 대학원 인류학 교수)



교회가 사람들 삶에 '문화화되는' 과정을 과거에는 '토착화'라고 했으나 지금은 '상황화'(Contextualization) 라는 말을 더 널리 사용한다.


기독교 상황화는 신약성경 기록의 중요한 부분이다.  사도들은 아람어와 아람 문화로 전달된 기독교 메시지를 헬라어권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 상황화 과정을 겪었다.  사도들은 헬라어 사용자에 적합하게 기독교를 상황화하고자, 기독교 진리는 수용자들 사고 유형에 맞추어 표현했다.  하나님, 교회, 죄, 회심, 회개, 입교, 말씀(로고스) 등과 같은 주제와 그 밖의 대부분 그리스도인 삶과 관습 영역을 다루기 위해 토착 단어와 개념을 사용하고 그 용례를 바꾸었다....  [중략] 사도행전 10장이나 15장 같은 본문을 보면서, 성경적인 기독교는 역사상 모든 시점에서 모든 언어와 문화에 '다시 성육신(incarnation) 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 뜻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성경적으로 기독교 상황화는 단순히 유럽이나 미국에서 단번에 그리고 영구적으로 개발된 결과물을 전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초기 사도들이 겪었던 과정을 답습하는 것이다.  한 사회에서 성장한 기독교라는 나무를 새로운 문화 환경에 옮겨 심었을 때, 그 나무의 잎사귀와 가지, 열매를 전해준 사회의 산물로 드러내서는 안된다.  복음은 씨앗으로 심겨져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그것을 받는 사람들의 문화적 토양 안에서 싹을 틔우고 그곳의 비와 영양분으로 자라나야 한다.  땅 위에서 봤을 때, 참된 복음의 씨앗에서 나온 싹들은 그것을 전해 준 사회의 모습과는 상당히 달라 보인다.  하지만 땅 밑, 곧 세계관 차원에서 보면 뿌리가 같고 생명의 근원이 같음을 알 수 있다.... [중략]


메시지 형태와 그 메시지에서 다루는 많은 주제 중에서 상대적으로 무엇이 더 부각되는가 하는 것은 사회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에 맞게 상황화된 기독교는 가족관계, 두려움, 악한 영, 춤, 정해진 제의의 옹호 등에 대해 성경이 어떻게 말하는지 미국 기독교보다 더 초점을 모으게 될 것이다.


[출처] "Culture, Worldview and Contextual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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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emptive Analogy (구속적 유사)


Don Richardson (World Team 선교회 대표)



사위(Sawi)족 ‘화해의 아이’

나와 내 아내는 사위족이 배신을 미덕으로 존중한다는 것을 알고는 충격받았다.  그들에게는 가룟 유다가 복음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사위 문화 중에는 화평을 이루는 한 가지 방법이 있었는데 그것은 한 아버지가 원수처럼 싸워 온 사람에게 자신의 아이 중 하나를 주어 키우도록 맡기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아이를 ‘화해의 아이’라고 불렀다.


다말(Damail)족과 하이(Hai)

1세기도 채 안되는 과거에 이리안자야(지금의 파푸아)의 다말족은 석기 시대를 살고 있었다.  다말족에게는 하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하이’란 오랫동안 기다리던 황금시대, 곧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은 이제 서로 억압하지 않으며, 질병도 거의 없는 유토피아를 가리키는 다말족 용어였다.  다말족 지도자인 무구멘데이는 하이의 도래를 간절히 기다렸다.  죽기 전에 그는 자기 아들 뎀을 옆에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다.  “얘야, 내 생전에는 하이가 오지 않았구나.  이제 네가 하이가 오는지 지켜보아야 한다.  네가 죽기 전에는 하이가 올 것 같구나.”


다니(Dani)족과 나벨란 카벨란 (Nabelan-Kabelan)

다말족을 지배하던 오만한 다니족이 다말족 마을에서 일어난 놀라운 일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다말족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간직해 온 소망이 성취되어 기뻐한다는 소식을 들은 다니족은 정말 놀랐다.  그들 역시 나벨란 카벨란이라고 부르는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은 언젠가 영원한 생명이 인류에게 다시 돌아오리라는 믿음이었다.


아스맛(Asmat)족과 ‘새로운 탄생’

‘새로운 탄생’이라는 개념은 이라안자야의 석기 시대 부족인 아스맛족에게서 발견되는 구석적 유사와 관련이 있다.  그들은 전쟁을 하던 두 마을이 서로 평화를 약속할 때, 두 마을 출신의 수많은 남녀가 늘어서서 만든 상징적인 탄생의 통로를 마을 아이들이 통과하게 했다.  그 통로를 따라 지나간 아이들은 적이었던 마을의 친족으로 다시 태어난 것으로 간주되었다.


파차큐텍(Pachacutec)과 비라코차(Viracocha)

파차큐텍은 주후 1400~1448년 사이에 살았던 잉카 왕이었다.  그는 또 신세계 최초 고산 휴양지였을 ‘마추픽추’를 설계하고 건설한 사업가였다.  파차큐텍과 그 동족들은 해를 숭배했는데, 그것을 잉티(Inti)라고 불렀다.  하지만 파차큐텍 잉티가 과연 숭배할 대상이 될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잉티가 하나님이 아니라면 파차큐텍은 누구를 의지할 수 있을까?  그러고 나서 그는 자기 아버지가 언젠가 찬양한 적이 있는 한 이름을 기억해 냈다.  비라코차!  그의 아버지에 따르면 비라코차는 모든 만물을 창조한 바로 그 신이었다.


켈트족 선교사들이 북유렵의 앵글로색슨족에게 사역할 때, 참 신을 나타내는 유대식 이름이나 헬라식 이름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 대신 ‘Gott’, ‘God’, ‘Gut’같은 앵글로 색슨어를 사용했다.


1828년 미국 침례교 선교사 조지와 사라보드먼 부부는 남부 미얀마 카렌족이 야훼와 유사한 야와(Y’wa)라는 위대한 신이 자기 조상들에게 오래전에 신성한 책 한 권을 주었다고 믿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애석하게도 악하고 무지한 조상들은 그 책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져 온 카렌 전통에 따르면, 어느 날 하얀 형제가 그 잃어버린 책을 다시 찾아주고 야와와 다시 친교를 누리게 해줄 것이었다.  이 오래된 이야기는 그 형제가 팔에 검은 물체를 끼고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었다.


1857년 노르웨이 루터교 선교사인 라스 스크레프스루드는 인도의 수많은 산탈(Santal)족 사람들이 자기 조상들이 참된 하나님인 타쿨 지우 (Takur Jiu)를 거부한 데 대해 매우 애석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40년에 수단 내지 선교회 앨버트 브란트는 에디오피아의 수많은 게데오(Gedeo) 족 사람들이 창조주 ‘마가노’ (Magano)가 언젠가 특정한 무화과 나무 아래에 기지를 만들 메신저를 보낼 것이라고 믿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슬람에서 하나님을 칭하는 아랍어 이름 알라를 엘로힘의 동의어로 용인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인도네시아 수백만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으로 ‘알라’를 사용하고 있고, 여호화 하나님을 의미하는 말로 ‘뚜한 알라’ (Tuhan Allah)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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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ㄱㄷ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3.03.28 21:26 신고

    카메라/렌즈 이야기도 써주세요....
    그나저나 70-200mm f2.8 sigma하고 80-200mm f.28 nikon 하고 어느 것을 추천하시는지?
    물론 70-200mm f2.8 nikon 을 사면 좋기는 하지만... 그건 너무 비싸고...
    f4-5.6 으로는 실내에서 한계가 너무 많아서리....
    고견 부탁드려요.
    그리고 중고 렌즈도 괜찮으려나?

    • 더가까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3.03.28 23:26 신고

      1달 만 더 기다려주세요. ㅎㅎ
      니콘 80-200mm 해상도는 최신 70-200mm를 능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그마와 니콘의 해상도/화질은 크게 차이나지 않는것 같구요, autofocus 속도 면에서 좀 차이가 나는걸로 압니다. 실내에서의 한계가 주된 이유라면 시그마 신형 떨림방지 기능이 도움이 되겠지요. 셔속으로 3stop 이상 효과 있습니다. 단, 나중에 팔거나 교환할 생각이 있다면 투자면에서는 80-200mm 가 훨씬 나을겁니다. 중고렌즈 괜찮습니다. Warranty문제가 있긴합니다만...

초기 아프리카 선교


Ralph D. Winter (전 Frontier Mission Fellowship 대표)


아프리카는 선교사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대륙이었다.  1775년 이전에 시도된 아프리카 선교는 완전히 실패였다.  가톨릭 교회가 많은 선교 노력을 기울이고 모라비안 교도들이 온갖 노력을 했음에도, 아무런 성과가 남아 있지 않았다.  첫 번째 개신교 선교 시대가 시작될 무렵, 어떤 종류로든 아프리카에 남아 있는 선교사는 전혀 없었다.  


1790년 이후 수십년 동안 이 대륙으로 들어간, 정말로 용감했던 선교사들은 온갖 질병과 죽음과 직면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던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어려움도 그들을 가로막지 못했다.  그들은 선교사 파송이 사실상 자살 행위나 다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나갔다.  질병으로 순직한 선교사들의 죽음에 대한 무시무시한 통계는 어느 선교 시대나 선교운동에서도 그 유례가 없는 것이었다.  


첫 번째 시대 처음 60년 동안 아프리카로 파송된 선교사 중에는 2년 이상 살아 남았던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 선교사들의 엄청난 헌신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겸허한 마음으로 눈물 흘리게 된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가운데 과연 누가 이러한 헌신을 할 수 있으며, 이러한 헌신을 하려고 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전에 파송된 선교사 20명 중 19명이 선교지에 도착한지 얼마 되지 않아 죽는 일이 수십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오늘날 개최되는 어바나 선교 대회에 참석한 대학생 중 선교사로 나가려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출처] "Four Men, Three Eras, Two Transitions: Modern Missions" 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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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이상의 실현


by Kenneth Scott Latourette



기독교 이상을 실현하려는 여러 운동들이 그리스도께 영감을 받은 개인과 교회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상은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는 질서체계인 하나님 나라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다.  이 이상은 개인에게 무한한 가치를 부여한다. 개인을 위한 기독교적 이상의 목표는 죽음 이전에 완전히 성취할 수는 없으나, 이것은 매우 깜짝 놀랄만한 것이기 때문에 역사 안에서는 단지 시작만 가능할 뿐이다.  또한 이러한 이상은 단독으로 도달할 수 없고 오직 공동체 안에서만 도달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의하면 인간의 책임과 특권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이웃 사랑과 결코 분리해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이상과 목표는 기독교 산물인 기독교 선교운동의 성격을 결정지어 왔다.  비록 사람들이 지식과 교육을 활용해 이런 기독교적 이상을 외관상 패배시킨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또 가끔씩 그렇게 하기도 했지만, 수 세기에 걸쳐 기독교는 다른 모든 요인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언어를 문자화시키는 사역을 감당해 왔다.  기독교는 다른 어떤 단독적 영향력보다도 더 많은 학교, 더 많은 교육 이론, 더 많은 시스템을 세워 주었다.  기독교는 역사상 그 어떤 세력보다도 사람들로 하여금 고난에 맞서 싸우도록 강력하게 뒷받침해 주었다.  그 고난이 질병에서 비롯된 것이건, 전쟁 때문에 생겨난 것이건, 자연재해로 일어난 것이건 간에 그러했다.  기독교는 병원을 수천개 세웠으며, 간호직과 전문 의료직에 종사하도록 영감을 불어 넣었고, 더 나아가 공중 보건과 기근의 구호 및 예방을 위한 운동을 널리 전개해 나갔다.


부분적으로는 기독교 성장의 자연스런 결과라고 할 수 있는 정복과 탐험으로 인해, 미국 대규모 농장에서 부리려고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잡아오긴 했지만, 기독교로 말미암아 양심이 각성되고 그 의지가 강해진 남녀의 노력으로 마침내 노예 제도가 폐지되게 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마음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법에 신세계 인디언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하는 일이 없어지도록 하는 법조문을 삽입하기도 했다.


기독교 이름으로 종종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이러한 전쟁은 기독교권에서 생산된 무기와 대규모 조직을 통해 가장 거대한 차원으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어느 곳에서도 전쟁을 제거하거나 통제하려는, 그리고 전쟁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그토록 많은, 그리고 그토록 강력한 운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독교 신앙은 초기부터 많은 교인들에게 전쟁에 대한 불안감을 일깨워 주었다.  기독교는 소수 교인들로 하여금 전쟁에 참가하기를 거부하도록 유도했다.  기독교는 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생각에 기독교적인 과점에서 '의로운 전쟁'에 대한 몇 가지 규정을 만듦으로써 전쟁을 제한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혼란스럽던 중세 유럽의 기독교는 11세기 초 "하나님의 휴전령" (Truce of God, 승려와 수도사를 비롯한 순례자, 상인, 여자, 노인들을 공격 대상에서 제외하게 하고, 수도원이나 소, 당나귀, 농부들도 공격하지 못하게 했으며, 주일에는 전투를 중단케 함 -- 역주) 과 10세기 말에 "하나님의 평화령" (Peace of God, 토요일부터 월요일 아침까지는 휴전하고, 교회 절기에도 휴전하게 함 -- 역주) 을 공포해 전쟁을 제한하는 방법을 만들어 냈다.  이후에도 기독교는 국제법을 형성하는 데 주된 자극제가 되었다.  기독교가 아니었다면, 국제 연맹이나 국제 연합 (UN) 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쟁으로 야기된 고통을 구호하기 위해 창설된 가장 광범위한 조직체인 적십자사는 명칭으로 보나 상징적으로 보나 기독교에서 유래되었음을 입증한다.


이러한 목록은 무한정 길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목록에는 그 외 여러 인도주의적 사업이나 운동, 정부 이념들, 감옥 개혁과 범죄학의 대두, 위대한 예술과 건축 및 뛰어난 문학 등이 포함된다.  지리적인 범위나 그 능력 면에서 볼 때 19세기와 20세기 만큼 기독교 운동의 영향력과 결실이 뚜렷하게 남아 있던 때도 일찌기 없었다.


[출처] "A History of Christianity," pp. 1470~1471, Prince Press, Peabody, MA,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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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law of the Excluded Middle

(배제된 중간 영역의 오류)


Paul G. Hiebert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선교학 학과장)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눅 7:20) 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논리적 증거를 제시하여 답변하기 보다는, 병든 자를 고치고 악한 영을 내쫓는 권능을 보여 주심으로써 대답하셨다.  이것은 대단히 분명히 나타나있다.  그러나 내가 한 때 인도 선교사로서 이 본문을 읽고 그것을 선교 사역에 적용하려고 했을 때,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다.  서구인으로서 나는 합리적인 논증으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데 익숙했지, 병들고 귀신 들리고 대단히 가난한 사람들의 삶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능력을 증거하는 것은 낯설었다... (중략)


인도 사역 초기에 있었던 또 하나의 상황이 다시금 그와 비슷한 불편한 감정을 갖게 했다...  (중략)   몇 주 전에 천연두가 마을에 퍼져 여러 아이가 생명을 잃었다고 했다...  (중략)  천연두 여신의 화를 풀어 주고 재앙을 멈추기 위해 마을 사람들은 물소를 제물로 준비하여 제사를 드리게 되었다.  마을 지도자들은 마을의 각 가정을 방문하여, 물소 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 가정을 방문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앙에 위배된다면서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중략)  이제 그리스도인 가정의 여자아이 하나가 천연두에 걸리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자기와 함께 가서 그 아이의 치유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 달라고 했다.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었을 때, 내 마음에서는 갈등이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기도하는 것을 어렸을 때부터 배웠고, 신학교에서 기도를 공부했고, 목사가 되어서는 기도에 대해 설교도 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과연 기독교의 하나님이 병을 낫게하실 수 있을까?' 하는 눈으로 지켜보는 모든 마을 사람 앞에서 그 병든 소녀를 위해 기도해야 했던 것이다... (중략)


마술사들이 고쳐 준 전염병의 경우는 어떠한가?  귀신 들린 경우나 저주, 마술, 해코지 주술 같은 것들은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기독교적 대답은 무엇인가?  종종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들이나 의료 선교사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런 것들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이미 살면서 이런 일을 생생하게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다른 대답이 필요하다.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 중 많은 사람이 다시금 마술사를 찾아 치료를 의뢰하는 것이다... (중략)


서구인들은 우주와 사회 질서를 기계적 관점에서 이해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세계의 기초는 비인격적 힘의 통제를 받는 무생명체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다.  반면 부족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세계가 살아 있다고 본다.  인간 뿐 아니라 동식물, 심지어 바위와 모래, 물 같은 것에도 인격과 의지와 생명력이 있다고 간주한다.  이들의 세계는 결정론적이 아니라 관계론적인 것이다.


내가 성경의 세계관과 인도의 세계관 사이에서 불편한 감정을 느꼈던 이유를 분명히 밝혀야겠다.  내가 초자연적인 동시에 세상적 존재들과 힘들이 속해 있는 중간 영역이 배제된 세계관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과학자로서 나는 자연주의적 관점에서 경험적 세계를 다루도록 훈련받아 왔다.  신학자로서 나는 유신론적 관점에서 궁극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답변하도록 가르침 받아 왔다.  내게 있어서 중간 영역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다... (중략)  결국 나는 그들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두 차원으로 나눠진 세계관이 어떻게 해서 서구에 나타나게 되었는가?  중간 영역에 대한 믿음은 17세기와 18세기에 플라톤의 이원론과 유물론적 자연주의에 입각한 과학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점차 사라졌다.  그 결과는 과학의 세속화와 종교의 신비화였다... (중략)  과학은 자연법칙에 있어서의 질서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종교는 자연 질서에 벗어나는 예외적인 것들과 기적들을 다루는 데만 사용되었지만, 이것도 과학적 지식이 증가하면서 줄어들게 되었다.


서구에서 훈련받는 많은 선교사가 중간 영역에 관련된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은 대개 이런 중간 영역을 인식조차 못했다.  부족민들이 악령을 두려워한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그리스도가 그 악령들을 제압한다고 말하기보다는 악령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Lesslie Newbigin의 지적처럼, 결국 서구 기독교 선교는 역사상 가장 거대한 세속주의 세력 중 하나가 되었다... (중략)


중간 영역의 질문들이란 무엇인가?  미래의 불확실성, 현재 삶의 위기, 그리고 미지의 과거 등이다... (중략)  어떻게 하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으며, 미래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해야 결혼을 통해 풍성하고 행복한 삶을 지속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겠는가?  비행기가 추락할 것을 미리 알고 타지 않을 방법은 없는가?  서구에서는 이런 문제들은 답변하지 않은 채로 남겨둔다.  그런 문제는 사고, 행운, 또는 예측할 수 없는 사건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중요한 문제에 대한 답을 찾지 않은 채 그냥 남겨두려 하지 않는다... (중략)


중간 영역의 문제들에 대해서 서구 세계가 더는 답변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많은 서구 선교사가 자신들의 기독교 세계관 안에서는 아무런 답변을 찾지 못한다.


이 영역의 문제에 대하여 일부 교회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매개체로 성자를 내세우는 교리로 해결하려고 했다.  다른 교회는 인간의 역사 사건들 속에 하나님이 적극 개입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성령론에 관심을 쏟았다.  성공적인 많은 선교 사례들을 살펴보며, 그것들이 이 중간 영역 질문에 어떤 형태로든 기독교적인 답변을 제시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출처] "Anthropological Reflections on Missiological Issues," Baker Book House, Grand Rapids, MI,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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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pectives

발자취... 2013.02.05 21:11

Perspectives on the World Christian Movement


지역에서 하는 PSP (Perspectives Study Program). 작은 글씨에 보통 책 보다 큰 사이즈의 책 두권(총 818쪽 + 538쪽)을 12주간 동안에 과제물 내 가면서 읽어야 합니다.  40대 후반에 또 공부하고 숙제내고 시험보고하는 것이 참 부담스러워  한참 망설이다가 등록했습니다만 마음 한구석은 기대로 콩닥 거립니다.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써내려간 형식이 아니라 성경적 (Biblical), 역사적 (Historical), 문화적 (Cultural), 전략적 (Strategic) 관점 (Perspective)에서 총 152명의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앞으로 3개월간 블로깅에 쏟을 시간이 아마도 왕창 줄을 것 같습니다만,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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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ㄱㄷ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3.02.17 21:11 신고

    이제 좀 돌아오지?

마른 멸치의 편지


2011년 7월 아내가 12일간 페루로 단기선교를 떠나던 아침에 보낸 기도편지

안녕하세요. 저는 마른 멸치입니다.

제 별명은 “칼슘 짱”이지요. 한국인의 기본 밑반찬으로 위치를 오랫동한 지켜왔고 특별히 나이 드신 분들의 각별히 저를 아껴주시곤 합니다. 해외에 사는 교포님들이 한국에서 반드시 공수받는 아이템중의 하나가 저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너무 아이러닉한 사실은 이렇게 중요한 저희 마른 멸치들이 삶의 대부분을 냉장고의 한 구석에서 하염없는 기다림으로 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따금 한번씩 행해지는 살벌한 냉장고 대정리때마다 쓰레기통이 아닌 냉장고로 복귀할 때면 한편으로 저는 제 존재가치를 재확인하고 자존감을 회복하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시 깜깜하고 차가운 냉장고 속 가장 보이지 않는 곳 깊은 곳에서 몇달 혹은 몇년간을 지내야하는 저의 숙명에 대한 아픔이 냉장고의 한기보다 더 저를 더욱 차갑게 그리고 외롭게 하곤 합니다. 그렇게 저는 인내라는 단어와함께 오늘도 묵묵히 냉장고의 한 구석을 지키고 있습니다.

저도 이따금은 이사를 다닙니다. 원래 주인께서 멀리 다른 지역으로 간다던가 아니면 한국으로 귀국한다던가 하여 저를 더이상 보관할 수 없게될 때에도 저는 너무 귀중한 존재이기에 쓰레기 통으로 가지도 다른 사람에게 팔려가지도 않고 대신 아주 가까운 친구의 집으로 입양되어 가게 되지요. 그렇다고 제 숙명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입양되어 간 집에서도 저는 영락없이 그집 냉장고 한 구석에 다시 저의 자리를 잡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있었던 입양으로 인해 제 인생은 더 열악해졌습니다. 전 주인 댁에서는 거실에 있는 primary 냉장고 속이 제 자리였는데, 이번 주인 댁은 가라지에 있는 secondary 냉장고 였습니다. 대폭 하락한 제 위상으로 인해 내 인생은 왜 이렇게 내리막길이요 암흑기의 연속일까 생각하며 많이 낙심하고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깜깜한 곳에 갇혀 있어 잘은 모르지만 이 집에 입양되어 온지 아마 한 두여달이 지난것 같습니다. 새 주인께서 아침에 저를 몽땅 꺼내어 부엌으로 가져가시더니, 커다란 후라이팬에 저를 둘로 나누어 넣고 반은 갈색 옷을, 반은 빨간 옷을 입히셨습니다. 저의 일부분만 쓰고 다시 냉장고에 집어 넣지 않고, 제 전부를!!

아~~ 이 큰 감격을 마른 멸치가 아닌 다른 이들은 아마 모르실겁니다. 저는 오늘에서야 마침내 제 삶의 전부를 다 쓰임받게 된 것입니다. 이 감격으로 인해 오늘 저는 갑자기 너무 행복해졌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게 생겼습니다. 갑자기 이 많은 양을 어디에 쓰려고 이렇게 나를 한꺼번에 요리했냐 하는것이지요. 주위를 둘러 보니 부엌 한 구석에 여행가방이 놓여져 있었고, 자세히 귀 기울여 보니, 오늘 페루로 선교 여행을 떠난다고 합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다른 마른 멸치들과는 달리 저는 단지 한 가정의 칼슘공급원이 아닌, 페루미션팀 전체의 밑반찬으로써 그들의 건강을 12일간 책임지는데 제 인생이 쓰여진다는 것이지요. 

저는 페루에서도 어느 근사한 요리가 아닌 여전히 그냥 마른 기본 반찬에 불과할것입니다. 요리들이 듣는 너무 맛있다는 말을 듣지는 못하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일간의 미션여행중 모든 미션팀원들의 젓가락이 저를 매일매일 어김없이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존재하는한...

참, 제 친구 코코아군을 소개할께요. 코코아군은 귀국하신 목자님댁에서 저와 함께 이 댁으로 오게 된 친구인데요. 이 친구는 GODIVA라는 세계적인 명문 가문의 출신으로 어렸을때부터 편하고 화려한 곳으로만 돌면서, 평생을 화려한 조명 속에서 상류 사회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살아왔지요. 이 집에서도 저와는 달리 밝고 잘 보이는 좋은 장소에 내내 있었지만그리 기분 좋아 보이지 않았는데 이번에 함께 페루에 가게 된다는 것 역시 썩 달가와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자기는 더 근사하고 격조 높은 한 호텔의 커피샾이나, 미슐렝 가이드에 등재된 유명 레스토랑의 최고급 디저트에 자신이 삶이 쓰여질 꿈을 꾸며 살다가 갑자기 평범한 가정집으로 왔다가 얼마 안되어 제3국으로 가게 되었으니 어쩌면 달갑지 않은 것이 당연하겠지요.

그러나 함께 여행가는 친구로서 코코아군이 한가지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것이 있습니다. 미각을 자극하는 산해진미의 끝 마무리 속에 들러리로 등장하는 삶과 추위 속에서 건축 일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선교팀원의 추운 몸을 녹일 따뜻한 찻잔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삶... 어느 편이 먹는 사람으로 더 행복하게 하고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의 가치를 더 크게 나타낼 수 있을지...

여기 제 사진과 코코아군과 같이 찍은 사진을 한장 올립니다. 코코아군이 지금은 좀 표정이 어둡지만, 아마도 페루에서 본인의 참 존재의 의미를 팀원들과 마음속 깊이 같이 느낄때 지금까지의 가식으로 포장된 삶이 아닌 자신의 존재의 참 의미를 느끼고 그로 인해 가장 행복해할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 페루팀의 7/11-7/22까지의 선교사역에 대해서 기도해주세요.

제가 오늘 갑자기 이렇게 제 이야기를 쓴 것은 아마도 여러분중에 저와같이 몇달간 아니 몇년간 자신의 존재의 무가치에 대해서 외롭게 투쟁하다 이제는 아예 희망이라는 단어 조차 거부하면서 그냥 세상 흘러가는대로 오늘도 하루를 보내시는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제가 감히 그분들에게 어떤 조언을 드릴 수도 그럴 위치도 안되지만, 오늘 저에게 이러난 일들이 저에게만 해당되는 삶이 아니라는것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마른 멸치인 저도 이렇게 제 삶의 목적이 있는데, 하물며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아래 지음을 받았다는 사람들의 삶이 그렇게 아무 목적없이 무의미하게 없어지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비록 어두운 차가운 곳에 그냥 하염없이 버려진 것 처럼 잊혀진 것 처럼 느껴질지라도, 바깥의 쓰레기통에 버려진 삶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기회, 아니 나의 쓰임의 때가 오지않을까요. 언제인지는 잘 모르지만, 그때가 있다는것은 분명하게 말씀드릴수 있을것 같습니다. 

그럼, 잘 다녀오겠습니다. 아니 잘 떠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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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My Healing to the Nations

(나의 치유함을 열방에)




세미나 한 주가 끝난 토요일 오후, 하와이에서의 첫 제자훈련학교가 열렸던 King's Mansion 이라는 장소에 방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장소에서 얽힌 이야기를 듣던 중 아주 오래 전에 만난 적이 있던 사람의 이름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Bob Fitts.  1988년 서울에서 Olympic이 열렸을 때 경기관람을 위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기 위한 준비 집회를 광림교회에서 약 4일에 걸쳐 가진 적이 있는데 그 때 찬양을 인도했던 예배 인도자였습니다.  그가 King's Mansion에서 작곡한 곡이 "Take My Healing to the Nations"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는 어느날 꿈에 Nicaragua에서 온 한 자매가 "내 나라에서는 사람들이 가난하고 굶주리고 있는데 크리스찬들은 교회에서 그저 신학을 놓고 언쟁만 벌이고 있다... 이런 아이러니때문에 나는 더 이상 크리스찬이고 싶지 않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아 울부짖으며 깬 뒤 성령께서 주시는 영감에 따라 이 곡을 썼다고 합니다.


I hear a young child crying

and see tears of un-ending pain.

내게 어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끝임없는 고통의 눈물이 보이는 구나.


I've watched this war-torn nations,

treated life with such disdain.

전쟁으로 찢겨진 나라들과

그렇게 업신 여김을 받아온 삶을 또한 봐왔지.


My heart grieves to know that

these haven't come to understand

내 마음이 몹시도 아픈 것은

그들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that I suffered for their suffering,

and died that they might live again.

이런 사람들의 고통을 위해 내가 고통받았고

그들에게 삶을 주기 위해 내가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Take my healing to the nations.

Bind their broken hearts with love.

나의 치유함을 열방에 가져가거라.

그들의 깨어진 심령들을 사랑으로 싸매주어라.


Stretch my hand throughout creation

with this message of my love

모든 피조물에게 나의 손을 뻗어라.

나의 사랑의 이 메시지와 함께...


that I came to bring light in your darkness

and bring joy where there once was pain.

내가 너희의 어두움에 빛을 가져다 주기 위해, 그리고 

한때 고통이 있던 곳에 기쁨을 가져다 주기 위해 왔다고...


Take my healing to the nations.

Bind their broken hearts with love.

나의 치유함을 열방에 가져가거라.

그들의 깨어진 심령들을 사랑으로 싸매주어라.


For the fields they're ready for harvest

and the labourers they're so few.

들은 추수할 준비가 되었고

일꾼들은 너무나 적구나.


Countless millions still that I want to do

but the task isn't mine to do.

내가 하기 원하는 헤아릴 수 없는 수 많은 일들이 

아직 있지만

이 과업은 내가 할 일이 아니란다.


I gave you my commandment, 

go and preach good tidings of love

내가 네게 명령을 주었지

가서 사랑의 좋은 소식을 전하라고...


For I finished the work on Calvary

and their healings already been done.

왜냐하면 내가 갈보리에서 내게 주신 일을 다 이루었고

그들의 치유함이 이미 다 끝났기 때문이다.


So take my healing to the nations.

Bind their broken hearts with love.

그러니 나의 치유함을 열방에 가져가거라.

그들의 깨어진 심령들을 사랑으로 싸매주어라.


Stretch my hand throughout creation

with this message of my love.

모든 피조물에게 나의 손을 뻗어라.

나의 사랑의 이 메시지와 함께...


that I came to bring light in your darkness

and bring joy where there once was pain.

내가 너희의 어두움에 빛을 가져다 주기 위해, 그리고 

한때 고통이 있던 곳에 기쁨을 가져다 주기 위해 왔다고... 


Take my healing to the nations.

Bind their broken hearts with love.

나의 치유함을 열방에 가져가거라.

그들의 깨어진 심령들을 사랑으로 싸매주어라.


Stretch my hand throughout creation

with this message of my love.

모든 피조물에게 나의 손을 뻗어라.

나의 사랑의 이 메시지와 함께...


that I came to bring light in your darkness

and bring joy where there once was pain.

내가 너희의 어두움에 빛을 가져다 주기 위해, 그리고 

한때 고통이 있던 곳에 기쁨을 가져다 주기 위해 왔다고... 


Take my healing to the nations.

Take my healing to the nations.

Take my healing to the nations with love.

나의 치유함을 열방에,

나의 치유함을 열방에,

사랑으로 나의 치유함을 열방에 가져가거라.


 예전에 참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나 밤에 숙소에서 추억의 그 곡을 찾아 오랜만에 듣게 되었습니다.  그 때... 가슴 속에 주체할 수 없는 아픔이 밀려들어오기 시작하며 저는 오열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노래의 한줄 한줄에서 그 분의 심정이 물결과 같이 전해져 왔고 저는 그 날 늦게까지 밤을 눈물로 적셔야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만국기가 꽂혀져 있는 Plaza of the Nations (열방의 광장)을 둘러보러 나갔습니다.  지구상에 있는 모든 나라...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많은 나라들이 있었고 각 나라이름 위에는 그 나라를 향해 그 분의 심장을 들고 나간 사람들이 떠나며 남겨둔 돌멩이들이 다소곳이 놓여 있었습니다.  일주일간을 무덤덤하게 지나쳐 왔던 그 장소를 천천히 걸어 돌아봤습니다.  그곳에서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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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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