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으로만 차린 생일상
밤(Chestnut)으로만 차린 생일상
오늘은 아내의 생일이다. 기념으로 뭘할까 하다가, 몇 주전 말을 듣고 찾아 갔다 철이 일러 헛탕친 적이 있던 30여분 떨어진 거리의 밤나무 숲에 (22322 Skyline Boulevard, Palo Alto), 하루 휴가를 내고 함께 가 밤을 줍고 왔다.
나무 수는 기껏 15 여 그루 남짓하지만 100여년 묵은 것들이라 canopy가 100ft정도에 달하는 큰 밤나무들이 많은 밤송이를 주렁주렁 달고 있어 족히 11월 말까지는 수확이 가능할 듯 보였다.
많이 사면 좀 싸게 주지만 $5.25/lb라 두어 시간동안 함께 주은 것을 계산하니 제법 큰 액수가 나왔다. 그래도 아내는 grocery에서 $3.99/lb 주고 묵은 밤 사면 보통 20~35%가 벌레 먹고 곰팡이 슬어 버리는 것을 생각하면 그리 나쁜 가격은 아니라고 하고, 또 무엇보다도, '밥'은 별로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밤'이나 '감'을 밥먹듯 먹는 것을 즐겨하는 아내의 생일 기념으로 왔기에 망설임 없이 계산을 하고 돌아오는데, 아내가 오늘은 밥과 cake대신 밤으로만 배를 불려보고 싶다고 한다.
말로는 '나는 cake보다 밤이 훨씬 좋아'라고 하고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들었지만, 그래도 cake하나 없는 초라한 생일상은 좀 그렇지 않나... 생각이 들어 망설이는데 계속 아내가 몇번이고 cake사지 말라고 다짐해서 그냥 그 말을 일단은 따랐다.
집에 돌아와, 냄비 두개에 밤을 삶고, 또 두어 공기 분량은 불에 굽고 해서 상에 쌓아 놓고, 중간에 '큼지막한 초' 한개 놓고 "Happy Birthday" 노래를 아이들과 함께 부르고 난 뒤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지 못할 때까지 밤을 까고 또 까 먹으면서 아내의 얼굴을 살폈다. 그랬더니 자신이 좋아하는 밤을, 그것도 막 수확한 것을 그득 삶아 놓고 먹는 모습이 무척이나 만족스럽게 보였고 말로도 '너무 행복하다'고 연신 말하며 매년 생일마다 밤 주으러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올해 아내의 생일 상은 밤으로만 차린 무척이나 소박한 상으로 얼렁뚱땅 넘기고 말았다.
그리고 새삼 느꼈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투자 액수와 그리 큰 correlation이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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