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가을엔 날씬 했었네
어느덧 또 가을이 왔네요. 타계하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생전 요양하고 있던 스코틀랜드 밸모럴성(Balmoral Castle)을 떠나 지난 주말인 9월 11일에 에든버러(Edinburgh)의 홀리루드 궁전(Palace of Holyroodhouse)으로 운구되었다는 기사가 발표되었습니다. 제가 지금 나이의 딱 반만 먹었던 1994년의 오늘, 생전 처음으로 가본 유럽의 도시가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였습니다. 에든버러 대학(The University of Edinburgh)에서 열리는 학회(conference)에 논문 발표를 하러 갔지요.
'세상 맛 없는 음식'이던 풍문과는 달리 '세상 맛만 좋던 영국 음식'들을 매일 3끼 부페로 배불리 먹은 즐거운 여행이었네요. 2~3일 지나니 탄산수(sparkling water)아닌 맹물이 그리웠던 것이 유일한 아쉬움이었습니다.
엄청 빡빡한 일정으로 돌아가는 미국 학회와는 달리, 오후 3~4시면 일정이 다 끝나서 에든버러 성도 구경하고, 점포들/식당들 다 일찌감치 문 닫은 뒤의 (5시만 되면 상당수가 닫았습니다) 을씨년스럽게 비 내리는, 캄캄하고 으스스하고 음산한 시내 뒷골목을 돌며 "유령 & 흡혈귀 관광 (Ghost & Vampire Tour)"도 해 봤습니다. 성의 경비 서는 훈남들, 전통 치마 입은 아재/할배들과 사진도 찍고요.
(여담: 스코틀랜드 전통 치마 안에는 아무 것도 안 입는다고... 😵)
하루는 '쉐줄(schedule을 이렇게 읽음)'에서 휴식 시간 다 없애고 일찍 마친 후 기차 타고 고성(古城)에 가서 근사한 저녁 식사도 대접 받았습니다. 인터넷이 일반화 되기 전이라 사전 지식 없이 한국 가을 날씨 생각하고 얇은 잠바(jacket) 하나 달랑 입고 갔는데, 얼어 죽을 것 같은 기온에 이틀간 떨다 결국 현지에서 양가죽 잠바를 한벌 샀네요. 당시 한국 대기업들은 보통 일당(per diem)으로 출장 비용을 줬고, 이 학회는 3끼를 다 제공했기 때문에 식비 쓸 일이 없어 잠바를 망설임 없이 살 수 있었어요.
생전 처음 가 본 유럽이라서 학회를 마친 후 주말에는 런던(London)으로 이동해서 하이드 공원 (Hyde Park), 대영 박물관 (The British Museum), 버킹검 궁 (Buckingham Palace), 템스 강 (River Thames) 주변을 구경했습니다. 도심에 거대한 녹지의 멋진 공원이 있는게 제일 부러웠네요.
아래 사진은 웨스트민스터 사원 (Westminster Abbey) 앞에서. 지금은 성공회 성당(cathedral)이지만 처음 시작이 수도원(abbey)이었던 곳이라서 계속 그렇게 부르고 있다고 합니다. 영국 왕들의 대관식, 결혼식, 장례식 등 주요 행사가 열리는 곳이며, 잉글랜드와 영국 왕의 장지(葬地)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의 장례식도 이곳에서 9월 19일에 치러질 예정이라고 합니다.
Contax 167MT + Carl Zeiss Planar 50mm F/1.4 C/Y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비가 내리면..
나를 둘러싸는 시간의 숨결이 떨쳐질까
비가 내리면..
내가 간직하는 서글픈 상념이 잊혀질까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음.. 잊혀져 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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