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그마 故안수현: 개입(介入)
#Ⅰ 궁금한 일이었다.
8층 내과병동 특실 중 한 병실. 그 병실 문 앞에는 날마다 다른 내용의 성경구절 또는 읽을거리가 바뀌어 내걸려 있었다. 보기 드문 일이어서 나와는 상관 없는 과 환자인데도 호기심은 모락모락 피어올라 결국 병실을 담당하고 있는 간호사에게 어떤 환자가 입원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전해들은 이야기는 대장암 환자인데 미국에서 치료를 시도했지만 별 차도가 없어 다시 국내로 들어오신 분이라는 정도였다. 현재는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가 좋지 않아 대증적인 치료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결국 손쓰기는 이미 늦은 말기 암 환자라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바쁜 병원 일정으로 그 병실 앞을 지나쳐 가는 중에도 꾸준히 연재되는 글귀를 그냥 지나치기란…. 결국 나는 며칠 후 책 몇 권과 카세트 테입을 챙겨서 저녁 늦게 그 병실 문 앞에 섰다.
혹시나 싶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넓은 특실 한 편에 환자가 힘없이 누워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 곁에는 딸인 듯한 자매가 깜빡 잠들어있었고, 저만치 소파에는 아주머니 한 분이 곤히 잠들어 계셨다. 눈이 움푹 패인 환자는 흰 가운을 입은 낯선 사람의 방문을 경계할 만한 힘도 모자라 보였다. 나는 나직이 병실 밖에 내걸린 말씀을 읽고 한번 들르고 싶었노라고 찾아온 이유를 말한 뒤 챙겨온 책과 테입을 전하면서 함께 짤막히 기도했다.
다음날, 병실 보호자가 나를 만나보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어제 소파에서 주무시던 그 아주머니였다. 내가 궁금해했던 그 성경구절은 바로 아주머니 작품이었다. 남편을 통해 어젯밤 내가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윽고 아주머니의 입을 통해 듣게 된 이 가정의 이야기는 마음 아픈 것이었다.
환자는 역량있는 사업가였고, 아주머니는 모 대형병원에서 오랫동안 약사로 일한 경력이 있는 분이었다. 부족함 없는 가정환경에 두 딸 또한 잘 자라주어 차례로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고, 교회에서도 열심히 봉사하던 그 다복한 가정에 고난이 찾아든 것은 한해 전이었다고 한다. 혈변(hematochezia)이 있어 시행한 대장내시경에서 직장암이 발견된 것이다. 국내 유수의 병원을 찾아 절제수술을 받았으나, 병은 너무 빨리 재발했다. 환자와 가족은 이 병원의 치료방향과 방법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확신을 가졌고, 맏딸이 국내외를 수소문해 해외에서 항암치료를 받아보자는 대안을 내놓았다. 이 과정에서 아주머니는 깊은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정신과에 입원하게 되었고, 대신 맏딸이 아버지를 모시고 미국으로 치료를 위해 길을 떠났다.
MD 앤더슨 병원을 찾은 환자는 새로운 항암치료를 시행받았으나 병의 경과를 돌이키지는 못했다. 별달리 선택할 길이 없는 상황에서 의료진은 귀국해 대증적인 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고, MD 앤더슨 병원을 거쳐간 바 있는 한국의 의료진을 소개해줘 우리 병원을 찾게 된 것이다.
아주머니는 비록 의료진이 남편의 병세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남편을 일으키실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또 남편이 미국에서 치료받는 기간동안 자신 또한 치료받느라 남편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절절했다. 맏딸이 아버지의 소소한 부분까지 챙기기엔 어려웠을 것이라고 하면서 이제는 자신이 남편 곁에 있으니 가장 잘 간병할 수 있노라고, 그래서 결국엔 침상을 훌훌 털고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그 확신을 감히 부인하기는 어색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일단 그녀의 믿음에 힘을 실어주면서 함께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후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방에 자꾸만 화분이 하나둘 늘어갔다. 남편이 워낙 화분을 좋아하고, 또 맑은 공기를 많이 마시면 몸에도 좋을 거라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환자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현재 환자상태와 앞으로의 경과에 대한 의료진과 아주머니의 의견에는 계속 현격한 차이가 있었고, 게다가 병실을 맡은 간호사와 사소한 말다툼까지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의문이 풀리기 시작한 것은 환자의 맏딸과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부터였다.
#Ⅱ 조심스럽게 부모님 사이에 엿보이는 불편함의 이유가 무언지를 질문하자, 그녀는 입을 열어 숨겨져 있던 또 다른 진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교회 일이다 직장이다 하면서 늘 집안을 돌보지 않았어요. 청소든 부엌 일이든…. 저는 일찌감치 홀로 서는 법을 배워야만 했지요. 공부도 알아서 했고 동생도 제가 돌봤구요. 아버지 말상대도 되어 드렸지요. 어머니는 언제나 소녀 같았어요.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시는 거죠. 하지만 자식들이 당신 원하는 수준에 못 미치는 걸 부끄러워 하셨죠. 입학하고 나서 과(科)를 바꾸게 된 것도 다 엄마 성화 때문이에요. 그러던 중 아빠가 암에 걸렸어요. 엄마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죠. 아빠를 도와주기는 커녕 자기 앞가림도 하지 못하셨어요. 자기를 추스르지 못하더니 결국 우울증으로 입원까지 하게 됐구요. 아빠는 제가 살려야 했어요. 엄마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이 안 됐고,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전 학교를 일단 휴학하기로 했지요. 모든 자료를 뒤졌고, MD 앤더슨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하자는 결론과 모든 비행기 일정, 치료 진행과 간병 모두 제가 혼자 했어요. 그런데 귀국하자 엄마는 저보다 엄마가 아빠를 더 잘 알고 잘 돌볼 수 있다고 우기면서 제가 간병하는 하나하나를 문제삼기 시작했어요. 우울증에서 차츰 벗어나게 되자 이제는 아빠를 내게 뺏겼다는 생각이 엄마를 사로잡은 거에요. 아빠는 미국에서 가망이 없다는 선고를 받고 돌아오셨어요.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해 다시 병원을 찾게 된 건데, 엄마는 모든 걸 부인해요. 그저 아빠는 나을 거라는 이야기 뿐이에요. 저도 하나님을 믿지만, 엄마의 저런 반응은 아빠까지 안정을 찾지 못하게 하고 있어요. 전 정말이지 저런 엄마를 엄마로 인정할 수가 없어요.”
아주머니는 점점 자신의 생각과 남편의 병세가 회복되면 하고 싶은 일들을 이전보다 더 스스럼없이 내게 털어놓았다. 병실을 찾아갈 때마다 아주머니는 여전히 환자 곁에서 희망찬 이야기를 쏟아놓았지만, 환자와 맏딸의 굳은 얼굴은 풀릴 줄 몰랐다. 나는 계속되는 만남을 통해 환자와 맏딸, 그리고 아주머니 각각과 어느 정도의 신뢰를 쌓아갔고, 그들 모두에게 좋은 의사로 남아있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일그러진 관계를 바라보면서 내게는 그 관계 사이에 개입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환자와 가족만의 개인 사생활이 아닌가? 내가 그 가운데 개입하는 것은 부질없는 욕심 혹은 교만이 아닐까? 하지만 내버려두는 것도 책임을 유기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하는 가운데 환자의 상태는 차츰 악화되고 있었다.
나는 맏딸에게 들은 이야기 내용은 모른 척 하고, 아주머니에게 자녀와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조심스러운 질문을 던져보았다. 역시 아주머니는 문제가 뭔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맏딸은 그저 알아서 잘 커준 자녀 중 하나이며, 현재는 자신에게서 남편을 소원(疎遠)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일종의 경쟁상대였다. 딸아이의 갈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나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다시 내게 - 당시로는 유일한 환기구였을 듯 하다 - 남편과 맏딸에 대한 서운함과 믿음 없음을 이야기하면서 여전히 자신이 생각하는 이후로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이야기했다. 들어주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 듣기 시작한 지 얼마쯤 지나, 나는 아주머니의 그릇된 영적 환상(spiritual fiction)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 더 필요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원만한 관계가 깨어질 위험을 무릅쓰고, 한 가족의 사적(私的)인 관계에 개입해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병실 앞에서 아주머니와 다시 마주치게 되었다. 마침 환자 병실 앞에 위치한 의대생 실습실이 비어있는 차여서 면담을 하기에는 알맞았다. 결국 나는 모험을 하기로 했다.
#Ⅲ “그런데 사모님, 그런 일들에 앞서서 먼저 하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큰 따님과 어머님과의 관계가 먼저 개선되어야 합니다. 두 분이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풀어가기 시작해야 갈등이 해소될 것이고, 제 생각에는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예상은 했지만, 아주머니의 얼굴은 금세 굳어지더니 흙빛으로 변했다. 보이고 싶지 않던 치부를 들킨 듯, 그녀는 싸늘한 목소리로 짤막하게 대답했다.
“선생님, 너무 깊이 아신 것 같군요. 앞으로 더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녀는 서둘러 방을 떠났다.
이후로 한참 대화 없이 서먹서먹한 시간을 보냈다. 급속도로 냉각된 관계를 바라보고 있기란 편치 않았다. 맏딸도 여간해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순환근무 일정상 나 또한 곧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야 했다. 병원을 떠나기 전, 병실을 다시 찾았다. 병실에는 환자분 혼자 계셨다. 이 모든 어려움과 갈등 속에서 감사하게도 그에게는 평안함이 있었다. 그날 밤 찾아와 준 내게 감사하다면서 마치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신 줄 알았다는 농담까지 곁들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 생의 끄트머리에 서있음을 말없이 공감한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 남은 생을 의탁하는 기도를 드리고 헤어졌다. 그런데, 복도에서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조금은 어색해했지만 애써 웃으며 딸아이와 대화를 좀 해봤노라고 하셨다. 잘 화해했다는 이야기를 다 믿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관계개선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감사할 이유는 충분했다. 병원을 옮겨가는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음은 물론이다.
20여일 후, 일이 있어서 병원에 들렀다가 그 환자의 병실을 찾아갔다. 병실은 이미 비어 있었다. 지난주에 임종하셨다고 한다. 방안 가득 놓여있던 큼직큼직한 화분이 사라진 병실은 더 쓸쓸해 보였다.
석달 쯤 지나 수첩에 적혀있던 아주머니의 연락처를 찾은 나는 천천히 다이얼을 눌렀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맏딸이었다. 나는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한 후, 맏딸에게 그 이후에 가족들이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했다고 말했다. 맏딸은 담담히 그 이후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어머니와 대화를 시작했노라고, 아직 다는 아니지만 화해하게 되었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기로 했다고 말이다. 이번 학기에 복학하게 되어 다시 학업을 시작했고, 동생과 함께 교회에도 잘 다니고 있다고 한다. 많이 걱정하고 기도했는데 감사한 일이라고 답하며 앞으로 더욱 꿋꿋이 앞길을 헤쳐나갈 것을 당부하고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일말의 근심을 덜어내면서 연락처를 적었던 종이를 천천히 찢어냈다. 주여, 그 가정을 돌보아 주소서.
적절한 시기와 행동이었는지는 아직 자신이 없다. 하지만 그 경험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어떤 환자에게 있어 육신의 질병은 빙산의 일각(一角)일 뿐이며, 그 수면 아래에 도사리고 있는 더 큰 아픔을 볼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용기있게 문을 두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마 그 환자와의 만남에서 그 선을 넘어서지 않았다면, 나 또한 죽어가는 말기 암환자를 그저 바라보며 무력감에 빠지는 한 의료인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사이에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은 환자가 전인격적인 존재임을 애써 부인하며, 그네들의 삶에 깊이 관여하기를 기피하는 불완전한 치유자로 너무 일찍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육신의 불편함보다 더 깊은 아픔으로 신음하는 우리 이웃들, 환자들. 한 사람의 작은 관심과 개입이 때로는 모든 장벽과 불신의 벽을 허무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걸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산다.
오늘도 쏟아져 나오는 뉴스와 온갖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느새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세상에 압도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 불확실함에 맞서 자신의 앞길을 설계하고 꾸려가기에 바빠 “내가 여기 있음을 누군가 알고 있나요?”하고 애타게 부르짖는 그 눈빛을 날마다 놓쳐버리고 등 떠밀어 보내는 우리.
의료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나의 부르심은 무엇인가? 어제 일하는 모습에 도통 의욕이 없어 보여 따끔하게 질책했던 후송계 병사의 어머니가 만성 신부전(CRF)으로 수년 째 혈액투석 치료 중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나는 언제쯤 제대로 눈을 뜨고 볼 수 있으려나.
대상에 ‘개입-안수현’
지난 2003년 말 공모한 제 3회 한미수필문학상 대상에 안수현(육군28사단 의무대 군의관)선생의 <개입>이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총 88편이 접수된 올해는 작년보다 투고작 수는 줄었지만, 전체적으로 수준이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심사를 맡은 심사위원들은 투고작 수준이 급상승해 의료현장이라는 영역에서의 체험을 뛰어넘어 일반적 수필로서도 그 완결성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말로 전체적인 수준 향상에 대해 언급했다. 심사는 2회에서도 심사를 맡은 바 있는 황동규(심사위원장, 시인,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정영문(소설가, 번역가), 손정수(문학평론가)등 세 명이 맡았다.
최종심사대상에 오른 작품은 <개입>외에 김명주(충남 부여 김명주가정의학과의원 원장)선생의 <거지와 의사>, 채명석선생(부산당감제일외과의원원장)의 <겨울나무>, 박성근(강북삼성병원 내과 전공의)선생의 <이별> 등 3편으로 대상 못지 않은 수준을 보여주었으나, 심사위원들은 환자와의 관계에서 적정한 거리 유지와 어떤 식으로 든 그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는 의사의 자기고민을 그려낸 <개입>에 대상을 안겨주었다.
장려상은 정만진(경북영천정만진소아과원장)선생의 <소리없는 요들송>, 최충언(부산 마리아수녀회구호병원 외과과장)선생의 <가난한 향기를 풍기는 사람>등 10편이 선정됐다.
시상식은 2004년 2월 7일 오후 5시에 한미파크홀에서 열리며 대상에는 상금 500만원과 상패가, 우수상 3인에게는 상금200만원과 상패, 장려상 10인에게는 상금 100만원과 상패가 각각 수여된다.
이 상은 환자-의사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본지가 제정하고 한미약품이 후원하는 상이며, 올해로 3회를 맞았다.
김민아 기자
licomina@fromdoctor.com
수상소감
안수현(31·육군 28사단 사단의무대 군의관)
이것은 나에 관한 것이 아니다.
-릭 웨렌
수상 통보를 받고 한참동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병사들을 후송하기 위해 들렀던 군 병원 게시판에서 우연히 공지를 보고 마음이 동하기는 했지만, 수상을 의도하고 쓴 글도 아니었거니와 한 환자의 만남(communion)을 적은 이 글이 다른 선생님들의 쟁쟁한 글에 비해 한참 추레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 소중했던 경험이었고 글의 실마리를 만 3년이 지난 올해 가을에야 담담히 풀어낼 수 있었기에, 수상의 가능성 여부에 관계없이 감사함과 자족함으로 글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무엇을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신 한 인격과의 만남에 반응했던 흔적이기 때문이다.
흰 가운을 입은 의료인이 되어 가장 감사한 것은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위로자가 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필수적인 요소는 허리를 굽히고 자신의 모습을 낮추며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내게 책을 통해 이것을 가르쳐 준 설대위 선교사(David Seal, 前 예수병원장)와 폴 투르니에 박사, 헨리 나우엔 신부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의사의 자세와 술기를 체득하게 해 주신 고대병원의 여러 선생님들과 그 고단했던 수련과 파업의 시기를 함께 지샜던 동료들, 그리고 함께 환자를 돌보느라 애쓰며 동반자가 되어준 여러 간호사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손대야 할 구석이 수없이 많은 글에 손을 들어주신 심사위원들께도 감사드린다. 부모님이 내게 물려주신 신앙의 유산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소망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Jesus, be the Centre.
'이런 것은 나누고 싶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A Friend (0) | 2008.08.22 |
---|---|
반복된 인생살이가 하나님 나라의 동력으로 (0) | 2008.06.24 |
교회문제: 우찌무라 간조 (0) | 2008.02.25 |
가정 (家庭) (0) | 2007.01.02 |
조선의 부흥 (1) | 2004.09.02 |
스티그마 故안수현: Trust Me (0) | 2001.12.16 |
스티그마 故안수현: 2년만에 만난 백혈병아이 은진이 (0) | 2000.11.23 |
스티그마 故안수현: 소명 (0) | 2000.10.21 |
스티그마 故안수현: 주님을 등에 태운 나귀 새끼로 (0) | 1999.07.16 |
스티그마 故안수현: 나의 '본'이 된 선배와 다시 만나다 (0) | 1997.03.25 |
댓글
이 글 공유하기
다른 글
-
가정 (家庭)
가정 (家庭)
2007.01.02 -
조선의 부흥
조선의 부흥
2004.09.02 -
스티그마 故안수현: Trust Me
스티그마 故안수현: Trust Me
2001.12.16 -
스티그마 故안수현: 2년만에 만난 백혈병아이 은진이
스티그마 故안수현: 2년만에 만난 백혈병아이 은진이
2000.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