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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iritual Fitness

Pattern | 1/1600sec | F/4.5 | 0.00 EV | 24.0mm | 2005:06:03 04:05:18


동트기 전의 이른 새벽인데, 나와서 달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몸매를 유지하는 것이 공짜로 된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육의 건강에 대한 것이지만, 그 원칙을 곰곰히 생각해보면 기도 생활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내용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 매일 꾸준히 같은 시간에 하는 것이 불규칙적으로 가끔 하는 것보다 덜 힘들다
  • 시간 확보가 일차 관건이다
  • 따라서 꾸준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 전날부터 미리 준비하고 방해가 되는 것들은 절제하는 습관이 전제되어야 한다
  • 좋은 음식을 가려 먹는 것이 중요하다
  • 말로만 하는 것은 절대 소용 없고, 매일 매일 실제로 해야만 효과가 있다
  • 다른 방법 (약, 수술)으로 대체가 불가능하다
  • 설령 "요만큼만 해도 효과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짧은 시간만 쏟는다 할지라도, 한 두달 일 이년 지나고 나면 아예 하지 않은 사람과는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 평소에 쌓인 내공의 차이는 실제의 극한 상황에서 여실히 극명하게 드러난다
  • 어릴때는 꾸준히 하지 않아도 보통 크게 문제가 없지만, 나이가 들고나서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는 치명적인 병이 반드시 생긴다
  • 과거에 쌓은 것이 도움이 분명 되지만, 현재에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건강에 이상이 오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 몇시간에 걸쳐 설명하는 것은 조금만 공부하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지만, 몇시간에 걸쳐 실제로 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 그래서 어떻게 하는가, 유익이 무엇인가 아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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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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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점에서 다시...


"성경적인가 전통적인가?" 나침반이란 출판사에서 종종 내는 series책의 제목 suffix이다.  "당신의 자녀교육: 성경적인가 전통적인가?"  "당신의 교회생활은 성경적인가 전통적인가?"  "당신이 믿고 있는 교리, 성경적인가 전통적인가?" 등등.

오늘날 하루가 멀다하고 여기 저기서 터져나오는 교회의 일그러진 모습과 교인들간의 우격다짐들은 궁극적으로 교회가 사람들을 "성경적으로 헌신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닌 "전통적으로 길들여진 종교인"들로 양성해온 결과라고 생각된다. 

오랜 신앙 생활의 연륜이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신앙을 쌓아왔던 교단, 교회, 그리고 목회자의 영향이 클수 밖에 없다.  특별히 나를 감격하게 했던 부분, 내가 땀과 눈물을 쏟으며 헌신해왔던 부분, 그래서 나의 삶을 던져 헌신해왔던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재조명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나아가 그것을 부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그것은 당사자에게 자신의 일부를 잘라내는 듯한 엄청난 고통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 고통을 회피하고 싶은 나약함 속에서, 나의 삶이 '그래도' 그리 심각히 비성경적이지는 않다는 얄팍한 안위로 도피하곤 하며, 그리고 그것이 반복될 때마다 나는 또 하나의 두꺼운 회칠로 나의 내면을 가리우게 된다.

"배우고 확신한 바에 거하는 것"이 중요하면서도, 성경을 묵상하고 연구할 때마다 매번 나의 생각을 ground level로 다시 돌려놓고 시작하는 것이 없다면, 나는 내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조명하심과 속삭임에 주목하는 대신 이미 익숙한 교리를 재확인하며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 죽음의 길로 점점 걸어들어가고 말것이다.

오늘 나의 나됨을 있게 한 교회와 공동체와 목회자와 선배와 친구와 책과 체험을 겸허히 그리스도의 말씀 앞에 내려놓고 오늘도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 그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지만,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 (고린도후서 3:6)

"너희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있는데,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증언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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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ebenezer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9.03.26 12:11 신고

    의미심장한 성찰과 더불어 새해를 시작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시면 어떤 말씀들을 해주실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근데 아직까진 계속 궁금하기만 하네요.. ^^;

스스로 준비해 먹을 수 있도록


많은 타 종교가 그렇듯 현대의 기독교 역시 소위 성직자들에게 크게 의존하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초대 교회에서는 '사도'들에게, 그 후로는 '사제'들에게, 그리고 모든 사람이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외친 종교개혁 이후에도 여전히 (바로 그 개혁을 이끈) 마틴 루터와 장 깔뱅과 같은 '설교자'들에게 의존해 왔고, 지금은 그 뒤를 이은 수 많은 '목사'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현대 교회의 모습을 비유로 말하자면, 마치 한사람의 요리장이 열심히 준비한 요리를 먹으러 일주일에 한번 몰려드는 eating club이라고 할까.  요리장은 매주 주어진 식재료를 이렇게 요리하고 저렇게 요리해서 고객들의 혀를 만족시키고, 고객들은 그 요리의 맛에 따라 돈을 지불한다.  그러다가 음식 맛이 만족스럽지 않거나, 음식에서 벌레가 나왔거나 하면 요리장을 갈아치우기도 하고, 다른 club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다른 club의 음식맛은 어떤가 기웃거리기도 하고, 매스컴을 탄 유명한 요리사 초청 dinner party에 참석하기도 한다.  그리고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 파는 포장식품을 사서 열심히 먹기도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와 직접적인 소통을 원하신다.  그렇다면, 교회의 리더들이 해야할 일은 궁극적으로 모든 믿는 사람이 주어진 식재료를 가지고 자신의 식사를 매일 준비해 먹어 자립할 수 있도록 독려하고 훈련시키는 일이 아닐까.

식재료를 먹을만한 음식으로 만드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번거롭고 어려운 일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타인의 만들어준 음식에 의존한다면 그 음식이 건강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맛을 내기 위해 인공 첨가물 심지어는 유해 첨가물을 넣었는지 알 길이 없다.  맛 만을 위해 만들어지는 음식은 영양분포상 불균형이 될 수 밖에 없기에 편식을 가져오며 궁극적으로 비만과 성인병의 원인이 된다.  또 eating club이 없는 곳에서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자신의 recipe를 공개하거나 나아가 새로운 recipe를 개발하도록 격려하는 것을 심히 꺼려하며, 교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제공하는 요리의 맛에 감탄하여 의존하고, 만족하고, 심지어 중독되도록 유도해 가고 있지 않는지 깊게 생각해 봐야할 것이며, 평신도 사역자들 역시 동일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할 것이다.

철저한 종속관계에서는 스승보다 나은 제자가 나올 수 없다.  단 한사람이라도 나를 뛰어 넘는, 나보다 훨씬 하나님과 친밀하고 충성된 자를 배출하기를 우리 모두가 소원하지 않는다면, 기독교의 미래는 점점 어두울 수 밖에 없지 않을까.


Posted by 더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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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올때

발자취... 2008.09.11 13:04

그 날이 올 때


오늘은 7년전 전세계를 경악하게 한 세계무역센터 테러가 일어났던 9월 11일이다.  미국 곳곳에서 추모 집회가 열리고, 그 날 가족이나 아끼는 사람을 잃었던 사람들이 모여 그리운 마음으로 눈시울을 적신다.  아직 그리 긴 세월을 살았다고는 생각지 않는데, 내 곁을 떠난 사람들이 적지 않다.  99년에 암으로 타계하신 어머니 이외에도, 동갑내기 친구도 몇을 떠나 보내야 했고, 또 후배들도 있었다.

삶의 종말은 누구에게나 불현듯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그 날이 왔을 때 나는 과연 그 분 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있을 것인가?  그리스도를 향한 불타는 가슴으로 살아가던 꽃 같은 시절에 부름을 받은 후배가 있다.  얼마전 그가 몸담고 있던 CMF에서 그의 유고집을 발간하기로 했는데, 내가 만난던 그에 대한 모습을 적어보내달라는 요청을 받고 이렇게 써서 보냈다.

      "세상적으로 볼 때 우둔한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결코 뛰어난 청년은 아니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사모했지만 성경지식이 출중한 것도,
      음악을 사랑했지만 음악적 재능이 뛰어난 것도,
      환자를 헌신적으로 돌봤지만 의술이 탁월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청년의 마음 속에 그 분을 사랑하는 마음,
      주위의 평범한 사람들을 쳐다 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배우는 겸허함,
      그의 곁에서 힘들어하는 지체들을 위로하고 세워주고자 하는 긍휼의 마음,
      남의 유익을 위해서 가진 소유를 아낌 없이 내어 주고자 하는 베풂의 삶,

      무엇보다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속에 있는 영적 공허함을 발견하고
      다가갈 수 있는 청결한 영을 허락하셨습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가 더 이상 이 땅에 있지 않음을 인해 가슴 아파 하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는 정말로 복 있는 사람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나도 그와 같이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살아가는 동안 부름을 받고 싶다.  정말로 그러고 싶다.

Posted by 더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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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리 마태의 일기

묵상 2008.07.24 23:17

세리 마태의 일기


     마태복음 9장을 묵상하다가 문득 부분이 바로 성경의 기록자인 마태 자신의 일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다가 왔고, 그가 어떤 심정으로 자신과 예수님과의 만남을 내려
     
갔을까를 상상해 보게 되었다.  화법으로 적어 내려가다가, 다시 마태의 화법으로 
     바꾸어 적어본다.

 

MM X A

요즘은 내가 세리가 것이 정말 후회스럽다.  처음에는 나쁜 일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약소국가가 강대국에 기대어 사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생각했고, 로마제국이 보여준 속국에 대한 개방적 관용성에 깊이 감동도 받은 있어, 넓은 의미에서 볼때 제국의 질서와 문화를 낙후된 우리 나라에 도입하는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명분 없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타락할 대로 타락한 제사장들의 교권주의도 젊은 혈기에 뜨고 봐줄 없었기에 그에 대한 반발로 나는 세상의 주류 세력으로 자리잡아 식민지 출신도 출세하고 있다는 것을 당당히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축적한 부의 규모에도 불구하고 나를 부러워 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없다.  친구들도 차례대로 나를 떠났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아예 나를 창녀나 죄인과 동격으로 취급한다.  하긴, 그동안 내가 살아온 꼴을 보면 그런 취급을 받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  정말로 벗어나고 싶다.  그러나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MMX B

요즘 엄청난 규모의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것을 종종 본다.  세어 수는 없지만 많을 때는 성인 남자들만해도 족히 몇천여명은 듯하다.  소문에 의하면 예수라는 사람이 사람들 병을 고치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전파하고 다닌다고 하고, 사람이 바로 예언자들이 약속한 나라의 구세주라고 한다.  문둥병이건 것이건 고치는 병이 없고, 귀신 들린 자들도 손만 얹으면 즉시 낫는다고 한다.  구세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한 사람인 만은 틀림이 없는 같다.  하지만, 나와는 관계 없는 일이다.  아니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사람이 정말 구세주라면 로마제국을 무너뜨리고 민족을 구할테고, 그러면 같이 로마제국에 붙어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리에서 돌에 맞아 죽기 십상이니까.”

 

MMX C

오늘 갑자기 사람들이 내가 근무하는 세관 앞에 있는 집으로 몰려들었다.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라는 사람이 집에 방문했다고 한다.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몰렸는지 디딜 자리도 없고, 들어갈 틈새 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조금 있으니까 갑자기 명의 사람들이 지붕에 올라가더니 기와를 뜯어내고 위에서 중풍병자를 침상째 내려보낸다.  그러더니 얼마 안있어 사람들의 환호 소리가 들리고 이어 아까 중풍병자가 침상을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닌가!  놀랍다!  정말 놀랍다!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정말 구세주인지도 모르겠다!

 

어안이 벙벙했다.  여러번 듣기는 했어도 원래 사람들은 과장을 많이 하니까 반신반의했는데 내가 보는 앞에서 침상에 누워 지붕에서 내려간 중풍병자가 갑자기 일어나 걸어나오다니!!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더니 군중들 사이를 헤치고 나오는 사람이 있다.  주위 사람들의 행동으로 예수라는 사람이 틀림이 없는 같다.  ?   그런데 그가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온다.  이쪽으로 오는 것일까?   그는 곧장 앞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나를 따르라.  정말로 내게 말한 것인가?  세리인 ?  사람들이 경멸하고 싫어하는 ?  로마제국의 충실한 앞잡이 ?  지금 나보고 자신을 따라오라고?  꿈을 꾸는 것인가 싶었다.  그러나 말로 설명할 없는 기쁨과 함께 불가항력적으로 나는 일어나 내가 평생을 일해 세관을 버려두고 그를 따라갈 밖에 없었다.

 

오늘 나는 그와 제자들을 집으로 초청했다.  같은 세관에 근무하는 세리들도 불렀고 외에 주위에 아는 사람들을 불렀다.  예수 그를 따라다니던 무리들도 상당수 함께 왔다.  식사를 하는데 바리새인들이 눈에 뜨인다.  나를 개처럼 취급하는 바리새인들.  그들만의 화려한 옷차림과 떠는 거드름때문에 아무리 많은 사람 중에서도 그들은 금방 눈에 뜨인다.  그들이 예수라는 사람 앞에 서더니 거만한 목소리로 도전한다. “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개인적으로 이런 일을 많이 겪어 이미 익숙한 나지만 끓어 오르는 분노를 참기 힘들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집에 와서, 내가 초대한 손님 앞에서 이런 식으로 집주인에게 모욕을 주다니...

 

그런데, 예수라는 사람이 생각지도 않은 말씀을 하신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워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같은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로마제국의 앞잡이인 나를 불러 구원하고 해방시키러 왔다고!”

 

NNY D

최근 나는 40여년 전에 있었던 나의 그리스도 예수와의 만남에 대해 기록을 시작했다.  나이가 이미 많아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나에게 있어 아마도 일은 분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남겨줄 있는 나의 마지막 선물이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제까지 산에서 주신 가르침에 대한 기록과 가다라 지방의 돼지떼에 벌어진 일을 마칠수 있었고 오늘은 드디어 분과 내가 처음 만나던 날에 대해 기록을 시작할 있었다.  수십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일은 항상 머리와 마음에서 지워지지도 않고 마치 어제 일과 같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기록을 하면서 나는 터져나오는 오열을 감당할 없어 여러번이나 쓰기를 멈춰야만 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하던 때에…. 주님께서는 나를 창피하게 여기시지 않으시고, 오히려 같은 사람을 위해서 오셨다고 당당히 편이 되어 주셨다……  그리고나서 3년뒤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같은 죄인을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시고, 죽어주셨다.…….   바리새인들 앞에서 말씀하셨던대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병고침의 기적이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풍랑을 잠잠케하신 그분의 권세가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죽은 자를 살리신 분의 능력이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게는 아무도 좋아하지 않던 내게 직접 찾아와 나를 따르라 말씀하신 , 같은 죄인을 위해 오셨다고 말씀해 주신 것보더 중요한 것은 없다.  분이 나의 삶의 전환점이셨고, 죄악의 수렁에서 나를 꺼내시고 전체를 소명을 주신 분이셨다.  나는 다시 오시리라말씀하신 분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며 오늘 하루도 분께 대한 감사의 기도로 시작하고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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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그리고 휴식

 

(나만 그런것은 아니지만 -.-;;) 나는 잠을 자는 시간이 참 좋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쉼'이 필요로 한 존재로 만드셨기에 매 7일에 하루의 안식일, 매 7년에 일년의 안식년, 그리고 매 50년에 일년의 희년을 명령하셨다. 

잠을 자라고 명령하신 적은 없으시지만, 숨쉬는 것, 마시는 것, 먹는 것, 배설하는 것등과 매 한가지로 우리는 자연스레 잠을 잔다.  보통 어린 아이들은 잠 자기를 싫어한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잠 자기에 관성(慣性)이 크다.  아침이 되면 일어나기도 싫어하면서, 저녁에는 잠자리에 들기를 싫어한다.  하지만, 잠자리에 들기를 아무리 싫어하는 아이도 그냥 두면, 얼마가지 않아 불가항력 적으로 잠이 든다.

많지는 않지만 나에게도 40여년 살아오면서 고민으로 잠이 오지 않아 지샌 날이 며칠은 있었다.  그래서 다음의 시편 말씀은 정말로 공감이 간다.

       "주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집을 세우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며,
      주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된 일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는 것, 먹고 살려고 애써 수고하는 모든 일이 헛된 일이다.
      주께서는, 사랑하시는 사람에게는 그가 자는 동안에도 복을 내리신다."
                                                                    (시편 127편 1~2절)


분명히 경험한 바는 충분히 잠을 자지 않으면, 쉬지 않으면 계속해서 생각이 둔해지고 낮 시간의 능률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학력고사(요즘 수능고사)를 치르다가 수학 2문제가 풀리지 않아 끙끙대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엎드려 잠을 잤는데 꿈에서 답이 생각나 푼 적이 있다. (일반화하기는 상당히 무리가 간다고 생각하지만 -_-)

대학원 시절, wife와 나는 교대로 애를 돌봐야 했다.  처음에는 wife가 돌아오는 밤 10시쯤 사무실로 가서 새벽까지 일을 했는데 처음 세달 정도는 일을 많이 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로는 시간이 갈수록 능률이 떨어져 시간만 보냈지 progress는 그리 크지 않았다.   4년차 말 여름, 허리 부상으로 몇달을 집에서 쉬어야 했다.  그 뒤로도 오래 앉아있는 것이 무리가 가서, 오전 반 나절에만 집중해 연구를 한 뒤 오후시간 내내 집에서 쉬면서 첫째 아이 노는 것을 지켜 보고 같이 놀아주고 했다.  불가피한 결정이었는데, 전혀 기대치 않게 연구는 오히려 밤새도록 시간을 쏟았을 때보다 더 빨리 진전을 보였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에 '일'은 중단했는데 'idea'는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Archimedes의 "heùrēka (I have found it!)"였다.  그 뒤로 졸업할 때까지 2년여를 계속 반 나절만 일하면서, 나는 삶에 잠과 휴식과 refreshment가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체험으로 알게되었고, 나의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법을 경험했다.

내가 졸업하면서 wife가 대학원에 입학했기에, 마찬가지로 아이를 돌보는 문제로 나는 직장을 구할 때 첫번째 조건을 location(이곳은 회사가 많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두번째 조건을 '칼퇴근'으로 걸었다.  잠시 start-up에 있던 때가 있을때 회사사정을 고려해 퇴근시간을 6시로 양보(?)한 바 있지만, 지금 있는 직장은 "나는 5시면 무조건 퇴근하는 사람으로 알아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입사했고, 늘 주어진 일을 어떻게 해서든 5시 이전에 끝내려고 노력을 하는데, 적어도 지난 7년간은 큰 무리 없이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사람마다 맡은 일이 다르고 그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내 사례가 적용되지 않을 사람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께서 정하신 삶의 법칙 그 자체는 보편 타당한 진리라고 믿는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조차도 주인이다."
                                                            (마가복음 2장 27~2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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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안정된 삶이 얼마나 허무하게 보이는지....

이제 부터 고민하려고 한다.
2-30대에는 절대로 보이지 않았던 저너머 지평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오고 있는 시점이다.

한국에서 안정된 직장을 잡고 있는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허무감 같은 것을 느끼겠지..
안정은 결코 안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난 10년동안 뼈저리게 배웠지...
오히려 흔들리는 그 때가 바로 도약의 때라는 생각이 요즘 나에게
주신 가장 큰 지혜인것 같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인생이지만, 거기에 봉하나를 박아 넣고,
연결하기만하면, 물레방아가 되어, 그 힘을 유용한데 쓸수 있는 것 처럼...

우리 인생에 주님의 뜻이라는 심지가 박히면, 분명 우리의 반복된 인생살이는
하나님 나라의 동력으로 크게 사용될줄로 믿게 된다.

[출처: http://yedam.net/]
by 김도형 목사
Beaverton, OR 소재
Village Baptist Church 한어부 (http://www.vbckf.org)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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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문제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


하나님이 신도의 마음에 임하실 때는 교회 내에 설치한 제단 위에서 임하시지 않습니다. 혹 고요한 수풀 속에서 혹은 큰 물결이 이는 해변에서 또는 회개의 눈물로 베개를 적시는 침상 가운데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 임하십니다. 나는 교회의 절대적 불필요를 말하는 사람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세상의 교회론자가 교회가 행할 수 없는 것을 말하며 교회의 필요를 주창하는 것을 볼 때 항상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교회 신자들은 열심히 협동일치의 필요를 말합니다. 나도 물론 그것에는 대찬성입니다. 그러나 내가 여기에 여러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여러분 자신들 가운데 과연 화합일치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다만 이것뿐입니다. 만일 내가 보고 들은 것이 전혀 틀린 것이 아니라면 오늘의 이 소위 기독교 교회라는 것은 결코 화목한 곳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는 목사가 서로 반목(反目)하고 신도가 서로 다투며 참소가 있고 모함이 있고 파당이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때로는 구역질나게 하는 것이 아닙니까? 나는 요사이 어떤 신자가 나에게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불신자 사회에 있었을 때에도 아직 한 번도 교회의 형제들 사이에 있는 그러한 끈질긴 싸움을 본 적은 없습니다"라고. 나 자신의 경험도 같은 것입니다. 나의 생애에서 내가 만났던 가장 나쁜 사람은 교회신자였습니다. 그의 궤계, 그의 간핵은 도저히 불신자 사회에서 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물론 여러분의 이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실제의 교회란 결코 화락일치의 마을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일치가 만일 있다면 여러분의 교회 내의 일치에 그치는 것입니다. 널리 다른 교회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 일본 나라에 대표적인 교회만 하더라도 40이 넘는데 그 다수의 교파사이에 실로 차마들을 수 없는 불화 경쟁이 있는 것은 당신께서도 이것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말하지만 실상은 기독교신자는 아니다"라든가 "정통교회는 우리 교회뿐"이라든가 그밖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결코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말을 그들 교회 신자는 자기 교회 이외의 교회에 대해 하는 것이 아닙니까? "주도 하나 믿음도 하나 세례도 하나." 그렇다. 진정코 그렇습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감독교회는 퀘이커교회를 주의 교회로 인정하지 않습니까? 무엇 때문에 신교와 구교 사이에 개와 고양이 보다도 더한 질투와 투쟁이 있느냐 말입니다. "형제와 연합하여 화목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그렇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성서의 이 말씀을 마음에 품고 조합교회와 장로교회와의 관계를 관찰해 보십시오. 당신은 이 성스러운 가르침에 가장 좋은 반증을 얻으시고 눈물과 함께 당신의 확신을 더 굳게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 무교회 신자에 『성도의 교제』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잘못입니다. 우리들 사이에도 지극히 두터운 교제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들은 회원증이 없으므로 서로 이것을 보이면서 교제를 구하는 편의를 가지지 못합니다. 그러나 동일한 주를 믿고 그 구속을 받은 자는 회원증을 보이지 않아도 결국에는 깊은 영적 형제임을 서로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인정하게 된 후의 우리들의 교제는 이것을 맛보지 못한 자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회칙에 복종하여 된 일치는 아닙니다. 이것은 성서에 말하는 바 『영의 일치』(엡 4:3)입니다. 그리고 이 일치는 특별히 반드시 무교회신자 간에만 한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속한 자, 속하지 않은 자의 구별 없이 무릇 같은 영으로써 같은 주의 구속받은 자 사이에 있는 일치입니다. 진심으로써 주를 믿는 자는 모두 우리들의 형제입니다. 우리들은 "귀하는 언제 세례를 받으셨습니까?" 하고 물어 그 사람의 신자냐 아니냐를 나누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품성에 나타난 나사렛 예수의 감화력을 인정하여 그런 후에 그의 기독교신자임을 알고 그를 향하여 우리의 교제를 시작합니다.


[우찌무라 간조에 대해...]

미국 농학자인 클라크가 세운 삿포로농과대학교를 다니던 중 친구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되었다. 대학생 시절 그는 친구들과 기도 모임을 구성하여 신앙생활했는데, 모임은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없는 민주적인 공동체였다. 이러한 새로운 신앙경험은 우찌무라의 기독교 사상에 영향을 주었다.

대학교를 졸업한 1882년 우찌무라와 친구들은 삿포로 독립교회를 통해 서구의 교회가 아닌 일본적 교회를 설립하고자 했다. 교회는 5명의 위원들에 의해 공동으로 운영되었는데, 일상적인 교회의 일은 그들이 함께 처리했고 그 외의 것은 언제나 투표로 처리했다. 또 교회의 회원은 의무적으로 교회를 위해서 일해야만 했다.

1884년 미국에서의 사회운동과 앰허스트대학교(Amherst) 유학으로 신앙의 실천의 중요성과 신앙에 대한 생각을 굳혔고, 하드포드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성직을 특권으로 보아서 성직자가 되지는 않았다. 1888년 일본에 돌아왔고, 도쿄에 있는 제일고등중학교 교원으로 취직했다.

하지만, 1891년 천황의 절대권력의 상징인 《교육칙어》(敎育勅語)봉독식 때 정성 들여 예를 다하지 않은 '불경사건'으로 천황을 숭배하는 존황파(尊皇派)들에게 미움을 받아, 보복 테러의 표적이 되어 아내와 자식 그리고 직장을 잃었다. 우찌무라는 교원으로 활동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나는 왜 기독교인이 되었는가?》(How I Became a Christian), 《구안록》등을 저술했다.

또한 《만조보》지의 기자와 월간지 《성서지》 연구의 간행인으로도 일하는등 바쁘게 활동했다. 1921년에는 도쿄의 한복판에서 일요일마다 로마서를 강의하여 수많은 청중들이 크게 감동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한국교회에서 우찌무라 간조의 신학은 무교회주의라고 해서 불온시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우찌무라 간조는 복음주의자였다. 그는 성서가 하느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임을 믿는다고 고백하였으며,"나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얻은 구원에 대한 감사일뿐이다. 그러니 나의 신앙은 낡았고 구식이다"이라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강조하였다. 그가 무교회주의를 주장한 이유도 기독교 신앙의 근거는 가시적인 교회 즉, 예배당이 아닌 성서뿐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찌무라 간조는 "기독교 신앙의 유일한 근거는 성서뿐, 교회와 그 관습은 기독교를 담아내는 껍데기"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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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행으로는 구원에 이를수 없는가?


[글을 시작하며]

나는 고등학교 학력고사(요즘으로 말하면 대입 수능시험)를 마치고 한 친구와 함께 기도원에 따라갔다가 첫 성령체험을 하였다.  그러나 내 생활에서 즉시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던 것 같다.  몇년이 흐른 대학교 2학년 여름, 교회 수련회와 하기봉사를 통해 나는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기로 결단하게 되었고 그 후로 나의 삶의 focus는 크게 바뀌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신화가 아닌 살아 역사하시는 실체라는 것을 '체험적'으로 '감성적'으로는 알게 되었는데, 왜 하나님의 구원이 선행으로 얻어질 수 없고, 왜 많은 종교중에 기독교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종교이어야 하고, 왜 살인한 악인이라도 믿는다는 말 한마디로 구원에 이를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성경에 쓰여 있다니까, 내가 믿게된 예수님에 대해 설교하는 모든 목사님들이 그렇다니까 받아들이기는 해야겠는데 내 머리속에서는 도무지 '이성적'으로 동의가 되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이 문제는 나 뿐 아니라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에게 걸림돌일거라고 생각한다.

몇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 다행히도 나는 영화의 한 장면을 통해서 이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나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선행 혹은 고행으로 절대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에 '믿쉽니다~'의 맹목적 차원이 아닌 순수한 이성적 차원으로 동의하게 되었다.

[영화 설명]

1986년 상영된 이탈리아 감독 롤랑 조페의 작품 "The Mission"은 1750년 경, 파라과이와 브라질의 국경 부근에서 원주민 과라니족을 상대로 선교 활동을 벌이던 실존 두 Catholic 사제의 대비된 모습을 통해서 기독교와 사랑, 정의가 무엇인가를 그려 1986년 제39회 칸느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종교 영화이다.  "Nella Fantasia"로 편곡되어 널리 알려진 주제곡 "Gabriel's Oboe"를 비롯해 영화 전체를 꽉 채우는 Ennio Morricone의 주옥같은 음악들 만으로도 감상의 가치가 충분하다.

18세기 예수회(Jesuit)에서는 남미대륙 각지에 다수의 선교사를 파견하여 대규모 스케일로 선교를 시도하였다. 파라과이, 브라질, 아르헨티나 3국에 걸쳐 선교사가 파견되었다. 모든 것을 거부하듯 우뚝 솟은 대폭포 이구아스 상류 파라니강 연안의 삼림지역에 흩어져 사는 과라니 인디오 거주지에도 선교사들의 손길은 뻗어갔다. 그러한 선교사 중 한 사람이 산 크롤로스 선교회 소속의 가브리엘 신부(Gabriel: 제레미 아이언스 분)였다. 몇 동료 신부들의 선교시도가 죽음으로 끝난 후 그 뒤를 이은 가브리엘 신부는 마침내 이구아스 폭포 위에 사는 과라니족들에게 다가가는데 성공한다.

가브리엘 신부와 영화 전체에 걸쳐 대조를 이루는 인물은 용병 출신의 노예상인 로드리고 멘도사(Mendoza: 로버트 드니로 분)이다.  많은 과라니 족을 생포해 노예로 팔아넘기지만, 과라니족을 인간이 아닌 원숭이쯤으로 생각하던 그 당시 많은 백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전혀 느끼지 않는다.


어느날 그의 부인 카를로타가 자신의 유일한 혈육인 동생 필리페와 사랑에 빠졌다는 고백을 하며 헤어져 달라고 요청한다.  두 사람 모두를 너무나 사랑하기에 어찌할 바를 모르며 며칠의 시간을 보낸 그는 어느날 카를로타와 필리페가 동침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마음을 겉잡을 수 없어 달려 나가게 되고, 뒤 따라온 동생 필리페와 우발적으로 결투를 벌이다가 결국 동생 필리페를 찔러죽이고 만다.


당시 법에 따르면 결투에 의한 살인은 무죄이었지만,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동생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빠진 멘도사는 그 후 6개월동안 사람들을 멀리하고 감옥과도 같은 장소에서 죽을 날만을 고대하며 사는 폐인이 된다.


소식을 들은 가브리엘 신부는 멘도사를 찾아가 어떤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속죄의 길이 있음을 알리며 새 생활에 대한 소망을 가져보라고 challenge한다.  이 날 이후로 멘도사는 자신의 죄를 상징하는 갑옷과 칼이 들은 크고 무거운 보따리를 끌고 이구아스 폭포를 쉬지 않고 반복하여 오르내린다.


주위 모든 사람들은 '그만하면 됐다'고, '그 정도의 고행이면 그의 죄를 씻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중단하지 않았다.  본인 안에 있는 죄책감은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날, 멘도사가 과거에 노예로 잡아 팔던 과라니족이 이구아스 폭포 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폭포 위에 도착하자 그 중 한 사람이 칼을 뽑아들고 멘도사의 목에 칼을 겨눈다.  (영어 자막이 나오지 않아 현지인 대사는 알아들을 수 없지만, 정황으로 볼때 아마 추장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추장님, 우리 형제들을 팔아먹던 그 나쁜 놈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콱 찔러 죽여버리지요?')


적막의 순간이 흐른다.  멘도사는 '올것이 왔구나.  이제 끝이다'라는듯 두려움 반 체념 반의 표정으로 기다리고, 가브리엘 신부를 비롯한 선교사들과 과라니 부족민들은 추장이 무슨 말을 할까 긴장된 표정으로 지켜본다.  이윽고 추장이 뭐라 이야기 하자 칼을 목에 겨눴던 사람은 멘도사가 걸머진 짐의 밧줄을 자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잘라낸 짐 보따리를 절벽 아래로 던져버린다.


짐은 절벽 밑 깊은 물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러자, 멘도사가 울기 시작한다. 진흙탕으로 엉망이 된 얼굴로...  그 모습을 본 과라니 부족들은 웃기 시작한다.


가브리엘 신부와 선교사들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옆에 와서 그를 감싸 안아준다.  드디어 멘도사도 웃기 시작한다.  울다가... 웃다가.... 울다가... 웃다가...  그 후로 멘도사는 사제의 길을 걷기로 서원하고 가브리엘 신부를 도와 과라니족의 선교에 헌신한다.


[내가 깨달은 바]

구원(救援, salvation)이라는 단어는 상황에 따라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종교적인 차원에서 볼 때 '자신의 궁극적 존재의 문제 혹은 죄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은 자신의 죄의 문제를 선행 혹은 그에 상응한 벌을 받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얼핏 생각하면 무척 fair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위에 묘사한 영화에서 멘도사는 어떻게 자신의 죄로부터 구원을 받았는가?  감옥과 같은 곳에서 비참한 생활을 해서?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는 고행을 통해서?  아니면 어떤 선행을 통해서(선행을 한 내용은 영화에 나오지 않지만)?  아니었다.  그런 일들은 과라니족에게는 전혀 의미 없는 일이었고(어느 정도 참작은 되었을지 몰라도), 멘도사 본인의 마음에 있는 죄책감을 없앨 수도 없었다.  멘도사의 구원은 과라니족이 그의 과오에 대한 용서를 베풀고 그 용서를 멘도사가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용서를 통한 구원'이 보편화될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더니, 너무나 쉽게 상식적인 선에서 납득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의도적이건, 우발적이건) 살인했다고 하자.  그 일로 내가 50년간 징역형을 살고 나온다면 나는 과연 그 사람의 유가족에게 나의 죄가 씻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개과천선하여 세상 모든사람이 인정하는 선한 사람이 된다면 나는 그 사람의 유가족들을 떳떳하게 대할 수 있을까?  결론은 '그럴 수 없다'였다.  열쇠를 내가 쥐고 있지 않고 유가족이 쥐고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유가족이 나를 용서하고 내가 그 용서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유일한 '필요충분'한 해결 방법이었다.

어떤 사람은 용서에 앞서 죄값을 치루는 것을 봐야 속이 시원한 사람도 있을테고, 잘못을 진정 뉘우치고 새사람이 된 것을 확인해야만 용서하고 싶은 마음이 들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내가 어떤 댓가를 치루더라도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정 반대로 (몹시 드물겠지만) 아무 댓가 없이 그냥 용서하기로 결정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치루어야할 댓가'와 '용서'는 엄밀히 말해서 무관하다고 봐야 옳을 것같다.

한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요지만 대충 옮긴다면) "죄와 선행은 산술적으로 더하고 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죄대로 해결해야 하고 선행은 선행대로 칭찬을 받아야만 합니다.  5가지 죄를 범하고 10가지 선행을 할 경우 5가지 죄가 없어지고 5가지 선행만 남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이 부분을 착각했기 때문에 자신은 죄가 없는 의인이라고 생각했고, 결과적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죄인과 세리보다 악한 자로 책망을 받게된 것입니다"


[맺음말] 

나는 세상에 대한 넓은 식견도 없고, 타 종교에 대해 심도있게 공부한 적도 없다.  하지만 최소한 아직까지 나는 기독교 이외의 타종교에서 '용서를 통한 구원'의 개념을 발견한 적이 없다.  그것이 내가 기독교만이 유일한 진리의 종교라고 굳게 믿는 이유중의 하나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주시는 속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는 판단을 받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내어 주셨으며, 누구든지 예수님의 피를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중략] 그렇다면 사람이 자랑할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랑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어떠한 법으로 사람이 의롭게 됩니까? 율법을 지키는 데서 오는 것입니까? 이런 것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의 원리에 의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과는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 

(로마서 3:23-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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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7.02.27 16:48 신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조선의 부흥

 

[출처: 부흥한국http://revivalkorea.org/]

 

[ 글은 당시에 중국선교사로 있던 캐나다 선교사 스티븐 고포드가 우연히 조선을 방문하여 1907 대부흥을 목격하고 기록을 남긴 것을 요약정리한 글입니다. 저는 년전 왕의 아이들 (현재의 글로벌 )이라는 청소년 신앙잡지를 통해서 글을 읽고 많은 감동을 받았으며, 함께 부흥 콘서트를 위해 일하는 분들과 나누고 기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특별히 이글을 번역, 편집하시고 사용토록 허락해주신 글로벌 틴의 지현 목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조선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이 나에게는 너무나 많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그것에 관하여 쓰고자 한다. 한국의 신자들이 이루어 놓은 일과 그들의 희생을 생각할 나는 내가 주를 위해 얼마나 일이 없는가를 생각하고 부끄러움을 금할 없다. 중국의 신자들도 이야기를 하면 통회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당신도 조선에서 일어난 복음에 승리에 대한 이야기를 공정하게 듣는다면 틀림없이 부끄러움을 느끼고 가난한 마음이 것이다.

 

조선의 부흥은 1906 9 서울에서 열린 선교사 회합에서 태동되었다. 사실 조선은 1903년부터 중국이나 일본 다른 국가에 비해 전도의 열매가 훨씬 많은 편이어서 선교사들은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었고, 이상의 축복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하워드 박사가 모임에서 당시 인도 카시아 힐에서 일어나고 있는 놀라운 부흥운동에 대해 말했을 선교사들의 눈이 열렸고 마음이 가난해지게 되었다. 주에서도 특히 평양에 거주하는 장로교와 감리교 소속 20여명의 선교사들은 조선에서도 카시아 힐에 임한 축복이 임할 때까지 정오에 모여 같이 기도하기로 작정하였다.

 

이렇게 9 중순부터 시작된 기도회가 달이 지나도록 특별한 역사가 일어나지 않자 사람은 너무 많은 시간을 기도에 소모하고 있으니 연합기도회를 중단하고 각자 집에서 기도하자고 제안했지만 대다수는 기도회를 계속 하기로 결심했다. 그들은 주님께서 인도에서 허락하신 것을 평양에서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오히려 많은 시간을 기도하기로 작정했다. 그때부터 그들은 정오에서 오후 4시까지 기도하기로 했으며 원하는 사람은 자유롭게 기도하도록 했다. 4개월 동안 그들은 계속해서 기도했고, 기도 외에는 별로 하는 일이 없었다.

 

결과로 그들은 장로교, 감리교를 잊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두가 하나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것은 무릎으로 되어진 참된 교회 연합이었으며 하나님을 지극히 영화롭게 하는 것이었다.

1907 정월, 드디어 4개월 간의 기도가 끝나는 마지막 주간이 되었다. 선교사들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간에 있는 평양중앙장로교회의 부흥집회에 놀랍게 축복하실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의 어떤 특별한 역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지막 저녁 집회에는 1,000여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국 교회의 지도자인 길선주 장로가 일어나서 자기의 죄를 고백했다. “저는 아간 입니다. 하나님께서 때문에 축복하실 없습니다. 나는 1 친구가 임종하면서 맡긴 재산을 관리하면서 미망인의 100불을 가로챘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가로막았습니다.”

 

순간 장애물이 걷혀졌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인식되었다. 곧이어 죄의 자각이 모든 신자들을 휩쓸었다.

 

그날 저녁 예배는 새벽 2시가 되어도 끝이 나지 않았다. 아직도 수십 명이 울면서 그들의 죄를 고백할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것은 마치 지옥의 뚜껑을 열어놓은 같았다. 집회를 기점으로 조선에서는 회개의 역사가 놀랍게 일어나게 되었다.

 

 

 

기간에 있었던 회개의 예를 가지 들어보겠다.

 

거의 완전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존경을 받던 집사는 부흥운동이 진행되는 동안 안절부절 하다가 드디어는 교회 구제기금을 훔친 것을 자백했다. 모든 사람들은 놀라면서 그를 용서 하고 다시 평안을 되찾기를 바랬지만 그는 불안에 떨었고 결국 자기가 지금도 도적질 하고 있음을 고백했다.

 

여인은 며칠간을 지옥의 고뇌를 통과하는 같았다가 어느 저녁 군중이 모인 자리에서 간음의 죄를 고백했다. 모임을 인도하던 선교사는 너무나 당황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남편이 거기에 있었으므로 그녀를 조선의 법대로 죽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편은 눈물로 걸어나와서 범죄한 그의 아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녀를 용서했다. 이러한 놀라운 사건들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지 않을 없었으며 교회는 사람들로 들끓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조롱하기 위해 교회에 왔다가 두려움 중에 기도하기 시작했다. 도둑 두목은 호기심으로 왔다가 죄를 깨닫고 자기를 감옥에 넣어 달라고 간청했다. 깜짝 놀란 경찰관은 그를 고소하는 사람도 없고 증거도 없으므로 체포할 없다고 맞섰고 그는 결국 풀려났다.

 

부흥의 때에 평양을 맡고 있던 일본 관리가 있었다. 그는 서구의 불가지론에 물들어 신자를 경멸하고 있었다. 그런데 많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한국어를 모른 어떤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이상한 변화를 조사하기 위해 모임에 참석했다가 그도 결국 예수를 따르는 무리가 되었다.

 

참으로 기도하기 위해 보낸 달의 대가는 충분한 것이었다. 성령이 오셨을 때에 선교사 모두가 반년 동안에 있었던 일을 반나절에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부흥의 운동은 평양에서 출발하여 조선 전역에 넘쳤고 시간이 지나가도 계속되었다. 1910 10 어느 한주의 평양 교회 통계를 보면 주에만 4,000명이 세례를 받았고, 수천 명이 새로 교회에 등록했다.

 

1916 동해안을 방문하고 선교사는 어느 마을에서 저녁예배를 드린 이야기를 들려 주었는데 교회에 2,500명이 모이고 다른 교회에 500명이 모였는데 마을의 전체 인구수가 3,000명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자 시골 곳곳에도 많은 교회가 생겨났고 심지어는 선교사나 전도자가 방문한 적도 없는 곳에도 교회가 세워졌다. 어떤 사람이 도시에서 복음을 듣고는 고향으로 성경을 가지고 돌아가 그것을 이웃에게 계속하여 읽어주었고 결국 마을에서 50명이 넘는 사람이 믿게 되었다. 그때 그들은 교회를 이루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으나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고민하다가 신약성경에서 교회의 시작이 물세례라고 추측하고는 각자 집으로 가서 목욕을 하고 다시 모여 교회를 설립했다. 하나님이 틀림없이 기뻐하셨을 것이다.

 

구주의 공로를 알리려고 하는 불타는 열망이 오순절 교회의 특징이었다.

조선 교회도 조금도 다를 없었다. 만주에 있는 선교사가 부흥운동에 관한 진상을 알고 싶어 전도사를 평양에 파송했다. 그들이 돌아 왔을 그는 선교사들이 거리에서 선교를

있는지 물어보았다. 전도자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게 필요도 없습니다. 신자마다 거리의 전도자였습니다.

 

상인들은 이곳 저곳을 여행하면서 항상 놀라운 구원의 소식을 전했다. 어떤 이들은 아예 집을 팔아 신자가 없는 곳으로 가기도 했다. 학생은 매일 적어도 6명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작정을 했는데 9개월이 끝날 무렵 그는 3,000명에게 전도했다. 8-9 되는 초등학교 어린이들도 학교를 파하면 거리에 나와서 지나가는 행인의 옷소매를 잡고는 구주 예수께 순종 하도록 눈물로 간청했고 그것에 마음이 찔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 앞에 나오게 되었다.

 

신자들은 도서지방까지 전도한 후에 곧바로 국외를 바라보았다. 그리하여 1907 9 장로교 총회에서는 중국 산동에 선교사를 보내도록 결정하고 사람을 선정하였다. 한국 교인들은 뜨거운 감사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였으며 또한 그것을 값없이 나누었다.

 

조선교회는 초대교회와 마찬가지로 기도에 전혀 힘쓰는 교회였다. 선교사들도 한국 교인들이 기도에서는 그들을 능가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밤의 절반을 기도로 보내는 것은 그들에게는 보통 있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새벽 훨씬 전에 그들은 기도를 위해 일어난다. 선교사가 어느 지방에 갔을 새벽에 기도집회가 있음을 듣고 참석을 위해 5시에 나가보니 사람이 무릎 꿇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기도회는 그가 오기 전에 끝났던 것이다. 몇몇 사람은 출석하기 위하여 산을 넘었다고 했다.

 

조선 교회의 새벽기도회가 공식적으로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후인 1907 9 길선주 장로가 평양중앙교회의 목사가 후에 시작되었다. 그는 매일 아침 4 30분에 모여서 기도할 것을 제안했는데 다음날 새벽 2시부터 400명의 신자가 밖에서 기도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매일 700명이 모여 기도회를 하고 있다.

후에 사실이지만 하워드 박사로부터 카시아 힐에 임했던 성령에 대해 듣는 바로 장소에 간계에서 조선인이 있었는데 그는 고향 교회로 돌아가 신자들에게 성령만이 예수의 복음사역을 완성할 있는데 성령님은 하나님이 다른 은사처럼 값없이 주어지는 것임을 가르쳤다.

그들은 그때부터 6개월 동안이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매일 새벽 5시에 교회에 모여 부흥을 주실 성령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려왔다고 한다.

 

풍성한 너그러움, 이것이 초대 교회의 하나의 특징이었다. 조선의 신자들 역시 풍성했다. 어떤 곳에서 선교사가 나에게 말하기를 그들은 너무 많이 내놓기 때문에 그는 감히 돈에 대해서 말을 못한다고 했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는 그들이 가졌던 모든 것을 바쳤다. 남자들은 시계를 끌렀고, 부인들은 패물을 내놓았다. 다른 이들은 땅문서를 바쳤다. 그들은 가진 모든 것을 놓았고, 바칠 것이 없어서 울었다.

교회 헌당식에 참석한 신자는 교회에 아직 50불의 부채가 있음을 듣고 자기가 다음 주에 50불을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선교사는 그가 매우 가난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만류했지만 그는 다음 주일 50불을 가지고 왔다.

주간 선교사는 지역을 시찰하는 중에 그의 밭에 가보니 노인은 쟁기를 잡고 아들은 쟁기를 끌고 있었다. 선교사는 놀라서 소를 어떻게 했냐고 묻자 그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불신자에게 빚을 지고 있는 것을 견딜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청산하기 위하여 소를 팔았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초대교회를 인도했던 바로 성령의 인도를 조선교회가 받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그들의 열심이다. 조선교회가 그렇게 강한 이유중의 하나는 성경공부에 있다. 신자들은 누구나 성경을 배웠다. 해에 1400 회의 사경회가 열리며 9 명의 학생들이 참여한다. 뿐만 아니라 조선에서는 가정예배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출교의 위험을 감수해야 정도로 가정에서도 성경에 열심이었다. 사업에 따라 여행하는 신자는 성경을 들고 다니며 거리에서나 숙소에서 펼쳐 읽었다. 한국의 목사, 전도사, 집사들은 일본사람들에 의해 억울하게 감옥에 가게 되면 그들은 불평으로 세월을 보내지 않고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감옥에서 여러 성경을 통독하고 나오곤 했다. 어떤 사람들은 일본인들이 성경을 없앨 것을 대비해서 성경을 권씩 통째로 암송하기도 했다. 선교사는 어느 마을에서 25명에게 세례를 베푸는데 지원자에게 성경구절을 암송할 있는가 하고 묻자 하고 시작했는데 선교사는 그가 100절을 외웠을 중단시켰다. 하지만 다음 사람들은 자신 세례를 받지 못할까 두려워 중단된 부분부터 이어서 암송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25 모두 100 이상씩 암송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사람으로 취급되는 것을 즐거워 했다. 똑같은 정신이 조선교회의 특징이다. 질투의 악마가 일본인들을 자극하여 조선 교회를 괴롭히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선천 지방의 신자들이 데라우치 총독을 살해하고 음모를 꾸몄다는 누명을 씌워 신자들을 박해하기 위해 몇몇 신자들을 감옥에 집어넣고 고문하였다. 일본인들이 자기가 원하는 말을 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얼마나 잔인하게 고문 하는지에 대해서는 익명이 나있다. 그들은 신자를 엄지 손가락만으로 매달았고 뜨거운 다리미로 살을 태웠다. 어떤 사람은 일곱 번이나 졸도를 했으나 그들은 믿음을 지켰고 결국 법정에서는 무죄라고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고향에서 신앙을 고백하다가 친족들에게 집과 가정을 빼앗긴 사람도 법에 호소하지 않고 온유하게 모욕과 핍박을 참았으며 모든 친족이 회개하고 돌이킬때 까지 그리스도를 전했다.

 

어떤 신자는 예수님의 구원의 복음을 전하러 그의 고향에 갔다가 그의 친척들에게 맞아서 거의 죽게 되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그는 실낱 같은 목숨이 붙어있는 시한부 인생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성경을 나누어주며 구주에 대해 전했고 삼년 하나님께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를 죽이려고 했던 불신지역에 11개의 교회가 서게 되었다.

 

성령은 1세기에 팔레스타인에서 했던 것과 똑같이 조선에서도 우리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있다. 동양의 하나님의 자녀들이 행했던 일은 안일한 우리 기독교회에 도전이 된다. 하나님 나라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것은 힘이나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 된다. 그들은 거룩한 일을 위해 모든 겸손으로 자신을 예수께 드렸고 하나님의 충만은 바로 그들을 통로로 하여 넘쳐 흘렀다.

 

하나님은 똑같은 방법으로 우리에게 찾아오고자 기다리신다. 그러나 우리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원을 주시는 분을 멸시하는 사람들이 받을 저주 아래 있게 것이다.

Posted by 더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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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berian cats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3.02.01 01:18 신고

    미안하지만, 실제 가입 버튼이 있습니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