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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그 청년 바보 의사

고려대학교 의과대학과 한국누가회(CMF)의 선배로인 김신곤 교수의 이메일 인터뷰.


교수님이 기억하시는 안수현은 어떤 신앙인이었고, 어떤 의사였습니까?

저는 고대 CMF에서 의료봉사를 갔을 때 당시 학생 리더이던 수현 형제를 처음 만났지요. 그는 한마디로 바보 같은 신앙인이자 의사였습니다. 주류의 상식이나 통념에서 벗어난 생각을 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소위 ‘사회학적 바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 의학적 개념의 바보와는 다른 말입니다. 수현 형제는 바쁜 의사의 일상 속에서도 환자와 대화하기를 좋아하고 그들에게 신앙서적과 선물 나누기를 즐겼습니다. 가난한 환자의 진료비를 대신 계산해주고 죽음을 맞이한 환자의 가족을 위로하고자 영안실을 찾기도 했습니다. 선물이나 경제적 도움만으로는 성이 안 찼는지 자신의 피를 수없이 나눈 헌혈 유공자이기도 했습니다. 2000년 의사파업 때는 홀로 중환자실을 지켰던 의사였습니다. 그의 이런 모습은 세상의 상식과 통념에 역행하는 바보 같은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기의 유익만 구하는 시대에 그는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않은 바보처럼 살았습니다.


이 책을 펴내게 된 계기와 간략한 과정을 말씀해주세요.

바보처럼,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수현 형제는 안타깝게도 33살의 나이로 하늘나라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백년을 살아도 의미 없게 살 수 있는 인생을, 짧지만 가치 있게 살다간 그를 그냥 잊어버리기엔 그의 삶과 그가 남긴 글들이 주는 ‘여운’이 크고도 깊었습니다. 그래서 수현 형제를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의 유고를 가지고 책을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이 일을 시작할 때 우리들은 이 책이 우리의 기억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남겨도 좋은, 아니 남겨야만 할 양서가 되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짧지만 굵게 살다간 ‘예수의 흔적’(Stigma) 수현 형제가 준 교훈을 우리 가슴과 이 시대 가운데 되살리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고인은 학생시절부터 기독학생회 활동은 물론 전도와 봉사 모든 면에 열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병원 업무가 과도한 의사 또는 의사수련생들이 과연 안수현 씨처럼 살아가기가 수월한 것일까요? 

당연히 쉽지 않은 일이지요. 그래서 바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수현 형제와 같은 바보라면 우리 모두 도전해봄직한 그런 바보가 아닌가 싶습니다. 혼자만의 결단만으로는 결코 쉽지 않지만, 수현 형제처럼 바보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 삶도 좀 더 수월하게 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시지 않습니까? 다만 지금 당장 누구나 수현 형제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은 무리일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달란트가 있고, 처지와 상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인으로서 추구하는 근본적인 방향과 지향은 같아야 합니다. 바른 곳을 바라보고 오늘 한 걸음을 걷든 열 걸음을 걷든, 소박한 변화를 중단 없이 추구한다면 그것으로도 훌륭한 신앙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안수현 씨가 기독교인이자 의료인으로서,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던 원인과 배경이 어디에 있었다고 보십니까?

사람보다는 하나님 한 분을 의식하는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을 거스르는 바보 같은 삶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의식할 때 선택하기 쉬운 길이 아닙니다. 수현 형제는 영웅이 아닙니다. 성자는 더더욱 아닙니다. 한 신실한 기독교인 의사가 자신의 삶에 진지하고, 자신의 소명 앞에 성실하게 반응하고자 했던 그런 자세, 그것이 수현 형제의 삶을 가능하게 했다고 봅니다.

 

이 책을 어떤 이들이 읽으면 좋을 것이며, 이 책을 통해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주제나 교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요즘은 성공과 복이 최고의 가치입니다. 기독교인마저도 그런 흐름에 역행해 살기보다는, 자기 유익을 위해서라면 십자가를 부인하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 시대의 풍토를 전제하고 인간의 눈으로만 보자면, 수현 형제의 인생은 그리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닙니다. 생전에 유명했던 소위 성공한 의사도 아니었고, 물질의 복이나 장수의 복을 누린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면 달라집니다. 

사망의 권세를 넘어 부활하여 오늘 우리와 함께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을 사도 바울이 가졌다고 했던 것처럼(갈 6:17), 수현 형제는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잊히지 않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흔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인생은 미완성 교향곡으로 끝난 것 같으나 주님은 그를 ‘명반’(Masterpiece)으로 남기셨습니다. 이 책의 9장 ‘흔적들’은 그로 인해 변화된 사람들의 삶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도 수현 형제로 인해 변화될 바로 그런 분들이라고 믿습니다.


[출처] http://www.godpeople.com/?GO=news2_sub&ncode=200909255311


Posted by 더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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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정우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9.10.24 13:28 신고

    좋은 책 소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보에 관한 이 책을 단숨에 보며 그 바보의 이야기 끝에 나도 그런 바보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바보들이 생겨나길 간절히 바라며 눈물 짓게 만드는 책이었습니다.

  2. 더가까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9.10.31 12:13 신고

    저자의 글이 책으로 묶여 나오는 것을 보며 '과대포장'되어지는 것을 우려한 주변 분들도 계셨습니다. 추천의 글들을 보면서 저스스로도 출판사측에서 상업적으로 오염(?)시켰다는 불쾌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믿지 않는 분들에게 긍정적인 시각을 줄수 있다는 희망과, 시간에 늘 쫓겨사는 유학생 christian들에게 용기가 되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에 글 서평을 퍼 옮겨봤습니다.

  3. lovesj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9.11.16 12:47 신고

    감사히 잘 읽겠습니다...

  4. mck55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9.12.05 06:25 신고

    저는 이 책을 보며 많이 울었습니다.

    너무나 감동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이 책을 꼭 읽어 보라고 권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물론 필독서로 정했고요,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제가 가서 하는 세미나에 이글을 보고 마치 예수님을 닮은 한 사람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5. kimsh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0.07.17 16:17 신고

    이 책은 우중충한 날씨가 연속될 때 기다리던 한 줄기 햇살과 같이 내 마음의 습기를 모두 날려주었습니다. 수현 형제처럼 살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말을 가슴에 심어봅니다. 귀한 책 감사드립니다.

[서평] 그 청년 바보 의사


한때 열심히 교회를 다녔다. 가난한 서울 변두리에서 크게 성장한 교회의 중심에는, 70년대 한국사회가 그랬듯이 카리스마 있는 목사가 있었다. 지금, 좋지 않은 일로 가끔 가십거리에 등장하는 그의 이름을 볼 때마다 자괴감이 들곤 한다. 사람을 보고 신앙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큰 낭패로 돌아올 수 있는지 절절하게 깨달았다.


“그 시절, 정말 아깝다.”


하지만 앞서 이끄는 누군가가 있지 않고 어떻게 믿음을 쌓아갈 수 있는가. 아예 삶 자체가 태어날 때부터 얽히고설킨 촘촘한 인드라망인 것을. <그 청년 바보의사> 故 안수현이 아직 세상에서 열심히 살고 있었을 때 만약 만났다면 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까.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안암병원에 입원이라도 했다면 한밤중에 찾아와 병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그를 볼 수 있었을까.


아무려나, 모르겠다. 내내 신앙인으로 살았던 이야기를 일기 형식으로 남긴 책에서도 그를 만났다고 다 신앙인 되는 건 아니었듯 하니 그가 진짜 예수님이 아닌 이상 그의 진득한 노력이 다 결실을 맺지는 못했으니. 하지만 그를 만났다면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싶어 내 살아온 삶이 부끄러워서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겠다.


의대를 다니는 내내, 인턴으로 정신없이 바쁘게 공부하고 환자를 돌보는 내내, 집에 숨길 정도로 신앙생활에 충실했던 기록을 읽으면서 내 얼굴이 벌게지는 이유는 그가 의사여서도 기독교인이어서도 아니었다.


목사들의 간증을 보면 누구나 어려운 시절을 겪고, 열심히 살았다는 얘기쯤은 나온다. 하지만 곰곰이 들어보면 그런 기록은 결국 자신을 향한 기록인 게 얼마나 많은가. 자신이 성공하는 게 마치 하나님의 성공인양 자만에 빠진 그들의 설교는 정말이지 신물이 난다. 전도사도 아닌 안수현의 남긴 일지가 굳을 만치 굳은 내 맘을 녹인다면, 그 이유는 자신이 아니라 오로지 남을 향한 기록이기 때문이고, 그만큼 그가 세상 가장 낮은 자로 세상에 오신 그분의 삶을 따르려는 노력 때문이다.


적어도 <그 청년 바보의사>는 그의 내면의 신앙 기록이라기보다는 의사로, 친구로, 선배로, 후배로, 때론 길에서 처음 만나는 낯선 이로 남을 위해 기도하고, 선물을 하고, 위로를 하고, 보듬고, 안아주고, 도와준 기록이다. 연애를 줄이면 줄였던 그는 ‘독신의 은사’를 받은 게 아닐까 싶었다고 한다. 그의 기록은 아주 세세하다. 신앙 모임에 늦게까지 같이 한 후배들을 태우고 다니느라 ‘차를 구입한 지 39주 만에 25,000km를 돌파’했다는 식이다. 글 곳곳에서 재미가 톡톡하게 묻어난다. 사무적이지도 않고 자랑하려고 늘어놓은 치장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의 행적은 이스라엘을 내내 걷고 또 걸으며 사람들을 만났던 예수님의 궤적을 많이 닮았다. 의사로 환자를 돌보는 모습이 그러하거니와 예배당 안에서 두 손을 모으는 데 그치지 않고, 늘 두 발로 부지런히 다니는 행적이 그러하다.


동료 의사들이 기억하길, 그는 의대 과정에서 낙제를 한 적도 있고, 성적도 뛰어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2000년, 의약분업으로 대부분의 의사들이 파업에 나섰을 때, 햇병아리 의사인 그는 병상을 지켰다. 엄격한 수직 사회인 의료계에서 별 신통치도 않는 인턴이 개인적인 신앙심을 내세워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다니, 용납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편으로 안수현 혼자 많은 병동을 책임지는 상황을 쌤통이라고 여겼을 테고, 다른 한편으로 그래도 그가 있어 다행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동료 중 누구도 그를 탓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지고의 가치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환자 곁에 함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료들이 그의 파업 불참을 당연하게 여겼으리라는 점, 한 가지는 확실한 듯하다. 종교를 달리할지언정 그의 손길이, 그의 기도가 환자들에게 얼마나 많은 위안과 힘이 되었을지 머릿속에서 떠올려보면 내 가슴마저 뜨거워진다.


그 젊은 시절, 아깝다, 라는 생각을 고쳐먹기로 했다. 이제 그보다 더 많은 삶을 살았고, 앞으로 더 살아갈 나는 정말 열심히 살고 있는가. 안수현이 보여준 행적이 근저에는 신앙에 있을 것이나 신념을 향한 그의 자세는 지금 게으른 나를 두들겨 깨운다.


누구보다 이 책을 제사장이라는 직분을 권위로 여기고 교회 안에서 틀어쥐고만 있는 목사를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이 읽어야 한다. 그리고 “의사는 병원의 제사장”이라는 전언이 하는 말의 참뜻을 알아듣는 의사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변에서 보면 예수님은 고사하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정말 했는지 의심스러운 의사들이 꽤 많다.


“(유다는) 요셉을 애굽에 팔아버렸던 형이지. 그는 며느리 다말에게서 아이까지 낳는 패륜을 저지르는 사람이야. 그의 인간성은 죄악덩어리지만 단지 예수님의 계보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점점 더 주님을 닮아가거든. 나도 그렇게 되길 바라.”


그의 미니홈피에는 그가 ‘부재의 사역’을 하고 있다는 글이 올라온다. 그는 죽었으나 여전히 살아 있다. 살았으나 죽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이제 그의 고백을 나의 고백으로 삼는다.


[출처] http://cafe.naver.com/bookishman/20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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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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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는 이름의 스티그마 -
헌신의 삶을 살았던 의사, 안수현

by 김선경 기자

지난 1월 7일. 안수현 씨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접속이 폭주했다. 남겨진 글마다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가득했지만, 지인들을 통해 발견되는 공통적 문구는 “받기만 했는데…”였다. 의사이자, 군의관으로, 교회와 하나님의 공동체를 섬겼던 문화 청지기로 자신의 삶보다는 오로지 소명에 따른 ‘헌신’에만 올인했던 안수현 씨. 그의 아이디 ‘스티그마’(stigma, 흔적)란 의미를 실천하듯 서른셋, 예수님의 나이에 갑작스레 우리 곁을 떠난 짧은 생의 흔적을 되짚어 본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 예수님의 흔적을 지닌 사람,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정현), ‘stigma, 이곳에, 그리고 이제 우리들 속에 남아 있어’(김선현), ‘오빠처럼 예수의 흔적을 간직하며 하루하루 살게요’(김혜영).


안 수현 씨는 일상에서 섬김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정석으로 보여 준 사람이다. 군의관이자 의사로, 한국누가회(CMF) 소속 작누세(작은 누가들의 세계) 편집인으로, 영락교회 예흔의 설립자로 수많은 꼬리표를 가졌지만 무엇보다 그는 ‘닮고 싶은 사람’으로 남았다. 특히 그가 죽기 전엔 드러나지 않았던 수많은 선행과 헌신이 죽음과 함께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훈훈한 영향력은 안씨의 주변인을 넘어서 세상 속으로 흘러넘치고 있다.


군의관으로 활동 중이던 안씨는 지난 2006년 1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유행성 출혈열.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이었다. 처음엔 감기인 줄 알았고 병명을 알았을 때조차 죽음을 예상치 못했기에 그의 사망은 청천벽력이었다. “예흔에선 존재감이 컸어요. 사실 예흔을 낳은 사람이기도 하고. 요즘 부쩍 ‘만날 때가 됐는데…’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의 부재가 현실적으로 느껴져요.” 예흔에서 함께 활동한 송영주(고대병원 간호사) 씨의 말이다. ‘예수님의 흔적’이란 뜻의 예흔은 영락교회 문화사역팀 소속, 예배자를 돕는 공동체로 지난 98년, 안수현 씨가 ‘God will make a way’란 곡에 은혜를 받고 나누고 싶다며 모임이 시작됐다.


당시 인턴이었던 그는 구하기 어려운 수입 앨범을 모으러 다니며 영어 번역, 자막 입히기, 안내지 만들기 등의 모든 작업을 혼자 담당했다. 현재 예흔 리더로 사역 중인 송광수 전도사는 “잠자는 시간을 쪼개서 예배 자료를 만들었어도 번역이나 소개 자료는 전문가 수준이었어요. 형은 곡 하나를 완벽하게 마스터하기까지 수백 번 돌려 들었다고 해요. 그나마 인턴 땐 예배 준비만 해주셨고 예배에 참석하게 된 건 레지던트 2~3년차 되어서였죠”라며 “지금 예흔은 스태프만 30명이 넘어요. 모두 그분의 섬김으로 맺은 결실들이죠”라고 덧붙인다.


한 번은 사지 않아도 될 법한 앨범까지 구입하는 그에게 “왜 앨범을 다 사냐”고 물었다. 그러자 안수현 씨는 “누군가가 필요할까봐”라고 대답했다 한다. 팀 내에서도 별명이 ‘에너자이저’였던 안씨는 특히 공동체 내 ‘마이너리티’ 그룹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섬김은 지난 의료파업 때 중환자실에서 홀로 환자들을 돌보았던 일화에서도 드러난다. 이처럼 작은 것 하나도 타인 지향적으로 살았기에 ‘예수님의 스타그마’가 가능했을 것이다.


큰형인 안일석 씨는 “아마 이런 일을 통해 동역자들을 세우는 미션을 주지 않았나 싶어요. 수현이가, 길은 만들었어요”라며 희미하게 웃는다. 사실 그는 동생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가족들도 몰랐던 섬김의 흔적들을 발견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늘 값없이 섬기는 리더가 되고자 했던 동생이기에 하나님의 뜻하신 바가 있을 거라고 믿어요. 많은 분들께 위로도 받았고. 이젠 가족들이 수현이가 하던 일을 이어받아야죠. 컴패션이나 예흔 섬기는 일 같은….”


병원 업무가 끝난 새벽녘, 지체들의 집 앞 우체통에 CD나 책 등을 슬쩍 밀어 넣으며 문자를 남기던 사람, 늘 먹을 것을 양손에 가득 쥐고 함박웃음 던지며 나타난 사람, 주말이면 영락교회 의료선교부를 이끌며 의료봉사를 나가던 사람. 그야말로 송영주 간호사의 말처럼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려 준” 사람이다.


한국누가회(CMF : 의•치•한의대생들로 구성된 기독 공동체) 활동에도 열정을 보였던 안수현 씨는 95년 통신 네트워크를 통해 나우누리 CMF 탄생을 주도했다. 대학 시절 작누세 편집 활동을 함께 했던 이찬복 씨는 “지방에 사는 누가회 회원들이 의사국가고시를 보러 서울에 오면 수현 형이 호텔로 찾아가 간식도 주고 기도도 나누고 했어요. 인턴이 되어서도 CMF 학생 수련회가 열리면 새벽에 차를 몰고 와 먹을 것을 챙겨 주며 후배들을 격려해 주었죠. 그때부터 수현 형은 저에게 섬김의 지표가 됐어요”라고 회상한다. “가장 아름다운 모습만 남기려고 그렇게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감당했던 것인지 모르겠어요. 누가회와 작누세 식구들 속에 남긴 형의 흔적은 공동체를 성숙하게 하는 또 다른 계기가 되겠지요.” 아직 슬픔이 마르지 않아서일까. 회상 속에 담겨진 이씨의 목소리에 물기가 어린다.


안수현 씨의 장례식엔 4000명이 넘는 하객이 몰렸다. 한경직 목사님 장례 이후 이렇게 많은 장례인파는 처음이라며 영락교회 측도 놀라워했다. 그가 열정적으로 모았던 CD와 서적 수만 점은 그가 섬기던 공동체에 모두 기증되었다. 누군가가 그랬다. 순결한 사랑 없인 할 수 없는 일들이었기에, 그에게 주어진 진정한 재능은 ‘사랑의 은사’였다고. 그 사랑의 진정성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크리스천의 모습은 아닐까.


기사를 쓰면서 안수현 씨의 홈페이지에 계속 접속해 이런저런 글들을 읽어 본다. 문득 한 칼럼에 쓴 ‘Jesus, you are my reward’라는 문장을 발견하고서야 비로소 그의 헌신과 노력들이 어디서 발현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의 발자취는 우리 스스로에게 이렇게 외치게 한다. “그러니까 더 열심히 살자. 더 사랑하고 더 섬기며 살자….”


삶을 가장 아름답게 사는 방법은 사랑하는 것이다
The Best use of life is love


사랑에 대한 가장 좋은 표현은 시간이다
The Best expression of love is time


그리고 사랑하기 가장 좋은 순간은 바로 지금이다
The Best time to love is now


미니홈피에 남긴 안수현 씨 글


[출처: 두란노서원 빛과 소금 2006년 4월호]
http://www.duranno.com/sl/detail.asp?CTS_ID=53990

Posted by 더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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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닮은 33년 아름다운 仁術을 남기고


“정말 슈바이처 같은 훌륭한 사람이었고 더 훌륭하게 될 줄 알았는데 너무 허망합니다. 당신이 여러 사람에게 끼친 선한 영향력을 나도 조금씩 끼치며 살렵니다. 주님의 흔적을 갖고 살고자 했던 당신을 본받아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겠습니다.”


“당신의 아름다운 삶에서 예수님의 발자취를 들여다 봅니다. 비록 길지는 않았다 해도 우리에게 뚜렷한 흔적을 남겨주셨어요. 크리스천들은 마지막 순간에 슬퍼하는 게 아니라죠. 오히려 기뻐하는 거라고. 하지만 왜 이렇게 슬퍼지지요?”


예수님의 흔적이 되고자 스스로를 ‘스티그마’(stigma·흔적)라고 했던 한 신실한 젊은이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간 뒤 그를 향한 추모의 열기가 뜨겁게 일고 있다. 국방부 군의관으로 있다가 유행성출혈열이라는 불의의 병마를 만나 지난 5일 하나님의 품에 안긴 고 안수현(33) 대위에 대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의 글들이 온라인상에 폭주하고 그의 안식을 비는 눈물과 통곡이 장례식장과 분향소에 흘러넘쳤다.


생전에 너무나 열심히 주님을 믿고 사랑한 그였기에,너무나 즐겁게 주님의 사역을 감당해온 그였기에 남은 이들의 슬픔과 아픔이 더했다. 거기다 그는 전역을 불과 4개월 앞두고 있었다.


고인의 싸이월드(http://cyworld.nate.com/stigma ) 홈페이지에 무려 3000건 이상의 추모글이 오른 것을 비롯해 카페 예흔(http://www.freechal.com/ynyeheun ),한국누가회(http://www.kcmf.org ) 등 그와 관련된 인터넷 사이트에 셀 수 없이 많은 글이 답지했다.


그리고 7일 고인이 지상을 떠나는 날,서울 종암동 고려대안암병원과 경기도 고양시 벽제화장터에는 눈물의 기도가 메아리쳤다. 특히 고인의 육신이 한줌의 재로 변하는 현장을 지킨 200여명의 추모객들은 가슴을 찢는 기도로 고인을 환송했다.


그러나 고인은 죽음은 슬픔만이 아니었다. 슬픔의 이면에 있는 감사의 의미를 깨닫게 했고 하나님이 첫 순교자 아벨을 택한 것처럼 숱한 사람들의 간구에도 그를 데려간 뜻을 헤아리게 했다.


추모의 글들에서 나타나 있지만 고인은 천생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신실한 부모인 안봉순 장로와 한효순 권사의 2남2녀 중 막내인 그는 가족과 함께 영락교회를 섬기면서 어느 누구보다도 진실하며 적극적이었다. 특히 예배자를 돕는 헬퍼십 공동체인 ‘예흔’을 이끌면서 많은 젊은이들에게 선각자의 역할을 했다. 고려대 의대를 나와 의사가 된 이후에는 한국누가회에서도 주도적인 활동을 했고 찬양과 문학적인 면에서도 뛰어난 재능으로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래서 그는 주위로부터 ‘특출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을 줄곧 들었다.


의약분업 사태 당시 대부분 의사들이 파업할 때 그는 홀로 병원을 지키면서 환자를 돌본 소신있는 의사이기도 했다. 2003년 군의관이 된 그는 야전부대를 거쳐 최근 국방부에서 근무해왔다. 지난달 중순 몸살 기운을 느끼다가 병세가 심해져 18일 국군통합병원으로 후송된 뒤 고려대안암병원에 옮겨져 의식을 잃었다.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에 ‘Jesus,Be the Center’란 말을 새겨놓은 그는 생전 그토록 연모하던 예수님 앞으로 갔다. 자신의 33번째 생일을 열흘 앞두고…. 그러나 평소 예수님의 성흔을 품고 살았던 고인의 지난 삶은 분명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에 대한 흔적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만날 부활에 대한 소망의 흔적이 되었다.


[출처: 국민일보 2006년 1월 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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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출처: 예흔 http://home.freechal.com/ynyeh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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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입(介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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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금한 일이었다.

8 내과병동 특실 병실. 병실 앞에는 날마다 다른 내용의 성경구절 또는 읽을거리가 바뀌어 내걸려 있었다. 보기 드문 일이어서 나와는 상관 없는 환자인데도 호기심은 모락모락 피어올라 결국 병실을 담당하고 있는 간호사에게 어떤 환자가 입원했는지 묻지 않을 없었다. 전해들은 이야기는 대장암 환자인데 미국에서 치료를 시도했지만 차도가 없어 다시 국내로 들어오신 분이라는 정도였다. 현재는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가 좋지 않아 대증적인 치료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결국 손쓰기는 이미 늦은 말기 환자라는 이야기인 같았다. 바쁜 병원 일정으로 병실 앞을 지나쳐 가는 중에도 꾸준히 연재되는 글귀를 그냥 지나치기란…. 결국 나는 며칠 권과 카세트 테입을 챙겨서 저녁 늦게 병실 앞에 섰다.

혹시나 싶어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넓은 특실 편에 환자가 힘없이 누워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곁에는 딸인 듯한 자매가 깜빡 잠들어있었고, 저만치 소파에는 아주머니 분이 곤히 잠들어 계셨다. 눈이 움푹 패인 환자는 가운을 입은 낯선 사람의 방문을 경계할 만한 힘도 모자라 보였다. 나는 나직이 병실 밖에 내걸린 말씀을 읽고 한번 들르고 싶었노라고 찾아온 이유를 말한 챙겨온 책과 테입을 전하면서 함께 짤막히 기도했다
.

다음날, 병실 보호자가 나를 만나보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어제 소파에서 주무시던 아주머니였다. 내가 궁금해했던 성경구절은 바로 아주머니 작품이었다. 남편을 통해 어젯밤 내가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윽고 아주머니의 입을 통해 듣게 가정의 이야기는 마음 아픈 것이었다
.

환자는 역량있는 사업가였고, 아주머니는 대형병원에서 오랫동안 약사로 일한 경력이 있는 분이었다. 부족함 없는 가정환경에 또한 자라주어 차례로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고, 교회에서도 열심히 봉사하던 다복한 가정에 고난이 찾아든 것은 한해 전이었다고 한다. 혈변(hematochezia) 있어 시행한 대장내시경에서 직장암이 발견된 것이다. 국내 유수의 병원을 찾아 절제수술을 받았으나, 병은 너무 빨리 재발했다. 환자와 가족은 병원의 치료방향과 방법이 적절하지 못했다는 확신을 가졌고, 맏딸이 국내외를 수소문해 해외에서 항암치료를 받아보자는 대안을 내놓았다. 과정에서 아주머니는 깊은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정신과에 입원하게 되었고, 대신 맏딸이 아버지를 모시고 미국으로 치료를 위해 길을 떠났다.


MD
앤더슨 병원을 찾은 환자는 새로운 항암치료를 시행받았으나 병의 경과를 돌이키지는 못했다. 별달리 선택할 길이 없는 상황에서 의료진은 귀국해 대증적인 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고, MD 앤더슨 병원을 거쳐간 있는 한국의 의료진을 소개해줘 우리 병원을 찾게 것이다.

아주머니는 비록 의료진이 남편의 병세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남편을 일으키실 것이라는 확신에 있었다. 남편이 미국에서 치료받는 기간동안 자신 또한 치료받느라 남편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절절했다. 맏딸이 아버지의 소소한 부분까지 챙기기엔 어려웠을 것이라고 하면서 이제는 자신이 남편 곁에 있으니 가장 간병할 있노라고, 그래서 결국엔 침상을 훌훌 털고 일어나게 것이라고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확신을 감히 부인하기는 어색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일단 그녀의 믿음에 힘을 실어주면서 함께 지켜보기로 했다. 하지만 이후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

방에 자꾸만 화분이 하나둘 늘어갔다. 남편이 워낙 화분을 좋아하고, 맑은 공기를 많이 마시면 몸에도 좋을 거라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있는 환자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았다. 현재 환자상태와 앞으로의 경과에 대한 의료진과 아주머니의 의견에는 계속 현격한 차이가 있었고, 게다가 병실을 맡은 간호사와 사소한 말다툼까지 있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무언가 문제가 있는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문이 풀리기 시작한 것은 환자의 맏딸과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부터였다
.

#
조심스럽게 부모님 사이에 엿보이는 불편함의 이유가 무언지를 질문하자, 그녀는 입을 열어 숨겨져 있던 다른 진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어머니는 교회 일이다 직장이다 하면서 집안을 돌보지 않았어요. 청소든 부엌 일이든…. 저는 일찌감치 홀로 서는 법을 배워야만 했지요. 공부도 알아서 했고 동생도 제가 돌봤구요. 아버지 말상대도 되어 드렸지요. 어머니는 언제나 소녀 같았어요. 자기 하고 싶은 일만 하시는 거죠. 하지만 자식들이 당신 원하는 수준에 미치는 부끄러워 하셨죠. 입학하고 나서 () 바꾸게 것도 엄마 성화 때문이에요. 그러던 아빠가 암에 걸렸어요. 엄마는 울고불고 난리가 났죠. 아빠를 도와주기는 커녕 자기 앞가림도 하지 못하셨어요. 자기를 추스르지 못하더니 결국 우울증으로 입원까지 하게 됐구요. 아빠는 제가 살려야 했어요. 엄마는 어려운 상황에서 아무런 도움이 됐고,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학교를 일단 휴학하기로 했지요. 모든 자료를 뒤졌고, MD 앤더슨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하자는 결론과 모든 비행기 일정, 치료 진행과 간병 모두 제가 혼자 했어요. 그런데 귀국하자 엄마는 저보다 엄마가 아빠를 알고 돌볼 있다고 우기면서 제가 간병하는 하나하나를 문제삼기 시작했어요. 우울증에서 차츰 벗어나게 되자 이제는 아빠를 내게 뺏겼다는 생각이 엄마를 사로잡은 거에요. 아빠는 미국에서 가망이 없다는 선고를 받고 돌아오셨어요. 그나마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해 다시 병원을 찾게 건데, 엄마는 모든 부인해요. 그저 아빠는 나을 거라는 이야기 뿐이에요. 저도 하나님을 믿지만, 엄마의 저런 반응은 아빠까지 안정을 찾지 못하게 하고 있어요. 정말이지 저런 엄마를 엄마로 인정할 수가 없어요
.”

아주머니는 점점 자신의 생각과 남편의 병세가 회복되면 하고 싶은 일들을 이전보다 스스럼없이 내게 털어놓았다. 병실을 찾아갈 때마다 아주머니는 여전히 환자 곁에서 희망찬 이야기를 쏟아놓았지만, 환자와 맏딸의 굳은 얼굴은 풀릴 몰랐다. 나는 계속되는 만남을 통해 환자와 맏딸, 그리고 아주머니 각각과 어느 정도의 신뢰를 쌓아갔고, 그들 모두에게 좋은 의사로 남아있기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일그러진 관계를 바라보면서 내게는 관계 사이에 개입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

그것은 환자와 가족만의 개인 사생활이 아닌가? 내가 가운데 개입하는 것은 부질없는 욕심 혹은 교만이 아닐까? 하지만 내버려두는 것도 책임을 유기하는 것이 아닌지 고민하는 가운데 환자의 상태는 차츰 악화되고 있었다
.

나는 맏딸에게 들은 이야기 내용은 모른 하고, 아주머니에게 자녀와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조심스러운 질문을 던져보았다. 역시 아주머니는 문제가 뭔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맏딸은 그저 알아서 커준 자녀 하나이며, 현재는 자신에게서 남편을 소원(疎遠)하게 하는 원인이 되는 일종의 경쟁상대였다. 딸아이의 갈등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나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

아주머니는 다시 내게 - 당시로는 유일한 환기구였을 하다 - 남편과 맏딸에 대한 서운함과 믿음 없음을 이야기하면서 여전히 자신이 생각하는 이후로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이야기했다. 들어주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 듣기 시작한 얼마쯤 지나, 나는 아주머니의 그릇된 영적 환상(spiritual fiction) 바로 잡아주는 것이 필요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원만한 관계가 깨어질 위험을 무릅쓰고, 가족의 사적(私的) 관계에 개입해야 하는 것이다. 이상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병실 앞에서 아주머니와 다시 마주치게 되었다. 마침 환자 병실 앞에 위치한 의대생 실습실이 비어있는 차여서 면담을 하기에는 알맞았다. 결국 나는 모험을 하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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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모님, 그런 일들에 앞서서 먼저 하셔야 일이 있습니다. 따님과 어머님과의 관계가 먼저 개선되어야 합니다. 분이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화를 풀어가기 시작해야 갈등이 해소될 것이고, 생각에는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

예상은 했지만, 아주머니의 얼굴은 금세 굳어지더니 흙빛으로 변했다. 보이고 싶지 않던 치부를 들킨 , 그녀는 싸늘한 목소리로 짤막하게 대답했다
.

선생님, 너무 깊이 아신 같군요. 앞으로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같아요
.”

그녀는 서둘러 방을 떠났다
.

이후로 한참 대화 없이 서먹서먹한 시간을 보냈다. 급속도로 냉각된 관계를 바라보고 있기란 편치 않았다. 맏딸도 여간해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순환근무 일정상 또한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야 했다. 병원을 떠나기 , 병실을 다시 찾았다. 병실에는 환자분 혼자 계셨다. 모든 어려움과 갈등 속에서 감사하게도 그에게는 평안함이 있었다. 그날 찾아와 내게 감사하다면서 마치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신 알았다는 농담까지 곁들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 생의 끄트머리에 서있음을 말없이 공감한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 남은 생을 의탁하는 기도를 드리고 헤어졌다. 그런데, 복도에서 아주머니를 만났다. 아주머니는 조금은 어색해했지만 애써 웃으며 딸아이와 대화를 해봤노라고 하셨다. 화해했다는 이야기를 믿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관계개선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감사할 이유는 충분했다. 병원을 옮겨가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음은 물론이다
.

20
여일 , 일이 있어서 병원에 들렀다가 환자의 병실을 찾아갔다. 병실은 이미 비어 있었다. 지난주에 임종하셨다고 한다. 방안 가득 놓여있던 큼직큼직한 화분이 사라진 병실은 쓸쓸해 보였다
.

석달 지나 수첩에 적혀있던 아주머니의 연락처를 찾은 나는 천천히 다이얼을 눌렀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맏딸이었다. 나는 깊은 애도의 마음을 전한 , 맏딸에게 이후에 가족들이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전화했다고 말했다. 맏딸은 담담히 이후의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어머니와 대화를 시작했노라고, 아직 다는 아니지만 화해하게 되었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기로 했다고 말이다. 이번 학기에 복학하게 되어 다시 학업을 시작했고, 동생과 함께 교회에도 다니고 있다고 한다. 많이 걱정하고 기도했는데 감사한 일이라고 답하며 앞으로 더욱 꿋꿋이 앞길을 헤쳐나갈 것을 당부하고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일말의 근심을 덜어내면서 연락처를 적었던 종이를 천천히 찢어냈다. 주여, 가정을 돌보아 주소서
.

적절한 시기와 행동이었는지는 아직 자신이 없다. 하지만 경험이 내게 가르쳐 것은 어떤 환자에게 있어 육신의 질병은 빙산의 일각(一角) 뿐이며, 수면 아래에 도사리고 있는 아픔을 있어야 아니라 용기있게 문을 두드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마 환자와의 만남에서 선을 넘어서지 않았다면, 또한 죽어가는 말기 암환자를 그저 바라보며 무력감에 빠지는 의료인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사이에 가운을 입은 의사들은 환자가 전인격적인 존재임을 애써 부인하며, 그네들의 삶에 깊이 관여하기를 기피하는 불완전한 치유자로 너무 일찍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육신의 불편함보다 깊은 아픔으로 신음하는 우리 이웃들, 환자들. 사람의 작은 관심과 개입이 때로는 모든 장벽과 불신의 벽을 허무는 도화선이 있다는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산다
.

오늘도 쏟아져 나오는 뉴스와 온갖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느새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세상에 압도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

불확실함에 맞서 자신의 앞길을 설계하고 꾸려가기에 바빠내가 여기 있음을 누군가 알고 있나요?”하고 애타게 부르짖는 눈빛을 날마다 놓쳐버리고 떠밀어 보내는 우리
.

의료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나의 부르심은 무엇인가? 어제 일하는 모습에 도통 의욕이 없어 보여 따끔하게 질책했던 후송계 병사의 어머니가 만성 신부전(CRF)으로 수년 혈액투석 치료 중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나는 언제쯤 제대로 눈을 뜨고 있으려나.


대상에개입-안수현

지난 2003 공모한 3 한미수필문학상 대상에 안수현(육군28사단 의무대 군의관)선생의 <개입>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88편이 접수된 올해는 작년보다 투고작 수는 줄었지만, 전체적으로 수준이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심사를 맡은 심사위원들은 투고작 수준이 급상승해 의료현장이라는 영역에서의 체험을 뛰어넘어 일반적 수필로서도 완결성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말로 전체적인 수준 향상에 대해 언급했다. 심사는 2회에서도 심사를 맡은 있는 황동규(심사위원장, 시인, 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정영문(소설가, 번역가), 손정수(문학평론가) 명이 맡았다.

최종심사대상에 오른 작품은 <개입>외에 김명주(충남 부여 김명주가정의학과의원 원장)선생의 <거지와 의사>, 채명석선생(부산당감제일외과의원원장) <겨울나무>, 박성근(강북삼성병원 내과 전공의)선생의 <이별> 3편으로 대상 못지 않은 수준을 보여주었으나, 심사위원들은 환자와의 관계에서 적정한 거리 유지와 어떤 식으로 그들의 삶에 개입하지 않을 없는 의사의 자기고민을 그려낸 <개입> 대상을 안겨주었다
.

장려상은 정만진(경북영천정만진소아과원장)선생의 <소리없는 요들송>, 최충언(부산 마리아수녀회구호병원 외과과장)선생의 <가난한 향기를 풍기는 사람> 10편이 선정됐다
.

시상식은 2004 2 7 오후 5시에 한미파크홀에서 열리며 대상에는 상금 500만원과 상패가, 우수상 3인에게는 상금200만원과 상패, 장려상 10인에게는 상금 100만원과 상패가 각각 수여된다
.

상은 환자-의사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본지가 제정하고 한미약품이 후원하는 상이며, 올해로 3회를 맞았다
.

김민아 기자

licomina@fromdoctor.com


 


수상소감



안수현(31·육군 28사단 사단의무대 군의관)

이것은 나에 관한 것이 아니다.
-
웨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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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통보를 받고 한참동안 실감이 나지 않았다. 병사들을 후송하기 위해 들렀던 병원 게시판에서 우연히 공지를 보고 마음이 동하기는 했지만, 수상을 의도하고 글도 아니었거니와 환자의 만남(communion) 적은 글이 다른 선생님들의 쟁쟁한 글에 비해 한참 추레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 소중했던 경험이었고 글의 실마리를 3년이 지난 올해 가을에야 담담히 풀어낼 있었기에, 수상의 가능성 여부에 관계없이 감사함과 자족함으로 글을 보낼 있었다. 내가 무엇을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신 인격과의 만남에 반응했던 흔적이기 때문이다.

가운을 입은 의료인이 되어 가장 감사한 것은 다른 사람을 위로할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위로자가 되기 위해 선행되어야 필수적인 요소는 허리를 굽히고 자신의 모습을 낮추며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내게 책을 통해 이것을 가르쳐 설대위 선교사(David Seal, 예수병원장) 투르니에 박사, 헨리 나우엔 신부에게 갚을 없는 빚을 졌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며 의사의 자세와 술기를 체득하게 주신 고대병원의 여러 선생님들과 고단했던 수련과 파업의 시기를 함께 지샜던 동료들, 그리고 함께 환자를 돌보느라 애쓰며 동반자가 되어준 여러 간호사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손대야 구석이 수없이 많은 글에 손을 들어주신 심사위원들께도 감사드린다. 부모님이 내게 물려주신 신앙의 유산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는 무엇과도 비교할 없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소망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있기를 기도할 뿐이다. Jesus, be the Centre.

Posted by 더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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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st Me


막다른 골목.
더 이상 도망갈 곳도 없다. 뛰어넘기엔 너무 먼 다리.
남자 주인공이 여자주인공에게 손을 내밀며
비장하게 던지는 한마디.
"Trust me!"
여자 주인공은 남자배우에게 그의 생명과 모든 것을 건다는 믿음
으로 몸을 맡긴다. 다음 순간, 극적으로 두 사람은 위기를 넘긴다.

                         X                 X                    X

액션영화를 보노라면 결정적인 순간에 이런 장면들이 흔히 연출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어쩌면 크리스찬보다 액션영화 제작자가 'trust'란 단어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Crystal lewis의 2000년 앨범「fearless」에서 만나게 된 곡이 있다.

TRUST ME

Close youe eyes                                                눈을 감으렴
take a step                                                          발을 내딛어봐
it's OK                                                                 옳지
I know where we're going                              난 네 갈 길을 안단다

Don't fret                                                            안달할 것 없다
I've been before                                                 이 험난한 골짝길도
through these valleys                                       난 다녀봤고
I've been before                                                 아직 칠흙같이 어두운
down these long and dangerous roads         저 길고 험난해 보이는 길도
yet dark as they seem                                       겪어봤거든

CHORUS
Trust me                                                              날 믿으렴
though you can't see                                        눈에 보이지 않아도
you can trust me                                                날 믿으렴
the way may be steep                                      낭떠러지 길이라도
you can trust me                                               날 믿으렴
let me lead… trust me                                    내가 인도하는 대로…날 믿어

Open your eyes                                                 눈을 떠 보렴
but don't let go of my hand                            내 손은 놓지 말고
let your tears give way to smiles                  이제 울음을 그치고 웃어봐
see the joy inside the trial                              시련 속에 숨겨진 기쁨을 보렴

Don't worry you're safe with me around    나와 있으면 안전하단다
Rest assured I'm on your side                        내 곁에서 편히 쉬렴
I won't let you hit the ground                       땅에 떨어지지 않게
but close as it seems                                        잡아줄테니

It's true that what's in front of you               물론 네 앞길이 언제나
isn't always clear                                              밝히 보이지는 않겠지만
but you must believe it in your heart          이것 하나는 꼭 믿으렴
I'm here                                                             내가 여기, 너와 함께 있단다

- 'TRUST ME', Crystal Lewis

QT 중에 흥미로운 말씀을 접한 기억이 난다.

       요한복음 2:23-25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않으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Now while He was in Jerusalem at the Passover Feast,
        many people saw the miraculous signs He was doing an believed in His name.
        But Jesus would not entrust Himself to them, for He knew all men.
        He did not need man's testimony about man, for He knew what was in man.

사 람들은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를 보고 그를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의지하지 않으셨다. 그들의 집에서 묵지도 않으셨고, 아무 부탁도 하지 않으셨다. 그들을 믿지 않으신 것이다. 그들의 믿음이 어떤 것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다 알고 계신 것이다.
성경의 다른 구절을 보자.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Yet to all who received Him, to those who believed in His name,
         He gave the right to become children of God

         롬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義)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by believing you receive God's approval,
           and by declaring your faith, you are saved.


이상의 말씀에서 우리는 요 2:23의 '믿는다'와 그 외 인용구절의 '믿는다'라는 단어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trust)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 3:5~6)"라고 성경은 말한다. 하나님은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음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분의 말씀과 나의 판단이 충돌한다면 내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를 때 비로소 바른 길로 인도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입으로 토해내는 어떤 말이 아니고 몸소 행하는 것이다.

전적인 맡김.
끝까지 믿는 것.
순종하는 일.
그것이 진정한 신뢰이며 믿음이다.
구원받은 자의 모습이다.
포도주가 떨어진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의 기적은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그의 말씀을 듣고 물을 '아구까지 채운'(요 2:7) 이들이 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자, 이제 믿음의 발걸음을 떼어 보자.
그 때 내 믿음이 어떠한지 알 수 있으리라.
예수께서 내게 그 몸을 맡기실수 있을지,
그 분의 일을 맡기실 수 있는지 말이다.
      so if you'll take my hand
      we'll close our eyes and count to three
      and take the LEAP OF FAITH
      come on let's go!

      I'm diving in, I'm going deep in over my head, I want to be
      Caught in the rush, lost in the flow, in oer my head, I want to go
      The river's deep, the river's wide, the river's water is alive
      So sink or swim, I'm diving in !

     - DIVE, Steven Curtis Chapman, from the album「SPEECHLESS」

한국누가회(CMF)/영락교회 예흔
스티그마 안수현
stigmas@nownuri.net


(2001.12)

Posted by 더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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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에 만난 백혈병아이 은진이


지난 10월 말에 있었던 일이다.
10 월 26일이었다. 환자가 줄어들어 닫혀있던 53병동(소아과병동)에 사람들이 모여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한 나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이유를 물어보았다.  항암치료를 받는 아이들이 한 번에 몰아서 치료를 받기로 한 날이라고 한다.  환자명단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내 눈에 들어오는 이름이 있었다.  김은진.

지금으로부터 만 2년전인 98년 5월경, 나는 소아과 인턴을 돌고 있었다.   당시에도 은진이는 간호사와 의사 모두들에게 칭찬거리였다.  당시 내가 써놓았던 글을 인용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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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이라는 아이가 있다. 7살짜리이지만 누구보다 어른스럽다. 척수강 내로 항암제인 MTX를 투여할 때에도 주치의와 cooperation이 가능한 아이이다.   고맙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
하루는 은진이 옆자리 아이를 항암제 투여하러 방에 들어갔는데, 은진이가 사탕을 집어준다. 어제 척수 검사할 때 힘들지 않게 잡아주어서 고맙다면서. 불현듯 누가들의 세계 작년호에 실렸던 글 내용이 기억났다.

만 두살 되는 아이였다. 그리고 심장에 심한 기형이 있었다.   "네가 OO이니?" 나의 조심스런 목소리에 그 아이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조그맣게 포장된 초콜렛 하나였다.   조금은 당황하며 나는 그것을 받아 가운 주머니에 넣었다.  그 아이는 무엇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는 것을 안 것은 그 며칠 뒤였다.   이 세상에 남을 도와줄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나는 보고 있었다.   나의 당황은 무엇에 대한 당황이었을까?.....   (전우택, 두살짜리 아이와의 만남, 누가들의 세계 97년 3/4월호)

그 글에 실렸던 심장수술받았던 아이와 마찬가지로, 이 아이도 가장 약한 가운데에도 남에게 줄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건강하지만 병든 이보다도 일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많이 가졌지만 남과 나눌 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나누는 순간 누가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지 드러난다.   가난한 사람은 언제나 가난하다. 언제나 부족함을 불평하며 거지의 구걸에 눈살을 찌푸리며 자기 쓸 것을 셈하기 바쁠 뿐이다.

병실을 나서면서 내가 줄 것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돌보는 부모들을 향한 안타까움이 들었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로 인한 희망을 나눌 수 있을까. 그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할 수 있을까. 머리 속에 떠오르는 한 단어, '희망' 이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어머니들을 위한 책을 선물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아갔다.

5월 3일 새벽 5시, 옆 침대의 인턴 동료 삐삐소리에 잠이 깬 나는, 어린이 주일 아침인 지금을 D-day로 정하고 일어나 나누고 싶은 말씀을 10개 정도 준비해서 각 책의 앞장에 붙였다. 근무중인 간호사들도 도와주었다.   그리고 소아암 환자들의 병실 각각에 책을 조용히 배달했다. 만화책 [사랑의 학교],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합본집, [로아네 집], [그림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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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나눔'을 일깨워주었던 그 아이.   정말 그 은진이일까? 그 이후로 한번도 만난적이 없었는데.

흥 분되는 마음으로 병실로 들어서자, 내 눈 앞에는 훌쩍 커버린 은진이가 있었다.  빡빡이었던 머리도 예쁘게 자라 있었다. 은진이 어머니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상태를 물어보니 경과도 좋아서 이제 치료를 마무리하는 단계라고 한다.  2년 반동안의 항암치료를 참 잘 견뎌냈구나. 숙소에 뛰어가 성구가 적힌 작은 액자와 찬양테이프를 나누고, 은진이는 이번에 퇴원하면 교회에 가겠다고 서로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나는 좋은 경과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면서 다른 일이 있어 은진이 모녀와 아쉬운 작별을 했다. 그날 밤, 다른 환자때문에 소아과 병동을 다시 지나가다가 병동에 놓여있는 한보따리의 옛 입원기록들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동안의 경과가 궁금해 은진이의 기록들을 들춰보던 내 눈에 각인되는 숫자.  921031-.....

은진 이의 생일이 10월 31일이었구나. 순간 내 마음에 한가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해보면 과연 어떨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일까? 나는 다음날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9살짜리 여자아이에게 어울릴 생일선물이 무엇이겠는지를 묻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답이 '모자'였다.

평소 옷이라고는 한번도 직접 사본 일이 없던 내가 백화점 아동의류 매장을 뒤져 예쁜 모자를 골랐다. 그제서야 뒤늦게 조카 생일때 무심하게 지나쳤던 기억이 나 모자 하나를 더 집어들었다.

입 원 차트에 적혀있던 은진이의 집은 경기도 군포시였다.  10월 31일, 주소를 적은 메모를 들고 예쁜 생일케익을 함께 준비해서는  무작정 군포시로 향했다. 가는 도중 차가 고장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어렵지 않게 은진이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집 근처에 도착하자 전화를 걸어서
은진이 어머니께 찾아왔노라는 이야기를 전했다. 은진이와 함께 나를 맞아준 은진이 어머니는 당황스러워했고, 집안이 손님을 맞기에는 너무 어수선하다며 옆집 아주머니께 양해를 구하고 나를 옆집 빈방으로 안내했다.

방 두칸짜리의 누추한 반지하집에서 커피와 순대, 떡볶이를 대접받으면서 한 시간 가량 시간을 보냈다. 은진이에겐 4살짜리 남동생이 있었는데, 그래도 누나라고 동생을 돌봐주는 모습이 기특했다. 은진이 가족은 부부가 모두 가내업을 하면서 어렵사리 생계를 꾸리고 병원비를 대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과연 내가 여기를 찾아와서 무슨 위로를 전할 수 있단 말인가?  불확실한 내일을 사는 이들에게 내 모습이 오히려 괴리감과 상처만 안기는 것은 아닐까? 내 만족을 채우기 위한 것인가?  그 반지하 방에서의 한시간 동안에 내 기억 속에 찾아온 것은 바로 내 어린 시절이었다.

그래, 내가 어릴 때 살던 집도 이런 좁은 집이었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던 시간들 ―
아버지의 실직, 갑자기 생긴 부채, 차례로 입시를 코앞에 둔 4남매들의 뒷바라지…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추운 겨울.

차 츰 나는 이 어려운 젊은 부부의 속내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 집에도 아픈 사람이 있었기에 아기가 백혈병을 진단받았을 때의 절망감이 내 가슴을 후비고 들어왔다.   바로 이것이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모습을 입고 우리와 같이 되신 성육신의 비밀 말이다.   그분은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선물을 보내준 것이 아니라 직접 우리가 되셨다.   누추한 육신을 입으시고, 낮은 자를 보듬어주시며, 십자가에서 생명을 버리심으로 가장 큰 선물을 주셨다.   모든 것을 직접 경험하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깊이 이해하며 위로하실 수 있다.


나 너를 위해 몸 버려도
아깝지 않은 것은
너를 내 몸보다 사랑함이라

나 너를 위해 십자가 짊어져도
슬프지 않은 것은
내가 너를 기뻐함이라

나 너를 위해 일찍 죽임을 당했어도
억울하지 않은 것은
너를 살리고자 내가 죽었음이라

나 너를 위해 부활하여 영광을 보이노라
나 너를 위해 세상에 다시 오리라

- '나 너를 위해', 송명희

내 가 은진이 어머니에게 전할 수 있는 메시지는 그렇게 두가지였다.   우리 가정 또한 비슷하게 어려운 시기가 있었지만 주님을 의지했을 때 여기까지 선하게 인도하셨다는 것과, 하나님은 역시 은진이 가정도 사랑하시기에 하나님을 의지할 때 그 앞길을 책임지시리라는 것이었다. 그렇구나.
이 말을 전하기 위해, 당신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여기를 찾게 하셨구나.

다 행히 준비한 모자는 은진이에게 잘 어울렸다. 은진이에게 교회 가기로 한 약속을 다시 확인하고 집을 나섰다. 백미러로 두 모녀의 손흔드는 모습이 보인다. 11월 말에 외래진료가 있으니 그때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무언가를 주고 온 것 같긴 한데 내 마음은 한아름 받아들고 나온 기분이다.   나의 작은 걸음이 9살의 백혈병 아이에게 복음과 사랑의 기억으로 남아있을 수 있기를, 또 하나님은 반지하의 누추한 집에서 기약없는 내일을 걱정하는 사람들도 똑같이 기억하시며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를 기도하며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2년전 내게 나눔을 가르쳐주었듯이, 나를 울타리 밖으로 또 한번 움직이게 함으로 하나님을 알게 한 고마움을 뒤로 한 채.


I talk to you, You talk to me                                     우린 서로 말하면서
We speak in our own language                                우리의 언어를 사용하고
These common truths that we believe                     진리의 모닥불에 함께 모여
are like a warm, inviting fire we gather 'round    마음과 몸을 녹이지

But there's a danger lurking here                             하지만 이 평안 속에
Inside our peace of comfort                                       숨은 위험이 있네
We've got to go out in the dark                                우린 어둔 곳으로 가야 해
'Cause there's a hungry heart                                    주님을 알기 원하고
that's longing just to know                                        돌봄이 필요한
that someone cares enough to go                             굶주린 영혼들이 있기에

CHORUS
Out there, Someone needs a friends                         저 밖에서, 친구를 찾고 있네
who'll walk against the wind                                     낯선 땅을 향해서
to a place that's strange and unfamiliar                   비바람을 함께 헤쳐나갈
Out there, where all of us have been                        저 밖, 주님 사랑을 알기 전
until love brings us in                                                 우리 모두 있었던 그 땅
so who will dare to go and be a friend                    누가 그들의 친구가 되어줄까
'cause someone really needs a friend out there      저 밖 누군가 친구를 찾고 있는데

So we'll sing for you, you'll sing along                    우리 함께 노래하세
We'll let this song remind us                                      우리 기억할 것은
poor, hungry beggars all are we                                우리모두 이유없이 잔치에 초대된
invited to a feast that none of us deserves                굶주리고 헐벗은 자들이었음을
filled to go to love and serve                                      남을 사랑하고 섬겨야 한다는 것을
(repeat chorus)

Somewhere out beyond                                               놀라운 은혜의 음성
the sweet sound of amazing grace                             들을 수 없는 저 너머에
Someone needs to see God's love                              주님의 사랑과 자비를 꼭 알아야 할
and mercy face to face                                                  누군가가 있는데....


'OUT THERE'

- by Steven Curtis Chapman, Bob Briner, Michael W. Smith
from the album [ROARING LAMBS]

 

2000/11/22
스티그마 안수현
stigmas@nownuri.net
고대병원 내과 R2
한국누가회(CMF)EVER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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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 (The Call)

 
학창시절,  가보고 싶은 음악회가 있는 날이면 공연 시작 30분 전에 벌써 세종문화회관 앞에 도착하곤 했었지요.   광화문 네거리의 지하도에서 밖으로 빠져나오는 순간부터 벌써 쿵쾅쿵쾅 두근대는 가슴.   기대되는 연주회일 수록....  그 짜릿함을 잊을 수 없습니다.

 

요새 제 가슴을 그 이상의 기대와 감동으로 두드리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부르심, '소명(the call)'이라는 단어입니다.

 

우리를 향한 그 분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할 때 비로소 내 영혼은 깨어 참된 나를 찾게 합니다.   내 안에 생명이 살아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현재 저는 대학병원 전공의로서 파업중이지만, 병원에 남아 환자를 돌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도 나흘 밤을 샜습니다.  남보다 나아보이고 싶어서도, 칭찬받고 싶어서도 아니고,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닙니다.   생명과 위로를 전하는 사람이 되는 것,  주님께서 내게 주신 소명이기 때문입니다.   그 소명에 응답함을 통해 나는 삶을 예배로 드린다는 뜻을 발견해갑니다.

 

우 리 각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자기만의 지정곡이 있습니다.  일평생을 통해 우리는 각자의곡을 연주해 갈 것입니다.   하늘의 천군천사와 구름같은 허다한 증인들이 그 연주회의 청중이 되어 주님께서 정하신 생의 마지막 날, 최선을 다한 우리의 연주가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때 갈채를 받기에 부끄럽지 않을, 최선을 다한 연주를 하고 싶습니다.

 

최근의 신간 [소명(IVP)]이라는 책에서, 저자인 오스 기니스는 "소명에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그 부르심(the call)'과 여러 '부르심들(calls)'이 있다" 고 말하고 있습니다. 조금 인용하겠습니다.

 

"... 일차적 소명이란 그분에 의한, 그분을 향한, 그분을 위한 것이다.   무엇보다 일차적으로 우리는 누군가(하나님)에게 부름받은 것이지, 무엇인가 (어머니의 역할이나 정치나 교직)로나 어디엔가(도시 빈민가나 몽고)로 부름받은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이차적인 여러 '소명들'(callings)이지 바로 그 '소명'(the calling)은 아니다.  이 구별은 두 가지 도전을 수반한다. 먼저는 그 두 소명을 함께 붙드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둘이 올바른 순서에 놓이도록 확실히 하는 것이다."

 

' 부르심'을 말할 때 생기는 전제조건은 '부르는 이'(the caller)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부르는 자가 없는 소명은 공허할 뿐이며 일 중독과 구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나 어떤 곳으로 가도록 부름받은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일 이전에 먼저 하나님께 부름받은 자들입니다.   부르심에 대한 올바른 응답은 다른 어떤 것도 다른 누구도아닌 먼저 하나님께만 헌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르심에 대한 올바른 응답은 즉각적이어야 합니다.  더 올바른 뜻을 구한다거나 더 나은 사람을 찾느라 머뭇거려서는 안되겠지요.  은혜의 부르심은 즉각적이고 전적인 순종으로 반응할 때에만 비로소 그 능력을발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나를 향한 주님의 부르심을 상고해봅니다.  땅 끝을 바라보며 살아야 할 증인으로서의 삶을 세상을 섬길 도구로 허락하신 의료인의 소명을 내가 속한 교회와 공동체를 향한 부르심을.

 

그 부르심을 위해서라면 내 몸이 부서진다 해도 나는 행복할 것입니다.

 

For The Sake Of The Call
──────────────
                                      written by Steven Curtis Chapman

CHORUS
We will abandon it all                                  내 모든 것 내려놓으리
for the sake of the call                                그 부르심을 위해
No other reason at all                                 어떤 이유도 변명도 없네
but the sake of the cal                                그 부르심 외에는
Wholly devoted to live and to die...             살든지 죽든지 나 오직
For the sake of the call !                             그 부르심을 위해


Nobody stood and applauded them            아무도 그들 알아주지 않았지
So they knew from the start                        그들도 처음부터 알고 있었네
This road would not lead to fame                잘나가는 길이 아니라는 걸
All they really knew for sure                        확실한 건 오직 하나
was Jesus had called to them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셨다는 것
He said "Come follow me" and they came    "나를 따르라" 하셨고 그들 따랐지
With reckless abandon they came               조금도 주저치 않고
Empty nets lying there at the waters edge  바닷가에 뒹굴고 있는 빈 그물
Told a story that few could believe             그 누구도 믿기 어려운
And none could explain                                이야기 전해주네
How some crazy fishermen                         어떤 미친 어부들이
agreed to go where Jesus led                     예수가 부른다고 따라갔을까
With no thought for what they would gain     아무 얻을 것도 없는데
For Jesus had called them by name            예수께서 그들을 지명해 부르셨고
and they answered                                     그들 부르심에 응답했네


CHORUS
We will abandon it all                                   내 모든 것 내려놓으리
for the sake of the call                                 그 부르심을 위해
No other reason at all                                   어떤 이유도 변명도 없네
but the sake of the call                                 그 부르심 외에는
Wholly devoted to live and to die...               살든지 죽든지 나 오직
For the sake of the call !                               그 부르심을 위해


Drawn like the rivers are drawn to the sea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듯이
No turning back for                                       물은 역류할 수 없고
the water cannot help but flow                     오직 흘러갈 뿐
Once we hear the Savior's call                     주님의 부르심 받은 우리
we'll follow wherever He leads                    그 어디든 나 따르리
Because of the love He has shown              보여주신 그 사랑 인해
And because He has called us to go           우리에게 가라 명하시니
we will answer                                             우리 가리라

 

CHORUS
We will abandon it all                                     내 모든 것 내려놓으리
for the sake of the call                                   그 부르심을 위해
No other reason at all                                    어떤 이유도 변명도 없네
but the sake of the call                                  그 부르심 외에는
Wholly devoted to live and to die...                살든지 죽든지 나 오직

Not for the sake of a creed or a cause          다른 이유 없네
Not for a dream or a promise                        받은 약속 없어도
Simply because it is Jesus who calls            예수께서 부르시기에
And if we believe we'll obey                         믿고 따르리라
(repeat chorus)

 

2000/10/20

스티그마 안수현
stigmas@nownuri.net
영락청년3부/ccw예흔
한국누가회(C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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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등에 태운 나귀 새끼로


PC 통신 나우누리에서 GO CMF로 들어가 스티그마(stigma, ‘흔적’이라는 뜻의 헬라어)를 선택하면 진솔한 삶을 나누는 잔잔한 글들을 만날 수 있다.  글쓴이는 자신을 ‘예수 믿는 고대(高大) 병원 내과 1년차 안수현’으로 소개한다.

 

손해보면서 받는 주일 휴가
모태 신앙인으로 교회에서 늘 조용하게 생활하던 그에게 변화가 온 것은 교회 (영락교회) 대학부에서 한 선배를 만나면서부터였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신이 인도하는 성경공부의 조원이 빠지면 주중에 반드시 개인적으로 만나 보강해 주는 그 선배를 보면서,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일년 간의 힘들고 바쁜 인턴 기간 중에도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주일 예배를 모두 드리는 감격을 누렸다.
“주 일 휴가가 토요일 휴가보다 시간이 짧아도 주일 휴가를 받으려고 노력했어요.  휴가를 손해보고 하루 더 당직을 서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또 내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주위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응급실을 돌 때 제가 하루 더 당직을 서는 대신 주일을 모두 쉴 수 있는 일정을 받게 된 적도 있습니다.”

 

예수 흔적을 가지고 다니는 이
헌 신과 섬김을 하기 위해 나약한 자아와 싸우는 것이 가장 어렵다며, 그는 스스로에게 채운 ‘족쇄’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저는 제 가운에 ‘익투스(물고기)’ 배지를 달고 다닙니다.  이 상징물은, 그리스도인들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해 줄 뿐만 아니라 저 자신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되새기도록 해주는 중요한 매개물이죠”
병원에서 신앙 서적, 찬양 테이프 등을 선물하는 방법으로 전도하거나 남을 섬기고 있다.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지만, 그것들을 통해 동료나 환자, 보호자들에게 하나님의 마음이 전달되니 ‘남는 장사’ 아니냐며 흐뭇해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인턴 첫날 묵상했던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관한 말씀을 항상 새기면서 지낸다는 수현 씨.  예수님을 등에 태운 나귀 새끼를 보며 그는 생각했단다.
‘인턴으로서 병원에서 일하는 동안 힘들고 궂은 일이 많겠지만 그저 묵묵히 해나갈 때 주님을 태운 나귀와 같은 모습이 되지 않겠는가’라고.
통신에 올렸던 그의 글들 가운데서 ‘예흔’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눈에 띄었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흔적’의 준말이다.  한 형제의 아름다운 예흔을 보면서, 내게 있는 예수님의 흔적을 돌아본다.

 

글: 정재철 (이랜드 사목)

 

1999년 7월호 “소금과 빛” p.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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