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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rine (교리)


"썰"을 한번 풀어보려고 한다.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굼벵이, 메뚜기, 바퀴벌레, 좀 고급스럽게 먹으 쥐 같은 것으로 연명하면서 살았다.  몹시 불결한 음식들이라서, 다들 병치레를 많이 했고 오래 살지도 못했다.


BC 2100년경 신께서 아브라함에게 소 한마리를 주시면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모래와 같이 많아질 것인데 다들 소고기를 풍족히 먹으면서 살거라고 하셨다.  그 후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실제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신께서 주신 소를 먹고 살면서 다른 민족들보다 월등히 건강한 몸으로 장수하여 큰 민족을 이루어 살게되었다.  그런데, 삶이 편해지면서 다들 소의 관리를 점점 소홀히 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소들이 차츰 병들어 죽게 되어 BC 400년경 급기야 소들이 완전히 멸종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민족들은 그후로도 수백년간  쇠가죽, 쇠뼈, 돌덩이 같이 말라버린 육포, 소 그림, 소고기로 만든 음식을 그린 그림 같은 것들을 신전에서나마 구경하면서, 어느 훗날 "메시야"라는 분이 오시면 자신들도  전설의 소고기를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갈릴리 촌구석에서 예수라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그 사람이 길러 나눠주는 짐승의 고기가 전설의 소고기이며, 예수가 메시야라는 소문이 실제로 맛 본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오랜 세월동안 소의 전설을 팔아 먹으며 기득권을 장악했던 세력들은 위기감 속에 결탁하여 예수를 사회를 혼란시키는 사기꾼으로 몰아세워 죽여 버렸다.


그렇게 끝난 사건인줄 알았는데, 예수와 함께 소를 3년간 길렀던 사람들이 그 뒤를 이어 소를 기르고 소고기를 나눠줬다.  한번 맛보면 더이상 굼벵이, 메뚜기, 바퀴벌레,  따위는 더 이상 입에 대고 싶지 않을 정도의 환상적인 맛 때문에, 불법 식품임에도 불구하고 소고기는 암시장을 통해서 점점 퍼져나갔다.  단지 소고기를 먹은 것 때문에 맹수의 밥으로 던져지고 사형을 당하면서도 소고기의 맛을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모두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하는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수백년이 흘러 소고기의 유통을 더이상 공공연한 비밀로 방치할 수 없게 되자,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소고기를 나라의 대표음식으로 공인하여, 그 유통을 양성화하게 된다.  워낙 오랫동안 암시장에서만 유통되어서 짝퉁이나 유사 소고기도 많았기에, 니케아라는 곳에서 회의를 열어 그간 내려온 기록을 면밀히 검토하고 의논해 "진짜 소"가 가지는 세가지 특징도 정리하게 했다.


이 후로 소고기는 전 유럽에 급격하게 보급되었고, 이에 따라 소를 기르고 도축하고 판매하는 모든 것이 점점 체계화 되고 조직화 되었다.  조직화된 정육협회는 자신들의 이권을 극대화 하기 위해 언제부터인가 소를 기르고 도축하는 과정을 숨기고 철저하게 비공개로 유지하면서 독점판매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동방 정육협회와 서방 카톨릭 정육협회는 서로의 정통성을 놓고 다투다 갈라지기도 했다.  투명하지 못하게 관리되다 보니, 대다수의 소들은 다시 병들어 죽어 나갔고 개체수는 급격히 감소하게 되었지만, 정육협회는 개의치 않고 병들어 죽은 소, 상한 고기, 다른 짐승 고기를 태연히 속이면서 팔아먹었다.


다행히도 정육협회와는 별도로 산에서 목장들을 운영하면서 영세한 규모로 소를 길러오던 수도원들이 있었기에 그 와중에도 소는 멸종되지 않고 보존되었다.  16세기 독일 수도사중 한 사람인 마틴 루터라는 사람이 소를 기르고 도축하는 과정이 더 이상 비밀로 유지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기록된 문서들을 번역하고 일반인에게 공개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스위스 제네바에서는 장 칼뱅이라는 사람이 5가지 기본 향신료 (5 solas)만을 사용한 홍두깨살 요리를 설파했고, 이보다 조금 늦게 네덜란드에서는 알미니우스라는 사람이 갈비 요리를 전파했는데, 어느 요리가 진정한 소고기 맛의 진수인가의 논쟁은 그 이후로도 근 500여년간 계속되어 왔다.


서쪽으로 계속 전파되어온 소고기는 미국을 걸쳐 약 100여년전에 한국에 본격적으로 전파가 되었는데, 해방후 급격한 경제발전과 더불어 삶이 윤택해지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를 기르는 것에는 더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전에는 안심, 등심, 갈비, 목살, 사태, 양지는 물론이고 꼬리, 족, 위, 곱창까지 가리지 않고 골고루 섭취하였는데, 지금은 입맛도 점점 까다로와져서 마블링이 엄청난 filet mignon정도가 아니면 입에도 잘 대려고 하지 않는다.  이렇다보니 정육점들도 그 기호에 맞춘 제한된 공급을 경쟁적으로 하고 있고, 건강과는 거리가 멀어도 맛있으면 그만이라는 풍조도 점점 심해져 간다.




경전(scripture)이 소 한마리 전체라면, 교리(doctrine)는 대략적인 sketch, 신학은 recipe 정도될까?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경전 자체를 멀리하고 교리에 집착하는 것으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들로 얼룩져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어느 때 부터인지 율법서 토라대신, 장로들의 율법해석서 미슈나를 더 따르게 되었다.  기독교는 점점 많은 부분을 교리화하고, 교인들을 만들어진 교리의 틀 안에 가두는 노력에 점점 더 치중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카톨릭이건, 성공회건, 개신교건 현대 교회가 열심히 추구하는 바는 사실상 성경을 읽게 하는 것이 아닌 교단의 교리를 가르치는 것이 현실이다.


교리에 무게를 두는 것이 얼핏보면 좋게 보일 수 있다.  일관적이고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기 때문이다.  공학을 전공한 나 같은 사람에게 이런 점들은 더할 나위없이 매력적이다.  하지만, 어떤 교리도 경전(scripture)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에 교리에 집착하면 할수록 결국 경전에 칼질을 하게 되고 궁극적으로는 요리를 완성하여 먹는다는 원래의 목적에서 멀어지게 된다.


식재료로 요리를 할 때면 종종 모양을 잡아주는 도구들이 필요하다.  케잌을 만들때면 스폰지빵을 굽는 틀이 필요하고, 새우를 구울때엔 꼬챙이가 유용하게 쓰인다. 


이들의 공통점은 앞 단계에는 필수적이지만, 일단 모양이 잡힌 후에는 제거해야만 요리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리가 마치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신앙의 초기에는 기본적인 모양을 잡아주기 때문에 아주 좋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것이 오히려 방해가 되기 시작한다.  경전을 읽는데 교리와 상반되는 것 같은 부분을 만난다면 어느쪽을 선택해야 할까?  나는 이런때면 과감하게 교리의 틀을 내던진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먹음직스러운 그림의 떡에 만족할 뿐, 차려진 음식의 그 근사한 맛을 음미할 수도 그 음식을 통해 내 몸을 보양할 수도 없다.


한국교회는 "구원"이라는 한 단어에 참으로 오랫동안 집착해 왔다.  나는 그 틀을 이제는 제거해야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하는 생각을 조심스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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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ㄱㄷ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6.09.12 16:38 신고

    홍두깨살, 정육협회... 재미있다.
    근데, 공대생이 이런 풍자글을 쓰다니... 놀랍네 놀라워~~~

성경은 동성애에 관해 뭐라 말할까


제가 사는 미국의 연방 대법원은 "결혼 법·사회 발전과 동떨어질 수 없어, 법 앞의 평등 헌법이 보장해야", "동성 결혼은 합헙" 이라는 판결을 지난 6월 26일에 내어 놓았습니다.  동성연애자들의 오랜 노력의 결실(?)이겠지요.


기독교 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동성애에 대한 허용과 혐오이라는 두가지 극단 중 하나를 고수합니다.  뉴조 (News & Joy)의 성향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가서 둘러봅니다.  보수적인 기독교 매체에서 접할 수 없는 내용과 의견과 소식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올라온 글 중 나름 균형 잡힌 시각으로 쓴 것이 있어 공유합니다. (한국성서대학교 신약성서신학 이민규 교수님의 글입니다)  특별히 "성적 정체성/성향" 자체가 성경에서 말하는 "실질적인 동성 간의 육체적 관계"와는 다른 것임을 잘 설명해줍니다.


글 끝에 짧게 요약한 것에 의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전문은 여기)

  1. 성경은, 동성애 성향 때문에 어떤 사람을 정죄하고 판단할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다. 다만 혼외정사를 금지한 것처럼 동성 간 성관계도 죄로 인식한다. 우리는 모두 원죄의 결과를 지닌 죄인들일 뿐이다.
  2. 성경에 동성 간의 결혼은 없다. 창조의 원리에 따른 결혼은 남녀 간에만 이루어진다.
  3. 동성애 성향이 있는 이도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동성 간의 연애나 육체관계를 즐기고 있는 상태라면 문제는 다르다.
  4. 하나님이 우리 같은 죄인을 차별 없이 사랑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동성애자를 차별 없이 사랑해야 한다.
  5. 교회는 동성 간의 성행위를 미화하거나 죄가 아니라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풍요함과 자유로움이 계속 될수록 점점 변태적이고 엽기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속성인것 같습니다. (저도 그런 인간중 하나지요)  


그런 인간의 본성에 비춰, 동성애의 합법화 다음 단계는 또 뭘까를 생각해 봅니다.  동물과의 결혼?  로봇과의 결혼?  너무 상상력이 지나치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의외로 그리 먼 현실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북유럽에 동물 매춘 합법 논쟁이 있었던 것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영화 Bicentennial Man의 마지막 장면이 로봇과 인간의 결혼이었지요.  "자유와 평등"이라는 근사한 단어들로 치장해 비정상을 정상으로 인정해주는 문화에서 동물이나 로봇과의 결혼을 인정해주지 말아야 할 근거는 없습니다.


새로운 일이 아니라 수천년전부터 있어왔던 일이고, 우리 믿음의 선배들도 그런 세상에서 견디면서 빛과 소금으로 묵묵히 살아왔습니다.  우리고 그 발자취를 따라야 할 때 인 듯 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And do not be conformed to this world, but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so that you may prove what the will of God is, that which is good and acceptable and perfect." (로마서 12장 2절)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They are not of the world, even as I am not of the world." (요한복음 17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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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해제 (Disarmament)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것을 꼽으라면 내 마음과 머리를 깨끗하게 청소하고 빈 자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은 성경(text)를 보기에 앞서 내 상황(context), 의도(agenda), 선입견(prejudice)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빈 자리를 만드는 것은 내가 평생을 진리로 확신하고 믿어왔던 교리와 생각과 체험도 틀릴 수 있다고 방패를 내려 놓는 것이 하나요, 내가 싫어하고 거짓으로 여겨 공격해 왔던 것에서도 진리가 발견될 수 있다고 칼을 내려 놓는 것이 다른 하나입니다.

 

방패를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내 안에 지고의 가치가 무너질 때 수반 될 “허탈” (요샛말로 “멘붕”) 에 대한 무의식적인 두려움 때문입니다.  목회자의 심각한 범죄가 만천하에 드러나도 눈과 귀를 틀어막고 현실 부정을 하는 사람들이나, 이단으로 확정되어 대다수가 등을 지고 나간 후에도 세상과 고립된 채 함께 몰락하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이런 경우의 극단에 해당 되겠지만 사실 제 안에도 그런 심리가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내려놓음이 없다면, 일년에 여러번씩 성경 통독을 하는데도 새로운 것을 깨닫는 것 없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남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또 많은 경우에 이것은 내가 그 동안 성취하고 쌓아왔던 것들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지위, 직업, 학력, 재산, 관계 등....  이런 것들을 ‘똥’처럼 여기지 못하기 때문에 내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정당화 함으로 불안요소를 멀리하고 싶어 합니다.

 

칼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내가 과거에 받는 상처를 통해 전해지는 견딜 수 없는 “아픔” 때문입니다.  내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사람이나, 내가 혐오하는 단체가 주장하는 말과 행동에 관련 되어 있는 부분에는 내 마음이 자동적으로 거부반응을 일으킵니다.  분명 한두 단어만으로도 함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내용인데, 오염된 것 같아 사용하지 않고 싶어 그 단어를 피해 뺑뺑 돌다 보니 어느덧 한두 페이지를 할애해야만 하는 적도 있습니다.  기복주의, 근본주의, 자유주의, 민중신학, 해방신학, 세대주의, 다원주의...  일단 거부반응이 일어나면 마치 정 반대편에 진리가 있는 것처럼 반작용으로 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콩으로 메주 쑨다 하여도 곧이 듣지 않는다”는 말이 이런 경우겠지요.  제 짧은 경험으로 볼 때, 가까이 있었지만 싫고 더럽고 혐오해서 쳐다보지 않던 것 속에 감추어져 있었던 나사 하나가 결국에는 뭔가 잡힐 듯, 완성될 듯 하면서도 마무리되지 않고 맴돌고 있었던 것의 마침표가 되는 일이 분명 있습니다. 

 

읽는 우리야 여러 번 읽고 들어 그렇지 않지만, 사실 성경에 나온 내용들을 살펴 보면  당사자들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을 충격적인 사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묵상하는 우리에게도 그런 충격적인 말씀을 하시도록 하려면 먼저 내 안 에 빈자리를 마련해야만 하겠습니다.

 

[추신] 한국 신문의 기사나 SNS에서도 “허탈”과 “아픔”을 두려워 상대방의 말에 귀를 닫고 “끼리 끼리” 어울려 떠드는 모습... 참 많이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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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더가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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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ㄱㄷ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9.21 21:07 신고

    고등학교 때 본 '순수'한 모습이 아직 변함이 없네요.

Adam: Historic or Symbolic?


“창조적 진화론”을 근 20여년째 미주 K집회를 비롯, 여러 신학대학을 포함한 곳곳에서 설파하고 다니시는 한 과학자께서 최근에 빌리 그래함의 글 한 부분을 인용하셨습니다.


“I believe that God did create the universe. I believe that God created man, and whether it came by an evolutionary process and at a certain point He took this person or being and made him a living soul or not, does not change the fact that God did create man. … whichever way God did it makes no difference as to what man is and man’s relationship to God.” 

from Personal Thoughts of a Public Man by Billy Graham


"나는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셨음을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믿으며, 그일이 진화의 과정을 거친 어떤 한 시점에 이 사람 혹은 존재를 취하셔서 생령을 만들었는지의 여부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바꾸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하셨는가는 인간이 무엇인가와,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관해서 아무런 차이를 만들지 못합니다."


“창조적 진화론”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대체로 아담을 인류의 기원인 “역사적”인 한 인물로 보지 않고 진화의 결과로 나타난 인간들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보는 것으로 압니다.  생물적인 진화의 결과로 인간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면 논리적으로 그렇게 해석할 수 밖에 없겠죠.  저 같은 사람이 뭐 성경해석의 문제를 놓고 빌리 그래함과 감히 맞짱 뜰 수야 있겠습니까만, 만약 아담을 역사적인 인물로 보지 않는다면 아담의 대표성과 관련된 수많은 성경구절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제 머리로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역사비평, 자료비평, 본문비평, 문학비평, 양식비평, 편집비평등으로 성경을 난도질을 해놓고는 “성경은 설화와 우화를 짜집기 한 책”이라고 결론 내린 분들과 “창조적 진화론”을 주장하는 분들은 제 눈에 솔직히 그리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찌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And did not he make one? Yet had he the residue of the spirit. And wherefore one? That he might seek a godly seed.” (말라기 2:15)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Wherefore, as by one man sin entered into the world, and death by sin; and so death passed upon all men, for that all have sinned.” (로마서5:12)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For as by one man's disobedience many were made sinners, so by the obedience of one shall many be made righteous.” (로마서 5:19)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For since by man came death, by man came also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For as in Adam all die, even so in Christ shall all be made alive.” (고린도전서 15:21-22)

 

“기록된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And so it is written, The first man Adam was made a living soul; the last Adam was made a quickening spirit.” (고린도전서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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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oodykos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9.06 18:19 신고

    사실은, 몇년전 Christianity Today에 historical Adam에 대한 debate 기사가 실린적이 있었습니다.
    http://www.christianitytoday.com/ct/2011/june/historicaladam.html

    "창조적 진화론"자들이 모두 Adam을 심볼로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
    그쪽에도 몇가지 다른 견해들이 있고요.

    뭐 저 개인적으로는,
    선호하는 입장이 있긴 합니다만, 아마 형님과는 조금 다른입장일 것 같습니다. ^^
    사실 많은 Korean Christian들과 다른 입장이라고 할수도 있을테도...
    제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도 다른 입장이라고 할수도 있을 테고요... ㅎㅎ

    다만,
    역사비평, 문서비평 등의 방법이 성경을 난도질했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는데요...
    오히려 성경과, 그 성경을 믿는 믿음을 더욱 건강하고 튼튼하게 만들었다고 보고요.
    아마 그래서,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Tim Keller가, 위에서 언급한 CT 기사에서도,
    historical Adam이 존재해야하는 이유로, 형님이 언급하신 내용들을 basis로 많이 다루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더가까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4.09.06 22:47 신고

      좀더 넓은 시야의 읽을거리를 던져줘서 고마워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입장을 조금더 자세히 소개해줄수 있는지요?
      (답글이든 아니면 트랙백으로 자세히 써주든)

      내가 갖가지 비평 싫어하는 사실과 이유는 몇년전에 woodykos형제 글에 길게 답글달았던 것으로 충분(? 너무 했던것 같아 ㅎㅎ)한것 같아 다시 언급은 하지 않으렵니다. 어쨌든 썰렁한 블로그에 답글 달아줘 고마와요 ^_^

    • 더가까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4.09.06 22:53 신고

      구글링하니까 그 때 글 금방 찾아주네요... http://woodykos.tistory.com/1214

      이건 내 글에 대한 woodykos형제의 입장 http://woodykos.tistory.com/1219

  2. woodykos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9.07 19:11 신고

    애고 애고... 저는 사실 비전문가여서요, 음... 뭐라고 잘 썰을 풀만한 레벨이 되질 않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는 historical Adam이 존재했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

    형님도 아시겠지만,
    저는 진화론적 process가 창조에 개입했다고 믿는 입장이고요.

    그래서,
    진화의 process로 창조가 진행되고 있는 과정 중에서,
    'historical Adam'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생령'을 부으시고 하나님과 영적 교제가 가능한 존재로 선택하셨다고 보는 정도입니다.
    아마도 이게 John Stott이 이야기했던 관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렇게 받아들이면,
    창세기 타락기사 이후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딸과 결혼하는 본문등이 훨씬 더 자연스럽게 해석이 되기도 하고요...

    뭐 그렇지만,
    형님도 아시지만, 저는 과학적 발견이, 성경 해석을 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므로,
    여러가지 과학적 발견이 더 진행됨에 따라 제 해석의 입장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

    성경은 절대적 진리로 믿지만,
    성경을 해석하는 특정한 방식은 진리로 여기지 않으려는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죠. ^^
    (제가 워낙 제 강한 잘못된 신념을 주장했던 실수의 경험이 많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 더가까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4.09.07 19:25 신고

      ㅎㅎ 또 엄살 (아무도 믿지 않음 ㅋㅋ)
      나도 시대에 따라 (과학의 발견 포함) 해석하는 방식에 당연히 영향 받고 삽니다. 결국은 정도 차이겠지요. 답글에 다시 한번 감사하며...

Age of the Universe?


요즘 심심치 않게 접하는 주제 하나가 창조적 진화론입니다. 

 

넓게 보면 political science같은 것도 과학이라고 말할 있겠지만 주제에 관해서 말할 때는 아마도 전통적인 좁은 의미의 science 적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순수과학을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역시 공학에서도 비교적 물리학에 가까운 분야를 전공한 사람이라는 경험에서 과학은 통상 (1) 현상의 발견 혹은 관찰 (2)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가설의 제시 (3) 가설을 뒷받침하는 증거 재현 가능한 실험결과의 제시라는 형식을 따릅니다.

 

무척 논리적이고 straightforward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들어가보면 이런 과정을 통해 ! 정말 그렇구나라고 부러지게 증명 되어지는 것보다는 나름 그럴듯하네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들이 훨씬 많기에 전세계의 유수한 대학과 연구기관에서는 오늘도 열심히 “re”search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가지 주제에 대해 A교수를 필두로 제자들과 B 교수를 필두로 제자들이 서로 다른 scientific journal 무대로 무척이나 상반되는 이론을 펼치는 것도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고, 증거 실험결과를 제시하는 것도 자신들의 가설을 뒷받침할만한 것들 위주로 골라낸 것에 의존해 주장하기 때문에 양측의 의견은 평행선을 달리는 경우도 종종 봅니다.

 

창조론 vs. 진화론의 경우도 그저 ()일뿐 학문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할만한 증거와 실험결과가 아직까지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양측 모두 각자의 세계관을 중심으로 양보할 없는 결론처럼 이미 굳어진 가설이 있을 뿐이지요.

 

미국 InterVarsity Press 편집장이었던  James Sire 그의 저서“The Universe Next Door (기독교 세계관과 현대사상)” 에서 "A worldview is a set of presuppositions (or assumptions) which we hold (consciously or subconsciously) about the basic makeup of our world." "세계관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기본 구조에 대해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우리가 가지는 전제 (또는 가정) 집합이다." 라고 정의합니다.   혹자는 아주 쉽게 말해서 세상만사를 바라볼 각자가 쓰는안경”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서구 기독교는 이성과 학문을 중심으로 흘러간 오래 되었고 한국 기독교도 뒤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성과 신앙이 배치되는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유연한 사고를 가지는 역시 중요한 가치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서구 기독교가 3세계와 접하는 곳에서는 그들이 이해하지도 설명하지도 못하는 일들이 엄연히 존재하며 이로 인해 좌절하는 서구권 선교사의 수는 결코 적지 않습니다.

 


성경의 많은 내용은 재현 가능한 과학적 사실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벌어진 역사적 사실에 대한 기록입니다 (N.T. Wright).  만물에는 법칙이 있고 우리 삶의 대부분은 법칙에 의해 설명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법칙을 벗어나는 설명 불가능한 일들이 가끔이나마 벌어지는 것이 사실이며 우리는 그런 영역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소아마비로 평생 짧았던 다리가 보는 앞에서 불과 사이에 길어지는 것을 직접 목격한 사람과 일평생 한번의 기적도 겪지 못한 사람의 세계관은 절대 같을 없으며 따라서 같은 결과를 관찰한 것에 대한 해석도 같을 없습니다.

 

저도 이왕이면 불신자들과 충돌하고 싶지 않고 가급적이면  시크(chic)하게 보이고 싶습니다.  그러나 내가 말의 파급효과(영향력도 없는 사람이 걱정을 ㅎㅎㅎ) 생각하면 차라리 욕먹는 편에 서는 낫겠다 싶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자살하면 구원받지 못한다 교리에 대한 생각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성경적 근거가 약한 같고, 자살한 사람의 가족들에게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저명하신 신학교수께서 신문지상에 반론을 펴신 글을 읽고 수많은 자살 충동자들을 생각한다면 차라리자살하면 구원받지 못한다 말하고 욕을 먹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우주의 나이에는 그리 관심이 없습니다.  6일간의 창조기간이 문자적으로 144시간인지 아니면 훨씬 시간인데 은유적인 표현을 것인지 알지도 못하고 그다지 중요하게 느껴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주의 나이, 지구의 연대는 엄밀히 말해서 부각된 껍질의 하나일 , 대립의 핵심은 우연인가 의도한 인가라고 말할 있습니다.   진화론이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사용한 도구가 엄청난 기간의 시간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진화자들이 설쳐서 기정사실화해버린 내용들에 반론을 제기하는 창조과학회의 노력에 아직도 마음이 짠해집니다.

 

고등학교때 생물선생님께서 첫시간에 여러분이 지금부터 배우게 내용들은 유력한 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유력한 대치될 있음을 명심하십시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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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ㄱㄷ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7.22 20:57 신고

    오~
    아슬아슬하게 잘 넘어가네. ^^
    고수야 고수~~

  2. ㄱㄷ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4.07.24 18:42 신고

    매우 보수적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열려있는 것 같아서... ㅋㅋ

라합의 일기 (5) - 무너진 성벽

요단강을 건너온 히브리인들은 길갈 평야에서 뭔가를 하면서 다시 며칠을 있었고 여리고 성 사람들은 성벽 너머로 그들을 지켜보면서 초조한 매일을 보내야 했다.

그 사이에 왕은 예정했던대로 성의 어린 아이 하나를 몰렉신에게 산채로 태워 죽여 드리고 성 사람들에게 이제는 걱정말라고 큰소리를 쳐댔다.  사실 가나안 지역 전체를 통털어 여리고만큼 견고한 성은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 연결된 성벽 외벽만해도 어른 5명 합쳐놓은 만큼이나 높게 진흙벽돌과 돌을 사람키 두께로 쌓아놓은데다, 그것도 모자라 그 안으로 다시  엄청나게 높은 내벽을 진흙벽돌로 쌓아놓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 어느 누구도 이 성을 감히 공략하지 못했다.  성 중앙에 있는 큰 오아시스도 있고,  방금 추수한 곡식도 넘쳐나는 시기라 이기지는 못할지언정 히브리인들이 포기하고 다른데로 갈때까지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참조: 창조과학회 "여리고의 성벽" click here]

이윽고 히브리인들이 여리고성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높은 성벽을 넘어올 사다리도, 성문을 깨부술 공성기도 가져오지 않았다.  군사들이 반씩 나뉘어 있었고 그 중간에 뿔나팔을 부는 사람들 7명이, 그 뒤로 요단강을 앞서 건너던 궤를 들은 사람들이 있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하려는걸까?


그들은 요단강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말 한마디 하지 않았고 조용히 성을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마치 개미떼와도 같이 많은 군사들의 발자욱 소리는 그들이 한걸음씩 옮길때마다 성을 조용히 진동시켰고 성 사람들은 초조한 가운데 그들의 발걸음을 몸으로 느껴야만 했다.  성벽위에 난 집 창문 틈으로 그들을 내려다 보다가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살몬의 얼굴을 찾았다.  붉은 줄이 드리워진 창을 계속 쳐다보며 돌던 그는 눈길이 나와 마주치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하지 말라는듯 미소를 지어주었다.  한바퀴 돌기를 마친 그들은 길길로 돌아갔다.  화살하나 창하나 던져보지 않고...  긴장 속에 지켜보던 왕과 성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다음날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들은 같은 일을 반복했다.  이렇게 하는 전쟁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여리고 성 왕과 성 사람들은 초조함속에 매일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히브리인들이 성을 돌기 시작한지 7일째 되는 날이다.  평소와는 달리 한바퀴 돌기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길갈로 돌아가지 않고 돌기를 계속했다.  두바퀴, 세바퀴, ....  그들은 여전히 굳게 입을 다물고 성돌기를 계속 반복했다. 일곱바퀴째 돌기를 마치자 나팔 소리가 길게 울렸다.  그러자 7일간 입을 다물고 있던 히브리인들이 크게 함성을 질렀고 그 소리에 성벽 전체가 크게 흔들리며 바깥쪽으로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성 외벽에 붙여 지은 집들도 함께 무너지는데 이 함께 우리집도 무너질 것 같아 집 밖으로 뛰쳐나가 피신하고 싶었지만, 일단 집을 벗어나면 살몬이 지켜주기로 약속한 곳을 벗어나게 되기 때문에 옆의 집들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도 도망쳐 나갈수가 없었다.  개미떼와 같이 많은 히브리인 병사들이 무너져 내린 벽돌과 돌을 밟고 성으로 뛰어들어와 성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그 때 사람들을 헤치며 붉은 줄이 드리워진 이곳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오는 살몬이 먼지 속에서 보인다.  나는 달려나가 그의 품에 안겼다.  그는 나와 내 가족들을 즉시로 데리고 나가 길갈 근처로 피신시켰다.  놀랍게도 대부분 무너져내려버린 여리고의 성벽 중에 내가 살던 집에 연결된 부분은 무너지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아~~ 요단강물을 멈추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신 신께서는 그 와중에도 나와 내 가족을 보호하셨구나.  살몬만이 아니고 천지만물을 지으신 신께서도 나를 아시고 구원하셨구나!"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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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합의 일기 (4) - 멈춰버린 요단강

강 건너 진치고 있는 히브리인들 탓에 이곳 여리고 성에 드나드는 나그네들도 전 같지 않게 거의 없어 내가 운영하는 여인숙도 한산하기만 하다.  하는 일도 거의 없다보니 틈만 나면 멍하니 앉아 얼마전 들었던 점토판에 적힌 이야기를 생각하곤 한다.


그러던 어느날 오랜만에 나그네 두 명이 내 여인숙에 들어왔다.  여리고 성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성 분위기에 대해 이런 저런것을 묻기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이곳 신들에 대한 나의 회의감과 점토판에서 알게된 히브리인들의 신에 대해서도...  내 이야기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듣고 있던 그들은 조심스럽게 히브리인들이 광야에서 겪었다는 기적들을 포함해 많은 이야기를 더 해주면서 자신들도 가나안의 신들은 가짜인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이 두 나그네가 히브리인들이라는 것을 직감하여 캐어 물었고 그들은 망설이던 끝에 결국 시인을 했다.

그 말을 듣는 즉시로 나는 그들을 재촉해 지붕으로 데려가 그들을 삼대로 감추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되어 왕이 보낸 병사들이 수상쩍은 그들을 체포하러 나타났고 나는 그들이 해지기전에 이미 성을 떠났다고 거짓말을 했다.  


병사들이 요단강 쪽으로 그들을 추격해 떠나고 성문이 닫혀진 후 날이 어두워지자 나는 떨리는 가슴을 쓰다듬으며 숨겨놓은 나그네들에게로 갔다.  숨겨줘 고맙다고 말하는 두 사람에게 나는 "여리고 성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문으로 들어왔던 히브리인의 신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었음을 확인한 후로 자신들의 신에 대한 믿음을 잃었어요. 모두들 이 성이 정복당해 죽을 것을 알고 좌절하고 있지요.  나도 이 성 사람이니 함께 죽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혹 만에 하나 당신의 하나님이 히브리인들 외에도 자신을 믿고 경외하는 사람을 받아들여 새로운 삶을 허락하시는 분이라면 제가 당신들을 숨겨주고 보호한 것을 봐서 저와 제 가족들을 살려줄수는 없는지요?" 물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그들은 "물론이지요.  저희의 목숨을 보호해준 당신의 은혜를 저희가 꼭 갚을겁니다."라고 말했고 그 중 한명은 "제 목숨을 걸고라도 당신과 당신 가족을 구해낼테니 염려마세요.  당신을 제 목숨의 은인으로 우대할것을 제가 맹세합니다."라고까지 말했다.  그의 얼굴은 그가 진심으로 그 말을 하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가운데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가 내 손을 꼭 잡으며 "제 이름은 살몬입니다.  잊지 말고 기억해 주세요"라고 대답했다.


그 날 밤 나는 성벽 외벽위에 맞붙여 지은 내 집의 창문을 통해 살몬과 그 동료를 밧줄로 달아 내려주며 "추적대가 계속 수색을 하고 있으니 3일간은 산에 숨어 있다가 돌아가세요" 당부했고 살몬은 "곧 침공이 있을건데 모든 가족들을 한명도 빠짐없이 집에 모아 놓고 창에는 붉은 줄을 받드시 매달아 두도록 해요"라고 말한 후 어둠을 틈타 빠져나갔다.


사흘이 지나도 살몬과 그 동료가 잡혀왔다는 소식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후로 다시 3일이 지나자 다시 성이 소란스럽다.  히브리인들이 드디어 요단강 바로 앞으로 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쳐들어 올것을 알았지만 추수기에 내린 많은 비에다, 날씨가 풀려 헐몬산의 눈들이 녹아 내린 물까지 합세하여 요단강은 일년중 어느때보다도 물이 불어 있을 때이기 때문에 설마 최단 거리의 요단강을 향해 올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았다.  도대체 어쩌려는 건지 구경하겠다고 성내 사람중 많은 사람들이 요단강이 보이는 언덕으로 몰려갔고 나 역시 그들을 따라 나가봤다.


멀리 모래알만큼이나 많아 보이는 히브리인들이 대열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 앞으로 궤 같아 보이는 것을 짊어진 사람들이 엄청나게 불어 무섭게 흘러내리는 요단강가에 서 있었다.  도대체 어쩌려는걸까?  히브리인들이나 여리고 성 사람들이나 모두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궤를 짊어진 사람들이 요단강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미쳤구나!  저 물줄기에 휩쓸리면 시체도 못찾을텐데....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그들이 요단강에 발을 담그자마다 그 무섭게 흘러내리던 강물이 멈추더니 멀리 사르단 부근의 아담성에 벽처럼 일어나 쌓이는게 아닌가?  이게 혹시 꿈은 아닐까싶어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지만 생시였다.  지켜보던 여리고성 사람들 모두가 입만 벌린채 넋을 잃고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가, 누군가 "성으로 돌아가야 한다!"라고 외치자 그제야 모두 정신을 차리고는 앞을 다투어 성으로 뛰어 갔다.


성으로 돌아온 왕은 곧바로 성문을 걸어 잠그고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하라는 엄명을 내렸고, 나는 즉시로 가족들을 모두 불러 모아 놓고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가 전부 사실이었어요.  홍해를 가르고 건너왔다는 말도 진짜에요.  요단강물이 멈추는 것을 나와 성사람들이 똑똑히 봤어요.  히브리인의 신이야말로 천지를 창조하고 만물을 주관하시는 유일하신 참 신이 분명해요!" 말해줬다.  가족들 모두 내 말에 동의했고 우리는 살몬이 말한대로 창에 붉은 줄을 달아내렸다.  이제 왕과 다른 성 사람들이 모르도록 조용히 모여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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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합의 일기 (3) - 점토판에 기록된 신

긴장과 공포로 히브리인들의 동태를 지켜보던 중 얼마 전 히브리인들의 진영에 큰 곡소리가 났다.  왕은 아니지만 그들의 우두머리가 죽었다고 들었다.  무려 한달간 곡소리가 그치지 않았고 그 길고도 긴 곡소리는 우두머리가 죽었으니 히브리인들의 구심점을 잃었을 것이며 그러니까 여리고성을 노리지 않을것이라는 안도감을 우리에게 주었다.


그런데 우리 기대와는 달리 그들의 군대가 식량을 준비하고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갑자기 들려왔고 이로 인해 한동안 안도하고 있던 성 안 분위기는 다시 급박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제사장과 사제들이 성을 휘젓고 다니면서 젖을 갓 뗀 어린 아이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대체 뭘 하려는걸까?  저렇게 어린 아이까지 데려간 적은 없었는데....  신전에 있을 때 나에게 잘 대해주던 나이 많은 제사장 할아버지를 찾아가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들었을때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히브리인들의 병력규모로 보았을 때 여리고성이 이길 가능성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맹세의 신 몰렉에게 어린 아이를 산채로 태워 제사를 드리기로 왕이 결정했단다.  설혹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몰렉 신께서 우리 성의 굳건함을 통해 히브리인의 공격을 막아내도록 도우실 거라는 믿음의 고백이란다.  


제사장 할아버지를 다그쳐 물어봤다.  그렇게 해서 몰렉신이 도와준 적이 있느냐고.  하다 못해 신의 계시라도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할아버지는 "우리 성은 강하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성 사람들의 일치된 용기인데. 한 어린 아이의 희생을 통해 우리 성이 하나로 뭉칠수 있다면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다.  이럴 때 일수록 우리는 조상들에게서 들은 내용을 신뢰하고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내 안에서 약해질대로 약해졌던 신들에 대한 믿음이 송두리째 무너져 내렸다.  이런 위기 속에서도 우리를 안심시킬 한 마디도 들려주지 않고 우리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수 없는 무력한 신.  과연 그 신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 엉터리 신, 아니 나무토막 돌덩이를 의지 한답시고 아무 죄 없는 어린아이를 산채로 태워 죽인다고?  힘센 것들이 약한 사람들을 거리낌 없이 유린하고 착취하고 죽이기까지 하면서, 말도 안되는 엉터리 신들을 앞세워 성 백성들을 공포로 몰아 자신의 지위를 지켜내려는 발악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아이를 태워죽이는 상상만 해도 구역질이 나고 그 제사에 참여할 성 사람들을 생각을 하니 치가 떨려왔다.  하루라도 빨리 이 저주받을 성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사장 할아버지께 히브리인들의 신에 대해서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어떻게 생겼냐고?  신상이 있느냐고?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히브리인들은 신상을 만들지 않는단다.  그 신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본 사람이 없어.  대신 그들의 신에 대한 기록이 적힌 점토판은 우리에게 있지."  


할아버지는 조용히 구석에 있는 점토판을 꺼내 읽어 주셨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셨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여호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겠다고 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것이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였다."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점토판에 적힌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내 가슴은 터질듯이 뛰었다.  그간 들어왔던 무수한 신들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조물주...  끊임 없이 치고 받고 싸우고 빼앗는 인간들의 삶을 그대로 담은 허접한 가짜 신이 아닌, 천지만물을 주관하고 다스리는 절대자...  그러면서도 인간의 삶에 관심을 기울여 듣고 말하시는 구세주...  히브리인들의 신이 정말로 점토판에 적힌 이야기 속의 신이라면 어릴 때 들었던 애굽에서 벌어진 일이나 바다가 갈라졌었다는 등의 이야기도 과장 없는 사실일 수 있지 않은가?


[Note] "점토판" 개념을 비롯한 여러 부분이 김성일님께서 1992년 출판하신 소설 "다가오는 소리"를 참고했습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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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합의 일기 (2) - 신이란?


내가 운영하는 여인숙에 들어오는 나그네들마다 히브리인들 이야기에 한층 더 열을 올린다. 헤스본과 바산에 있던 히브리인들이 모압 평원으로 이동했고 그곳에 살고 있던 미디안 족속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전멸시켰다는 것이다.  그 전쟁에 동원된 히브리인들은 전체의 1/50 에 불과한 일부였다고 하니 더욱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가나안 다른 지역들도 불안해하기는 마찬가지겠으나, 특히  이곳 여리고성은 히브리인들이 진을 친 모압 평원에서 요단강 건너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얼굴에 나타나는 공포심은 더욱 역력해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도 히브리인의 신에 맞설 신에게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13살때 처음 참여한 제사의 경험은 지금도 머리에 생생하다.  사제들이 성중에서 골라 뽑은 아리따운 소녀들과 잘 생긴 소년들 중 한명으로 나는 사제들의 손에 이끌려 다른 아이들과 함께 성 중앙에 있는 신전으로 올라갔다.  성안의 어른들 대부분이 이미 모여 신상 앞에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신께 드리는 제사에 참여한다는 들뜬 마음을 성의 왕과 제사장, 귀족들과 남녀 사제들이 아세라 신에게 드리는 번제의 숙연함 속에 조심스레 누르면서 우리는 과정 하나 하나를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이윽고 번제가 마치자 왕과 제사장과 귀족들과 사제들은 음흉한 눈초리로 우리를 쳐다보더니 강제로 우리 아이들의 옷을 찢고 겁탈하기 시작했다.  왕과 남자 사제들은 소녀들을, 여자 사제들은 소년들을...  그 뒤를 이어 제사에 참여한 성의 모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혹은 아이들을 혹은 사제들을 택해 난교를 벌였다.  사랑과 다산의 신인 아세라를 경배하는 중요 제사예식 중 하나로 아세라 신와 그 남편 풍요의 신 바알의 관계를 흉내내는 성행위를 통해 그해의 풍년을 기원한다는 것이었다.  그 날 나를 포함한 아이들의 처녀성은 수십명의 어른들에 의해 그렇게 유린되어졌다.


그후로도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 신전에 끌려들어가는데서 벗어나기까지 우리는 여러차례 같은 일을 치루어야만 했다.  같은 일을 겪은 또래 중 그 의식을 좋아하게 된 아이들도 있었지만 내게는 지금도 그 생각만하면 자다가도 잠이 깰정도로 끔찍한 일이었다.  어릴때부터 그렇게 살아온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별로 없어, 더이상 제사에 강제로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도 나는 여인숙을 하면서 나그네들에게 몸을 파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지금도 성행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너무 너무 싫다.  사랑의 신이라고?  사랑이란게 그런것일까?  그런 폭력적인 방법으로 상대를 짓밟는 것이 사랑이라면 나는 사랑이란 것을 증오한다.  지금껏 수 많은 남자들과 잠자리를 해왔지만 돈 때문에 그 짓을 했을뿐 단 한번도 그들에게서 따뜻함이나 포근함을 느껴본 적이 없다.  신전에서 처음 경험한 남자들이나 지금 내게 돈을 내고 잠자리를 요구하는 남자들이나, 내가 마치 변소나 되는것처럼 자신의 욕망을 내 가랑이 사이에 배설하고 갈 뿐이다.


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도 싸우고, 질투하고, 성관계를 맺고, 죽기도 한다는데 그럼 인간들과 다른게 뭘까?  그저 보통 인간보다 조금 더 힘센 그런 존재들을 신이라고 부르는 건가?  신을 실제로 직접 만났다는 사람은 내 주위에 아무도 없다.  신 만이 할 수 있을 그런 기적을 경험한 사람도 없다.  사람과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을 나무와 돌 덩어리에 새긴, 말도 할 줄 모르고, 움직이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우리를 쳐다보기만 하는 그들이 정말 신일까?  성 내에서 증폭되고 있는 공포심에 비례해서 어릴 때부터 들어오고 성의 모든 사람들이 숭배해 왔던 신들에 대한 나의 회의감은 커져만 간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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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합의 일기 (1) - 희한한 족속


성 안이 요즘 몇달째 불안하고 뒤숭숭하다.  히브리인들이라고 불리우는 족속 때문이다.  이 희한한 족속의 이야기는 어릴 때 할머니에게서 들은 기억이 있다.  이곳 여리고 성에서 이집트로 가는 길을 따라 4일 정도 남쪽으로 가면 시작되는 큰 광야가 있는데 이 곳에서 엄청난 수의 한 족속이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다고...  듣기로는 할머니가 젊으셨던 시절 즈음에 이집트에서 도망쳐 나온 노예들이라고 했다.  


그들이 도망쳐 나올 때 이집트에서는 온갖 천재지변들이 있었다고도 한다.  그들을 내보내달라는 노예의 대표자 요청이 거부될 때마다 피, 개구리, 이, 파리, 피부병, 우박, 메뚜기떼 등으로 이집트 전체가 초토화 되었다고도 하고, 대낮에 칠흙같은 어둠이 뒤덮여 이집트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했다고도 하고, 급기야는 이집트 내의 모든 가축의 첫 수컷과 사람들의 첫째 아들이 전부 죽어버렸다고도 한다.  결국 이집트 왕 파라오가 노예들에게 가도 좋다고 했는데 나중에 마음이 바뀌어 군대를 동원해 홍해 바다 막다른 곳에 몰아 넣었더니, 그 거대한 바다가 그들 앞에서 갈라져 히브리 노예들은 이집트 군대를 피해 이 편으로 건너왔고, 그 뒤를 따라 군대가 추격하여 들어섰을 때에는 바다가 다시 물이 넘쳐 군대의 대부분이 익사 했다고 들었다.  


할머니 말씀으로는 그 히브리인들이 수 백년 전 이곳 가나안 지역에서 이집트로 이주했던 사람들이라서, 이집트를 떠나 다시 이 곳으로 올 것이라는 소문이 함께 전해졌기 때문에 그 일이 벌어졌을 당시 주변의 모든 성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극도로 긴장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 사람들의 우려와는 달리 남쪽 광야 경계부근에 위치한 가데스바네아에서 진쳤던 히브리 노예들은 호르마란 곳에서 아말렉 족과 싸워 한번 힘없이 패한 뒤로 이곳으로 오지 않고 방향을 돌려 큰 광야에서 살기 시작했다.  왜 그들이 광야를 그들의 살 곳으로 택했는지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곳은 메마르고 척박해서 농사는 커녕 마실 물도 찾기 힘들고 위험한 불뱀과 전갈들이 득실거리는 극히 위험한 지역인데, 그들은 수 많은 소와 양과 염소떼를 거느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몇년간 그들을 주시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옮겨 다녔는데 길게는 한 곳에서 1년도 있었지만 어떨때는 겨우 하루 저녁 지나 다시 옮기기도 했다고 한다.  히브리인들의 수는 엄청나서 한번 천막을 치고 자리를 잡으면 끝에서 끝까지 빨리 걸어도 반나절은 족히 걸어야 다다를 정도로 큰데, 노예라는 출신에 걸맞지 않게 질서정연한 천막의 배치와 이동은 마치 거대한 군대와도 같다고들 했다.  


시도 때도 없이 늘 옮겨 다니다 보니 다들 조그만 천막을 쳐놓고 살았는데 그들이 머무는 곳 중앙에 늘 쳐 놓고 제사를 지내는 하얀 천막은 신기하게도 구름 같은 것이 늘 덮여 있고 그 구름이 움직이면, 나팔이 울리고 그 즉시 히브리인 모두가 천막을 걷어 그 구름을 따라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신의 임재인 것일까 아니면 그저 우연한 것일까....  어쨌거나 조그만 구름 하나를 그 많은 사람들이 졸졸 따라 다니면서 수십년째 광야를 맴돌다니...  제 정신들인지 모르겠다.


그들이 무엇을 먹으며 연명하는지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었다.  외부 족속들과는 단절된 떠돌이 생활을 하기 때문에 어디 가서 곡식을 사오는 것도 없었는데도 그들은 분명 곡식처럼 보이는 것을 매일 먹고 살고 있었다고 한다.  아침마다 풀 한포기 없는 들에 나가 뭔가를 주워다가 먹는다는데 나중에 가서 도대체 무엇을 주워간 것인지 살펴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고들 입을 모았다.


그렇듯 많은 주목을 한동안 받았지만 그런 엄청난 신을 모시는 족속이라면 왜 광야에서 그렇게 힘 없고 대책없이 떠돌고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그들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자연스레 멀어졌고, 나 역시 어릴 때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히브리의 신은 정말 엄청나게 강한 신인가 하며 놀랐지만 자라면서 많이 들은 다른 신 이야기들 이야기에 섞여 히브리 신의 이야기도 자연스레 함께 내 머리 속에서 점점 희미해져 갔었다.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 속에 등장했던 이 히브리 사람들이 사람들의 관심에 다시 떠오르게 된 이유는 얼마전 이들이 수십년간 살던 광야 지역을 벗어나, 40여년전 그들이 크게 패한바 있는 호르마와 그 일대를 모조리 휩쓸어버리고, 이어서  가나안 지역의 동북부에 있는 헤스본과 바산으로 가 전쟁을 벌여 그곳을 점령했다는 소식 때문이다.  그 지역에 사는 아모리 족은 모두 엄청난 거인들이고 특히 바산의 왕은 보통사람보다 두배 이상 커 모든 사람들이 공포에 떠는 존재였는데, 경악스럽게도 그 불패의 아모리 족속들이 노예 출신의 히브리 인들에게 전멸을 당했다는 것이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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