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122018  이전 다음

  •  
  •  
  •  
  •  
  •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  
  •  
  •  
  •  

Decision Making


위험 - 편가르기


교회가 큰 의사결정을 해야할 상황들이 가끔 생깁니다.  이 의사결정 과정은 종종 교회의 심각한 분열을 초래하곤 합니다.  오래 교회 다니신 분들 중 이런 분열의 과정을 아프게 겪으셨던 분들이 적지 않으실겁니다.  분열의 초기 조짐은 ‘편 가르기’라는 현상으로 나타납니다.  A목사님편, B목사님편, C장로님편...


일단 편 가르기가 시작되면 마치 정당간의 파벌처럼 모든 사안을 색안경을 끼고 보기 시작하고 한마디의 말로 그 사람이 어느 편인가를 단정 짓습니다.  편 가르기를 의도적으로 하는 사람은 그다지 흔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되지요.  편 가르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옳고 그름"의 '토론'에 우리의 관심을 모아야 할 것 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10가지중 8~9가지 생각이 같아도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했으면 합니다.  Romney를 지지한다고 해서 그의 모든 결정이 다 옳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분명 맹종일 것입니다.  Obama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모든 정책이 잘못 되었다고 사사건건 물고 늘어진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개인의 잘잘못이 아닌 사안 자체의 옳고 그름에 촛점을 맞춰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상대방의 '의도'를 추측하거나 단정지으려고 하지 말아야하겠고, 내가 보기에 말도 안되는 생각을 발표 하더라도 그것을 그 사람의 불순한 동기때문이라고 확대해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교회의 결정 -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심각한 교회 분열의 고통 속에 있는 고린도 교회를 향해 사도바울은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고린도전서 12:27, 29) 라고 권면했습니다.  한국 교계에서 성령운동으로 시작해 이단으로 빠진 집단들의 다수는 리더가 방언하고, 리더가 통역하고, 리더가 분변하고, 리더만 예언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한인 교인들은 중요한 사안일수록 담임 목회자께서 결정해 주는 것을 선호하고 그런 방식에 익숙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불완전하여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는 (고린도전서 13:9) 한계를 안고 있기에 이런 방식은 어려움을 초래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신약 성경을 보면 지역교회의 leadership과 돌봄을 담당해야 하는 "장로들" (목사를 포함)의 자격과 책임과 권위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장로를 일컫는데는 2가지의 헬라어 단어를 쓰고 있는데, 첫째는 'presbyteroi' (장로) 로 연륜 과 성숙함을 갖춘 사람을 일컬으며 둘째는 'episcopoi' (감독) 로 책임을 감당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헬라어 성경원문에서는 두 단어 모두 항상 복수(plural)로 쓰였는데 이것은 목사를 포함하는 장로들에게 'team'을 이루어 신약 사도교회의 leadership을 담당해야하는 책임이 부여 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사도들 간에도 의견 차이가 있었고 논쟁이 있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머리되신 한 그리스도를 주로 모신 한 몸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시간이 소모되고 어려운 과정이지만 당회 → 공동의회를 통한 합의 과정은 우리에게 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분변하는 절차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한국 교계 원로셨던 한경직 목사님은 "싸우지 않으면 교회는 자연히 부흥한다"는 신념 하에 당회에서 만장일치의 원칙을 따라 평생 목회를 하셨고, 예수원 대천덕 신부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담는 그릇은 성도들의 사랑이다"라는 믿음으로 예수원의 모든 의사 결정을 별도의 의회에 맡기고 자신의 의견을 반영하지 말 것을 늘 당부하셨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희교회 일대일 과정 필독서중 하나인 “하나님 정말 당신이십니까”의 15장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세가지 단계’에는 국제 예수전도단 (YWAM, Youth With A Mission) 총재이신 Loren Cunningham 목사님께서 본인을 포함한 4명의 leadership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난 후, 90명의 학생들에게 구체적인 내용을 전달하지 않고, 그들도 동일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지를 확인함으로 공동체를 향한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만약 우리 모두가 정말로 한 몸의 일부라면 우리 각자는 분명 동일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동일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야 할 것이며 그 초석의 하나는 우리가 주 안에서 동일한 비젼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남가주 Saddleback 교회의 Rick Warren 목사님은 그의 저서 'The Purpose Driven Church'에서 "건강한 교회의 기초는 '분명한 목적'이며 그 '목적'은 성경적이고, 명확해야 하며, 전수할 수 있어야 하고,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분명한 목적은 사기를 북돋우고, 좌절감을 줄이며 나아가 집중력과 협력을 가져오고, 평가를 도와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Warren 목사님은 이러한 목적에 걸맞는 합당한 원칙들이 없기 때문에 교회의 모든 의사결정들이 혹은 전통에 의해, 혹은 특정인물에 의해, 혹은 주어진 재정에 따라서 결정되며 서로간의 관점이 다른 경우 자연 다툼이 생기고 심지어는 갈라서는 일마저도 생기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아래 내용은 국제 예수전도단 (YWAM, Youth With A Mission)에서 40여년째 핵심 staff으로 활동하고 있는 Floyd McClung이란 분이 쓰신 책중 "Learning to Love People You Don't Like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 사랑하기, 구번역본 제목: 하나되게 하소서)" 라는 책의 8장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곳’을 간추린 것입니다. 

  • 적절치 못한 접근의 유형 
    • 경쟁적 접근 : 기도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전면 배제한 채 완전 정치 구도로 의사를 결정하는 경우입니다. 
    • 갈등적 접근 : 서로간의 고집, 교만, 완강함이 강하게 대립 됩니다. 
    • 회피적 접근 : 현실도피적으로 방관하여 극소수가 결정하도록 내버려 둡니다. 
  • 바람직한 접근의 필요한 요소 
    • 서로간의 신뢰 : 어려움을 직면하더라도 물러서고 회피하지도 상대방에 대해 절망해버리지도 않아야 합니다. 
    • 열린 마음 : 사랑과 용서의 자세로 논리와 이성에 근거해서 충분한 토론을 거쳐야만 합니다. 
    • 지체들의 참여 : 권위는 '지위'가 아닌 '관계'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적권위는 '인격체'이지 '지위' 또는 '직함'일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된 다른 지체들을 배제한 의사결정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지 못합니다. 
    • 한 비젼 : 비젼(혹은 목적)의 공유가 없다면 올바른 의사결정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 주님께 의탁하는 자세 : 각자가 자신의 것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져야 하고, 서로 심사숙고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개인의 결정 - 불순종의 선택


어떤 이유로건 교회의 결정이 개인의 신앙관에 비추어 볼 때 받아들일 수 없을 수도 있는데  이럴 경우 개개인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대략 아래 표와 같은 선택이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Woodykos님의 블로그에서 빌려왔습니다)  또한 이것은 개교회가 교단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변혁시키시는 하나님

견디게 하시는 하나님

불러 내시는 하나님

우리의 자세

하나님의 주권을 이 땅에

You have a world to win!

이원론(dualism)극복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다림

It’s OK not to fulfull your dream!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대함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적절한 상황

리더의 위치에 있을때

벗어날 수 없는 어려움에 있을 때

벗어날 수 있고 신실한 동지들이 있을 때

모델, 예

느헤미야

아합/이세벨 치하의 오바댜

영국 노예해방 William Wilberforce

초대교회 로마 성도들

흑인 노예들

지하교회 성도들

출애굽

미국초기 이민 청교도

탈출한 공산권 성도들

위험

세속주의, 혼합주의, 정복주의

패배주의

격리주의

이론적 지지

대다수의 개혁주의(reformed) 신학자들

Walter Bruggemann

N. T. Wright

Christopher Wright


어떤 것이 옳은 선택인가는 상황마다, 개인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바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중 첫번째를 택한 사람의 경우 한국 교회 내에서는 통상 비난을 많이 받습니다.  “교회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 “하나님의 종을 힘들게 하는 사람”, “당을 지어 교회를 분열시키려는 사람”, “덕스럽지 못하게 행동하는 사람” 등등…  실제로 그런 불순한 동기로 교회를 해하는 세력도 분명히 있지만, 싸잡아 그렇게 몰아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봅니다.


교인들이 목사/장로의 치리와 권위 아래 있듯이, 장로교의 개교회는 감독/노회의 치리와 권위 아래 있습니다.  옳고 그른 것을 떠나서, 만약 우리 교회가 노회의 결정에 반하는 성명서를 내고, 뜻을 같이하는 교회들을 모아 규합하고, 교단의 잘못된 부분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이라면, 한 명의 교인이 개교회를 향해 그런 행동을 하는 것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해주어야 하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반면 불순종의 의사표시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와 권위를 인정하여 함부로 하지 않는 “자세”를 또한 잃지 말아야겠지요.


끝으로 앞서 언급했던 Loren Cunningham목사님께서 제시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하는 세가지 단계”를 옮겨봅니다.

  • 첫째: 그리스도의 권세로 사탄의 소리를 잠잠케 하도록 명령하고
  • 둘째: 어떤 상상이나 미리 갖고 있던 생각들로부터 우리 마음을 깨끗케 해주시라고 주님께 구하고
  • 셋째: 하나님께서 택하신 때와 방법으로 말씀하실 것을 믿으며 기다림


'내 생각에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직의 댓가 (The Cost of Honesty)  (2) 2016.01.29
정권교체?  (0) 2015.12.15
Contumeliousness (무례함)  (2) 2015.11.22
Love & Forgiveness  (2) 2015.05.10
Non-uniformity  (2) 2015.04.19
Decision Making  (2) 2015.03.08
Relative Time  (0) 2015.01.17
가장 역겨운 죄? (The Most Loathsome Sin?)  (0) 2014.10.05
국회(國會)  (0) 2014.09.24
선동 (Instigation)  (4) 2014.09.18
무장해제 (Disarmament)  (2) 2014.09.15
Posted by 더가까이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ㄱㄷㅇ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5.03.09 17:23 신고

    "옳고 그름의 토론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는 말씀에 동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세와 권위"가 기존 시스템에서의 위치와 항상 동일시 될 수 없다는 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기독인들을 헷갈리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되네요.

    • 더가까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2015.03.09 17:48 신고

      권세와 권위를 인정하는 것이 고분고분 말대로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겠지요. 반대와 불순종을 하더라도 권위를 인정하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